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감독관은 누구 편인가?

2012-12-10     파니 두메루

지난 6월 프랑스 다소사(社)는 비아리츠 공장의 노조원 17명을 정상적으로 진급시키지 않아 ‘노조 차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재판이 열린 것은 노동감독국이 설문조사를 펼친 공이 컸다. 이같은 일이 고용주가 싫어하고 정부가 좌지우지하는 노동감독국이 하는 업무 중 하나다.

만약 좌파가 다시 정권을 잡으면, 좌파는 노동감독국의 '일자리 감원을 즉각 중단'하고 이 기관에 '공공서비스 임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것이다.(1) 이것은 2012년 봄, 프랑수아 올랑드 대선 캠페인 때 사회당이 한 공약 중 하나다. 이 공약은 지난 2월 7일 노동감독관들이 동료 로맹 르쿠스트르가 3주 전 아라에 있는 자택에서 목매 자살한 채로 발견된 이후 벌인 시위에 따른 조처였다. 2011년 5월에도 프랑스 노동자들의 노동·고용·직업교육을 통합 관리하는 프랑스 통합 노조연맹(SNU-TEFE-FSU)의 사무총장 뤼크 베알레날디가 노동부 건물 계단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적이 있다.

노동계의 약화는 임금노동자를 위해 '최후의 방어선' 역할을 해야 할 기관(노동감독국)까지 약화시켰다.(2) 2004년 이 기관의 노동감독관 2명이 도르도뉴 지방 소시냑에서 공무 수행 중에 한 농부에 의해 살해됐다.(3) 사상 초유의 이 살인사건은 전통적인 외부 위협, 예컨대 기업의 사적 영역에 대한 노동감독국의 감사를 꺼리는 고용주의 위협을 현실화했다. 감독관들의 자살은 또 다른 내부 위협, 수년 동안 이 직업을 홀대하는 개혁에 의해 생성된 위협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1986년부터 북부 지역의 노동감독관이자 프랑스 남부노조의 전 지부장 피에르 조아니는 이렇게 고백했다. "우리도 이같은 파국에 놀랐다. 불황에 시달리는 임금노동자들의 시위를 보는 데 익숙한 나머지, 정작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공무원 단체를 강타하는 이런 직무유기는 뭐니뭐니 해도 공무의 근간인 역설적 명령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를테면 최고경영자(CEO)들의 노동법 준수를 바라는 정부가 노동감독관이 아닌 CEO들에게 자율권을 주었고, 임금 착취 방지책은 있지만 노동감독관이 실질적으로 임금노동자를 책임지고 보호할 수 있는 그 어떤 수단, 즉 자유 재량권을 정부로부터 보장받은 적이 없다.

눈속임에 지나지 않은 노동 감독 중시 정책

1841년과 1874년에 작성된 두 개의 법률 초안을 토대로, 1892년 11월 2일 공장에서의 여성 및 연소 노동자에 관한 법률이 탄생된다. 이로써 공장은 공장 내에 노동감독관을 두어 초기 사회복지법을 시행했다. 이후 임금노동자 수가 늘어나고 노동법규의 내실이 튼튼해짐에 따라 감독관의 임무 범위 또한 확장되면서 1910년 노동기준법이 집대성된다.

초기엔 감독관 1명과 조사관 2명, '3인 1조'로 움직이는 감독 시스템이 가동됐다. 팀원들은 자신의 구역에 있는 기업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법 준수 여부를 확인하고, 노동자들의 요청이 있을 때만 개입했다(통상적으로 고용 직원이 50명 이상일 때는 감독관이 개입하고, 50명 미만일 때는 조사관이 개입했다). 하지만 감독관들은 폭주하는 업무량에 항상 일손이 부족했다. 현재 공무원 2257명이 180만 개 기업, 1820만 명의 노동자를 관리·감독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의 권한은 제한적이다. 이들이 기업에 들어가 모든 문건을 점검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기업에 법률 준수를 강제할 수는 없다. 노동자가 위험에 처한 경우 이들은 작업을 중지시키거나 가처분 신청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고용주를 압박하는 길고 지루한 업무, 즉 감사 소견서, 재감사 통지서, 다소 위협적인 고발장 등을 발부하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이런 절차가 궁극적으로는 억제와 처벌에 관한 최상의 도구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지만, 일처리를 사법부에 떠넘기는 셈이라 노동감독국의 신뢰가 추락했다. 고발사건 중 3분의 1은 사법부의 톱니바퀴 속에서 유야무야되고, 검찰은 이 중 20%는 기각하고 나머지 3분의 1만 기소한다. 기소된 사건들 중 90%가 유죄판결을 받지만, 이 중 80%는 터무니없는 소액 벌금형에 그친다. 2004년 적발된 88만6천 건의 위법 중 5208건이 고발 조치돼, 1968건이 기소되고 1645건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1283건이 벌금형에, 262건이 금고형에 처해졌지만, 이 중 징역형은 44건에 불과했다.(4) 이같은 '사법부의 관용주의'를 비판하는 언론은 거의 없다. 낙심한 감독관들은 이제 어쩔 수 없는 극소수의 경우에 한해서만 어렵게 고발장을 작성하고 있다. 그 여파로 1978년 2만5100건에 달하던 고발장은 2010년 6600건으로 대폭 줄었다.

경제위기와 노동운동의 후퇴와 함께, 1970년대 말 노동감독국의 감사 임무 조건도 약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업 내 노사관계의 경직, 업무 책임의 강화, 비정규직의 발전으로 인해 정규직뿐만 아니라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규직의 도움 요청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5)

이와 동시에 감독관들의 개입은 훨씬 까다로워졌다. 기업 내에서 노조의 중재가 약화됐다. 1982년부터 정부는 고용 유연성 촉진을 내세워 법률에 저촉될 가능성이 큰 행동을 늘리고 있다. 따라서 법률을 책임지고 적용해야 할 감독관들의 정당성이 약화된 가운데, 고용주들은 법률적 난마(亂麻)로 변질된 노동기준법을 속박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감독관 1200명가량이 민간기업 노동자 100만 명을 관리·감독하며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왔다. 2000년대 초반에야 비로소 이들의 수가 조금 증원됐다.

조아니는 말한다. "우리는 관계 부서의 가난한 부모다. 노동감독국은 겨우 지탱되고 있다. 우린 가난을 불평했지만 금세 버림받은 게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우리는 조용히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6년 도미니크 드빌팽 정부의 노동장관 제라르 라르셰가 노동감독국의 현대화 및 발전 계획(PMDIT)을 발표하며 상황은 또 바뀌었다. 소시냑의 트라우마 여파로, 장관은 "노동감독국의 인력을 보강하고, 가치를 드높이고, 위상을 격상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사실 장관이 노동감독국을 좌지우지하겠다는 속셈이었다.

물론 이 프로젝트에는 4년 안에 감독 인력을 50% 증원해 프랑스의 수준을 유럽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안건도 담겼다. 실제로 감독 인력은 2006년 1400명에서 2010년 말 2257명으로 늘어나, 800명 이상이 증가했다. 하지만 이런 '전례 없는 인력 보강'은 허구에 가깝다. 증원 인력 중 550명가량은 기존 노동감독국이 교통·농업·해양부와 합병하는 과정에서 불어난 인력이기 때문이다.

실제 증원된 감독 인력은 300명에 불과한 셈이다. 게다가 이들은 2007년 출범한 공공정책 검토팀(RGPP)에 곧바로 투입됐다. 이때 퇴직 공무원 2명당 1명에 대한 비(非)충원 규정도 만들었다.(6) 비록 감독관들은 살아남았지만, 감독국의 실무진들은 자신의 기관이 축소됐다고 생각한다. 살아남은 자들의 업무량이 증가해, 감독관과 조사관이 일부 행정 업무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눈속임식 노동감독국 '중시' 정책은 노동감독국의 방향 전환, 즉 고용주들의 지위 남용을 규탄하는 노동자 편이 더 이상 아니라 정부 편을 드는 기관이란 것을 숨기기 위한 꼼수이다. 여태까지 조사관들은 노동의 독립성을 보장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제81호와 고위층의 무관심 덕분에 일부 업무에서 자율성을 누렸다. 하지만 이제는 정부가 노동정책에 따라 이들의 활동을 조종하고 계획할 것이며, 이 행동의 우선순위도 고용주에 대한 압박이 아닐 것이다.

또한 이 프로젝트는 노동감독국이 재정에 관한 조직법(LOLF), 국가조직법에 명시된 '성과' 법령을 따르도록 했다. 2001년 8월 리오넬 조스팽 사회주의 내각 때 공포된 이 법은 2006년까지 단계적으로 통용되며 관습법, 민간부문에 통용되는 법칙에 따라 공공재정을 관리하는 '신(新)공공관리론'의 등장처럼 인식됐다. 예산이 지표·목표·결과를 토대로 정한 성과 기준에 따라 집행됐다. 사회당 국회의원 로랑 파비위스와 디디에 미고의 표현에 따르면, "(예산을) 잘 써서 세금을 감면해주기 위한 것"이라 했다.(7)

노동감독국은 정부의 감시 압박과 성과 강박이란 이중고를 겪고 있다. 2006년부터 각 감독관에겐 연간 200건의 업무가 할당됐다. 이 중 60%가 기업 감사 업무고 나머지는 서신으로 처리하는 행정 업무다. 감독관은 일처리를 할 때 상부에서 최우선시하는 부문인 노사 간 협력과 발암물질 유발에 신경 써야 한다. 또한 도로 위험, 이온화 방사선, 나무 먼지 등처럼 정해진 주제에 대한 모니터링 캠페인에도 참여해야 한다. 결국 그는 노동감독관을 관할하는 작업관리 정보 시스템인 '캅시테르'(CAP SITERE)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상부에서는 연말 인사고과 평가 때, 이런 결과를 토대로 감독관의 보너스와 승진을 결정한다. 서류상으론 캅시테르의 성공이 대단했다. 노동감독국이 국제노동사무국(BIT)에 제출한 2010년 프랑스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노동감독국이 실시한 기업 감사 수가 37만 건으로 3년 연속 20%의 증가율을 보였고",(8) 감독관들의 활동 내역도 상세히 기록돼 있다. 이 지표가 맞기는 하지만 대단한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감독관과 조사관의 업무는 상시 시위를 벌이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들은 봇물처럼 끝없이 쏟아지는 새로운 업무 요청 중 긴박성을 따져- 그걸 따지기란 쉽지 않지만- 당장 처리하거나 추후로 미루는 게 일상이 돼버려 일처리에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차라리 실적이 나쁜 게 낫다…"

프랑스 전국노동연맹(CNT)에 속한 노동자이자 론 지방에서 2008년부터 노동조사관으로 일하는 질 구르크는 이렇게 주장한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인데, 정해진 기한 내에 이들에게 답변을 해야 한다. 게다가 이런 일은 내가 목표량을 달성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난 목표량을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내 직업의 전문성을 인정받고 싶다." 조아니는 "의욕에 찬 노동감독관들한테는 노동자의 요구에 부응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 직업의 최대 맹점이었다. 이들은 항상 그것이 불만이었다. 예컨대 고위층이 감독관들을 불필요하게 압박하며 이들이 완수한 업무를 인정하지 않을 때 이들은 괴롭다"고 했다.

감독관들은 특히 이같은 노동정책 속엔 본인의 임무를 노동자의 상황과 거의 무관한 전시성 목표에 종속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봤다. 조아니는 그 예를 들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기업에 사회심리학적 위험에 대한 예방책이 존재하는지 조사하라고 지시하지만, 노동 현장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가동되고 있어야 할 구체적인 대책에 대한 평가는 하지 말라고 한다."

2003년부터 프랑스 노동총동맹(CGT) 센마리팀 지부에서 근무하는 제랄드 르코르는 비판 수위를 한층 높였다. 석면 사건 이후 "다른 발암물질이나 사회심리학적 위험에 대한 대책을 미처 세우지 못했던 정부는 추후 그게 책 잡힐까봐 두려웠다. 노동정책은 공문을 남발해 이를 만회하려는 꼼수다".

연간 200건의 작업 목표가 노동감독국을 부조리한 집단으로 추락시켰다. 발드마른 지역의 한 조사관은 "감사 계정마다 막대도표가 있어 한 식당의 필수 검사 항목을 확인하는 데 10분이 걸리고, 노동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시간외근무 공제 시간을 계산하는 데 며칠씩 걸린다"며 한탄한다. 노동자를 위한 감사의 유용성을 모른 체하는 이같은 책임담당할당제가 공무원의 동기부여를 저해하고 있다. 또한 이런 제도는 일을 날림으로 처리하고, 캅시테르에 전송하는 정보를 왜곡하게 만든다. 구르크는 이런 상황을 이렇게 정리한다. "우리는 거짓말이 일반화된 곳에서 산다. 업무를 줄일수록 우리의 작업 할당 수치는 올라간다." 오죽하면 프랑스 고충 처리반 직원마저 공공서비스 부문(9)의 심각한 폐단을 확인하고 한탄한다. "행정 직원이 실제 경험한 현실과 정부 부처가 수많은 지표를 가지고 제공하는 이미지 간 왜곡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10)

책임담당할당제 운영이 감독관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힌 가운데, 일부 감독관들은 캅시테르나 평가 인터뷰를 보이콧하고 있다. 하지만 동료들 간 분위기는 나빠지고 있다. 가동되는 경쟁 시스템과 수령한 보너스에 대한 '함구' 정책 때문이다. 2012년 초반, 2명의 감독관 자살에 따른 시위에 직면했던 정부는 작업량을 기준으로 한 평가를 올해는 중지했다고 밝혔다. 4월, 정부는 두 자살자에 대한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하지만 정부는 개혁안(책임담당할당제)을 철폐하진 않았다.

지난 5월 정권이 교체되며 감독관들은 자신의 문제가 재검토되리라 실낱같은 기대를 걸었지만, 7월 노동부 장관 미셸 사팽은 이들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노조 단체들(11)이 모인 한 연설에서 기존에 하던 대로 일자리 감축을 비롯한 노동정책, (업무의) 우선순위와 목표, 그리고 이것들의 관리 도구인 캅시테르를 유지해 연말 인사고과 평가와 성과급에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노동감독국이 변해 수치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밖엔 달리 방법이 없는 듯하다. 사팽은 '서비스 부문의 사회심리학적 위험에 대한 예방책 강화가 자살사건을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파니 두메루 Fanny Doumayrou 언론인

번역 / 조은섭 chosub@ilemonde.com 파리7대학 불문학 박사로 알리앙스 프랑세즈에서 강의 중. 주요 역서로 <착각>(2004) 등이 있다.

(1) 프랑수아 올랑드 대선 캠프의 노동과 일자리 담당책임자인 알랭 비달이 작성한 보고서, 2012년 2월 8일.
(2) <최후의 방어선>, 리샤르 부와의 다큐멘터리, Kuiv Productions, 1998.
(3) 농업 시스템(ITEPSA)을 감사하던 감독관과 농업상호지원협회(MSA)를 감사하던 감독관이 살해됐다. 2007년 3월 9일, 살해범은 30년형을 선고받았다.
(4) ‘2010년 프랑스의 노동감독’, 국제노동사무국 보고서, p.221~, 2011.
(5) Thomas Kapp, ‘개인의 요구에 직면한 노동감독’, 잡지 <노동자의 권리> 제653호, 2002년 12월.
(6) Laurent Bonelli & Willy Pelletier, <복지국가에서 관리형 국가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월 12월호.
(7) 1999년 1월 두 명의 의원이 재정에 관한 조직법(LOLF), 이른바 ‘국가조직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8) ‘2010년 프랑스의 노동감독’, 국제노동사무국 보고서, p.93, 2011.
(9) Maya Bacache-Beauvallet, ‘성과에 따른 임금제: 공공서비스 부문의 역효과와 장애’, 잡지 <사회과학 연구활동> 제189호, p.58∼71, 2011년 4월,
(10) ‘재정에 관한 조직법(LOLF), 이른바 국가조직법 가동의 새로운 시각에 대한 종합평가’, 감사원 보고서, p.184, 2011년 11월.
(11) 노동부, 노동고용부, 직업교육부, 노사협력부 등 국가기술위원회의 개입을 언급했다. 2012년 7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