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국의 문화톡톡] 하늘의 천-진달래꽃 그리고 디지털 주단

2025-03-04     최양국(문화평론가)

“대지여! 그대가 원하는 일이 이것 아닌가? 우리 안에서 보이지 않게 다시 살아나는 것. 언젠가 눈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것. 그것이 그대의 꿈이 아니던가? 대지여! 보이지 않음이여! 변용이 아니라면, 무엇이 그대에게 맡겨진 절실한 사명이겠는가?”

- 『두이노의 비가』(Duineser Elegien) 제9 비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R.M.Rilke) -

 이월의 시샘을 뒤로 하고 홀연히 다가온 물오름달. 삼일절에 태어나 삼짇날(답청절, 踏靑節)로 사라져간다. 시간의 무상함을 뚫고 쉬 지나가는 봄날이 독립 공간인 하늘을 수놓는다. 아직은 어색한 봄 사이를 채우러 나비가 팔랑거린다. 나비와 함께 찾아간 꽃길에서 우리 안의 마음을 본다. 푸릇하게 돋아난 풀의 꿈을 살며시 밟으며 꽃을 만난다. 풀의 꿈을 잎 삼아 하늘의 천으로 만든 진분홍색 옷을 입고 있는 꽃, 진달래꽃. 하늘의 천이 진달래꽃으로 다시 살아나는 곳에 마음의 주단을 깐다. 주단을 사뿐히 밟으며 그대를 맞는다. 디지털 주단인 AI를 향해 노래 부른다.

 

예이츠 / <하늘의 천> / 현재형 / 사랑 서사

 산과 들에 물이 오르면 마음은 하늘로 이어진다. 하늘의 빛과 색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천으로 짜인다. 하늘이 만든 마음의 옷을 입고 사랑을 향한다. 아일랜드 국민 시인이며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1865년~1939년)의 시 <하늘의 천>(Aedh/He Wishes for the Cloths of Heaven, 1899년). 그의 초기 시를 대표하는 사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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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금빛 은빛으로 짠/ 하늘의 천이 있다면/ 어둠과 낮과 어스름으로 수놓은/ 파랗고 어슴푸레하며 검은 색의 천이 있다면/ 그 천을 그대 발밑에 깔아드리련만/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이 꿈뿐이라/ 내 꿈을 그대 발밑에 깔았습니다/ 사뿐히 밟으소서, 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

- <하늘의 천>(Aedh/He Wishes for the Cloths of Heaven), W.B.예이츠 -

이 시는 8행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로써, 아일랜드 문예 부흥 운동(Irish Literary Revival)과 독립운동(Irish War of Independence)의 시공간적 접점에서 사랑을 향한 깊은 열망의 서사를 낭만주의적 서정으로 노래하고 있다. 19세기 중반 이후 아일랜드 독립을 위해, 영국의 지배 문화로부터 벗어나 아일랜드인의 정체성을 찾으려 한 문예 부흥 운동이 구체화된다. 이 운동의 중심에 예이츠가 있다. 1889년 어느 봄날 만난, 그의 평생 첫사랑인 모드 곤(Maud Gonne, 1866년~1953년)은 연극 배우로서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앞장선 투사이다. 공동의 목적을 가졌지만, 펜과 총으로 나뉘어져 각자의 가치를 지키고자 한 두 사람. 예이츠의 거듭되는 청혼의 과정에서 그녀를 향한 사랑의 열망이 하늘의 천으로 펼쳐진다. 네 번의 청혼을 끝내 거절한 그녀는 아일랜드 독립운동 지도자를 배우자로 선택한다. 이후 예이츠는 52세에 결혼하기 전, 남편과 사별한 모드 곤에게 다시 청혼 하지만 마지막 시도도 뜻을 이루지 못한다. 20대에 시작한 모드 곤에 대한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보편적 의미의 사랑이다. 하지만 예이츠가 첫사랑 상대에게 다섯 번의 청혼을 거절당한 것과 모드 곤의 딸에게 청혼한 것, 그리고 프랑스에서 사망한 예이츠를 아일랜드로 이장한 책임자가 모드 곤의 아들인 점은 예이츠만이 공감할 수 있는 특별한 의미의 사랑이리라. 그의 시는 보편성을 떠난 특수한 사랑의 교감으로 인해 더욱 빛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천>은 아일랜드 신화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Aedh를 서정적 자아로 하여 발표되지만, 이는 곧 예이츠를 대변하는 시적 화자인 He로 바뀐다. 총 여덟 행 중 1~5행은 가정법 과거의 종속절과 주절로 이루어진다.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을 향한 열망은 사물에 대한 현재의 사실에 반대되는 가정을 통해 더욱 강렬하게 드러난다. 금빛과 은빛으로 짜여 빛나며 밤과 낮, 그리고 노을의 색으로 어우러져 수놓인 천. 가질 수 없는 가장 화려하고 이상적인 천은 가정의 세계에 갇혀 사랑을 감싼다. 그러다 이내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현실적 방법인 꿈을 등장시키며 현실 속 시적 대상을 만나고자 한다. 시적 화자는 시적 대상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늘의 천과 꿈으로 대비한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랑의 감정을 하늘의 빛과 색, 그리고 화자의 꿈으로 상징화하며 부각하고 있다. 또한 하늘의 천이라는 자연의 대상물에 대해 수직적 소유의 개념을 드러낸다. 소유는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서구의 전통적인 자연관을 보여준다.

사랑을 향한 빛과 색에 따라 하늘의 천이 펼치는 서사가 변하며, 꿈의 스펙트럼은 무지개가 된다. 이 봄의 사랑 빛과 색은 어떤 하늘의 천으로 펼쳐질까?

 

김소월 / <진달래꽃> / 미래 추정 / 이별 정한

 아일랜드의 시공간을 떠난 예이츠의 <하늘의 천>은 서도(西道)의 산과 들에서 진달래꽃으로 다시 피어난다. 전통적 한의 정서를 토속적 시어와 민요적 율조로 나타낸 김소월(1902년~1934년)을 상징하는 시, <진달래꽃>(19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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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연 12행의 자유시이며, 3음보 7·5조의 민요조 형식으로 표현된다. 시적 자아에 대한 내재적 접근에 따르면, 임에 대한 사랑과 이별의 정한을 표현한 전통 서정시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진달래꽃>, 김소월 -

<진달래꽃>은 형식 면에서 유사한 시어와 구절의 반복을 통해 시적 대상의 서정성과 운율을 변주한다. 1연과 4연은 각 1~2행을 반복하여 서정성을 부각하며 운율의 통일성을 준다. 1연과 4연의 각 3행은 시어의 변형과 각운을 통해, 주제에 대한 집약적 승화와 향토적 정서를 강화하며 간절함을 통한 승화와 축복의 역설을 보여준다. 2연 1~2행은 7·5조가 아닌 5·4조의 율격 변화를 통해, 시적 대상과 상황에 대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4연의 3행은 주제의 완결성을 점층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역설적 문장으로, 시적 자아가 느끼는 이별의 정한과 슬픔의 절정을 극복하고 정화하기 위한 노력을 도치된 눈물로 나타낸다. 내용 면에서는 임에 대한 이별의 정한(情恨)과 그리움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을 간접적이지만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설화가 어려있는 약산의 진달래꽃을 따다 뿌린다. 진달래꽃의 진분홍색이 사랑의 깊이를 대변한다면, 뿌리는 행위는 절망과 체념을 통한 슬픔의 넓이로 연결된다. 사랑의 깊이와 슬픔의 넓이는, 진달래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는 임에 대한 중의적 표현으로 확장된다. 그것은 시적 화자의 끝없는 사랑을 이별의 대상인 임에게 아낌없이 바치는 지극한 헌신의 채움이며, 떠날 임에 대한 원망과 한의 비움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시어의 반복과 각운, 7·5조의 통일적 운율은 밝고 경쾌한 전통적 운율의 형식을 드러내지만, 내용은 떠날 임에 대한 지극한 정한과 그리움을 극복하기 위한 끝없는 인고(忍苦)를 담고 있다. 이는 시적 화자의 역설적이지만 핵심적 사랑어인 ‘사뿐히 즈려밟고’ 중 ‘사뿐히’의 가벼움과 긍정성, ‘즈려밟고’의 무거움과 부정성이 서로 충돌하며, 서도민요의 특성과도 맥을 같이 한다. 충돌을 통해 시적 화자가 대상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서정적 자아의 방점은 후자가 아닐까. 사랑하는 임이 떠날 것에 대한 이별의 슬픔과 그리움의 감정을 극대화하기 위해, 형식과의 역설적 모순을 수용한 결과이리라.

<진달래꽃>은 1연과 4연 각 2행의 ‘가실 때에는’과 각 연의 용언(서술어 역할)을 각운이 있는 ‘~우리다’,‘~옵소서’로 끝낸다. 이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추정을 드러낸다. 현재 사랑하고 있는 임이 떠나갈지도 모른다는 불안 또는 체념의 정한이, 현재의 사랑을 더욱 안타깝게 하며 자연의 상징물을 찾게 한다. 진달래꽃을 딴다는 것은 시적 화자와 자연의 감정이 일치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한국적 정서에서 인간과 자연의 수평적 실존을 전제로 한다. 인간과 자연은 상호 보완 하는 유기체로써 하나이다. 인간과 자연의 슬픔은 서로 바라만 보는 대척의 관계가 아닌, 상호 슬픔을 공감하고 공유하는 생태계의 부분 집합인 것이다. 결국 <진달래꽃>에서는 <하늘의 천>과 달리, 자연의 대상물에 대한 소유를 부정하고 상호 공유를 통한 공존의 개념을 드러낸다. 공유는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전통적인 자연관을 보여준다.

이별(離別)의 멈춤을 향한 진분홍색 꽃 뿌리기는, 눈물의 치열한 극복을 통해 아름다운 별리(別離)의 미학으로 승화된다. 이 봄의 바람은 어떤 헤어짐의 서사를 써야 할까?

 

보편성 / 특수성 균형 / ‘변용’ 밈(Meme) 향한 / 디지털 주단

 예이츠의 <하늘의 천>과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23년의 시간적 간극 속에서, 유사한 모티프와 용언의 사용, 이미지 등으로 회자된다. 표절과 변용의 문제로 귀착된다. 표절이 문학이나 노래 등을 지을 때 타인의 작품 일부를 몰래 따다 쓰는 것이라면, 변용은 기존의 소재나 이야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하거나 변형하여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작가가 자신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통해, 원작의 내용을 변형하거나 새롭게 구성함으로써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하늘의 천>과 <진달래꽃>이 시공간을 넘어, 사랑하는 사람의 발밑에 소중한 상징물을 깔아주며 그들의 걸음을 배려한다는 점과 가볍게 밟고 가는 움직임을 묘사한 것은 서로 비슷해 보인다. 이처럼 사랑의 감정과 더불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소중한 상징물을 헌정하며 자신의 깊은 존재 속 내면을 낮추어 드러내는 행위는, 시작(詩作)에 있어서 보편성에 해당한다. 하지만 문학 작품 창작의 기준은 보편성과 특수성의 균형에 있지 않을까?

이제 두 작품의 특수성을 알아보자. 우선 아이디어 보편성 측면에서, 두 작품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거나 헌신하는 주제를 다루는데, 이는 인류 보편적 정서이다. 예이츠가 ‘꿈’을 발밑에 펼쳐 놓는 시각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에 대해, 김소월은 ‘진달래꽃’을 뿌리는 심상화를 통해 한국 전통의 이별 정한으로 변형한다. 다음은 차용성 측면에서, 김소월이 예이츠의 시를 인지했을 가능성은 높다. 그의 스승 김억(1896년~?)의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1921년)에 예이츠의 <하늘의 천>이 <꿈>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고, <진달래꽃> 발표 시기도 이를 뒷받침하는 방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예이츠의 <하늘의 천>과 다른 한국적 정서를 담아 새롭게 재해석하여 구성한 것이라는 점에서, 차용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적절치 않다. 마지막으로 문학적 변용 측면에서, 예이츠는 ‘하늘의 천’과 ‘꿈’을 소재로 삼고 있으나, 김소월은 ‘진달래꽃’이라는 한국적 자연물을 상징화하여 이별과 정한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특정 작품으로부터 받은 착상에 대한 영감을 반영하여 그만의 독창적 창의력과 상징성을 부여한 후, 새로운 문학적 맥락으로 재탄생한 특수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예이츠의 <하늘의 천>을 변용한 것으로써, 보편성을 바탕으로 특수성을 살린 창작품이라는 것이다. 시샘달에 내리던 눈이 물오름달에는 비가 되어 내린다. 하늘에서 내린다는 같은 속성을 가진 자연물이지만 예이츠의 <하늘의 천>이 아일랜드의 눈이면,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한국의 비다.

예이츠의 <하늘의 천>~김소월의 <진달래꽃>과 보편성을 공유하는 노래가 있다.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197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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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대 길목에 서서/ 예쁜 촛불로 그대를 맞으리/ 향그러운 꽃길로 가면 나는 나비가 되어/ 그대 마음에 날아가 앉으리// 아, 한 마디 말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되고/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대를 위해 노래를 부르리// 그대는 아는가 이 마음/ 주단을 깔아놓은 내 마음/ 사뿐히 밟으며 와 주오/ 그대는 아는가 이 마음// ~(후략)~.”

-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산울림 -

이 노래 중 ‘내 마음에 주단을 까는’ 행위를 보편적 독립성으로 본다면, ‘노래가 되고 시가 되고’는 특수한 변용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 대표적 정치 밈(Meme)으로 떠오른 AI 주권(Sovereign AI). AI 주권을 향한 메가 트렌드는 국가와 빅테크 기업이 주도해야 하는 거대 담론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보편성 삼아, AI를 향한 특수성을 써 내려가야 할 우리에게 맡겨진 절실한 사명은 무엇이겠는가? 아마 변용. 이제 봄이다. 마음에 주단을 깔고, 서로를 위해 노래 부르며 시를 써보자. 새로운 봄이 디지털 주단 깔린 호접몽(胡蝶夢)을 사뿐히 밟으며 간다.

 

 

글·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