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와 유럽을 배제한 미·러 화해

트럼프와 푸틴이 새로 재편하는 국제질서

2025-04-01     엘렌 리샤르 | 언론인

러시아에 집착한 나머지, 구대륙 유럽의 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위한 미국과 러시아 정상 간 파격적인 협상을 예상하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반발 속에 유럽을 배제한 채 주요 양보안을 포함한 평화 협상을 시작하면서, 크렘린은 우크라이나 수렁에서 빠져나올 길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전략적 승리까지 거두게 되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열렸던 지정학적 시대가 마침내 닫히려 하고 있다.

 

72시간도 채 되지 않아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관계가 본질적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모든 정황상, 우크라이나는 전쟁에서 패배한 듯하다. 2025년 2월 12일, 미국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는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평화 협상의 시작을 알렸다. 시작부터 그는 모스크바의 두 가지 핵심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첫째,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지 않는 것. 둘째, ‘새로운 영토 현실’을 인정하는 것, 즉,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의 네 개 지역과 크림반도의 합병을 공식적으로 승인하는 것이었다.

다음 날, 블라디미르 푸틴과의 (길고도 긴) 전화 통화 끝에 트럼프는 러시아 지도자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회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자리에는 우크라이나도, 유럽 지도자들도 초대되지 않았다. 또한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서 조속히 선거를 치를 필요가 있다고도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2월 14일, 뮌헨 안보회의 연설에서 밴스 미국 부통령은 우크라이나 사안을 언급하는 대신, 유럽 지도자들이 자국민의 열망을 짓밟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유럽 각국이 소셜미디어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러시아의 개입을 이유로 루마니아 헌법재판소가 유럽 국가들의 지지 속에 자국 대통령 1차 선거를 취소한 점을 문제 삼았다(지난해 11월 루마니아 대통령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친러·극우 성향 정치인 컬린 제오르제스쿠는 오는 5월 4일 대선 재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됐다. 루마니아 헌법재판소는 그의 대선 후보 등록을 거부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은 정당하다고 만장일치로 결정했다—역주).(1)

지난 몇 주 동안 트럼프는 캐나다, 멕시코, 그리고 유럽연합(EU)에서 수입되는 제품에 대한 관세를 인상하며 무역 공세를 펼쳤고, 그린란드에 대한 병합을 주장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2) 그러나 이제 그의 목표는 단순히 동맹국에 더 많은 무기 구매를 강요하거나 무역 균형을 조정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트럼프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어떠한 안전 보장도 제공하지 않을 것이며, 휴전 합의가 이루어진다 해도 이를 감시하기 위해 파견될 유럽군에도 지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로 인해 NATO 회원국이 공격받을 경우, 미국이 이를 방어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불가피하게 제기되었다. 안보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이제 더 이상 동맹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종속 관계에 가까워지고 있다.

미국은 2022년 이후 우크라이나에 연평균 353억 달러를 ‘투자’해 왔다.(3) 이는 2023년 10월 7일 이전까지 워싱턴이 매년 이스라엘에 제공했던 30억~50억 달러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며, 2001년부터 2019년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쓰였던 연간 군사비 지출의 거의 절반에 해당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이러한 지출이 군사 점령과 직접적인 작전을 수행하는 데 쓰였다. 

이에 반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수준은 미국이 중동의 오랜 동맹국에 제공한 지원과 미국이 직접 개입한 지상전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의 전쟁이 아니라, 오직 그의 옛 라이벌, 조셉 바이든의 전쟁일 뿐이다.

 

존슨 영국 총리 개입으로 협상 기회 놓쳐

분명히, 서방의 강력한 지원이 키이우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고, 그 결과 협상을 거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2022년 봄, 아직 서방의 본격적인 군사 지원이 이루어지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군은 크렘린이 주도한 정권 교체 시도를 저지하는 데 성공했으며, 영토 손실 역시 최소화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전투가 시작된 지 4주가 지난 시점에서, 교전 당사자들은 합의에 근접해 있었다. 이스탄불에서 열린 협상에서 키이우는 중립적 지위를 수용하였으며, 다시 말해 NATO에 가입하지 않을 것과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을 것임을 확인했다. 이에 대한 대가로, 우크라이나는 2022년 2월 22일 이후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에서의 자발적인 철수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키이우는 서방의 안전 보장을 절실히 필요로 했다. 하지만 서방은 이를 거부했다. 당시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은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의 입장을 대변하며 서방의 결정을 전달했다. 그는 절대 푸틴의 서명 옆에 자신의 서명을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결국, 안전 보장 대신 무기 지원이 이루어지게 되었다.(4)

한때 이 전략이 성공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첫 반격이 끝난 후, 키이우는 2022년 11월 드니프로강 우안에 위치한 헤르손을 탈환했다. 이는 큰 환희를 불러일으켰다. ‘협상’이라는 단어는 금기시되었고, 우크라이나의 목표—1991년 국경을 무력으로 회복하는 것—에 동조하지 않는 것은 마치 악마와 손을 잡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로 간주했다.

서방의 주요 언론들은 2022년 10월 우크라이나가 발표한 대통령령을 지지했다. 이 대통령령은 푸틴과의 협상을 금지하며, 그를 전쟁 범죄자로 국제재판에 회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5)

 

실패한 도박: 우크라이나 전쟁과 서방의 전략

그러나 2023년 6월, 우크라이나의 두 번째 반격은 참패로 끝났다. 미국은 언론을 통해 불만을 표출했다. 미국 측에 따르면, 키이우는 전선 곳곳에서 소규모 전술적 공격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병력을 지나치게 아끼고 있으며, 러시아의 방어선을 뚫고 러시아와 크림반도를 잇는 육로를 차단하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크라이나군을 대규모로 투입해 지뢰밭을 돌파하는 전술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6)

워싱턴의 압박 속에서 키이우는 2024년 4월 징집 연령을 기존 27세에서 25세로 낮췄으나, 같은 해 12월 18세까지 내리는 것은 거부했다. 결국 서방의 강한 요구와 함께 추진된 이 전략은 비극적으로 실패했다. 수십만 명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지만, 이는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으며, 사회가 감내해야 했던 희생 역시 헛된 것이 되고 말았다.(7)

같은 기간 동안 러시아는 그와 정반대의 운명을 맞이했다. 러시아의 ‘특수 군사 작전’은 초반부터 실패로 돌아갔다. 러시아 정보당국은 우크라이나 내에서 자신들이 확보하고 있다고 믿었던 대중 및 엘리트층의 지지를 과대평가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수도 교외에서 교착 상태에 빠졌으며, 우크라이나 정부 장악에도 실패했다. 결국 크렘린은 군사 작전의 초점을 돈바스와 크림반도로 변경하게 됐다. 원래 이 전쟁은 신속한 원정 작전으로 기획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전쟁의 규모와 성격이 변했다. 2022년 9월 선포된 강제 동원령은 대규모 항의 시위와 탈출 러시를 초래했다.

 

전쟁의 역설 : 러시아의 전략적 실패 부담 줄어들어

자신이 일으킨 전쟁에 스스로 갇힌 러시아는 안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러시아의 ‘특수 군사 작전’은 한편으로는 우크라이나의 재무장을 막아 키이우가 친러 분리주의 지역을 무력으로 탈환하는 것을 방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NATO의 확장을 저지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된 지 불과 몇 달 만에 러시아는 정반대의 상황에 직면했다. 

우크라이나는 강한 애국심으로 결집했으며, 서방으로부터 끊임없는 무기 지원을 받고 있다. 또한, 러시아가 NATO의 확장을 막으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웨덴과 핀란드가 새롭게 가입하면서 NATO는 더욱 강력해졌다.

특히, 스웨덴과 핀란드는 북극 지역과 인접해 있어 전략적으로 모스크바에 중요한 지역이다. 유럽 각국은 NATO의 동부 전선에 배치된 병력을 증강했으며, 이전까지 상시 주둔군 배치를 반대했던 프랑스조차도 이에 동참했다. NATO의 신속대응군 병력은 기존보다 4배로 늘어났고, 폴란드에서는 미국의 새로운 미사일 방어 기지가 계속 건설되고 있으며, 주둔 중인 미군 병력도 1만 명으로 증가했다.

러시아의 안보 우려는 해소되기는커녕 더욱 심화했으며, 서방의 강력한 대응과 단결력을 예상하지 못한 것이 러시아의 전략적 실책이 되었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드니프로강을 방어선 삼아 방어를 강화하는 전략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2023년 5월, 바흐무트를 점령하는 등 일부 영토를 확보하는 과정에서도 러시아군은 막대한 희생을 치렀으며, 이미 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러시아 사회에 더욱 큰 부담을 안기게 되었다.

 

러시아 경제 제재의 역효과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여러 한계를 드러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 경제적 저항력은 예상 밖이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서방과의 금융 대결을 대비해 충분한 외환보유액을 축적해 두었고, 이를 통해 루블화를 효과적으로 방어하며 유럽과 미국이 자산을 동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금융 시스템을 지켜낼 수 있었다. 

한편, 서방이 부과한 에너지 제재는 오히려 유럽에 부메랑으로 작용했다. 가스 가격이 급등하면서 러시아는 유럽으로 수출하는 천연가스의 물량 감소를 가격 상승으로 보완할 수 있었으며, 그사이 석유와 가스 수출 시장을 아시아로 재편하는 데 집중했다.(8)

러시아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전략이 실패했음은 명백해졌다. 모스크바가 무기나 병력을 확보하기 위해 북한이나 이란과 같은 ‘불량국가’에 손을 내밀어야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러시아산 저가 에너지를 원했던 경제 파트너들은 줄어들지 않았다.

특히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가들은 미국이 러시아에 가한 금융 제재의 광범위한 영향력에 위협을 느끼며, 자국 간 협력을 심화하고 거래에서 달러 의존도를 줄이는 ‘탈(脫)달러화’ 전략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2024년, 브릭스는 새로운 다섯 개 회원국을 받아들이며 세력을 확장했으며, 특히 아랍에미리트(UAE)는 러시아산 석유의 우회 유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핵심 국가로 떠올랐다.

 

크게 동요하는 대서양 동맹

트럼프 미 대통령이 모스크바와 일대일 협상을 선택함으로써, 크렘린은 퇴로를 마련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를 새로운 우방으로 삼으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군축 협상 재개, G7 복귀 약속, 그리고 궁극적으로 대러 제재 해제 가능성까지—현재까지는 구두상으로만 제시된 이러한 양보는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설령 트럼프가 앞으로 몇 주 동안 이 입장을 다소 완화하더라도, 대서양 동맹(서방 국가 간 연대)이 이미 크게 흔들리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발언들은 1949년 이후 지속된 지정학적 질서를 끝맺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은 유럽의 절반을 영향권 아래 두기 위해 NATO를 창설했고, 나머지 절반은 소련 진영에 합류해 1955년 바르샤바 조약 기구를 형성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군비 경쟁으로 지친 소련을 이끌며 일방적인 양보를 마구잡이로 감행했다.

그는 독일의 통일과 NATO 가입을 허용했지만, 서방이 NATO를 동유럽으로 확장하지 않겠다는 공식적인 보장을 받지 못했다. 그 결과, 냉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NATO는 해체되지 않고 유지되었으며, 동유럽으로의 확장을 거듭하면서 유럽연합(EU)도 워싱턴과 강하게 연결된 상태로 남았다.

1989년과 1990년 사이에 새로운 대안적 안보 체제가 논의되었으나, 소련 붕괴 이후 이를 현실화하지 못했고, 결국 소련 해체 이후의 국제질서는 미국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NATO 확장을 둘러싼 외교적 합의 실패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현재 협상이 유럽을 배제한 채 미국과 러시아 간 타협으로 마무리된다면, 유럽은 또다시 자신들의 운명이 배후에서 결정되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리처드 닉슨식 ‘삼각 외교’의 부활?

뮌헨에서 제임스 데이비드 밴스 미국 부통령은 미국의 새로운 전략적 방향을 직접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푸틴에게 중국과의 동맹에서 ‘작은 형제’ 역할을 맡는 것은 이익이 되지 않는다.”(9) 이는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중국과 가까워짐으로써 주요 적(소련)을 고립시키려 했던 ‘삼각 외교’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일까?

만약 이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이라면, 러시아-중국 축을 깨뜨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베이징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달갑게만 여기지 않는 게 사실이고, 모스크바가 핵 위협을 남발하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중국은 여전히 러시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다. 중국은 러시아 군수산업 복합체에 필요한 기술을 은밀히 제공하는 한편, 모스크바와의 군사 협력을 계속 강화하고 있다. 이 관계는 중국이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불균형한 동맹이지만, 냉전 이후 미국이 주도한 국제질서에 대한 강한 불만이라는 공통된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굳건히 유지되고 있다.

 

유럽 내부의 분열 가능성 높아져 

유럽인들은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다. 이미 에너지 위기로 인해 악화한 상태에서, 워싱턴의 요구에 따라 저렴한 러시아산 가스를 포기한 것이 원인이 되었다. 이제 그들은 백악관이 선언한 무역 전쟁으로 인해 또다시 타격을 입을 처지에 놓였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에서 서방이 입은 패배의 후폭풍을 유럽이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와중에 러시아와의 대립은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키이우를 지원하기 위해 긴급하게 군비 지출을 증가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이는 곧 미국산 무기를 구매한다는 의미다. 워싱턴은 유럽에 NATO 방위비 분담을 요구해 왔지만, 이제 그 부담은 두 배로 늘어났다.

즉, 우크라이나 재건 비용을 부담하는 동시에(러시아는 이를 기꺼이 유럽연합에 떠넘기고 있음), 자국의 안보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모든 비용은 유럽 국가들의 예산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며, 결국 유럽 내부의 분열을 초래할 가능성까지 높아지고 있다.

 

 

글·엘렌 리샤르 Hélène Richard
언론인


(1) 브누아 브레빌, 「선거 청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5년 1월.
(2) 필리프 데캉, 「무리를 깨우다(Affoler la meut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5년 2월.
(3) 「우크라이나 지원 추적기」, 세계를 위한 킬 연구소(Kiel Institute for the World), 2024년.
(4) Samuel Charap & Sergueï Radchenko,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냈을 수도 있었던 협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4년 7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당시 보리스 존슨이 맡았던 역할을 반복하고 있다는 내용. cf. 숀 워커, 「젤렌스키, ‘보리스 존슨이 2022년 평화 협상을 중단시켰다’는 주장 부인」, <가디언>, 2023년 2월 12일, 런던.
(5) Cf. 예: 「우크라이나 지원을 통해 평화를 보장한다」, <르몽드>, 2023년 1월 10일.
(6) 알렉스 호튼 & 존 허드슨, 「미국 정보당국, ‘우크라이나가 주요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병력이 부족하다’고 평가」, <워싱턴 포스트>, 2023년 8월 17일.
(7) 「가까이 있지만 멀어진 나라, 둘로 나뉜 우크라이나 사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3년 11월.
(8) 「양날의 검이 된 제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2년 11월.
(9) Bojan Pancevski & Alexander Ward, 「밴스, 우크라이나 협상 압박을 위해 제재와 군사 행동을 활용하다」, <월스트리트 저널> 2025년 2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