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복종이 아니라 저항하라

2025-02-28     뱅상 시제르 | 파리 낭테르 대학 교수

지난 몇 년간 공공 담론에서 프랑스 정부 조치에 대한 시민 불복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특히 국민연합(RN)의 집권을 저지하려는 여러 사회운동 주체의 발언 속에서 이러한 구호가 두드러졌다.(1) 그러나 ‘불복종’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것은 2010년대 중반부터다.

특히 2018~2019년 겨울 ‘노란 조끼(Gilets Jaunes)’ 운동 당시 정부의 강경한 탄압 속에서 그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었다.(2) 공공 권력과의 대화가 불가능해 보이고, 정부 정책에 반대 의견을 표명하는 것만으로도 법적 처벌이나 보복의 위험을 초래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제정한 규칙에 명시적으로 불복종함으로써 그 부당함을 고발하고 드러내야 한다는 논리가 점점 확산하고 있다.

 

법을 넘어서, 환경 운동과 불복종의 논리

이러한 불복종의 논리는 다양한 환경 단체나 비공식적 운동 내에서 받아들여지거나 최소한 논의되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한 인류의 실존적 위협 앞에서 이들은 점점 더 급진적인 행동의 필요성을 주장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엑스텡크시옹 레벨리옹(Extinction Rébellion)은 공공장소를 무단 점거하는 행위를 주요한 행동 방식으로 삼고 있다. 마찬가지로, 2023년 3월 25일 생트솔린에서 ‘대형 저수조’ 건설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한 많은 이들 역시 시민 불복종을 자신들의 행동 원칙으로 내세웠다.(3) 시민 불복종을 주제로 한 워크숍을 개최했다는 이유만으로 비엔 주는 알테르나티바(Alternatiba) 단체에 대한 모든 공공 보조금 지급을 거부했지만, 이 결정은 이후 행정법원에 의해 취소됐다.

이러한 조치는 특히 21세기 초부터 두드러진 권위주의적 경향의 강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물론 이는 전례 없는 현상이 아니며, 프랑스 제1 제정(1804~1815) 시대로까지(4)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제도적 전통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이 권위주의적 흐름은 특히 강한 강도로 나타나며, 단순히 청원이나 성명 발표를 통한 공공 권력과의 대화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새로운 형태의 저항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시민 불복종이 공공 자유에 대한 위협에 가장 적절한 대응 방식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것만이 유일한 해법은 아닐 것이다.

 

시민 불복종 : 정의로운 저항인가? 논쟁적 도구인가?

시민 불복종이라는 개념은 1849년 미국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에 의해 공식화되었다. 그는 시민이 부당하다고 여기는 법에 저항할 권리, 나아가 저항할 의무까지도 갖고 있음을 주장했다. 이 개념은 그의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되어, 일부 세금이 노예제 지원에 사용된다는 이유로 납세를 거부한 사례에서 정립되었다.(5)

시민 불복종을 주장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투쟁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시민권 운동—특히 미국 남부의 인종 차별법에 맞선 저항—또는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의 반(反)식민주의 독립운동과 같은 역사적 맥락에 위치시킨다.

그러나 자신이 정의롭다고 믿는 가치관을 근거로 현행 법률을 거부할 수 있다는 논리는 반드시 민주적 진보를 위한 투쟁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여러 나라에서 낙태 권리를 금지하려는 운동가들 역시 시민 불복종을 전략으로 삼고 있다. 공공장소나 낙태 시술이 이루어지는 시설을 점거하거나,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에게 의료 서비스 제공을 거부하는 행위 등은 항상 ‘정의로운 대의’라는 명목 아래 법을 어길 정당성을 주장하며 이루어진다.

또한, 법적 질서를 공개적으로 위반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논리는 극우 운동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6) 일부 극우 세력은 국가주의적 이념을 내세우며 공공 권력에 대한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반대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시민 불복종의 개념을 차용하기도 한다.(7)

시민 불복종의 선택은 권위주의적 정부가 자신들을 ‘합법성의 수호자’로 포장하는 데 이용될 위험이 있다. 반면, 이에 맞서는 시민들은 법을 위반하는 불법적 행위자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합법과 불법을 결정하는 권한은 공공 권력이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시민의 기본권이 동등하게 보장되는 한에서만 정당성을 갖는다.

1789년 8월 26일 『인권과 시민권 선언』(프랑스 인권 선언) 제4조는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모든 인간의 자연권 행사는, 다른 사회 구성원들이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범위 내에서만 제한될 수 있으며, 이러한 제한은 오직 법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 즉, 정부가 법을 제정하고 시행하는 권한은 모든 시민의 기본권이 동등하게 보장하는 데만 부여된 것이다. 만약 이러한 목적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시민이 정부가 제정한 법에 따를 의무는 사라지며, 오히려 ‘억압에 대한 저항권(제2조)’이 요구된다.

 

시민 불복종의 법적 근거, 상위의 법적 정당성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하는 법을 거부하는 것은 단순한 법 위반이 아니다. 오히려 권위주의적 정부가 내세우는 형식적 합법성에 맞서, 더욱 상위의 법적 정당성을 주장하는 행위다. 시민 불복종은 단순히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강변하거나, 이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헌법이나 국제협약이 보장하는 기본권과 자유가 온전히 존중되어야 한다는 요구다.

그렇다면 정부가 만든 법에 불복종할 것을 주장하는 대신, 왜 정부가 법을 근본적인 법적 원칙에 부합하도록 만들 것을 요구하지 않는가? 민주적 사회에서 공공 권력의 정당성은 모든 시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시민 불복종을 통해 부당한 사회 질서를 깨부수겠다고 선언하기보다는, 공직자들이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충실히 이행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접근일 수 있다.

 

억압에 대한 저항권과 그 한계

그러나 억압에 대한 저항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방법은 무엇인가? 유럽인권협약은 노예제, 고문, 비인도적 처우 및 가혹행위 금지에 대해서만 절대적 기본권을 인정하고 있다. 즉, 그 외의 자유권과 기본권은 일정한 조건 아래 제한될 수 있다. 따라서 공권력에 의해 특정 권리가 침해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정당하게 저항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반면, 당국은 우리의 자유 행사에 대해 예외적인 경우에만 일정한 조건을 준수하는 경우 제한을 가할 수 있다. 같은 협약의 제8조는 제한 조치가 법에 의해 규정되어야 하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당한 목적을 추구해야 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만큼만 제한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반대로 말하면, 설령 법에 의해 제한 조치가 규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입법자가 정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하지 않은 제한 조치는 정당성을 잃고, 강제력을 가질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즉, 누구나 그러한 조치의 적용을 거부할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도 진다.

프랑스 대법원은 오랫동안, 통신 감청이나 컴퓨터 감시와 같은 사생활을 침해하는 수사 조치가 형식적으로 적법하더라도, 그것이 필요하지 않거나(예를 들어, 수사관들이 덜 침해적인 방법으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을 경우) 혹은 비례성(문제의 사안과 그에 대한 대응이 서로 균형이 맞아야 한다는 원칙)을 잃었을 경우 취소되어야 한다고 판단해 왔다.(8)

 

확대되는 비례성 심사

더 최근에는 유럽인권재판소(CEDH)의 판례에 영향을 받아 특정 행위의 형사처벌 자체에 대해서도 비례성 심사를 확대하였다. 이에 따라 대법원 형사부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과도하다고 판단하여, 정부의 무능한 기후변화 대응을 항의하기 위해 마크롱 대통령의 초상화를 철거한 활동가들에 대한 유죄 판결(2023년 3월 29일)을 취소했고, 이스라엘 당국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영토 내 식민정책을 지지하는 기업의 불매운동을 촉구한 사람들에 대한 유죄 판결(2023년 10월 17일) 또한 취소했다.

‘필요 상태(state of necessity)’ 개념은 우리의 법 체계가 억압에 대한 저항권을 실질적으로 인정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프랑스 형법 제122-7조는 어떠한 범죄 혐의가 적용되더라도, “자신이나 타인 또는 재산을 위협하는 현재 또는 임박한 위험에 직면하여, 그 사람이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행위를 한 사람은 형사적으로 책임을 질 수 없다. 단, 사용된 수단과 위협의 심각성 사이에 불균형이 없는 경우에 한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비록 대법원이 현재 이러한 정당방위를 매우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변호인 측에서는 이를 점점 더 자주 법원에서 주장하고 있으며, 이는 판례의 변화를 촉진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여러 형사법원이 산업 시설 점거 과정에서 기물 파손이나 주거 침입 혐의로 기소된 환경 운동가들을, 그들이 기후변화로 인해 인류가 직면한 존재적 위협을 알리기 위해 행동했다는 점을 고려하여 무죄 판결을 내린 사례도 있다.(9) 이러한 해석 방식은 현재 당국이 주로 억압적인 방식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주요 사회적 갈등 전반에 적용될 수 있다.
몇몇 소수 집단이 수자원을 독점하는 문제를 농지 점거 외에는 항의할 방법이 없다면, 혹은 프랑스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외교 정책을 비판하는 유일한 수단이 대학 점거나 마지막 순간에 금지된 시위에 참여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행동에 대한 탄압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가?

 

 

글·뱅상 시제르 Vincent Sizaire
법관, 파리 낭테르 대학 부교수. 『판사를 통치하다: 완전한 민주적 사법권을 위하여』(La Dispute, 파리, 2024) 저자.

번역·성지훈


(1) Camille Richir, 「2024년 총선: 국민연합(RN)의 표적이 된 환경 보호 단체들의 우려」, <La Croix>, 파리, 2024년 7월 5일.
(2) Raphaël Kempf, 「경찰 폭력에서 사법 폭력까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2월.
(3) Collectif du Loriot , 『생트-솔린에서 스무 살이 된다는 것』, La Dispute, 2024년.
(4) 『보안 위장의 탈을 벗기다』, La Dispute, 파리, 2016년.
(5) Henry D. Thoreau, 『시민 불복종』, Le Mot et le reste, 마르세유, 2018년.
(6) Sophie Turenne, 『사법적 담론과 시민 불복종: 미국과 프랑스의 반(反)낙태 불복종 비교 연구』, David Hiez 및 Bruno Villalba, 『시민 불복종: 정치적·법적 접근』, Presses universitaires du Septentrion, 빌뇌브다스크, 2008년.
(7) Jean-Yves Camus, 「프랑스 극우와 반항」, David Hiez 및 Bruno Villalba, 앞의 책(op. cit.).
(8) Victoria Fourment, 『대법원의 비례성 심사』, Dalloz, 파리, 2024년.
(9) Laurent Radisson, 「기후 행동: ‘필요 상태’를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은 활동가들」, 2024년 4월 24일, www.actu-environnemen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