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카라바조의 사실주의: 영화 <카라바조의 그림자>
<성모의 죽음>(1601-1606)과 그 뒷이야기
미켈레 플라치도 감독의 영화 <카라바조의 그림자>에서 묘사하는 카라바조의 성향과 화풍은 일종의 인간학적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이런 방식은 현대에 이르러 극찬의 대상이 되었다.
아마도 그건, 당시(16~17세기)의 근본주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한 예술가의 비-순응주의적 표현을 그만의 독창적인 한 단면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러움의 독특한 표현을 발견하고, 그의 모방적 묘사가 지닌 놀라운 생동감을 사실주의의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 보기에 그가 추구했던 그런 사실주의는 작품의 정신적, 본질적인 내용을 손상하는 원인이 된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단적인 예가 <성모의 죽음>이다.
이 종교화는 실제로 교회 당국에 의해 거부되었고, 이를 기점으로 카라바조는 저속함과 무능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화가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게다가 진정한 예술은 자연을 초월해야 하나 그는 그러지 못했으며, 숭고한 아름다움의 개념을 충분히 모방하지도 못했다는 비난이 함께 따라왔다. 이런 평가만 놓고 보면 카라바조는 그야말로 고전주의적인 훈련이 부족한 예술가로서 육체적 영역에 만연한 연약함과 추함에만 목맨 타락한 실패자이자 범죄자일 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카라바조가 살아있는 모델에게만 집착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사실주의는 고전주의적 미학에 의존하는 방식과 함께 나타났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인물을 모델로 쓰기 이전에 그는 고전 조각상의 몸짓을 자신의 그림 작업에 적용하기도 했다. 카라바조의 반골 기질 때문에 그의 작품이 지닌 고전적 미학의 토대가 간과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밀라노에서의 견습생 시절, 카라바조는 인물의 몸짓을 고전주의적으로 그리는 훈련을 고되게 받아왔다.
그 후 고대 조각상 또는 판화를 토대로 하여 신체 자세와 표정을 연구했던 이전 관행에서 벗어나 당시 화가들은 모델에게 고대 조각상의 자세를 취하게 하는 것을 더 선호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인간의 몸짓을 직접 묘사하려는 순수한 기능적인 태도에 더해 고전주의적 몸짓의 표현 패턴도 함께 포함시켜려 했던 의도가 강하게 전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카라바조는 이러한 변화에도 순응했다.
하지만 영화 <카라바조의 그림자>의 카라바조(리카르도 스카마르치오)는 인간의 몸이 가지고 있는 생생함, 즉 살아있건 죽어 있건 간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집착하는 성향을 내보인다. 카라바조가 이미 사망한, 그것도 임신한 채 죽은 정부(情婦)의 사체를 기어이 성모 마리아로 그려낸 목적에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천착하는, 이른바 사진적 사실주의에 집중하는 태도가 담겨 있다. 거기에 더해 영화는 실존하지 않는 성모라는 종교적 이미지보다 실존하는 인간의 고통에 더 집중하는 모습으로써 카라바조를 인간적인 인물로 표현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카라바조의 작품, <성모의 죽음>은 오로지 세속적인 인물의 추함과 종교적인 인물의 숭고함이 충돌했기 때문에 거부된 것만은 아니었다. 주된 이유는 종교적 이데올로기의 변화 때문이었다. 당시 교회 당국은 성모를 죽음의 이미지로 묘사하기보다는 죽음을 극복한 천상의 이미지로 표현하기를 원했다. 그런 변화 속에서 성모의 모습이 ‘죽은 후 부풀어 오른 평범한 여인의 사체와 닮았다는 이유’는 거부하기 좋은 명분이 되었다.
실제로 바울 5세 때부터 종교적 숭고함의 의도를 더욱 강조하려는 모종의 이데올로기적 전략이 등장하면서, 종교 이미지는 더이상 사실주의와 관련이 없게 되었고, 자연주의적 표현 역시 부적절한 것이라고 배척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당시 종교계가 보여준 고전주의적 미학의 원칙에 대한 무지함을 드러낸 결과일 뿐이다. 이것이 역사적 진실에 더 가깝다.
영화<카라바조의 그림자>는 이런 배경을 옅게 배치한 채 살인자 카라바조와 그가 천착한 인간의 생생한 몸을 포착한다. 영화는 이런 사실을 때로는 추격 스릴러로, 때로는 고어물로 변주하여 도발적으로 보여준다.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문학박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홍보이사,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