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생라자르역의 ‘신경영’

2012-12-11     브누아 뒤퇴르트르

철도교통이 가져다주는 지속 가능한 발전과 생태학적 이점에 대한 믿음을 줄곧 표명하면서도 프랑스 고위 행정가들은 열차역도 열차도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다. 어쨌든 그들은 일상생활에서 맛볼 수 있는 간단하고 편리하며 실용적인 철도교통의 혜택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20년 동안, 그들은 비행기를 모델로 삼았다. 의무 예약 시스템(미국 항공사 아메리칸에어라인에서 사들인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 예약 시스템), 수요와 공급에 따라 달라지는 요금 시스템, 점점 더 비좁아지는 객실과 좌석, 의무적으로 짐에 꼬리표를 달아야 하는 시스템(게다가 유료 시스템) 등의 모방이 그것이다. 하지만 두드러진 철도 시스템의 변화 중 하나는 분명 허허벌판에 새로 지은 역(驛)일 것이다. 유리와 콘크리트로 지은 역들은 지역 의원들의 자랑거리다.

과거에 역들은 환승선과 대중교통과 더불어 여러 도심을 이어주는 기능을 했다. 그런데 이런 역들이 이제 공항과 마찬가지로 도심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엑스 테제베 역처럼 상당수의 역은 심지어 철도 지선(支線·프랑스 국유철도회사(SNCF)의 관심 밖인)과 연결돼 있지도 않다. 그 대신 이 역들은 거대한 주차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역에 가거나 역에서 출발하려면 교통체증을 겪어야 하고, 그 결과 환경오염도 심화되고 있다. 이처럼 철도교통은 도로교통의 활성화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방정식을 우리 위정자들이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철도역의 재활용 장삿속

이윤을 따져보면, 도심에 위치한 역들의 주요 골칫거리는 분명 그 부지(敷地)에서 비롯된다. 실제 역 주위의 부지는 부동산 시장에서 터무니없이 비싸다. 프랑스 국유철도회사와 프랑스 철도시설공단(RFF)은 조차장(操車場), 정비공장, 차고가 있던 수천ha의 땅- 파리의 리옹역이나 생라자르역 근처에서 여전히 볼 수 있는 땅- 을 부동산 시장에 내놓음으로써 이런 문제를 일부 해결하고 있다. 도시 계획가들과 건축 사업가들에게 금광과도 같은 이 땅 덕분에 새로운 오스테를리츠 구역이 조성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기존 역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시골로 옮기기 힘들 경우 이 역들을 상업 중심지와 비즈니스 중심지로 바꾸는 새로운 대안이 고려됐다. 역 건물 전체를 완전히 개축하고, 사기업에 그 공사를 위탁함으로써 프랑스 역 이용자들의 1인당 사용료는 1.60유로에서 3.20유로로 올라갈 것으로 예상됐다. '공생'과 '미학'이라는 구실을 내세운 역 개축 작업은 영국 런던의 세인트 판크라스 역에서 볼 수 있는 자유로운 영국식 '모델'에서 영감을 받고 있다. 수많은 매장들의 입주를 통해 역사(驛舍)의 낡은 철제 건물을 역 이용자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공항의 대합실 같은 모습으로 탈바꿈시킬 예정이었다. 2012년 개축이 완공돼 80개 매장과 1만m²에 이르는 상권이 생기며 개장한 생라자르역이 대표적인 사례다.

물탱크와 임시 방벽들 뒤에 감추어진 역 개축 공사장은 이용자들의 불신을 불러일으켰을지 모른다. 하지만 임시적으로 몇 년간 보수공사를 하고 건물을 내버려둔 상태였기 때문에 확 달라졌다는 인상이 피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러니까 역 이용자들 모두 공사 작업장의 커튼이 걷히길 기다리며 천진난만한 관객처럼 새로운 생라자르역의 모습을 보길 고대했던 것이다. 개축 공사 때문에 각종 서비스가 중단되고 카페와 신문 가판점이 폐쇄되는 등 불편함을 겪으면서도, 그들은 결국 프랑스 국유철도회사가 단순한 리모델링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공사를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떤 모습을 한 신전(神殿)이 산업혁명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철제 건물의 뒤를 잇게 될 것인가? 과연 어떤 장식이 클로드 모네의 그림에 의해 우리 기억에 새겨진, 기관차들에 달린 장식을 대체하게 될 것인가? 여러 세대에 걸쳐 파리 교외 거주민들이 기차를 타러 가고, 계산대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역사의 안내방송을 들으며 신문을 읽었던 대합실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게 될 것인가?

"행인들의 지갑을 노려라"

2012년 3월 21일, 드디어 공사장 커튼이 걷혔다. 우리 눈은 개축된 건물의 모습에 반짝였다. 역 개장 뒤 언론은 일제히 개축된 역 건물에 찬사를 보냈고, 건물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프랑스나 다른 나라에서 그러하듯, 이곳도 여러 대의 에스컬레이터와 투명유리 장식, 유명 브랜드 간판이 달린 상점들이 들어선 대형 쇼핑센터의 진부한 모습을 완벽히 보여주었다. 솔라리스, 에스프리, 스타벅스 커피, 스와치, 그리고 이와 유사한 브랜드 상점들이 이제 역 건물 전체뿐만 아니라 지하철 복도부터 기차 승강장까지 모두 차지하고 있다. 세계 유명 브랜드 상점의 간판에 약자로 쓰인 회사 이름은 우리의 눈을 단조로운 회사 로고 모양으로 돌리게 만든다. 상점들이 늘어선 복도를 지나지 않고서는 르아브르 광장으로 갈 수 없도록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돼 있다. 빨리 나갈 수 있게 만들어놓았던 예전 출구는 폐쇄됐다. 가장 놀라운 점은 개축된 역사에 우파든 좌파든 모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는 점이다. 두 파 모두 파리 교외 주민들의 '열차 대기 시간'을 '쇼핑 시간'으로 바꾸도록 유도하며, 역을 대형 쇼핑센터로 탈바꿈시킨 이번 역 개축 작업을 대단한 진전이라도 이루어낸 것처럼 떠들어댔다. 하지만 나는 조금은 지나칠 정도로 과거의 역 모습에 집착하며 내가 들르곤 했던 역내 카운터 카페를 찾아다녔다. 사람들이 짐을 내려놓고 카페 점원의 주문을 기다리며 잠시 앉아 쉴 수 있었던 테라스도 찾아다녔다. 그날그날의 소식을 빠르게 접할 수 있었던 소박한 신문 가판점들도 찾아다녔다. 하지만 모두 소용없는 일이었다.

옛 상점들 중 그 어떤 것도 휘황찬란하게 새로 개축된 역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쇼핑을 방해한다는 이유에서였을까. 역에 매달린 대형 시계조차 없어진 걸 보니 이제 과거와 확실히 단절된 느낌이었다. 그 대신 이제 단순히 기차를 타는 공간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사는 공간이 된 이 역의 여기저기에 현대식 조형물이 장식돼 있다! 형형색색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공 모양의 주머니 조형물처럼 말이다. 이 조형물들은 대형 쇼핑센터에도 '문화'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음을 환기시켜주는 듯하다. 예전의 역내 카운터 카페는 방랑자 그 누구도 감히 발을 들여놓지 못할 레스토랑으로 바뀌었다. 예전 식당 자리에는 스타벅스 커피 체인점이 들어서 이제 더 이상 종업원이 테라스에서 주문을 받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허기진 여행자들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가게 안에 끝없이 늘어선 줄에 서서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손에 짐가방을 든 채 직접 음식과 음료수를 운반하고, 유일한 종업원인 계산원에게 돈을 내야 한다.

빨리 먹고 싶은 사람들은 플랫폼 가까이에 있는 작은 계산대 주위에 모여 먹을 수 있다. 그곳 역시 줄을 서야 하며, 천천히 앉아 먹고 마실 수 있는 공간은 찾아볼 수 없다. '팽 아 라 리뉴' 같은 몇몇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에서만 햄과 버터를 넣은 샌드위치를 팔며 옛 프랑스식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곳도 옛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이와 같은 간이식당에서는 포도주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 대신 맥주·콜라·레드불 같은 음료, 쿠키나 머핀 등의 후식이 풍부하게 준비돼 있다. 모든 면에서 우리를 미국식 기준에 가까워지도록 구상된 것 같은 장소에서 그 모습은 매우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매표소로 눈을 돌려보자. 역 직원이 앉아 있는 매표소는 여기저기 놓인 자동매표기 때문에 사라져버렸다. 또한 넘어가서는 안 되는 선에서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야만 한다. 수효가 줄어든 신문 가판점은 '릴레이'(Relay)로 바뀌었다. 그래도 우리는 인기 소식지와 잡지, 과자 등을 파는 사치스러워진 '서점'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때울 수는 있다. 계산대 앞에 늘어선 긴 줄에 서서 기다릴 마음만 있다면 말이다. 또한 저녁 늦게까지 문을 여는 1층에 위치한 '데일리 모놉'(Daily Monop)에 들러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간단히 장을 볼 수도 있다.

사라지는 '대합실'의 추억

물론 새로운 생라자르역의 모든 것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후죽순 생긴 상점들로 인해 역내 모든 곳이 돈을 써야만 하고, 감시되고 있으며, 이윤만 추구하는 장소로 바뀌어버렸다. 옛 파리의 모습은 오직 유리창을 끼운 장식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이 장식은 파리 서쪽 구역의 모습을 대변해주며, 건축가들이 신경 써서 리모델링한 것이다. 마치 현대식 아파트에 있는 값비싼 가구들처럼 말이다.

파리 동역(東驛)과 생라자르역 다음으로 북역과 몽파르나스역의 개축 공사가 곧 시작될 것이다. 특히 몽파르나스역의 개축 공사에서는 1만8천m²에 이르는 면적이 대대적으로 리모델링될 것이다. 2015년에서 2019년까지 공사 때문에 역 이용에 불편함이 따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공사가 끝난 뒤 역 이용자들은 소비자의 신분으로 다시 태어나고, 그곳이 원래 역이었다는 것조차 거의 망각하게 될 것이다. 새롭게 태어난 생라자르역은 여러 신도시 지역들까지 연결돼 운행되고, 결국 이 지역들에도 부동산 시장의 폭발을 가져올 것이다. 어쨌든 생라자르역 건물의 때가 완전히 벗겨졌고, 거리도 깨끗이 정돈됐으며, 은행지점과 유명 브랜드의 옷가게들은 소규모 상점을 잠식해버렸다. 모든 것이 지나친 편의지상주의에 희생돼, 마치 도시와 역에는 장식이라는 죽은 껍데기만 남은 듯하다. 여러 가지가 공존하고, 사람들과의 만남에도 우연성이 존재하고, 불완전하며 일탈도 있는 도시 생활에 이제 거의 아무런 공간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이와 같은 미래의 역에서 우리는 더 이상 신문을 읽으며 기차를 기다리지 못할 것이다. 그 대신 열차를 기다리는 시간은 자기 자신과 기업에 득이 되는 시간으로 바뀌어, 결국 옛 역사의 '대합실'이라는 단어는 더는 우리 입에 회자되지 않을 것이다.

 

/ 브누아 뒤퇴르트르 Benoît Duteurtre 작가

번역 / 변광배 프랑스 인문학 연구모임 '시지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