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자>, 브라질 신자유주의의 선봉

2012-12-11     카를라 루치아나 실바

브라질 주간지 <베자>(Veja·'보아라'라는 뜻)가 어떤 잡지인지 궁금하면 독자란에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베자>의 독자란은 천편일률적이라 할 만큼 독자들의 열렬한 호평으로 가득 차 있다. "눈물바다에 잠긴 우리 정치계를 환히 밝혀주는 등대", "(윤리적) 나침반이요, 끈기와 역량의 샘", "집요하게 진실을 추적하는 담대하고 독립적인 잡지"….(1) 쓱 한번 훑어보는 것도 이 잡지가 지닌 진면목을 평가하는 한 방법일 수 있다.

<베자>는 120만 부의 발행 부수와 92만5천 명의 정기 구독자 수를 자랑하는, 남미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잡지다. 그런데 이 잡지 독자의 4분의 3은 브라질 상위 12% 부유층이 차지하고 있다. 요컨대 지극히 보수적인 세계관에 대해 비교적 반감이 적은 계층이라 하겠다. <베자>의 '파노라마'라는 코너에는 남녀 유명 인사들의 사진과 어록이 정기적으로 실린다. 대개 남자들은 양복을 쫙 빼입고 나와 정치적 현안에 대해 이야기한다. 반면 여자들은 실오라기만 걸친 채 늘어나는 몸무게나 귤껍질같이 피부가 울퉁불퉁해지는 현상에 대해 고민을 늘어놓는다. 이 잡지를 읽다보면 코너가 시작되거나 끝날 때마다 어김없이 광고를 마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전체 144쪽 가운데 평균 70쪽 이상이 광고로 도배돼 있기 때문이다. 2012년 11월 7일자 잡지의 경우에는 독자가 자그마치 16쪽에 달하는 '프록터 앤드 갬블'사의 광고를 읽어야만 했다. 그것도 한 번에 내리.

그런데도 <베자>를 가판대에서 사보려면 무려 9.90헤알(약 4유로)을 줘야 한다. 이는 노동자가 받는 월 최저임금의 60분의 1에 해당하는 거금이다. 이 정도 비율이면 프랑스에서는 <렉스프레스>나 <누벨옵세르바퇴르>를 무려 18유로나 주고 사보는 것과 같다. 하지만 <베자>는 얇디얇은 회색 종이 재질에, 요란한 디자인과 낚시성 제목으로 가득 찬 그다지 품격 있는 잡지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잡지가 추구하는 이상은 대체 무엇일까? 바로 본인들이 표방하는 선전 문구처럼 '우리가 꿈꾸는 나라에 꼭 없어서는 안 될' 매체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베자>가 꿈꾸는 나라란 다름 아닌 국가를 싫어하는 나라다.

흡혈귀, 괴수 그리고 인플레이션

<베자>는 2012년 8월 15일자 사설에서 브라질 정부의 민영화 계획에 대해 열렬히 환호했다. 드디어 브라질이 "만유인력의 법칙(자유시장의 법칙을 비유적으로 표현)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게 됐다"고 반색했다. 물론 다음과 같은 경고도 잊지 않았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앞으로 집권당인 노동자당(PT)과 그 외 정치 스펙트럼에서 좌파로 분류되는 온갖 반동세력으로부터 거센 저항에 부딪힐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이 이 전쟁을 이어나가려면 무엇보다 국민의 지지가 절실하다. 이에 <베자>도 대통령에게 확고한 지지를 보내는 바다."

아브릴 그룹이 발간하는 주간지 <베자>는 1968년 창간됐다. 1964년 집권한 군사정권이 '긴급조치 제5호'(AI-5)를 발동하며 정치 탄압을 한층 강화하던 해였다. <베자>는 독재정권과는 사뭇 이중적인 모호한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1985년 브라질에 다시 민주정이 들어서자 곧바로 <베자>는 신자유주의 개혁의 선봉에 섰다. 편집강령에도 "결코 공정성이라는 안이한 세계로 도피하지 말라"고 분명히 명시돼 있는 만큼, 더욱 열성적으로 <베자>는 신자유주의 개혁에 앞장섰다.

1989년, 군사정권 종식 뒤 브라질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적 방식의 대통령 선거가 실시됐다. 이 선거에서 <베자>는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 후보의 편에 섰다. 당시 지 멜루는 상대 후보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에 비해 정치 기반이 취약했다. 하지만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대학 졸업장도 없는 노동운동가 룰라는 권력층을 위협하는 정치 노선을 표방했다. 이에 글로부 그룹의 소유주 호베르투 마링뉴는 어느 진영을 지지할지 마음을 확고히 굳혔다. 그는 지 멜루 후보와 관련해 직원들에게 "이 젊은이를 비판하지 말라"(2)고 단단히 경고했다. <베자>의 행보도 주 경쟁사 <글로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베자>도 지 멜루에게 "젊고 매력적인 후보", "'마하라자'(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일도 하지 않고 배만 불리는 정부 관리를 지칭)의 위대한 추적자"라는 이미지를 만들어주기 위해 온힘을 다했다.

정통 주류 경제학자들을 위협하는 새로운 골칫거리가 등장했다. 바로 인플레이션이었다. 인플레이션은 금리 생활자의 소득을 갉아먹었다. <베자>도 인플레이션 공포에 휩싸였다. 눈을 휘둥그레 치켜뜬 흡혈귀(1993년 5월 9일), 입을 쩍 벌린 무시무시한 악어의 전면 사진(1994년 3월 9일), 날카로운 발톱으로 금세 표지를 찢고 튀어나올 것만 같은 용(2002년 12월 4일)에 이르기까지, <베자>는 다양한 이미지로 인플레이션의 공포를 시각화하며 관련 기사를 줄줄이 쏟아냈다.

<베자>는 '토지 없는 농업노동자운동'(MST)이나 노동조합 등이 벌이는 시위 사태에도 바짝 긴장했다. 1995년 5월 31일자 잡지에서 <베자>는 군모를 쓴 페르난두 엔히크 카르도주 대통령의 합성사진을 표지 사진으로 내걸었다. 그리고 카르도주 대통령이 군을 투입해 파업 사태를 강경 진압하며 브라질 최대 노조연맹의 기선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며 한껏 추어올렸다.

<베자>는 남미 전역에 진보주의 지도자들이 집권하는 것에도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며, 열성적으로 '포퓰리즘 독재'를 비판하는 데 앞장섰다. 2006년 5월 10일자 표지에서는 '아얏!'이라는 제목 밑에 엉덩이를 발로 걷어차이는 룰라의 뒷모습을 실었다. 그러면서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브라질 기업이 개발 중이던 가스·유전 지대를 국영화한 사건에 대해 브라질 대통령이 이른바 순진무구한 태도로 대응하고 있다며 한껏 비아냥댔다. <베자>의 입장에서 최우선 과제는 무엇보다 다국적기업의 이권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베자>는 2012년 7월 4일자 기사를 통해 파라과이에서 일어난 쿠데타 시도를 비판했다. 하지만 정작 페데리코 프랑코의 쿠데타 성공에 대해서는 아무런 비난도 하지 않았다. 프랑코가 쿠데타에 성공함에 따라 파라과이군을 이용해 프랑코를 축출하려던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2000년대 초까지 <베자>에 가장 큰 골칫거리는 노동자당(PT)이었다. 2002년 10월 23일, 룰라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대선이 실시되기 바로 전날 <베자>는 초강력 공세를 퍼부으며 룰라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가령 '노동자당의 급진주의자들이 원하는 것'이라는 표지 제목을 내걸고, 그 아래 머리가 셋 달린 사나운 개의 목줄을 쥐고 휘청거리는 룰라 노동자당 후보의 모습을 실었다. 개의 머리에는 레닌·카를 마르크스·레온 트로츠키, 이 세 사람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또한 룰라가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브라질 국민에게 보내는 편지'를 발표하자, 이번에는 노동자당의 소수 극단주의자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엄중하게 경고했다.

탐사보도 미명의 좌파 정치인 때려잡기

<베자>는 부패 척결의 선봉장을 자처했다. 2012년 9월 5일자 사설에서 <베자>는 스스로를 '브라질의 윤리적 나침반'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실상 이 타이틀이 수행하는 역할이란 그저 탈정치화 작업에 지나지 않았다. "<베자>는 모든 정치 뉴스의 포커스를 부정부패에만 맞춘 채, 정치판을 수사판으로 변질시키고, 자신들의 수사 행각이 얼마나 고도로 정치적 행위인지 은폐하고 있다"고 호베르투 에프렘 필류 기자는 지적했다.(3) <베자>는 부패 척결 투쟁의 첨병 노릇을 하며 지 멜루 대통령을 퇴임의 위기로 몰아넣기 전까지 지 멜루를 열렬히 지지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자 금세 그에게 덧씌울 '부패 대통령의 몰락'이라는 새로운 역할과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2005년 이른바 '멘살라웅 스캔들'(노동자당이 의회 법안 통과를 위해 야당 의원들을 돈으로 매수한 사건)(4)이 터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베자>는 이 스캔들을 본인들이 폭로한 것처럼 주장하지만, 정작 이 대형 비리 사건을 처음 터트린 것은 일간 <폴랴 지 상파울루>의 보도 기사였다.

심지어 <베자>는 부정부패 사건에 직접 연루되기까지 했다. <베자>의 정치부 기자 폴리카르포 주니어가 착복 혐의로 기소된 카를리뉴스 카쇼에이라와 모종의 유착관계를 맺고 있음이 폭로된 것이다. 이 사건은 '카쇼에이라 CPI'라 불리는 의원조사위원회(CPI)를 출범시킬 정도로 대대적인 주목을 받았다. 브라질 정치권력의 중심부 브라질리아를 담당하던 정치부 기자이자, 2012년 1월 <베자> 편집장에 임명된 주니어는 오로지 사업가 카쇼에이라의 이익에 봉사하기 위해 홍보성 보도 기사와 르포 기사를 써준 혐의로 결국 덜미가 잡혔다.

그동안 <베자>는 국민의 반부패 감정을 자극해왔다. 특히 인터넷을 주무기로 애용했다. 하지만 정작 그런 반감에 스스로 역풍을 맞는 신세가 되자, 이번에는 '소셜네트워크를 악용하는 게릴라 전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대문짝만하게 실었다(2012년 5월 16일자). 이 탐사 기사에서 <베자>는 노동자당이 로봇을 이용해 트위터상에 반(反)베자 메시지를 퍼뜨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경쟁지 <글로부>도 돈독한 우정을 자랑하듯 '언론 자유 수호'라는 미명 아래 <베자>를 옹호했다.

 

/ 카를라 루치아나 시우바 Carla Luciana Silva <베자, 없어서는 안 될 신자유주의 정당(1989~2002년)>(Veja: o indispensàvel partido neoliberal·Edunioeste·카스카베우·2009)을 저술했다.

번역 / 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각각 2012년 5월 23일, 2012년 9월 12일과 19일.
(2) <룰라>(크리스티앙 뒤티이외·플라마리옹 출판사·파리·2005)에서 인용.
(3) Roberto Efrem Filho, <A Revista VEJA e o meu pai>, Brasildefato, 상파울루, 2008년 6월 19일.
(4) 정치적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의원들에게 제공하는 돈으로, 룰라가 집권하기 전부터 성행한 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