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름의 시네마 크리티크] 다시 <여고괴담>에 힘을 싣는 영리한 방법 -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영화 <캐빈 인 더 우즈>(2012)에서 주요 인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이 경고하는 이의 말을 무시하고 낡은 오두막집으로 들어섰을 때, 그 오두막집에서 어딘가 기시감이 든다고 느꼈을 때, 이 영화가 기대고 있던 것은 꽤 오랫동안 누적되었던 공포영화의 질서라는 것이 드러난다. 착하고 순박해 보이는 남녀와 커플인 남녀, 그리고 괴짜 남성 인물로 구성된 5인은 할리우드 슬래셔 영화 속 인물의 전형이었고, 그들이 어떤 순서로 죽음을 맞이하는지 역시 정해져 있었다. 이를 까발리며 다시금 슬래셔 영화로 활용했던 것이 <스크림>(1999)이었다면 <캐빈 인 더 우즈>는 이 슬래셔 영화가 과연 어떠한 경로로 가능했는지 그 이면을 들추는 것 자체로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그들을 굳이 깊은 산속 오두막으로 오게 만들어 낡은 노트를 발견하게 만들고, 커플이 성관계를 맺는 도중 죽게 하기 위해 특정 시점에 페로몬을 뿌리는 시스템이 움직인다는 상상, 공포영화의 메타성은 <케빈 인 더 우즈>를 통해 코믹하게 그러나 전형적 컨벤션을 정확히 꼬집으며 흥미로운 발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영화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2024, 이하 <개교기념일>)이 발을 걸치고 있는 곳은 이와 그리 다르지 않다. 물론 굉장히 다양한 괴물과 살인마가 등장했던 서구의 공포, 그리고 여러 나라의 시스템까지 움직이고 있다는 설정에 기반한 <케빈 인 더 우즈>의 규모와는 비교하기 어렵지만 <개교기념일>은 그 나름의 기개로 동양의 공포를 이용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감독을 꿈꾸는 지연(김도연)은 방송실에서 ‘귀신 숨바꼭질’이라는 제목이 적힌 비디오 테이프를 발견한다. 여기에는 1998년 세강여고, 그러니까 지연이 다니는 학교의 선배들이 행했던 귀신 숨바꼭질의 영상이 담겨 있다. 세강여고에는 개교기념일에 귀신 숨바꼭질에서 이긴 이들은 수능에서 만점을 받을 수 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고 실제로 이 비디오에서 귀신 숨바꼭질에 이긴 언니들은 모두 수능 만점자들이었다. 연예인이 되겠다는 은별(은서), 은별의 연기 연습을 촬영하는 현정(강신희) 그리고 영화 감독이 되고 싶은 지연과 같이 분명한 꿈은 있지만 성적은 등급의 끝자락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세 사람은 이 숨바꼭질을 해보기로 결심한다.
1998년의 여고, 오래되고 낡은 고등학교의 모습은 곧 <여고괴담>을 먼저 떠오르게 한다. 그곳에서 벌이는 과거 어디선가 들었던 듯한 귀신 숨바꼭질은 ‘분신사바’의 현대판이었으며, 당시 수능 만점을 받았던 언니들은 높은 성적이 꿈꿀 수 있는 지위와는 상관없는 위치에서 후배들을 걱정하는 이가 되어 있었다. <여고괴담>에서 보여주었던 성적에 대한 강박과 그것의 현재화는 <개교기념일>을 통해 흥미롭게 전유된다. 또한 그들이 행하는 귀신 숨바꼭질을 반드시 찍어 그 영상을 남겨야 한다는 것은 <링>(1999)에서 보여주었던 사다코의 저주와 겹치고, 성적에 대한 이야기가 ‘주제’라거나 홀로 종교부를 지키는 2학년의 민주(정하담)와 함께 하자며 이제 ‘너 같은 캐릭터’가 등장해줘야 한다는 것은 <지옥이 뭐가 나빠>(2014) 메타영화적 대사들을 떠오르게 만들기도 한다. <개교기념일>은 장르의 전형이 그 모습을 다시 드러낼 때 지루하지 않게 경유할 수 있는 것이 ‘코미디’라는 점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향해 달려간다.
미처 알지 못했던 서로의 고통은 ‘으앙’ 터져버리는 울음으로 이겨내고 포옹과 서로를 이해하는 말들은 잠시나마 위로가 된다. 그들은 귀신 숨바꼭질을 하는 중 잘 알지 못했던 스스로를 드러내면서 잠시나마 지금의 고등학생들이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를 깊이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은 채 그들 앞에 나타난 귀신은 끊임없이 그들을 위협하며 싸움을 걸어 온다. <개교기념일>은 여고생들과 귀신의 물리적인 싸움을 허락한다. 갑작스레 점프컷으로 튀어나오는 귀신을 어떻게 공격해야 하는지를 찾게 하고 머리채를 잡아 흔들며 이 게임에서 이기기 위한, 또 친구를 구하기 위한 귀신과의 몸싸움을 허락하는 것이다. 주술도 부적도 통하지 않는 귀신 앞에서 오히려 네 여고생의 힘은 빛을 발하고 결국 귀신을 당황시킨다. 이처럼 <개교기념일>이 딛고 선 코미디의 세계는 공포에 대한 컨벤션을 무너뜨리며, 더 넓게는 우리가 생각지 못한 여고생들의 상상력과 우정을 전제하며 이루어진다. 묵주도 염주도 함께 지녀 귀신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위로는 실제 힘을 발산하며 여고생들의 능력을 극한으로 표현해 낸다.
<개교기념일>에서 공포에 도망다니는 것은 여고생이 아닌 귀신이다. 이 학교에서 오랫동안 지박령처럼 자리잡았을 귀신은 오히려 여고생을 피해 도망다니고 영화는 숨바꼭질에서 승리한 이들에게 충분한 축하를 보낸다. 여고생은 선배였을 귀신에게 언니라 부르고, 그저 재미있어서 이런 일을 한다는 귀신을 이해하며 자신들의 위치로 돌아온다. 이러한 설정은 오랫동안 학교를 떠돌던 전설을 비틀면서 소문 자체가 담고 있던 불안, 그러니까 귀신 숨바꼭질과 수능을 연결하던 강박과 불안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만든다. 약속대로 고3이었던 지연과 은별, 현정은 수능 만점을 받고, 고2였던 민주는 이듬해 자신의 학년 모두를 불러 귀신 숨바꼭질에 참여해 귀신을 당황시킨다. 더 이상 귀신을 두려워하는 여고생은 없으며 귀신을 향해 달려드는 그들의 모습은 공포영화라는 장르 안에서 매우 흥미로운 순간을 연출해낸다.
귀신 숨바꼭질을 통해 만점을 받았던 선배들의 사진 속 얼굴엔 어디에도 기쁨이 묻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곧 성공으로 연결되지 않거나 연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양 1998년의 선배들도, 그리고 지연과 현정, 은별의 표정도 모두 어색하게 굳어 있다. 오히려 그들의 얼굴에 다양한 표정이 가득했던 것은 귀신 숨바꼭질을 하던 그 순간이었다. 영화는 여고생들의 다이나믹한 표정변화를 담는 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이는 단순히 공포영화에서의 비명을 유도하는 순간에 대한 포착이 아니라 이를 헤쳐나가는 이들의 결의가 드러나는 순간들에 집중돼 있다. <개교기념일>은 약 30년 전의 <여고괴담>이 공포의 측면에서나 여고생의 측면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또 이어질 수 있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었다. 만약 민주와 아이들이 귀신 숨바꼭질에 승리한다면 이제 귀신은 세강여교에 존재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들이 공포를 느끼는 것은 더 이상 자신이 아닐 것이기에.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2024)
이미지 출처: 네이버
글·송아름
영화평론가. 한국 현대문학의 극(Drama)을 전공하며, 연극·영화·TV드라마에 대한 논문과 관련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