바이루 총리의 뜨거운 감자, 마요트
1841년 프랑스에 합병된 마요트는 오늘날 프랑스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다. 이곳의 참담한 인프라와 저개발 상태는 마요트를 우선순위로 고려하지 않은 프랑스 역대 정부의 우유부단한 정책에서 비롯되었다. 최근 총리직에 오른 프랑수아 바이루의 정부는 예외가 될 수 있을까?
2024년 12월 30일, 마요트의 섬 중 하나인 쁘띠뜨테르. 식수 공급망을 담당하는 해수 담수화 공장 앞이었다.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를 포함한 정부 각료 6명이 사이클론 치도가 휩쓸고 간 지 16일 만에 도착했다. 영토는 황폐화해졌고, 공식 집계에 따르면 사망자 39명, 부상자 4,000명 이상이 발생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이 수치가 과소 평가되었다고 판단했다.(1) 콘크리트로 지어진 많은 주택과 공공건물의 지붕이 날아가고, 수천 그루의 나무가 쓰러졌으며, 전기, 통신, 수도망이 모두 끊겼다.
목마른 섬 마요트
마요트 주민들은 배고프고 목이 마르다. 이미 2023년에 심각한 물 부족을 겪었다. 언덕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냈고, 수도꼭지는 사흘 중 이틀 동안 물이 나오지 않았다. 긴급 상황에서 국가가 수십만 개의 플라스틱 생수를 수송해야 했다. 2016년에 이미 첫 번째 심각한 경고가 있었으며, 기후 변화로 인한 가뭄, 심각하게 낡은 배관, 증가하는 물 소비량과 부족한 생산량 등, 그 원인은 잘 알려져 있었다.
지난해 12월 30일, 극우정당인 국민연합(RN) 소속 하원의원 앙샤 바마나가 이 문제를 긴급하게 다시 살펴봐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바이루 총리는 주변에 “바닷물을 담수로 바꾸는 선박을 사용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한 공무원을 돌아보며 “이 문제를 알고 있습니까?”라고 질문했다. 공무원은 “바닷물을 담수로 바꾸는 선박을 이용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생산된 물을 다시 육지의 수도망에 연결하여 공급하는 과정이 어렵고 복잡합니다. 이미 2023년에 이 방법을 검토했던 적이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당황한 바이루 총리는 교육부 장관인 엘리자베트 보른을 바라보았다. 보른은 2023년에 총리를 지냈지만,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끝없는 물 부족과 프랑스 정부의 방황
지역 의원들은 프랑스 정부가 즉흥적으로 대응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에 불안을 느꼈다. 그들은 강풍이 오기 전에도 하루 46,000m³의 물 소비량에 비해 하루 38,000m³만 생산되었으며, 수도에서 물이 나오는 날이 사흘 중 이틀뿐이었다고 지적했다.
몇 시간 후, 바이루 총리는 ‘마요트 다시 일어서다(Mayotte debout)’라는 계획을 발표하며 “2년 안에 섬을 재건하겠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일정이나 예산 규모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그는 오래전부터 논의만 되고 있던 두 번째 해수 담수화 시설과 세 번째 저수지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들 프로젝트는 아직 진전이 없는 상태다.
연설을 마무리하며, 바이루 총리는 마요트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된 지 184년 만에, 코모로 제도에서 분리된 지 50년 만에, 프랑스의 해외 지역이 된 지 14년이 지난 지금, “마요트의 미래를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라고 선언했다.
2009년, 1990년대 마요트의 총독을 지낸 필리프 부아자담은 이미 자신의 저서에서 “그렇다면 마요트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2) 이는 오랫동안 프랑스 정치인들과 고위 관료들 사이에서 논의되었지만, 공식적으로 거론된 적이 없으며, 여전히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한 문제였다.
마요트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한다는 점에는 많은 이들이 동의했다. 이는 전략적·이념적 이유뿐만 아니라, 마요트 주민들이 여러 차례 국민투표를 통해 프랑스의 일원으로 남기를 원한다는 의사를 밝혀왔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 문제는 파리에서 더 이상 논의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남아 있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채 남아 있다.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마요트
마요트가 1841년 프랑스에 편입될 당시, 프랑스의 주요 목표는 인근 대형 섬인 마다가스카르를 정복하는 데 필요한 전략적 거점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라 레위니옹에서 파견된 군인들은 몇 가지 개발 계획을 세웠지만, 1850년 파리에서 파견된 위원회는 마요트가 군항이나 상업 중심지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프랑스 정부는 마요트의 가장 비옥한 토지를 부르봉섬(현재의 라 레위니옹)이나 프랑스 본토에서 온 플랜테이션(열대 농장) 소유주들에게 넘겼고, 그 이후로 이 섬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몇십 년 동안 마요트에는 200~300명의 유럽인이 소규모로 거주했으며, 대부분은 마요트의 작은 자우지(Dzaoudzi) 바위 언덕에 모여 살았다. 그들은 원주민과 거리를 두었으며, 프랑스 행정 당국도 원주민을 교육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았다. 공식 보고서들은 마요트 주민들을 “부도덕한 악습에 젖은 야만적인 종족”이라고 묘사하며 멸시했다.(3)
마요트, 잊힌 섬?
거의 두 세기가 지난 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966년 마요트의 평균 기대수명은 겨우 44세였다. 1974년에는 학교가 26곳뿐이었고, 중학교는 단 하나뿐이었다. 어린이 세 명 중 두 명이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유일한 병원은 90개 병상을 갖추고 있었지만, 의사는 단 한 명뿐이었다. 식수와 전기는 오직 마요트를 구성하는 두 개의 주요 섬 중 하나인 쁘띠뜨테르에만 공급되었고, 다른 섬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멀리 떨어진 식민지였던 코모로 제도는 사실상 방치된 상태였다.
1974년 12월, 코모로 주민들은 국민투표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결정했다. 대(大)코모로(Grand Comore), 앙주앙(Anjouan), 모엘리(Mohéli) 주민들의 99% 이상이 독립을 선택했지만, 마요트 주민들의 63%는 반대표를 던졌다. 이는 오랫동안 ‘프랑스령 마요트’를 주장해 온 세력들의 선전에 영향받은 바 크다. 만약 독립할 경우, 신생국인 코모로 공화국과 함께해야 한다는, 즉 반(反)코로모 정서가 작용한 것이었다.
알제리를 잃은 후 마요트에 안도했던 프랑스
프랑스에서는 특정 로비 세력이 섬별로 독립 여부를 따로 집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마요트의 프랑스 잔류를 정당화했다. 이는 “코모로 제도는 언제나 하나의 통일된 군도였다”며 분리를 반대했던 당시 프랑스 대통령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의 입장과는 배치되는 결정이었다.
마요트를 프랑스령으로 유지하는 결정은 1962년 알제리 독립으로 인해 제국의 일부를 상실했다는 아쉬움에 젖어 있는 프랑스에는 일종의 ‘보상’처럼 받아들여졌다. 이로써 프랑스 군대는 전략적 요충지인 이 지역에 계속 주둔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마다가스카르의 디에고-수아레즈(Diégo-Suarez) 해군 기지를 상실한 지 2년 만에 확보한 새로운 거점이었다.
게다가 모잠비크 해협은 당시 유조선을 비롯한 선박들이 빈번히 오가는 핵심 항로였다. 1970년대 당시 프랑스가 수입하는 석유의 60%가 이 해협을 통해 들어왔으며, 이후 이 지역이 풍부한 탄화수소(석유와 천연가스) 매장지라는 사실도 밝혀지게 된다.
마요트, 프랑스의 부담인가? 책임인가?
그래서 1841년에도, 1974년에도 프랑스는 마요트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하지만 그곳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깊이 고민한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1975년, 나머지 세 개의 섬이 독립하여 코모로 공화국을 형성하면서 군도가 분리되었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아는 사람은 여전히 없었다. 마요트 주민들은 프랑스 해외령(DOM)의 지위를 요구했다. 그들에게 이는 법적 평등과 제도적 안정성을 의미했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기를 주저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외교적 부담이었다. 코모로 공화국은 계속해서 마요트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했고, 유엔 총회는 매년 프랑스의 마요트 점령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프랑스 외교부는 이를 ‘역사의 사고’라고 부르며, 마요트를 프랑스 본토와 더욱 긴밀하게 통합하는 어떠한 조치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으려 했다.
둘째, 프랑스 정부가 마요트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본토 당국은 마요트 사회를 제대로 알지도 못했고, 알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 19세기 중반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태도를 유지했다. 결국 마요트는 25년 동안 원래 3년 한시적으로 운영될 예정이었던 임시 지위를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다 2001년 7월 11일, 법률에 의해 ‘혼합형’ 지방자치단체 지위를 부여받았고, 10년 후인 2011년, 마요트는 프랑스의 101번째 정식 해외 데파르트망(department, 도)가 되었다. 하지만 이는 당시 많은 행정 관료들이 반대했던 결정이었다. 그들은 마요트가 프랑스의 행정 체제와 맞지 않으며, 지역적·문화적으로 다른 체제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실제로 오랫동안 프랑스의 투자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반 시설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중반이 되어서였다. 당시 마요트에서는 90%의 주민이 프랑스어를 이해하지 못했고, 법체계도 이슬람 전통을 기반으로 한 관습법이 지배적이었다. 또한 경제는 대부분 농업에 의존하며, 비화폐 경제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마요트에서 6세 이상 아동의 의무 교육이 법적으로 시행된 것은 1986년이었고, 유치원이 처음 설립된 것은 1993년이었다. 프랑스 정부의 우유부단함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는 1995년까지 마요트와 코모로 제도 사이에 국경이 없었다는 점이다. 당시 코모로인들은 비자 없이 마요트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프랑스 정부의 땜방식 조치, 주민들은 “‘마녜녜’스럽다” 비난
1990년대 후반, 마요트의 정치인들이 강하게 요구하면서 프랑스 해외 데파르트망으로의 전환 과정이 시작되었지만, 이에 대한 철저한 계획이나 대비는 전혀 없었다. 급격한 인구 증가와 지속적인 이주 흐름 속에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마요트는 계속해서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실제로 1958년, 2만3,300명이었던 인구는 현재 32만 명에 이르렀으며, 교육과 주거 등 기본 인프라가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학교 건설 문제였다. 교육 인프라 확충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늘 부족한 상태였으며, 2018년에는 800개 교실이 부족했고, 2023년 8월 기준으로는 1,200개 교실이 부족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에 대한 긴급 대책으로 조립식(pre-fab) 교실을 세우는 경우가 많았지만, 애초에 임시방편으로 도입된 시설들이 결국 영구적인 해결책처럼 자리 잡는 경우가 많았다.
2017년, 한 시장은 임시 조립식 교실(Algeco) 설치를 거부하며 “그럴 바에야 차라리 아무것도 짓지 않는 게 낫다. 몇 년 더 기다린다고 큰일 나진 않는다. 우리는 더 이상 임시방편으로 대충 때우는 방식에 의존할 수 없다.(4) 이제는 확실한 정책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하며 프랑스 정부에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을 촉구했다.
연구자 클레망틴 르위제는 마요트에서 자주 쓰이는 ‘마녜녜(magnégné)’라는 표현을 언급하며, 이를 ‘대충 땜질한, 임시변통의’라는 뜻으로 번역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녀는 “프랑스 정부의 대응 방식 자체가 마녜녜스럽다”며, 마요트 정책이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 즉흥적이고 임시방편적인 대책들로 운영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마요트는 정말 일어설 수 있을까
그동안 수많은 계획이 발표되었다. 2008년 ‘해외 데파르트망 협약’, 2015년 ‘마요트 2025’, 2018년 ‘마요트의 미래를 위한 계획’, 그리고 현재의 ‘마요트 다시 일어서다’까지…. 하지만 이러한 계획들은 예산 확보에는 도움이 되었을지 몰라도, 대부분 선언적인 의미에 그쳤으며, 실행되지 못한 채 금세 잊혔다.
프랑스 회계 감사원이 2022년 6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계획은 시행 1년 만에 중단되었고, 이후 발표된 계획 또한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진 기간은 극히 짧았다. 감사원 판사들은 마요트가 해외 데파르트망으로 전환된 지 11년이 지난 지금도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전략적 논의가 여전히 부족하다”라고 지적했다.(5)
문제는 자금 부족이 아니라,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것이었다. 2023년 5월, 도미니크 그라시아네트 마요트 교육청 사무총장은 “예산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용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마요트는 프랑스 해외 영토 중 가장 많은 정부 지원금을 보장받고 있으며, 2013년부터 2020년까지 국가 지원 예산이 7억 7,500만 유로에서 15억 유로로 두 배 증가했다.
하지만 프로젝트 집행률은 15%에 불과하며, 프랑스 해외 영토 중 1인당 지출이 가장 낮은 지역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프랑스 본토에서는 60세 미만 1인당 연간 1만 유로가 지원되는 반면, 마요트에서는 6,000유로에 불과하다. 같은 해외 영토인 생피에르에 미클롱(Saint-Pierre-et-Miquelon)에서는 1인당 2만 5,000유로가 투입되는 것과 비교하면, 격차는 더욱 크다.(6)
속수무책인 바이루 총리
오늘날 마요트는 프랑스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다. 2018년 기준, 전체 인구의 절반이 월 260유로 이하로 생활하며, 이는 프랑스 본토 평균의 6분의 1 수준이다. 40%의 주민이 지역 빈곤선(월 160유로) 이하의 소득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80%가 전국 빈곤선(월 1,010유로) 이하의 수입을 얻고 있다.
하지만 마요트는 프랑스에서 가장 불평등이 심한 지역이기도 하다. 공무원들은 생활비 상승에 따른 수당과 급여 인상 혜택을 받아 프랑스 본토보다 높은 급여를 받지만, 나머지 주민들은 최저 생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저임금(SMIC)은 프랑스 본토보다 25% 낮고, 기초생활보장제도(RSA) 지급액은 50% 수준에 불과하다.
프랑스 전국지방자치센터연합(UNCCAS)에 따르면, 상위 20%의 부유층이 하위 20%보다 80배 더 많은 소득을 얻고 있으며, 해외 데파르트망으로 전환한 이후 이러한 격차는 더욱 심해졌다.(7) 이는 단순한 ‘저개발’이 아니라 ‘잘못된 발전’의 결과라 할 수 있다.
프랑스 정부는 해외 영토 정책에서 두 가지 상반된 접근 방식을 병행하고 있다. 하나는 긴급한 위기 대응, 다른 하나는 본토와의 균형 발전을 위한 장기적 노력이다. 하지만 마요트의 경우 여기에 또 다른 복잡성이 더해진다. 프랑스가 마요트의 ‘개발’을 지원할수록, 이 지역은 모잠비크 해협에서 더욱 돋보이는 번영의 섬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마요트는 이 지역에서 가장 부유한 섬이다. 1974년, 유엔 주재 프랑스 대사였던 루이 드 기랭고는 다음과 같이 예견했다. “만약 마요트가 해외 데파르트망(Department d’outre-mer)이나 해외 영토(Territoire d’outre-mer) 지위를 갖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시간이 지나면서 마요트는 주변 섬들보다 덜 가난해질 것이고, 결국 마다가스카르와 코모로 군도의 나머지 섬들 사이에서 질투와 갈등의 중심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프랑스 정부는 수십 년 동안 같은 선택을 반복했다. 바이루 총리가 발표한 ‘마요트 다시 일어서다’ 계획에서도 지역 협력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으며, 오직 지난 20년 동안 프랑스가 최우선 과제로 삼아 온 ‘이민 문제 대응’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새로운 해결책 없이, 프랑스는 결국 부러진 다리에 반창고를 붙이는 것처럼, 근본적인 변화 없이 임시방편적인 대책만을 반복하고 있다.
글·레미 카라욜 Rémi Carayol
언론인
번역·아르망
(1) 최종 업데이트할 평가
(2) 필리프 부아자담(Philippe Boisadam), 『마요트를 어떻게 할 것인가? 마요트 문제의 연대기적 분석(1841~2000)』, 라르마탕(L’Harmattan), 파리, 2009.
(3) 필리베르-오귀스탱 봉피스(Philibert-Augustain Bonfils) 사령관 보고서, 마요트 최고 사령관, 장 마르탱(Jean Martin) 인용, 『네 개의 섬, 해적과 농장주 사이에서. 말라가시인의 약탈과 국제적 경쟁』, 라르마탕, 1983.
(4) 클레망틴 르위제(Clémentine Lehuger), 『‘마녜녜’ 국가: 마요트에서의 국가에 대한 상상, 실천, 그리고 관계』, 팡테옹-소르본(Université Panthéon-Sorbonne - Paris I), 2022.
(5) 프랑스 회계 감사원(Cour des comptes), 「마요트의 발전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인구 문제, 해외 데파르트망 전환, 그리고 마요트 주민들의 기대에 더 잘 대응하기 위해」, 주제별 공공 보고서, 파리, 2022년 6월.
(6) 프랑스 회계 감사원(Cour des comptes), 「프랑스 해외 영토에 대한 국가 재정 지원. 구체화해야 할 전략, 그리고 의회에 대한 정보 제공 강화 필요성」, 상원 재정위원회에 제출된 보고서, 파리, 2022년 3월.
(7) 세바스티앙 메르세롱(Sébastien Merceron), 「생활 수준의 불평등이 심화되다. 2018년 마요트의 소득과 빈곤」, INSEE(프랑스 통계청) 마요트 분석 보고서 제25호, 생드니(Saint-Denis), 2020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