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의 케냐군, 검은피부 하얀 가면
아이티의 혼돈을 가중시키는 케냐 군대
2023년 11월 20일, 갱단과 치안 부대의 폭력이 심각해져 국경없는의사회(MSF)가 아이티 포르토프랭스(Port-au-Prince) 수도권 지역에서의 활동을 중단했다. 그후 케냐가 주도하고 워싱턴이 지원하는 다국적 안보지원단이 아이티에 도착했다. 진정한 평화유지가 가능할까?
2024년 6월 25일, 아이티 포르토프랭스의 투생 루베르튀르 국제공항 활주로에 도착한 지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위장복을 입은 200명의 경찰이 잠시 춤을 추었다. 이 장면은 식민지 드라마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마치 혼돈에 빠진 열대의 나라에 구원자로 상륙한 외국 군대를 연상시키는 설정이었다.
그러나 이번 병력은 전례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전날 나이로비에서 1만2,000km 떨어진 이곳으로 이동한 이들은 다국적 안보지원단(MMS)의 첫 번째 케냐군 부대로, 아이티에서의 ‘갱단 퇴치’와 ‘치안 회복’을 목표로 파병되었다.
2021년 7월 7일 아이티에서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이 암살된 이후, 수도의 80%를 장악한 범죄 조직들은 1만 2,000명을 살해하고 60만 명 이상을 강제로 집을 떠나게 했다.(1)
2023년 10월 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MMS 창설과 배치를 결정했다. 미국은 프랑스의 지지를 받아 이를 강력히 추진했고, 3억 달러 규모의 자금과 함께 물류, 정보, 인력, 군사 장비를 지원하며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2) 반면 러시아와 중국은 투표에서 기권했고, 외국의 모든 형태의 개입이 국가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아이티의 주권 존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케냐 대통령 윌리엄 루토는 2023년 10월 14일 유엔 총회에서 MMS 파병을 “역사적인 행동이자 범아프리카적 약속이며, 약탈과 식민지적 억압, 그리고 탈식민지 시대의 보복과 착취의 무게를 견뎌온 아이티 국민과의 필수적인 연대”라고 설명했다.
케냐의 NATO 동맹 참여, “검은 얼굴을 한 서구 제국주의” 논란
그러나 아프리카, 카리브해, 그리고 미국에서는 이번 행동을 두고 “백악관이 하청을 준 군사 침공”이자 “검은 얼굴을 한 서구 제국주의”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3) 2024년 5월, 케냐 대통령 윌리엄 루토가 워싱턴을 국빈 방문한 자리에서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은 케냐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비회원 주요 동맹국으로 격상시켰다. 이 지위는 지금까지 20개국에만 부여된 것으로,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로서는 처음이었다.
이미 나이로비와 워싱턴은 테러리즘, 특히 소말리아 알셰바브 조직과의 싸움에서 협력하고 있으며, 미국은 미국과 영국 군사 기지(4)를 수용하고 있는 동아프리카 국가 케냐를 지역적 안정성과 경제적 역동성의 중심지로 보고 있다.
케냐의 작가 응구기 와 티옹오(소설가, 극작가로 현대 아프리카 문학을 대표, 2016년 제6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역주)는 공개 서한에서 자국의 윌리엄 루토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당신이 백악관에 있는 동안, 아이티 국민은 거리로 나와 당신을 노예라고 불렀다. (…) 언제부터 당신은 대륙의 자원을 놓고 벌어지는 미국과 러시아·중국 간 싸움에서 NATO의 하수인이 되기로 동의했는가?”라고 물었다.(5)
미국이 케냐에 보답으로 한 투자, ‘실리콘 사바나’
조 바이든 대통령은 회담에서 케냐 대통령에게 첨단 기술 분야에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제시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 기업들은 이미 나이로비에 아프리카 본사를 설립했으며, 이곳을 ‘실리콘 사바나(Silicon Savannah)’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들은 나이로비에 추가로 20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재생에너지 분야의 협력과 말라리아 및 에이즈 퇴치 노력에서도 파트너십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은 무엇보다 케냐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새로운 대출을 받는 데 있어 미국이 지원할 것을 보장했다.
한편, IMF의 신뢰를 얻기 위해 윌리엄 루토 대통령은 긴축 예산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연료와 식료품에 대한 대규모 세금 인상이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전국적으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케냐군이 아이티에 도착한 날, 나이로비에서 케냐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5명이 사망하고, 3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다음 날, 분노한 군중이 케냐 의회의 일부를 방화했다.
2024년 6월 18일부터 7월 1일까지의 케냐 시위 진압 과정에서 최소 39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몇 년 전부터 케냐의 비정부기구들은 특히 빈곤 지역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인권 침해적인 강제 실종과 초법적 처형을 비판해왔다.
MMS 배치와 아이티 위기
케냐 안보군의 이러한 “문제점”은 2023년 8월 18일, 국제앰네스티가 공개서한을 통해 UN 안전보장이사회에 경고를 보낸 계기가 되었다. 이 서한에서는 MMS 배치를 앞두고 안전장치를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6) 2023년 10월 2일 MMS를 승인한 결의안은 전쟁 상태에 놓인 국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유엔 헌장 제7장(평화에 대한 위협, 평화의 파괴 및 침략 행위에 관한 조치)에 따라 채택되었다.
이 결의안은 해당 부대가 국제적 통제 아래 배치되는 유엔 평화유지활동(OMP)과는 달리, 참가국들의 전적인 책임하에 운영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러한 결정은 2004년부터 2017년까지 아이티에서 이루어진 유엔 안정화 임무(MINUSTAH)의 실패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 임무는 아동 착취, 성폭력, 마약 밀매와 같은 폭력 행위로 얼룩졌으며, 이에 대한 책임자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또한, MINUSTAH에 참여한 유엔 평화유지군은 아이티에 콜레라를 재유입시켜 만 명의 희생자를 낸 유행병을 촉발했다.
2023년 1월 정상회의에서 카리브 공동체(Caribbean Community, CARICOM)는 UN 안전보장이사회가 위임한 아이티 위기 해결 기구(Core group)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아이티로의 경찰력 파견을 승인하지 않았다. Core group은 미국, 캐나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서방 대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해 여름, 미국 국무장관 앤서니 블링컨이 카리브해 국가들의 지도자들을 초청해 소집한 트리니다드 회의 종료 후, CARICOM 지도자들은 입장을 번복했다. 케냐와 마찬가지로, CARICOM 회원국들 역시 워싱턴으로부터 군사 협력 프로그램과 경제 지원을 약속받았다. 아이티는 미국 국무부가 발표한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는 취약 국가” 목록에서 최우선 순위에 올라 있다.
아이티 위기, 국제 개입의 유산과 자주성의 투쟁
그러나 아이티와 아메리카 대륙을 위한 ‘블랙 얼라이언스 포 피스’(Black Alliance for Peace)의 코디네이터이자 UCLA(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의 인류학 교수인 제미마 피에르는 이렇게 지적했다. “아이티의 주요 문제는 소위 갱단들의 폭력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끊임없는 간섭이다. 아이티인들은 아무것도 요청한 적이 없다.”(7) 실제로 아이티 국가의 붕괴는 우연이 아니었다.
1804년 독립 이후 파리와 워싱턴이 요구한 수백만 유로의 ‘배상금’에서부터, 백악관과 엘리제궁이 지원한 쿠데타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는 반복되었다. 1956년에는 반공 독재자 프랑수아 ‘파파 독’ 뒤발리에와 그의 아들 장클로드 ‘베이비 독’ 뒤발리에를 위한 쿠데타가 있었으며, 장클로드는 결국 축출된 후 프랑스로 망명했다.
이어 1994년과 2004년에는 프랑스와 전직 경찰 출신 세력이 지원하는 쿠데타가 일어났고, 이는 빈민가 출신의 대중적인 사제이자 아이티의 첫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인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를 겨냥한 것이었다.(8)
아이티의 권력을 조종하는 미국
2010년, 아이티를 황폐화한 지진 이후, 미국은 인도적 지원을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교묘하게 조종했다. 위키리크스(WikiLeaks)가 폭로한 외교 문서에 따르면, 2011년 미국은 신참 정치인 미셸 마르텔리와 그의 정당 테트 칼레(Tèt Kale, PHTK)의 승리를 위해 대선의 흐름을 바꿨다.
이 문서들에서 주(駐)아이티 미국 대사인 재닛 A. 샌더슨은 유엔 안정화 임무단(MINUSTAH)을 “미국이 적은 비용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도구”라고 찬양하며, 이 국제 군대는 “미국 정부의 핵심 정치적 이익을 아이티에서 증진시키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도구”로 평가했다. 그녀는 특히 “시장 경제에 반대하는 대중주의적 정치 세력의 재등장을 막는 것”과 “해상 이민의 유출을 방지하는 것”을 미국의 주요 이익으로 언급했다.
2016년, 미국은 미셸 마르텔리의 후계자로 논란 속에 당선된 조브넬 모이즈의 선거를 환영했다. 이는 62만 8천 건의 ‘좀비 투표’ 조작, 그리고 그의 멘토와 함께 베네수엘라의 페트로카리브(PetroCaribe. 2005년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설립한 에너지 협력 기구. 카리브해 국가들과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에 유리한 조건으로 석유 공급) 원조 금액에서 수억 달러를 횡령한 혐의에도 불구하고 가능했던 일이었다.
마르텔리는 아이티에서 ‘합법적 갱스터’로 불리며, 현재 미국으로부터 광범위한 국제 마약 밀매 네트워크에 연루된 혐의로 제재를 받고 있다. 동시에 유엔은 그가 빈민가 주민들을 테러하기 위해 범죄 조직에 자금을 지원하고 무기를 제공했다고 비난했다.
2021년 모이즈가 자택에서 용병들의 공격으로 암살된 후, 아이티의 정치적 안정과 민주주의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구성한 협의체인 ‘코어 그룹’은 카리콤의 지원을 받아 아리엘 헨리를 총리로 임명했다. 선거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났고, 아이티의 모든 선출직 공무원들의 임기가 종료된 상태였다.
지난해 3월 초, 헨리가 나이로비에서 케냐의 협력 약속을 받고 귀국하던 중, 무장 공격의 물결이 수도를 휩쓸었고, 이에 따라 인기 없는 총리는 미국으로 망명하게 되었다. 결국 코어 그룹과 카리콤은 정당, 민간 부문, 그리고 한 명의 침례교 사제로 구성된 8명의 비선출 대표로 이루어진 선거 전환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이 위원회의 첫 번째 조치는 루토 대통령에게 국제 안보 부대 구성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하는 서한을 보내는 것이었다.
국제위기그룹 아프리카 지부장 무리시 무티가는 “제도 붕괴에는 군사적 해결책이 없다”라고 평가하며, “정치적 국가 합의를 구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찰을 투입하는 것은 부당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9) 국제 언론은 2024년 3월, MMS가 도착하기 몇 달 전, 무장 민병대가 공항 입구에서 방화된 바리케이드를 지키고 있는 장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수천 명의 시위대가 거리를 점거하며 평화적으로 헨리 총리의 사임과 선거 실시를 요구한 사실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폭력의 악순환과 싸우는 아이티 국민들
2024년 봄, 포르토프랭스에 혼란을 불러일으킨 갱단의 수장 지미 ‘바비큐’ 셰리지에는 아이티 특수부대 출신으로, 모이즈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학살을 조율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자신의 보호자를 잃은 그는 이제 G9 혁명군 및 동맹 세력의 지도자로서 해방자를 자처하며 “외세 점령”과 과두정치의 특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공항 봉쇄 당시 “대형 호텔에 사는 소수의 부유층이 빈민가 주민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10) 아이티 국민만이 자신들의 고통을 이해하며, 누가 통치할 것인지 결정할 권리를 갖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셰리지에는 유엔의 제재를 받고 있는 일부 지도자들이 포함된 무장 단체들을 통합하며, 케냐 군대에 지옥 같은 상황의 해결을 약속했다. 최근 몇 달간 무장 단체들은 공격을 강화하고 수도에 대한 통제력을 더욱 확장했다. 지난해 10월 30일 발표된 유엔 아이티 통합사무소(BINUH)의 보고서는 갱단과의 싸움이 초래한 “역대급 폭력 수준”을 경고하고 있다. MMS가 배치된 이후, 1,223명이 사망하고 522명이 부상당했다.
이 중 45%는 치안 당국의 작전 결과였고, 살인의 8%는 수도에서 증가하는 민병대의 자경단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특히 아동을 포함한 민간인들에 대한 치안 당국의 “즉결적이거나 자의적인 처형” 사례를 언급하며 심각한 인권 침해를 지적했다.(11)
아이티 민병대와 다국적 치안군의 ‘거울 놀이’
치안 상황이 악화되면서 과도 통치위원회는 코닐 총리를 해임하고, 이미 유엔에 MMS를 대체할 유엔 평화유지군 배치를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하지만 이 요청은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동의할 가능성이 낮고, 충분한 자원 병력을 확보하는 것도 어려울 전망이다.
케냐가 지휘하는 이 지원단은 포르토프랭스 거리에서 고전하며 추가 병력을 모집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 자메이카는 지난해 9월에 겨우 24명의 경찰 지도관을 파견했으며, 벨리즈는 단 2명의 요원을 보냈다. 엘살바도르의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은 80명의 경찰 병력을 추가로 파견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그는 자국에서 ‘갱단과의 전쟁’을 강력하게 이끌며 대규모 폭력 행위로 비판받는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2024년 말까지 2,000명의 요원이 MMS를 강화했지만, 무장 민병대와의 대치는 일종의 ‘거울놀이’로 변하고 있다. 양측 모두 초법적 살인 혐의를 받고 있으며, 미국산 살상무기를 동일하게 사용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아이티에서 가장 빈곤한 사람들이 끼어 고통받고 있다.
글·벤자민 페르난데즈 Benjamin Fernandez
기자
번역·아르망
(1) 「아이티 - 아이티 내 실향민 상황에 대한 보고서」 제7차 (2024년 6월), 국제이주기구, 2024년 6월, IOM
(2) 「미국과 아이티의 관계」, 미국 국무부, 2024년 9월 5일, 미국 국무부
(3) 알렉산드라 샤프, 「유엔, 아이티에서 외국 개입 승인」, <Foreign Policy>, 워싱턴, 2023년 10월 3일, 및 「흑인 얼굴을 한 제국주의 반대, 아이티 주권 찬성」, 2023년 8월 25일, Black Alliance for Peace
(4) 장-크리스토프 세르방, 「케냐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영국군의 존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2년 10월.
(5) 응구기 와 티옹오, 「윌리엄 루토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 <Ashe News Daily>, 2024년 5월 31일
(6) 「아이티. 아이티에 국제 치안군 배치를 둘러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원들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 2023년 8월 18일,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7) 「미국이 임명한 ‘과도 통치위원회’의 섬 통치를 강요하자 외국 개입에 저항하는 아이티 국민들」, <Democracy Now!>, 2024년 4월 3일
(8) 제이크 존슨, 「아이티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1년 12월.
(9) 캐롤라인 키메우 및 톰 필립스, 「미션 임파서블: 아이티로 경찰을 파견하려는 계획에 대한 케냐의 우려 증가」, <가디언>, 런던, 2024년 3월 28일.
(10) 「갱단 수장 ‘바비큐’, 권력 공백 속에서 부상하며 아이티 총리 사임」, <ITV>, 2024년 3월 12일
(11) 다니카 코토 및 이반스 사논, 「아이티에서 살인과 경찰 처형이 증가하며 어린이들까지 겨냥되고 있다고 유엔 발표」, <AP 통신>, 2024년 10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