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파농, 억압받는 자들의 희망

2009-03-02     안 마티유|<아덴-폴 니잔> 발행인, 파리

프란츠 파농 '흑백, 억압·피억압의 도구로부터 해방' 선언
저서<검은 피부…> 식민주의에 대한 역사적·철학적 성찰

"이 책을 쓰는 이유? 물론 그 누구도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내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말이다. 글쎄? 이유를 굳이 대라면 이 세상에 너무 많은 아둔한 자들 때문이라고나 할까? 내친 김에 그 증거를 대겠다.

 새로운 휴머니즘을 위하여,
인간과 인간 간의 보다 나은 이해를 위하여,
나의 동포인 유색인종을 위하여,
내가 믿는 인류를 위하여,
인종편견 때문에,
사랑과 이해를 위하여....,"
  -프란츠 파농, <검은 피부, 하얀가면> 서문에서

2차 대전 이후 서구 지식인 사회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1952년 <검은 피부, 하얀 가면, 흑인문제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해석>1)이라는 도발적인 내용의 책이 출간됐기 때문이다. 이 저서의 서문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인간을 피부색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흰색과 검은색 두 진영으로 갈라져 다투기 때문"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저자 프란츠 파농(1925-1961)은 의사, 정신분석학자, 수필가로서 알제리 독립 운동2)을 지지했으며, FLN(알제리 민족 해방전선)과 함께 정치투쟁을 이끈 투사였다. 카리브해의 프랑스령 마르트니크 출신의 파농은 프랑스가 줄곧 수용하기를 꺼려했던 흑인지식인 집단에 속해 있었다. 그는 급진적인 반식민주의자, '실패한 예언가'3)로 낙인찍힌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탁월한 문학적, 사상가적인 글을 쓴 파농은 우리 시대의 역사뿐만 아니라 현대적인 우리의 토론과 성찰을 보다 명확하게 밝히는데 기여하였다. 
 파농이 지적한 '두 진영 간'의 마찰은 두 피부색 간의 마찰뿐만 아니라, '억압자'와 '억압받는자'들의 광범위한 마찰을 의미한다. 사실, 식민주의의적 인종차별주의는 여타 인종차별주의와 다르지 않다. 
 파농의 사상은 강력한 식민지배 아래에서 시적이고 수사학적인 산문으로 표출되었다.  자신에게 금지된 세계를 거부하고,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식민지 해방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외쳤다.
 "원주민은 정체된 존재다. 차별정책(apartheid)은 식민지 세계의 구역 나누기의 원칙일 뿐이다. 원주민들이 처음으로 배우는 것은 한계를 벗어나지 않고 자신의 위치에 머무는 것이다. 그래서 원주민들의 꿈은 근육을 쓰는 꿈들이다. 나는 높이 뛰고, 수영하고, 달리고, 기어오른다. 폭소를 터뜨리고, 큰 걸음으로 강을 건너뛰고, 한 무리의 차량들이 날 뒤쫓지만 난 절대로 잡히지 않는 꿈을 꾼다. 식민 시대에, 식민지인들은 저녁 9시에서 새벽 6시 사이에 도주를 부단히 꿈꿨다."
 이와 관련, 시대는 다르지만 폴 니잔은 "인간은 완벽해지지 않는 한, 그리고 자신을 지탱해주는 땅을 자신의 다리로 자유롭게 딛고 서지 못하는 한, 밤에 꿈을 꿀 수 밖에 없을 것"4)이라고 주장했다.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백인들이 흑인에게 부당하게 설정한 비정상적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이 책은 비록 그 범위가 다양하기는 하지만 흑인 예찬론자들과 사르트르의 <검은 오르페우스>5)의 텍스트를 연상 시키는 대목들을 담고 있다. 몸과 시선에 대한 은유적이고 분석적인 어휘 계통이 특히 그렇다.
 파농은 어쩌면 저들보다 더 몸을 가까이서 다루고 있다. 왜냐 하면 그는 "이 책의 초고를 마치 연설자가 자리를 서성이며 외치듯,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몸의 리듬과 숨결의 스타일6)을 딱딱 끊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농은 현실을 은유로 접근한다. "백인을 처음 볼 때, 그는 자신의 멜라닌 색소의 무게를 느낀다."고 했다.

흑인들에게 있어 수 세기 동안의 노예생활 및 식민생활이 타인과의 관계와 시선을 고착시켰다. 그래서 그 시선에서 헤어나기란 쉽지 않다.
 파농은 이렇게 지적한다. "사람들이 날 좋아 할 때는 그들은 내 피부색에도 불구하고 날 좋아한다고 말하고, 그들이 날 싫어 할 때는 내 피부색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어쨌든 난 악순환의 고리에 갇힌 포로다."
 인종차별주의는 또한 검은 색을 지칭하는 방식에도 도입된다. 예로부터 검은 색이 암시하는 내용은 분명했다. 그리고 거의 필연적으로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파농은 "검은색은 모호함, 그늘, 어둠, 밤, 대지의 미궁, 심연, 누군가의 명성을 더럽힘 등을 의미하며, 흰색은 순결하고, 밝은 시선, 평화의 흰 비둘기, 천상의 마법의 빛 등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언어도 이러한 암시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특히 "죄를 검은 색으로, 미덕을 흰색"으로 보는 고도의 종교적인 암시가 그렇다. 이 분석은 이런 저런 책들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파농은 이 문제를 보다 깊이 다루고 있다.
 그의 마지막 저서<지상의 저주받은 자들(1961)>7)은 인종차별사회와 식민사회에서의 <구역나누기>는 필연적으로 인종차별적인 언어를 생산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이따금 그는 끝장논리로 "이 흑백논리가 식민 지배를 받는 사람들의 인간성을 말살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사르트르가 알제리 전쟁8) 당시 지적한 것처럼, "식민 시스템이 '인간 이하의' 시스템을 낳는다"고 지적한다.
 
 굴절된 식민 시스템의 언어
 나아가 파농은 "엄밀히 말해서, 식민 시스템은 인간을 동물화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은 원주민의 비굴한 동작, 원주민 마을에서 풍기는 냄새, 유랑민, 악취, 우글거림, 증식, 꿈틀거림 등을 연상한다. 폭발적인 인구증가, 히스테릭한 대중, 인간성이 말살된 얼굴들, 더 이상 아무 것하고도 닮은 데가 없는 뚱뚱한 몸, 종잡을 수 없는 무리, 돌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  태양 아래 늘어져 있는 나른함, 식물적인 리듬, 이 모든 것들이 식민 사고의 어휘들이다."
 이 식민사고의 어휘들은 그룹 '제브다'가 노래 '소음과 냄새'9)에서 지적했듯,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힘을 발하고 있다.
 원주민의 '인간성 말살'은 그들을 다루는 방식에 있다. "규율을 따르게 하고, 조련하고, 두들겨 패고, 그리고 요즘은 평화를 유지토록 하는 것 등이 식민 지배 영토에서 가장 흔히 쓰는 어휘들이다." 알제리 전쟁은 '힘'과 경멸위에 세운 최고의 영속 시스템이다. 
 따라서 파농은 그의 저서 <알제리 혁명 5년(1959)>10) 서문에서 전쟁 초기부터 "프랑스의 식민주의가 공포의 근본주의나 혹은 고문의 근본주의 등 그 어떤 근본주의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도약을 깨는 것과는 거리가 먼 억압들이 민족적 양심의 진보를 외치는 오산을 낳고 있다"고 저서<지상의 저주받은 자들>에서 분석했다.
 "만약 내 삶이 지배자의 삶과 똑같은 무게를 지녔다면, 그의 시선이 날 더 이상 두렵게 하지도, 날 옴짝달싹 못하게 하지도 못할 것이며, 그의 목소리가 날 더 이상 화석화 시키지도 못할 것이다. 그의 면전에서 난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도 않을 것이다. 실상, 내가 그를 괴롭히게 될 것이다. 그의 존재가 날 방해하지 못하는 것만 아니라, 내가 이미 그를 괴롭힐 준비를 하고 있으니 그가 도망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육체적인 해방이 공포로부터의 해방을 부르고, 몸을 던져 독립투쟁을 하게 만든다.
 
 비식민지화 투쟁과 필연적 폭력
 어떤 여건에서 독립 투쟁이 이루어질까? <지상의 저주받은 자들>은 "비식민지화 투쟁이 항상 폭력적인 현상을 유발시킨다고" 말했다. 왜냐 하면 폭력이 폭력을 부르기 때문이다. 억압자들의 폭력이 영토의 조그만 틈새만 침범해도, 평화적으로 그것에 대항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페데르브, 리오테, 뷔조, 병장 브랑당 등 정복자들은 하나 같이 "우리는 총검의 힘으로 이곳에 왔다. 우리는 쉽게 정복을 이뤘다"고 외쳐 댔다.
 피억압자들의 반란은 당연한 것이다. 이 반격은 여타 지배를 받고 있는 다른 나라들의 문제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파농이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는 걸까? 그가 모든 운동에서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알제리 혁명 5년> 서문에서 그는 "우리는 처참한 심정으로 케케묵은 압제를 지속시키며 거의 생리적인 폭력성을 휘두르고 있는 형제들을 비난한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적어도 파농은 우리에게 폭력의 기원과 피억압자들의 유일한 해방구가 폭력임을 이해해 달라고 부탁한다. 파농은 '군대와 경찰서에서 표시한 국경'이니 '공유 노선'이니 하는 것들과 같은 식민사회의 '구역 나누기'가 우리를 안전지대로 밀어 넣었지만, 그것은 '평화로움'과는 거리가 먼 맞서 싸워야 할 '근본주의'를 양산했다고 주장한다. 
 파농의 통찰력은 또한 식민 치하에서 해방된 국가가 온당치 못한 민족부르주아 계층이 권력을 잡고 국민들에게 지적, 기술적 자산을 제공하지 않을 때마다,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분석도 하고 있다. 그는 라틴 아메리카를 예로 들며, 나라를 서양 부르주아들의 의도대로 요양시설로 전락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고 경고한다. 냉소적인 부르주아 성향의 계층이 지역주의를 부추기고 있어 국가 통합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인종과 부족들이 이끄는 이 무자비한 투쟁, 즉 외국인들이 떠난 공석을 차지하려는 이 암투가 종교경쟁을 낳고 있으며, 우리는 이슬람과 가톨릭, 이 거대한 두 종교 사이에서 불거지는 갈등을 보게 된다" 결론지었다.
 심지어 파농은 국민들을 '잠재우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정당이 "과거 식민시대의 기억을 상기해보라거나, 혹은 여태 걸어온 멀고 먼 길의 길이를 재보라"고 주문하며 과거를 들먹이는 현실을 경고했다.
 
 반식민주의적 '탈 유럽' 주창
 식민주의의 반사적 개념으로 소위 흑인문화를 유일한 지평처럼 내세워서도 안 된다. 만약  아프리카의 소양을 지닌 사람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인종적인 것으로 만들고, 민족문화보다는 아프리카 문화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역사적인 의무'때문이라면, 그것은 그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모는 것이다.
 파농의 투쟁은 '흑인운동'을 세계화시키겠다는 의지, 그리고 투쟁의 영역을 분류하는데 있어서도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파농은 그의 첫 저서에서 "나는 현재와 미래에 의존하며 과거를 예찬하고 싶지 않다."고 자신의 신조를 밝혔다. 그래서 그는 1952년엔 어떤 경우라도 유럽역사에 기댄 식민주의 역사에 대한 성찰을 멈출 수가 없다고 못박았다. 

■ 프란츠 파농은 누구인가

 파농에게는 혁명가 , 정신과 의사, 실존주의자, 선각자, 사회철학자, 이상주의자등 아주 근사한 수식어들이 붙는다. 그러나 이중에서도 가장 와닿는 것은 파농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프랑스의 식민지인 마르티니크라는 조그만 섬에서 태어나 정신과 의사로서 환자를 돌보고, 제3세계의 해방운동을 연구했다. 프랑스 국적을 버리고 알제리 독립투쟁에 헌신했을 뿐만 아니라 전 아프리카의 연합국가를 건설하려했던 이상주의자였다

 사실 식민주의는 필연적으로 다시 돌이켜 봐야 할 가치위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파농은 "만약 지식이나 혹은 철학의 이름으로, 사람들이 인간의 평등을 주장하는 것이라면, 또한 그 이름으로 사람들은 그것들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1961년 극렬한 비난이 확산되면서 "인간과 마주치는 곳곳, 모든 거리, 세계 구석구석에서 인간을 학살하며 끊임없이 인간 얘기를 하고 있는 유럽을 떠나자"고 사람들은 외쳤다. 한줄기 구원의 불빛 속에서 프랑스에 맞서야 한다고 외쳤다. 나치즘에서 해방되자마자 나라를 재건하더니 세티프(1945년 5월)와 마다카스카르(1947년 3월)의 대학살을 자행한 프랑스에 대항하자고 외쳤다. 전쟁이 종식되자마자 프랑스가 세네갈과 모로코의 형제 병사들에게 등을 돌렸다고 외쳤다.
  40년이 훌쩍 지났지만 엄연한 이런 진실을 우리는 경청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유럽을 흉내 내고, 유럽을 따라잡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겠다는 조건이 그것이다. 유럽은 광적이고 무질서한 속도에 휩싸여 있다. 그 어떤 기사나 이성도 그 속도를 통제할 수가 없다. 유럽은 현기증을 유발하는 놀라운 속력으로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어, 되도록이면 서둘러 유럽과 멀리 떨어지는 것이 좋다." 
 파농은 자신이 어떤 유럽에 대해 말하는지 알고 있다. 그는 알제리의 독립을 지지했던 유대인이나, 사방에서 독립의 이유를 지지했던 프랑스인들에게 경의를 표했던 사람이다. 파농의 행동은 보편적인 것이다. "흑인인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한가지다. 결코 도구가 인간을 지배하지 않기를 바라며, 인간에 의한 인간의 굴종은 영원히 중단되기를 바란다.

번역|조은섭 chosub@ilemonde.com

 "타자를 만지고 타자를 느끼며 동시에 그 타자를 내 자신에게 설명하려는 그런 단순한 노력을 왜 그대는 하지 않는가? 바로 '당신'이라는 세계를 건축하도록 나의 자유가 나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희망한다. 이 세계가 나와 더불어 활짝 열린 모든 종류의 의식의 문을 느낄 수 있기를 말이다."
  프란츠 파농- <검은 피부, 하얀가면>에서

 


 

1)출판사 Seuil, 파리, 프랑시스 장송이 서문을 씀. 장송은 1965년 재출간 된 이 책의 발문도 썼다. 이 저서는 컬렉션 <Points essais>로 만날 수 있다.
2)파농은 1957년부터 FLN의 대변인을 지냈다. 1953년부터 그는 알제리 블리다-조앵빌 병원 정신과 과장을 역임했다.
3)수필가 로타르 베에르의 멋진 텍스트 참조. 출판사 아곤느, 제 33호, 마르세유 2005년 4월.
4)폴 니잔, 앙트완 블로에(1933), 출판사 <그라세>, <붉은 노트>, 파리, 2005년
5)장-폴 사르트르 <검은 오르페우스>, 레오폴드 세다르 상고르의 서문<흑인과 마다카스카르인의 시집>, <프랑스 대학 프레스>, 파리 1948년
6)알리스 케르키, <프란츠 파농, 초상화>, 출판사 Seuil, 2000, p.46
7)출판사 프랑수와 마스페로에서 사르트르 서문과 함께 출간되었지만 곧 판금 조치 당함. 백혈병에 걸려 곧 죽게 될 것을 알았던 파농은 매 페이지를 불러주며 적게 했다. 그는 막 출간 된 책 한부를 받았고, 3일 후 미국의 한 병원에서 사망한다. 그의 시신은 그의 유언대로 해방된 알제리 땅, 튀니지 국경 근처에 묻혔다.
8)참조 '장-폴 사르트르와 알제리 전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4년 11월 참조
9)이민자들이 유발시키는 '소음과 냄새'에 대한 작크 시락의 성명에서 영감을 따 만든 곡임.
10)출판사 마스페로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