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좌파 정부와 우파 언론의 표현 자유 싸움

2012-12-11     르노 랑베르

보도 분야를 규제한다는 결정을 내리고 민영 언론매체들(브라질에서 발행되는 주간지 <베자>도 그중 하나다)과 벌이는 싸움에서 라틴아메리카 정부들은 이제 막 뜻밖의 원군을 만났다. 바로 영국 보수당의 고위 당직자들이다. 머독 언론그룹이 갖가지 편법을 저지르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언론기업에는 자정 기능을 기대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플라날토 대통령 궁을 떠나기 몇 개월 전에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브라질 내 미디어 분야의 규제를 목적으로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이 법안은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의 옹호를 금지하는 등 콘텐츠를 규제하는 조처와 언론기관의 소유 집중을 제한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브라질에서는 14개 가족경영 그룹이 광고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다).(1) 민영 언론매체들은 이런 조처가 권위적이고 정보가 정치적으로 통제될 위험이 있다며 반발했다. 그리하여 이 법안은 2011년 1월 폐기됐다. 그럼에도 룰라는 몇 년 전부터 이 지역 정부들의 골머리를 썩여온 다음과 같은 의문이 타당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과연 표현의 자유는 그것을 보장하는 정치적 결정과 규제의 틀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가?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기업 간에는 끊을 수 없는 상호의존 관계가 존재한다"고 브라질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2012년 6월 27일 현재) 주간지 <베자>의 발행인 호베르투 시비타는 말한다. 요컨대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다는 것은 곧 언론기업을 비롯한 모든 기업의 표현의 자유를 보호한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정치 지도자를 선출할 계획이 민간 분야의 이익이나 언론매체 소유주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신자유주의를 탈피하기로 결심한(혹은 신자유주의를 탈피하려고 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전통적으로 엘리트 계층을 옹호해온 정당들의 세력이 약화된 이후 라틴아메리카의 언론매체들은 브라질에서 발간되는 보수 일간지 <폴랴 지 상파울루>의 발행인인 유디트 브리투가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 임무를 받아들인 듯하다. "야당의 힘이 크게 약화됐으므로 사실상 언론매체가 이 역할을 해내야 한다."(<글로부>, 2010년 3월 18일자) 때로는 창의력을 다분히 발휘해가면서.

"미디어, 최고의 쿠데타 수단"

2011년 2월 에콰도르에서 발행되는 보수 일간지 <엘 우니베르소>의 논설위원 에밀리오 팔라시오는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부르면서 "그가 민간인들이 가득 찬 한 병원에 사전 경고 없이 발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 말은 사실과 다르다. 1년 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취재를 통해 70%의 시청률을 보이는 멕시코의 주요 텔레비전 채널 텔레비사가 제도개혁당(PRI·중도파)의 2012년 대통령 선거 입후보자인 페나 니에토의 라이벌인 좌파 안드레스 페레스 로페스 오브라도르를 쓰러뜨리려는 목적의 전략을 개발한 다음, 페나 니에토의 '국민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그것을 제도개혁당에 넘겨주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2) 2002년 베네수엘라의 빅토르 라미레스 페레스 해군 중장은 이 나라의 주요 언론기관들이 노골적으로 협조해준 덕분에 우고 차베스 대통령 정부를 전복시켜놓고(일시적이기는 했지만) 기뻐한 적도 있었다.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인 구스타보 시스네로스가 소유한) 베네비지온이 생중계한 방송에서 그는 이렇게 공언했다. "우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언론을 장악했다. 이제 기회가 되었으니 여러분에게 그 점을 꼭 치하하고 싶다."(3)

"자기들의 경제적 이익을 옹호하는 것이 국민 대다수의 이익과 충돌할 때 언론매체들은 민주적 가치의 모범적인 구현자가 된다."(4) 학자인 엘리사베트 폭스와 실비오 와이스보르드는 이렇게 요약한다. 일부 라틴아메리카 정부들로 하여금 결국 언론 분야를 규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도록 만든 것도 이와 유사한 내용의 보고서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법안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관계 정부 부처들의 서랍 속에서 참으며 기다려왔다.

1966년 아직 대통령에 당선되지는 않았으나 베네수엘라공화국 의회의 국내정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던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는 이 나라에 텔레비전이 방영되기 전인 1940년에 제정된 통신 관련법의 개정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즉시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법안"이라는 비난을 받은 채 부결됐다. 이후에 제출된 모든 법안도 부결됐다. 아르헨티나에서도 독재가 한창 맹위를 떨치던 1980~90년대에 언론매체를 규제하는 내용의 법안을 현대화하려는 시도가 수차례 있었으나, 이 나라 주요 언론매체들에 의해 좌절됐다.

이같은 저항에도 불구하고 학자인 에리카 게바라는 "언론 산업을 규제하려는 의지는 '어떤 이데올로기의 산물'로도 치부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 의지는 '정보 및 통신 분야 기술(NTIC)이 획기적으로 발달하고 새로운 관계자들이 언론시장에 진입하는 사실과 관련해 국제적 압력이 강력하게 가해짐에 따라 미디어의 상이한 분야들에서 하는 요구'(5)에서 비롯된다. 언론시장에 새로 등장한 이 관련자들은 적용할 법이 없는 것이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관련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대체로 애매모호하고 권위적인 현행법들은 사실상 1990년 이후로는 시행되지 않아, 민영화와 규제 완화 정책의 혜택까지 받고 있는 소수의 권력 추종자들에게 완전한 자유를 부여했다.

그 결과는? 언론사 사주들이 하원 의석의 10분의 1을 차지하고 상원 의석의 33%를 차지하는 브라질에서는 2006년 현재 글로부 그룹이 '텔레비전 채널들 중 61.5%를', 그리고 '신문 총 발행 부수의 40.7%'를 차지하고 있다.(6) 전세계에 120개 이상의 채널을 가진 거물 호베르루 마링뉴(룰라는 2003년 그가 죽자 사흘 동안을 국장 기간으로 선포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의 텔레비전 네트워크는 하루에 1억2천만 명 이상이 시청한다.

칠레의 국영 신문들은 엘 메르쿠리오 그룹(3개 국영 신문을 포함한 22개 일간지와 14개 라디오방송사, 1개 통신사를 보유한) 회장인 사업가 아구스틴 에드워즈나 COPESA(콘소르시오 페리오디스티코 데 칠레 S. A., 6개 이상의 신문과 잡지, 6개 라디오방송을 소유한) 회장인 은행가 알바로 사이에흐의 소유다.(7)

40개국에 60개가량 되는 기업을 소유하고 3만 명 이상을 고용하며 문어발식 경영을 하는 베네수엘라의 자산 보유 1위 구스타보 시스네로스 그룹은 전세계에 5억 명 이상의 시청자가 있다. 베네비지온 채널은 베네수엘라에서의 시청률이 67%를 넘지만, 시스네로스는 칠레의 칠레비지온이나 콜롬비아의 카라콜 TV, 남미대륙 전체에 방영되는 케이블 채널 디렉 TV에도 투자 지분을 가지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클라린 그룹이 모든 매체를 합쳐 미디어 분야의 60%를 점하고 있다. 순위 1위의 케이블방송 업체로 14개 신문을 발행하고 수십 개의 국영 라디오방송사를 운영하는 등 250개가량의 언론매체를 소유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이같은 상황은 예외라기보다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라틴아메리카의 진보적 정치 지도자들은 초반기에는 언론매체들을 안심시키려고 애썼으나(1999년 차베스와 시스네로스가 비공식적인 만남을 가졌을 때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국가가 미디어 분야를 규제해야 한다는 자신들의 생각을 다시 표면화했다. 2004년 12월 8일 차베스는 라디오와 텔레비전(2010년에는 인터넷에까지 확대됐다)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법안의 시행령에 서명했는데, 이 법안은 방송 콘텐츠를 규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법안은 국내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의 최소 방영 의무비율을 정하는 것 외에, 베네수엘라로 하여금 아메리카대륙 국가 상호 간 인권협약을 준수시키려고 애썼다. 또한 섹스와 관련되거나 폭력적 장면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의 편성을 규제하는 한편(아침 7시부터 밤 11시 사이에는 그런 장면의 방영이 금지된다), 술과 담배 광고를 금지했다. 한발 더 나아가 제7장 28조는 '인종을 차별하거나 외국인을 혐오하는 식의 종교적·정치적 증오와 불관용을 조장하는 메시지'와 '국민에게 불안감을 안겨주는 메시지', 그리고 '거짓 정보'에 제재를 가한다. 2010년 11월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는 유사하지만 '인종차별주의와 모든 형태의 차별에 반대하는 투쟁'으로 제한된 법안을 통과시킨 반면, 에콰도르의 2008년 헌법은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잘못된 정보에 제재를 가했다.

표현의 자유, 기업의 자유

호세 미겔 비방코 인권감시센터 아메리카 담당관처럼 "정보접근권은 '틀리거나', '거짓되거나', '불완전한' 것으로 판명될 수 있는 정보를 비롯한 모든 유형의 정보를 포함한다"(8)며 반대할 수도 있다. 그리고 2002년 베네수엘라의 민영 언론매체들이 차베스 지지자들이 차베스 축출 기도 쿠데타를 일으킨 군중에게 발포했다는 거짓 정보를 고의적으로 방송했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방송 내용에 대한 토론을 개시하는 것이 미디어 분야에 바라는 변화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일까?

베네수엘라에서 발간되는 월간지 <케스티온>의 발행인 아람 아로니안은 이렇게 주장한다. "최악의 상황은 우리가 권위주의적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처에 따르는 정치적 대가를 치르고 있음에도 이 조처들이 진정으로 의미 있는 진전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방송 내용보다 언론기관의 소유구조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청자의 80%가 앞으로도 계속 민영 언론매체들의 독점 구조에 지배당하게 될 것이다."

2009년 아르헨티나는 이런 유형의 절차를 밟기로 결정했다. 10월에 아르헨티나는 한 그룹이 보유할 수 있는 라이선스 수를 10개로 제한하고 양여 기한을 20년에서 10년으로 줄이는 내용의 '탈집중화' 법안을 통과시켰다. 통신을 공공서비스 지위로 끌어올린 이 법안은 공중파의 작용 범위를 셋으로 나누었다. 하나는 상업적 영역을 위한 범위이고, 또 하나는 국가를 위한 범위이며, 세 번째는 비영리 목적을 가진 영역이다. 여론과 표현의 자유 진흥을 위한 유엔 특별조사관 프랑크 라 뤼는 언론사 사주들의 항의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그것이 "언론매체의 집중화에 반대하는 투쟁에 내디딘 중요한 한 걸음"(9)이라고 평가한다. 에콰도르는 아르헨티나의 이 법안을 모델로 삼으라는 그의 권유에 귀를 기울인 듯하다.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는 2009년부터 이 아르헨티나 법안과 대략 일치하는 법안의 입법을 논의 중이다.

남미 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공적인 동시에 비영리적인 목적의 정보 전달 수단을 만들거나 기존 수단들을 강화함으로써 언론매체에 대한 민간 분야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려 애써왔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항상 결실을 맺은 것은 아니다.

우선, 다원주의의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이 새로운 언론기관들은 민영 언론매체들의 일탈 행위를 상쇄하려는 유혹에 저항하지 못하고 그 매체들의 나쁜 버릇 몇 가지를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분석가 켄 크냅은 이 현상을 다음과 같은 말로 조롱한다. "좌파 활동가들은 대체로 지배질서의 선전·선동에 맞서려면 더 많이 단순화하고 과장하고 반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라이트 훅을 맞고 비틀거리는 복싱선수가 레프트 훅을 맞은 덕분에 정신을 되찾았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10)

그다음은 시청률의 문제가 있다.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2000년 1월에서 2010년 9월 사이 베네수엘라 공영채널의 시청률은 겨우 2.04%에서 5.5%로 증가했다.(11) 2008년 에콰도르 헌법의 유사한 조항을 모방해 금융 실체의 주주들이 통신 수단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2010년의 대담한 은행 일반법 개정안은 이런 상황을 반전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아로니안은 묻는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사회주의를 향해 나아간다고 가정되기 때문에, 베네수엘라는 사적 이해관계를 갖는 헤르츠 작용 범위의 주파수와 운용 라이선스 부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 대신 우리는 그 자체가 민주적 이용을 보장할 수 있도록 규제되는 단 하나의 거대한 공적 공간을 상상해야 하는 게 아닐까?" 표현의 자유가 더 이상 언론기업의 그것과 혼동되지 않는 순간, 표현의 자유를 규제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 르노 랑베르 Renaud La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 / 이재형 한국외국어대학교 불문학 박사. 역서로 <꼬마 니꼴라> 등이 있다.

(1) Giancarlo Summa, <브라질에서 언론이 맡는 정치적 역할>(Le Réle politique de la presse au Brésil), IHEAL, 파리, 2008.
(2) Jo Tuckman, ‘컴퓨터 파일들, 멕시코 대통령에게 특혜를 주기 위한 더러운 TV 속임수를 링크하다’(Computer files link TV dirty tricks to favourite for Mexico presidency), <가디언>, 런던, 2012년 6월 8일자.
(3) Maurice Lemoine, ‘베네수엘라의 거짓말 제조실에서’(Dans les laboratoires du mensonge au Venezuela),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2년 8월호.
(4) Elizabeth Fox와 Silvio Waisbord 책임편집, <라틴 정치: 글로벌 미디어>(Latin Politics, Global Media), 텍사스대학 출판부, 오스틴, 2002.
(5) Erica Guevara, ‘텔레비전 대통령들인가, 아니면 좌파의 미디어 과격파들인가?’(Téléprésidents ou média-activistes de gauche?), in Olivier Dabéne 책임편집, <라틴아메라키의 좌파: 1998∼2012>(La Gauche en Amérique latine: 1998~2012), 스양스포 출판부, 파리, 2012.
(6) Giancarlo Summa, op. cit.
(7) Ernesto Carmona, ‘칠레 언론의 거물들’(Los amos de la prensa en Chile), www.alai.net, 2012년 11월 23일.
(8) ‘베네수엘라: 국가의 미디어 통제에 제한을 가하다’(Venezuela: Limit State Control of Media), 우고 차베스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 2003년 7월 1일.
(9) Marcela Valente, <언론매체에 관한 새로운 법>(Nueva ley de medios audiovisuales), 인터프레스서비스(IPS), 로마, 2009년 10월 10일자.
(10) Rafael Uzcàtegui, <베네수엘라: 혁명인가, 아니면 쇼인가?>(Venezuela: révolution ou spectacle?), 스파르타쿠스 출판사, 레 릴라, 2011.
(11) ‘미디어와 베네수엘라: 누가 누구를 억압하는가?’(Médias et Venezuela: qui étouffe qui?), <라 발리즈 디플로마티크>, 2010년 12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