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후퇴, 정치의 실패

2025-02-28     안세실 로베르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국제이사

“우리는 국왕의 체포영장에 진저리가 났소. 비밀스러운 이유로 감옥에 갇히는 것도 지겨웠소.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마주하게 되는 스캔들에 지쳤고, 해가 지면 잊힐 이 추문들에도 신물이 났소. 자신들도 제대로 처신하지 못하면서 우리를 이끌겠다고 하는 이 무능한 장관들에게도 질렸단 말이오!”

에두아르 몰리나로의 영화 <보마르셰, 무례한 자(Beaumarchais, l’insolent)>(18세기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혁명 사상가인 피에르 보마르셰의 삶을 다룬 작품. 1996년—역주)에서 보마르셰가 왕정 체제 법정에 던진 이 항변은 1789년 혁명이 단순한 정치적 변혁이 아닌, 법제도의 혁명적 변화이기도 했음을 상기시킨다.

이는 자의적 권력에 맞서 정의를 추구하기 위함이었다. 1789년 8월 26일의 인권선언은 법 앞의 평등을 천명하고, 공개적인 토론을 거쳐 범죄와 비행을 규정하는 임무를 국민의 대표자들에게 부여했다. 이 선언은 삼권분립과 무죄추정의 원칙 같은 시민의 기본권을 명시했고, 행정부와 경찰은 공익에 복무해야 하며, 징역형은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부과되어야 한다는 점을 선언했다.  수 세기 동안 이러한 원칙들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은 계속해 왔다.

 

인권과 자유의 긴 여정, 진보와 퇴보의 역사

영국에서는 1215년 마그나 카르타(대헌장)를 통해 법 앞의 평등 개념이 도입되었고, 1679년에는 영국 의회가 찰스 2세로부터 인신보호영장 원칙(Habeas Corpus)을 얻어내었다. 이는 피구금자를 반드시 법관 앞에 세워 심사받도록 함으로써 자의적 구금을 금지하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인권 보장’을 위한 오랜 투쟁은 정치적 역학 관계와 민중 운동의 강도에 따라 진보와 퇴보를 거듭했다. 한 시대의 특징은 법제도의 발전 양상, 사회적 관행, 그리고 경찰과 사법부의 관계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러한 잣대로 현재를 평가하면, 우리는 모든 면에서 퇴보하는 시대를 맞이한 것은 아닐까?

19세기와 20세기에는 사상과 민중의 두 가지 흐름이 의미 있는 진전을 이끌었다. 유럽에서는 사회주의 사상의 발전과 노동자들의 파업을 통해 노동자들이 표현의 자유와 노조 대표권을 얻을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혁명의 이념을 바탕으로 한 공화정이 수립되면서 활발한 정치 토론이 이루어졌고, 1881년에는 결사의 자유가, 1897년 12월 8일 콩스탕법을 통해서는 피고인의 변호인 선임권이 인정되었다. 20세기 전반에 걸쳐 영국의 운동가 에멀린 팽크허스트와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가 주도한 투쟁, 그리고 1970년대부터 시작된 대규모 여성운동은 여성의 정치적, 법적 해방을 이루어냈다.

 

전쟁과 인권, 진전과 후퇴의 양면성

전쟁은 때로 변화의 촉매제나 가속제 역할을 한다. 1945년 이후,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주의 정권이 저지른 전대미문의 범죄로 인해 “인종, 성별, 언어, 종교의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조약들이 채택되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세계인권선언(1948)인데, 이는 후에 식민지국이 자유와 독립에 대한 그들의 정당한 열망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근거가 되었다. 이후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규약과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규약(1966)과 같은 문서들이 제정되었고, 유럽인권협약(1951)이나 아프리카인권헌장(1981) 같은 많은 지역 문서로 보완되었다.

역사적으로 퇴보의 시기는 주로 1852년 프랑스 제2 제정이나 1940년 비시 정권 수립과 같은 쿠데타 이후의 체제 변화와 함께 찾아왔다. 하지만 이는 개인과 재산의 안전을 위협하는 폭력적 사건들 이후에도 나타났다. 예를 들어, 2001년 9월 11일, 테러로 이어진 ‘테러와의 전쟁’은 안전이라는 명분 아래 비상조치와 자유 제한을 일상화했다.

이슬람 테러의 증가부터 폭력적 극우 운동의 재조직화, 그리고 반세계화 사회운동에서 최근의 ‘기후 무대응’을 규탄하는 환경운동까지, 이 모든 것이 경찰 권력 강화(구금 기간 연장, 신분증 검문의 일상화, 감시 체계 확대)와 사법적 보장의 약화(‘단독 테러 기도’나 ‘테러 옹호’와 같은 모호한 범죄 유형 신설, 항소 기간 단축과 변호권 제한)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1)

 

감시사회의 두 얼굴, 안전과 자유의 딜레마

2005년 도시 폭동을 억제하기 위한 비상사태 선포를 포함한 비상사태의 잦은 발동, 프랑스의 비지피라트 계획(테러에 대처하기 위한 프랑스의 경계 경보체계. 1978년 수립됨—역주)의 일상화, 미국의 애국자법 제정 등 예외적 통치가 자유민주주의의 규범이 되어가는 추세다. 1986년 파리 백화점과 렌 거리를 피로 물들인 연쇄 테러 이후 최초의 ‘파스카법’이 도입된 이래로 프랑스 의회는 32개의 안보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2025년 브루노 르타이요 내무장관은 새로운 법안을 추가로 요구하고 있다.(2)

코로나19 팬데믹은 보건 비상사태라는 특별 체제를 만들어내면서, 개방 사회를 표방하는 서구 사회가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흔히 볼 수 있었던 감시와 통제 조치에 복종하게 했다. 드론, 정보 수집, 신체 검색, 영상 감시 등 첨단 기술이 대대적으로 동원되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예외 상황이 종료된 후에도 일종의 래칫 효과(ratchet effect, 치과용 래칫이나 기계 래칫처럼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고 역방향으로는 돌아가지 않는 현상—역주)로 인해 이러한 자유 침해 조치들이 법체계 안에 그대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3)

 

자유를 잠식하는 치안국가

하지만 치안 정책의 자유 파괴적 잠재력은 사고(思考)가 무너지고 이를 수용하는 조건이 만들어질수록 더욱 현실화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미국에서는 ‘깨진 유리창 이론’(1982년 윌슨과 켈링이 제시한 범죄학 이론. 사소한 무질서(깨진 유리창)를 방치하면 더 큰 범죄를 초래한다는 가설. 무질서와 범죄의 전염성을 경고한 이론—역주)이 장래의 범죄를 예방한다는 명분으로 경미한 초범이라도 가장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4)

상식이라는 미명 하에, 이 담론은 사회 질서에 대한 경직된 시각을 보여준다. 주로 빈민가 출신인 범죄자는 결코 교화될 수 없으며, 아직 청소년이라도 미래의 사회 복귀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중형을 즉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임기 2007~2012년)은 유치원생 때부터 미래의 범죄자를 발견할 수 있다고 암시하며 가장 희화화된 결정론적 이론들을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 수십 년간 청소년 사법 보호, 교육자, 판사, 교육에 배정된 재원은 예산상의 이유뿐 아니라 철학적, 이념적 선택으로 인해 감소하고 있다.

실재하는 안보 위협은 흔히 자유주의적·사회적 사상의 진보를 겪어내야 했던 유럽 엘리트층의 오래된 반동적 기질을 되살리고 있다. 2018~2019년 프랑스의 ‘노란 조끼 운동’(마크롱 정부의 연료세 인상 정책에 노동자, 중산층의 생활고 불만 폭발—역주)에 대한 잔혹한 탄압이 보여주듯 귀족적 반사 반응이 계급적 오만과 손쉽게 결탁한다.

 

인간중심적 사상, 이익집단과 특권층에 밀려나

오랫동안 서민 지역에서 실험된 공격적인 치안 유지의 교리와 관행이 프랑수아 쉬로 아카데미 회원의 표현대로, “권위주의 정권의 열성적인 조력자가 된 판사들의 지나치게 관대한 감독하에 자유로운 시민을 우리 안의 가축으로 만들고 있다.”(5) 사회적 측면에서 노동법의 정기적인 해체와 노조원(및 기자)에 대한 구류와 같은 위협적 관행의 재확산은 이러한 대대적인 퇴행의 일부다.

유럽 대륙을 오랫동안 지배해온 계몽주의의 평등하고 인간중심적인 사상이 이제 이익집단의 합법화와 새로운 특권층의 권리 회복에 밀려나고 있다. 기업가들과 소위 ‘자수성가한 사람들’은—마치 공적 지원을 전혀 받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며—혁신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유럽연합이 만든 ‘규제 샌드박스’(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를 테스트할 수 있도록 기존 규제를 일시적으로 면제해 주는 제도—역주)처럼 일반법(사회법과 세법)의 특례를 누리고 있다.

반면에 서민층은 사회적 불평등을 되풀이하는 자동 판결을 선호하는 알고리즘 기반 사법 제도의 첫 피해자가 될 수 있다.(6) 긴급 상황, 불안, 재정 부족을 내세우는 것은 기본권을 침해하는 이념적 선택을 손쉽게 가리는 구실이 되고 있다.

 

 

글·안세실 로베르 Anne-Cécile Ro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국제이사

번역·박명수


(1) 뱅상 시제르, 「테러리즘을 이야기할 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6년 8월
(2) “1980년대 이후 반테러 입법의 연대기”, www.vie-publique.fr
(3) 패트릭 보두앵, 「자유는 잃고 안전은 얻지 못한 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5년 12월
(4) 로이크 바캉, 「미국발 치안 담론들에 관하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2년 5월
(5) 프랑수아 쉬로의 취임 연설, 2022년 3월 3일, www.academie-francaise.fr
   에블린 시르-마랭, 「본연의 역할을 벗어난 사법」, <마니에르 드 부아르> 182호, “자유를 향한 공격”, 2022년 4~5월호
(6) 뱅상 브렝가르트, 윌리엄 부르동, 「창의적 우애를 위한 변론」, <마니에르 드 부아르> 182호, “자유를 향한 공격”, 2022년 4~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