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조작하는 프랑스식 매카시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눈에 비친 본지 <르몽드>의 탈선

2025-02-28     세르주 알리미 외

그들은 어둠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조종하고, 비밀 정보기관에 침투하며, 유럽의 의사결정자들에 영감을 불어넣는다. 그들은 소셜 미디어를 조작하고, 거짓을 퍼뜨리며, 무명 인사들을 최고 권좌에 올린다. 그들은 불화를 조장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독살하며, 시설을 파괴한다. 그리고 그들은 어디에나 있다. 언론사의 수장으로, 버킹엄 궁전의 복도에서, 백악관의 타원형 집무실에서. 어쩌면 이 지면에서도? 일루미나티인가? 아니다, 더 강력한 존재—러시아 스파이들이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프랑스에서는 수백 건의 기사, 다큐멘터리, 라디오와 TV 방송, 그리고 이미 10권에 가까운 책들이 크렘린 정보요원의 강력한 영향력을 경고하고 있다. 그토록 전능한 이들이 정작 아프가니스탄에서 붉은 군대의 참패, 소련의 붕괴, 러시아 침공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저항은 예측하지 못했다.

 

러시아의 망령, 프랑스를 뒤흔들어

겨울이 요란하게 시작되었다. 지난해 12월 19일, <렉스프레스(L’Express)>는 “엘리제궁 한복판에 있는 러시아 스파이들–드골 장군부터 에마뉘엘 마크롱까지, 우리의 폭로”라는 제목의 24쪽 분량 특집 기사를 실었다. 11일 뒤, <르몽드>는 “냉전: KGB ‘두더지’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다섯 차례에 걸쳐 두 페이지씩 연재 기사를 게재했다.(1) 두 매체는 모스크바와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협력했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들의 명단을 내놓았다.

여기에 이름을 올린 인물들은 사회당 거물인 샤를 에르뉘와 클로드 에스티에, <르몽드> 전 편집국장 앙드레 퐁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전 편집국장 클로드 줄리앙, 중도파 장관 피에르 쉬드로와 급진당 출신 장관 피에르 코트, <AFP>의 한 간부, 전직 TV 뉴스 앵커, 드골주의 성향의 국회의원, 1960년대 드골 대통령의 외교 자문 등 다양하다. 이들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프랑스가 수십 년 동안 크렘린의 앞잡이들에게 좀먹혀 왔다는 그림이 눈앞에 펼쳐졌다.

 

증거 없이 단죄되는 사람들

그러나 대부분의 이러한 ‘조사’들은 명확한 증거 없이 암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에리크 룰로는 프랑스 공산당이 그를 선정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미화된 기사를 쓰도록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지만, 그 계획은 실현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르몽드>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기록 어디에서도, 미화된 기사든 아니든, 관련 기사를 찾을 수 없다. 그럼 클로드 줄리앙이 KGB의 ‘두더지’였던 ‘앙드레 씨’일까? 그의 출생 연도는 소련 기록에 나온 것과 일치하지 않지만 <렉스프레스>는 여전히 그의 이름을 배신 혐의와 연결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게슈타포의 고문을 받고 부헨발트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레지스탕스 영웅 피에르 쉬드로는 드골주의자이자 중도파였으며 이후 지스카르파가 되었지만, <렉스프레스>는 그를 KGB의 ‘영향력 요원’으로 묘사했다. 이후 그는 ‘수상한 인물’이자 ‘쓸모 있는 바보’로까지 불린다. 그 이유는 그가 ‘미국의 대외정책, 특히 유럽에서의 영향력을 비판’하고, “국제 관계에서 긴장 완화를 유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2025년 기준으로는 중대한 죄악이지만, 1970년대에는 지극히 평범한 입장이었다.

이러한 ‘특종’이 발표되자마자, <프랑스 앵테르(France Inter)>의 언론 리뷰에서는 이를 열렬히 받아들였고, <르 카나르 앵셰네(Le Canard enchaîné)> 또한 1면 기사로 보도했다. 심각해 보이는 이 사안은 실제 더 심각하다. 다만 겉으로 보이는 방식과는 다르게, 거의 동시에 나온 <르몽드>와 <렉스프레스>의 ‘폭로’는상당히 유사하며, 같은 출처에 기반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바실리 미트로힌의 문서다.

1992년, 전직 KGB 문서 보관원이었던 미트로힌은 손으로 베껴 쓴 뒤 타자로 정리한 소련 문서가 담긴 가방을 들고 영국 정보기관의 문을 두드렸다. 영국 여왕의 정보기관은 이 문서에서 일부 내용을 선별해 다른 정보기관들과 공유했고, 1999년부터 ‘신뢰할 만한’ 역사학자의 감독 아래 방대한 발췌본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 문서들은 이미 수백 편의 기사와 여러 권의 책을 통해 다루어진 바 있다.

 

역사 조작인가? 진실의 추적인가?

두 개의 ‘조사’에는 또 한 명의 권위 있는 도덕적 증인이 등장한다. 바로 기자 티에리 볼통이다. 반공주의 활동가인 그는 1993년 출간한 『위대한 모집(Le Grand recrutement)』에서 장 물랭을 소련의 스파이로 묘사했다. 당시 역사학자 피에르 비달나케는 이 조사를 “사기성 조사”라고 비판하며 저자를 “조작자”라고 불렀고, 이어 레지스탕스 시절 장 물랭의 보좌관이었던 다니엘 코르디에가 이런 묘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런데 오늘날 <르몽드>는 볼통을 ‘소련 개입 조사 분야의 선구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선구자라고? <르몽드>가 그의 책을 비평하도록 맡겼던 역사학자 장피에르 리우는 이 책을 “사건을 경찰적 시각으로 바라본 것”이며, “결국 역사학자의 작업과는 정반대”라고 평가한 바 있다 (<르몽드>, 1993년 2월 10일). 

2년 뒤, 동시대사를 연구하는 네 명의 역사학자로 구성된 위원회는 볼통이 이번에는 전 인민전선 정부 장관 피에르 코트를 대상으로 제기한 또 다른 혐의를 검토했다. 그 결론은 ‘역사적 부정확성’과 ‘잘못된 분석’이었다.(2)

그러나 볼통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세 권으로 출간한 『세계 공산주의 역사(Histoire mondiale du communisme)』로 다시 신뢰를 회복했다. 이 방대한 저작은 언론의 찬사를 받았으며, “처형자들(Les Bourreaux)”, “희생자들(Les Victimes)”, “공모자들(Les Complices)”이라는 절묘한 부제가 붙었다. 이념적 균형이 뒤집히는 순간, 지나친 세밀한 조정은 오히려 균형 자체를 무너뜨린다.

 

선택적 폭로, 감춰진 이야기

두 개의 특집 기사가 만들어내는 ‘폭로 효과’는 전형적인 편향에 기반하고 있다. 첫째, 기자들은 비밀 아카이브에 대한 접근이 어려울수록 그 가치를 더욱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그 안에 담긴 정보가 다른 출처보다 더 높은 진실을 담고 있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정보기관이 항상 의심을 품도록 훈련받으며, 자신들의 존재와 예산을 정당화하기 위해 거의 예외 없이 활동의 중요성을 과장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둘째, 비대칭성이다. <르몽드>와 <렉스프레스>는 냉전 시대의 동서 대립을 다루면서, 한쪽—즉, 소련의 악행—에 대해서는 상세히 기술하지만, 다른 한쪽의 행위는 묵살한다. 어떻게 수십 쪽에 걸쳐 프랑스 내 소련의 영향력을 분석하면서, 미국 CIA가 수행한 이념적 전복 공작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을 수 있는가?

예를 들어, CIA는 반공주의 노조, 잡지, 학자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했고, 1950년 창설된 ‘문화자유회의(Congress for Cultural Freedom)’를 통해 언론인과 지식인들을 포섭했다. 또한, 1970년대에는 정치 및 문화계에 ‘붉은 실(fil rouge)’ 이론을 퍼뜨려, 독일의 적군파(RAF)에서 이탈리아의 붉은 여단까지 모든 무장 투쟁 단체가 모스크바의 지휘를 받으며 서방을 불안정하게 만들려 한다는 내러티브를 확산시켰다. <르몽드>와 <렉스프레스>가 이러한 역사를 모를 리 없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침묵하기로 선택했다.

세 번째 편향은, 과거를 현재의 시각으로 판단하면서 당시의 시대적 맥락과 국제정치의 단절을 지워버리는 것이다. 기자가 소련 대사관 무관과 대화를 나눴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KGB를 위한 스파이 활동 혐의로 의심하는 것은, 독자들의 역사적 무지를 기정사실로 여기는 태도다. 

오늘날 프랑스 언론이 소비에트 연방을 스탈린과 굴라그(소련에서 노동 수용소를 담당하던 정부기관—역주)로만 요약하고 있지만, 1945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소련의 이미지는 사뭇 달랐다. 나치즘을 물리친 승전국으로서 소련은 외교적, 재정적, 때로는 군사적 차원에서 제3세계 민족 해방 운동의 지지 기반 역할을 했다.

오늘날 널리 기려지는 반(反)아파르트헤이트 운동가들, 특히 넬슨 만델라가 속했던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소속 활동가들은 동독과 쿠바에서 무장 훈련을 받았다. 만델라가 27년을 감옥에서 보내는 동안, 미국과 프랑스, 이스라엘은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권을 지원하고 무장시켰다. ‘자유 세계’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쿠데타를 조장하고 독재 정권을 탄생시켰으며, 프랑스가 인도차이나에서 벌였던 ‘더러운 전쟁’을 지원했고, 또 다른 나토 회원국이었던 포르투갈이 아프리카에서 식민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벌인 전쟁을 돕기도 했다.

 

의혹과 편집증: 프랑스를 둘러싼 냉전의 잔영

그러나 드골 장군의 외교 정책은 때때로 미국과 결을 달리했다. 그는 미국이 주도한 유럽방위공동체(CED)에 반대했고, 1964년에는 프랑스가 서방 국가 중 최초로 중화인민공화국을 공식 승인했으며, 2년 후에는 프랑스를 북대서양조약기구 통합군 사령부에서 탈퇴시켰다.

KGB는 이를 자신들의 영향력 공작이 결실을 맺은 것으로 해석했을 수도 있지만, 반공주의 성향의 극우 세력은 드골주의를 볼셰비즘의 앞잡이로 규탄했다. 종종 두 가지 상반된 편집증이 서로 맞물리며 연결되기도 한다.

이 점을 <렉스프레스>와 <르몽드>의 보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렉스프레스>는 비밀 문서에 ‘기밀 접촉자’로 분류된 인물조차도 KGB가 자신을 조종하려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르몽드>는 KGB가 실제로 접촉한 적도 없는 인물들에게 암호명을 부여하기도 했다고 주장한다. 기사의 백 줄은 혐의를 제기하고, 두 줄은 이를 반박한다. 결국 의혹은 남는다.

<르몽드> 역시 자신들이 다룬 자료의 취약성을 의식한 듯하다. 과연 이 의심받는 인물들이 프랑스의 정책에 대해 그토록 중요한 비밀을 제공했을까? 저녁 신문을 펼쳐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정보를 굳이 스파이를 통해 알아내야 했을까?

<르몽드>는 KGB의 공작에 관한 열 쪽 분량의 기사를 실어 놓고도, 스스로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르몽드>가 검토한 수백 건의 문서를 종합하면, 그 결과는 그다지 뚜렷하지 않아 보인다.”

 

과거의 중립이 오늘의 배신인가?

이 모든 것이 결국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이 두 개의 ‘특집 기사’는 유럽 대륙의 약화에 공포를 느끼고, 미국이라는 종주국에게 굴욕감을 맛본 유럽 지식인층의 경직된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이제 그들의 공격 대상은 더 이상 좌파만이 아니다. 서방의 대규모 재무장에 반대하는 중도 및 우파의 옛 동맹들까지 포함된다.

이번 특집은 주로 드골주의자, 좌파 기독교인, 그리고 전통적인 중립주의자들을 겨냥하고 있다. 이를 통해 <르몽드>와 <렉스프레스>는 1950~60년대 탈식민화를 지지했던 과거의 입장을 스스로 부정하며, 자신들의 창립자들과 연관된 정치·지적 전통과 단절하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가 미국의 노선에 종속되는 것을 반대하는 정치인과 지식인들을 의심스러운 존재로 몰아넣는다.

오늘날 비난받고 있는 ‘중립주의’는 한때 <르몽드>의 공식 입장이었다. 사실, 1950년대 초반 <르몽드>는 존폐 위기에 몰린 적이 있었다. 당시 경영진이었던 르네 쿠르탱은 창립자 위베르 뵈브메리에게, <르몽드>가 친미 노선을 분명하게 취하지 않으면 미국이 유럽을 버리고, 결국 프랑스는 빈곤과 절망, 그리고 볼셰비즘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하며 즉각적인 노선 변경을 요구했다. 당시 강경한 대서양주의자들은 이렇게 주장했다. “<르몽드>의 모든 지면이 결국 하나의 지면일 뿐이다. 바로 ‘제5열(스파이 세력)’의 지면.”(3)

이제 피고가 검사가 되었다. 러시아, 중국, 알제리(4)를 향한 새로운 ‘내부의 적’ 사냥 시대가 도래한 것일까?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 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알리미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전 발행인을 지낸 언론인이고, 랭베르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부편집장이다. 

번역·강태호 


(1) 자크 폴로루가 <르몽드>에 게재한 기사, 2024년 12월 31일, 2025년 1월 12일, 1월 3일, 1월 4일, 1월 56일.
(2) 「피에르 코트는 소련의 요원이 아니었다」, <르몽드>, 1995년 1월 25일.
(3) 파트리크 에베노, 『<르몽드>의 역사, 1944~2004』, 알랭 미셸, 2004년에서 인용.
(4) <르푸앙>, 2025년 1월 16일자, 「알제리 정권의 네트워크. 그들은 프랑스를 불안정하게 만들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