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펜의 회고록에 담긴 극우적 흔적들
장마리 르펜이 2025년 1월 7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운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극우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자격 박탈부터 점진적인 정당성 회복까지, 1972년 그가 창당을 주도한 국민전선(FN)은 이제 국민연합(RN)이라는 이름으로 권력의 문턱에 서 있다. 그의 ‘회고록’을 분석하면 그가 수행한 역할의 실체가 드러난다.
장마리 르펜(1928년생)의 회고록은 『국가의 아들』(2018)과 『민중의 선동가』(2019), 두 권으로 출간되었다. 아니에르쉬르센의 작은 출판사 뮐레르에서 발행했는데, 이 출판사는 군사 역사와 극우 성향의 에세이를 주로 다루는 곳이다.
문학 장르로서 회고록은 ‘역사적 맥락 속 한 개인의 삶의 이야기’다. 여기서 개인은 ‘사건의 흐름 속에 휘말린 한 인간의 여정을 증언하며, 행위자이자 목격자로서 자신의 과거에 의미를 부여하는 역사를 전달한다. 회고록 작가는 대개 ‘자아에 대한 충실성’을 내세우며 공개적으로 자신의 여정을 확신한다.(1)
르펜의 회고록도 마찬가지다. 그는 역사가 이미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했다고 확신한다. 자신이 예견했던 것들(‘이민의 위험’, ‘국가의 쇠퇴’, ‘도덕적 가치의 붕괴’ 등)이 하나둘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2)
르펜의 자기 신화화 : 회고록에 담긴 정치적 야망
회고록의 이야기는 여러 가닥으로 짜여 있다. 자신의 삶을 신화화하여 그 여정에 뼈대를 세우고, 학자들이나 일부 전기 작가들이 잘못되거나 악의적이라고 여기는 해석을 반박한다. 또한 자신이 받은 악마화의 배경을 파헤치면서도, 문제가 될 만한 인맥 관계와 이념적 유산은 인정한다.
2015년, 자신을 제명하고 2018년 당명을 바꾼 ‘후계자’ 마린 르펜의 ‘배신’과 함께 그녀의 국민전선(FN) 운영 방식과 정치 노선도 비판한다. 그리고 자신이 선견지명이 있었음을 강조하며 서사 전반에 걸쳐 ‘역사를 바로잡는 자’로 자리매김한다.
이 회고록은 대체로 시간 순서를 따르지만, 당의 현안이나 주요 쟁점들(각종 재판, 이른바 ‘세부사항’ 사건 등)에 대한 이야기가 중간중간 끼어든다. 그가 그리는 자기 이미지는 전형적이다. 의지와 노력으로 학교를 통해 신분 상승을 이룬 ‘민중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1942년 부친 사망 후 국가 보호를 받은 외아들 르펜은 성실하고 도덕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서민 가정의 모습을 그린다. 하지만 이런 가족사는 의심스럽다. 르펜 스스로 자신이 중하층 중산계급 출신임을 여러 번 넌지시 밝히기 때문이다.
1940~1943년 예수회 생프랑수아자비에 중학교, 1943~1944년 로리앙의 생루이 고등학교에서의 교육은 일반 서민 자녀의 그것과는 판이했다. 혼란한 시기에 지역 가톨릭 부르주아 자녀들과 어울린 이 시절은, 비록 그가 자신을 말썽꾸러기 학생으로 그리긴 했지만, 분명한 출세 의도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자칭 ‘민중의 아들’과는 동떨어진, 정치 귀족
그가 내세우는 유일한 학력 자산이라고는 프랑스어 구사력과 시와 노래에 대한 취향으로 이어진 뛰어난 암기력 정도다. 그는 애국 영웅을 찬양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단순하고 연대기적이며 국수적인 역사관을 지녔다. 청소년기 독서 목록도 이런 자화상과 궤를 같이한다. 주로 알렉상드르 뒤마의 역사소설과 여행기를 즐겨 읽었다는 것이다.
법대생 시절을 다룬 장에서는 여러 ‘아르바이트’와 법대 학생회장 재임(1949~1951), 그리고 반공주의만을 이야기할 뿐이다. 당시의 지적 격동기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없는데, 이는 그가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스쳐 지나갔음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그의 향후 정치적 자산이 될 한 특징이 드러나는데, 바로 지적·사회적 이중 소외다. 이는 반지성주의와 엘리트 혐오의 근원이 되었고, 여기에 계급 상승자가 흔히 ‘부르주아’에 대해 느끼는 굴욕감이 더해졌다. 이런 이중의 좌절감은 그의 정치 프로그램은 물론, 입지 전략에서도 나타난다.
당시 법대 학생회장직은 사회적 배경이 빈약한 학생이 지역 유지가 되길 바라며 선택하는 일종의 예비 전문직이었다. 그는 세 차례 하사관과 장교로 복무했다(인도차이나 1953~1955년, 수에즈 1956년, 알제리 1957년). 이 경험은 회고록 전반에서 되풀이되는 ‘전사’ 찬양과 식민주의 이념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의 야망과는 달리 생시르 사관학교 출신들의 전유물인 군 고위직은 그에게 영영 닿지 않는 자리였다. 그의 정치 경력은 이런 좌절 위에 세워졌다. 1956년 푸자드 운동으로, 그리고 1958년에 하원의원에 당선된 후, 1965년에는 자신이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던 장루이 티시에비냥쿠르의 대선 패배를 겪었다.
이때 그는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우파 쪽으로 돌릴 수도 있었지만, 대신 자신이 참여해 온 크고 작은 일시적 단체들의 ‘수장’ 자리를 지키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억만장자 위베르 랑베르의 유산 덕분에 전업 정치인이 되는 데 성공했고, 이를 통해 정치로 먹고사는 기득권자가 될 수 있었다.
‘민중의 아들’이라는 자화상과 노골적인 반지성주의는 ‘자연’에 대한 가장 보수적 사고의 진부한 관념들을 답습한 사회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물의 본성, 인간의 본성, 자연 그 자체…. “자연이 만든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것이 현대 유토피아의 근본적 악덕”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민족적 뿌리에 대한 찬양이 더해진다(“획일적 사고를 맹신하는 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토종’이다. 영원한 브르타뉴인이자 프랑스인이다”).
이야기의 한 가지 일관된 주제는 바로 육체다. 통제 불능의 거친 아이의 몸, 운동선수(럭비)의 몸, 고된 선원의 몸, (재평가된) 육체노동자의 몸, 공수외인부대(REP) 복무로 미화된 군인의 몸, 방탕하고 호색적이며 호전적인 몸, 질병과 노화에 맞서는 몸. 자서전적 일화 곳곳에 스며든 이 건강하고 남성적인 육체 예찬은 ‘지식인’들의 추한 몸에 대한 경멸과 짝을 이룬다.
장폴 사르트르, 피에르 멩데스 프랑스가 그 표적이다. 르펜의 남성성 집착은 ‘사회의 여성화’와 ‘백인 남성의 거세’라는 위협에 맞서 군인의 남성다움을 내세우는 극우의 수많은 상투적 주제 중 하나일 뿐이다. 그의 음반 출판사인 연구홍보협회(SERP, 1963~2000)의 중심이 된 ‘전사 영웅’ 찬양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회고록에서 1930년대 극보수 사상의 영향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환경주의자’라는 명분으로 찬양하는 알렉시스 카렐과 샤를 모라스에 대한 예찬이다. 겉으로는 부인하는 듯하지만, 모라스를 옹호하려는 그의 의도는 분명하다. 모라스는 뛰어난 논리가였지만 융통성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냉철한 이성으로 모든 현실을 설명하려 했다. 프랑스 공화국이 네 개의 연합 세력, 즉 이방인들, 개신교도들, 프리메이슨들, 유대인들에게 장악되었다는 그의 이론은 분명 시대착오적이었고,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한 그의 시도는 지나쳤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분석한 현상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언제 어디서나 자기 정체성을 깨닫고 조직화한 세력들은 국가 기관에 침투해 시민사회의 지배권을 장악하려 든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철저한 반공주의를 자랑스럽게 내세운다. 절대적인 ‘악’을 보려 하지 않았던 ‘관대한 자들’, ‘공모자들’, ‘눈먼 자들’ 모두와 싸워야 했던 투쟁이었다는 것이다.
르펜이 예언한 이민 문제와 ‘거대한 대체’
또 다른 이야기의 축은 자신의 선견지명과 국민전선(FN) 성장에서 자신이 맡은 결정적 역할이다. 그의 지도력 아래—물론 긴장과 위기가 없진 않았지만—잡다한 소규모 단체들의 모음을 하나의 공존하는 조직으로 변모시켰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는 자신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굳히고자 한다.
역사가 입증했다고 주장하는 반공 투쟁의 정당성 외에도, 르펜은 장차 최대의 위협이 될 것이라 '예언'했던 문제를 두 차례 구체적으로 다룬다. 이민 문제와 ‘거대한 대체’(grand remplacement. 프랑스 극우 정치 이론가 르노 카뮈가 2011년에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이슬람 이민자들과 비유럽권 인구가 급증하면서 원래의 유럽 문화와 인구가 대체될 것이라는 주장—역주)가 그것이다.(3)
첫 번째는 알제리 전쟁을 다루면서 시작한다. ‘백인 세계’를 위협하는 인구 문제에 대한 긴 논설에서 그는 이렇게 탄식한다. “오늘날 지브롤터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어지는 북방 지역, 즉 좋든 싫든 수천 년간 백인들의 세계였던 이곳의 인구가 더 이상 이어지지 않고 있다(…). 유럽의 토착 인구가 모두 사라져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말을 따르자면 이는 그가 처음 우려했던 것보다 더 심각하게 현실이 된 예언이었다. 이 주제는 두 번째 권에서 다시 등장한다.
전사에서 예언자로 : 르펜이 그린 자화상
각 권에는 자신을 정치 무대에서 악마화하고 소외시키며 배제하려는 언론-정치적 음모의 희생자로 그리려는 집착적인 자기변호가 담겨있다. 그가 걸었거나 걸린 수많은 소송이 일종의 사법적 괴롭힘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의 모든 발언이 부끄럽게 왜곡되었고, 알제리에서의 고문 행위는 조작되었으며, 랑베르의 유산도 부당하게 의심받았다는 식이다.
문학 장르로서의 회고록은 필연적으로 역사관을 담고 있는데, 이는 회고록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저작은 르펜이 늘 직면해 왔다고 생각하는 도전을 고려하지 않고는 분석할 수 없다.
즉 자격이 박탈된 역사 해석을 정당화하고, 그것에 씌워진 온갖 금기를 벗기기 위해 정치 영역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벌여온 긴 역사 투쟁의 의미다. 역사의 힘을 우리는 안다. 과거를 장악하는 자가 미래와 도덕, 정치를 장악한다.”
이 회고록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시작된 일종의 집단적 이데올로기 사업의 일환이다. 그 목적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파시즘을 노골적으로 복권하는 데까지 이르는 과거의 재해석이다(모리스 바르데슈나 뤼시앵 르바테의 경우가 그렇다).
샤를 드골에 대한 그의 주된 불만은 해방 이후와 알제리 전쟁 이후 “수백, 아마도 수천 명의 추방자들을 유럽의 길거리로 내몰고, 수백만 명을 내적 망명 상태로 가두어 소진되게 했다”는 점이다. “이 뛰어난 시민들은 마치 불에 타고 쓰라린 채로 불모의 상태가 되어 오랫동안 길을 잃었고, 그들의 열정과 능력이 드골에게는 결여되어 있었다”, “바로 이런 배척된 프랑스인들을 대신해 내가 국민전선의 대표가 된 것이다.”
이런 ‘추방자들’과 ‘반란자들’의 대변인이 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강박적인 반유대주의자들과 민병대 출신들, 무장친위대 자원입대자들(프랑수아 브리뇨, 레옹 골티에, ‘통통 판저’라는 별명의 앙드레 뒤프레스, 피에르 부스케), 프랑스령 알제리와 비밀군사조직(OAS) 지지자들(필립 마르세, 피에르 세르장), 악명 높은 대독협력자들(도리오주의자 출신 빅토르 바르텔레미),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프랑수아 뒤프라)(4) 같은 이들을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극우세력의 명예회복 노린 르펜
르펜이 내놓은 뒤틀린 역사는 해방 이후 거의 변하지 않은 극우 세력의 논리를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 독일 점령기나 알제리 독립전쟁 때 부역했던 이념가들의 주장이 회고록 곳곳에 잔뜩 깔려있다. 때로는 슬쩍 암시하거나 언급하는 방식으로, 때로는 계산된 명예회복의 형태로 등장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어느 시점에선가 언급되며, 대개 ‘재평가’의 대상이 된다. 모리스 바레스, 바르데슈, 모라스, 로베르 브라지야크, 레옹 도데, 루이페르디낭 셀린느, 르바테, 피에르 부탕, 자크 샤르돈, 카렐, 미셸 데옹, 알퐁스 드 샤토브리앙 등이 그들이다.
하지만 국민전선 창당과 초기에 이탈리아 사회운동(MSI, 신파시스트 정당)이 한 역할이나 브라지야크의 반유대주의처럼 너무나 큰 오명이 될 만한 것들은 모두 순화되어 표현되거나 아예 언급조차 피한다.
회고록에 담긴 수사적 술책의 예는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이는 끊임없이 숨겨진 문장을 가리키는데, 직접 증명하지는 않고 암시만 하는 방식이다. 이는 당시 상황의 제약을 고려해야만 제대로 분석할 수 있다. 저자도 스스로 인정하듯, 법적 처벌을 피하고자 자기검열을 한다. 그래서 표현은 순화하면서도, 자신이 대변하고자 하는 극우의 ‘추방자들’과 그 추종자들에게 계속해서 공모의 신호를 보낸다.
말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고백할 수 있는 것과 하지 않은 것 사이의 이런 줄타기는 아직은 공개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진실’을 내부적으로 공유하고 암시하는 다양한 수준의 공모를 통해 당파적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기여한다. 하지만 사회적, 정치적 조건이 무르익고 그 제방이 무너지는 순간,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글·베르나르 퓌달 Bernard Pudal
프랑스 정치사회학자
번역·김혜순
(1) 장루이 잔넬, 『20세기 회고록 쓰기: 쇠퇴와 부활』, 갈리마르, 파리, 2008.
(2) 브누아 브레빌, 세르주 알리미, 피에르 랭베르, 『우리는 여기 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4년 7월.
(3) 세르주 알리미, 「국민전선이 사회 질서를 잠그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6년 1월.
(4) 발레리 이구네, 「전략적 부정주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98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