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에 부딪힌 유로화 '우울한 10주년'

2009-03-02     로랑 자크 | 경제학자

개별국가 정책 옥죈 '안정성장협약', 굴레로 다가와
미 달러 대안 '예찬' 불구, 경제위기 대처에 무기력
회원국별 경제현실 격차…'단일통화 탈퇴' 유혹 고개

국제 경제를 황폐화시키는 금융위기가 유로화의 미래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가?  물론 유로화 옹호자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난 10년 동안 유로화는 강한 화폐, 최소한 안정적인 화폐를 유로지역에 제공함으로써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때마침 2009년 1월 1일, 슬로바키아가 유로에 편입된 16번째 국가가 되었다. 더군다나 1999년 유럽단일통화 출범 당시 가입을 거부하였던 덴마크, 영국, 스웨덴도 현재 입장을 재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덴마크의 크로나는 곧 유로에 편입될 것으로 보인다.
 
 막강 '유로 존'… 달러의 대안
 단일통화 옹호론자들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단호하고도 독립적인 지위를 지닌 유럽중앙은행이 통화량을 조절하여 인플레를 2% 대로 낮추면서 명목 이자율을 평균 2.5% 수준으로 유지함으로써 실질 이자율은 1960년대 이후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15개 가맹국의 화폐를 없애면서 환위험과1) 외환거래비용이 사라지게 되어 가맹국 전체 국민총생산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유로 존(Euro zone) 내에서의 교역과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렸다는 것이다.
 유로화 출범 10주년이 되는 오늘, 달러 대비 유로의 가치는 기록적으로 높아졌다. 영국 파운드화의 대조적인 폭락과 아이슬란드의 국가부도 사태와 비교해서 유로화 가맹국들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결국 유로 존은 막강한 달러 존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부상하였다는 것이다.
 '강한' 유로는 세계 각국 중앙은행 외환보유액의 4분의 1이상을 차지하는 준비통화일 뿐 아니라 국제적 결재 통화로서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유럽중앙은행 총재 쟝-클로드 트리셰는 "우리는 매일 더 나은 번영의 수준을 창조하는데 공헌하고 있으며, 유럽 통일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강조했다.2)
 
 유로의 태생적 한계와 문제점
 그러나 유로화에는 이러한 밝은 면과 동시에 어두운 면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유로 존에 속한 여러 나라들은 지난 10년 동안 '안정·성장협약'이 정한 국내총생산의 3% 기준을 초과하는 예산적자를 기록하고도 보잘 것 없는 성장률, 높은 실업률로 점철되는 힘든 시기를 경험하였다.3) 이는 유로 존 외곽에 존재하는 영국, 스웨덴, 덴마크와 같은 국가들이 제한된 재정적자, 심지어 재정흑자 기조를 유지하면서 상대적으로 낮은 실업률과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성적과 대조적이다.
 유로는 구조적인 유럽 경제의 침체를 획기적으로 치유하는 만병통치약으로 간주되지는 않았다곤 해도,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는데 큰 도움이 되질 못하였다. 유럽단일통화는 오히려 지난 10년간 겪었던 경제적 침체의 원인 중 일부가 아닐까?  또 사상 최악이라고 예견하는 현재의 금융위기를 유로는 과연 견뎌낼 수 있을까?
 1999년 유로화의 출범은 정치적 의지의 소산이었으며 최적통화지역(Optimal Currency Area) 개념에 기초한 것은 아니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일군의 국가 혹은 지역은 이들의 경제가 재화와 용역뿐 아니라 생산요소(자본과 노동)의 유동성과 관련하여 상호 긴밀히 연결되어 있을 때 최적통화지역을 구성할 수 있다. 미국은 최적통화지역의 가장 적합한 예가 된다. 그러면 유럽연합의 경우는 어떨까? 유럽연합 역내 교역량은 이 지역 전체 국내총생산의 약 15%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의 경우와 비교해 볼 때 매우 빈약한 수준이다. 유로 존 내의 자본의 이동은 증가하였지만 노동의 이동은 미국에 비해서 현저히 제한적이다. 심지어 국가 내의 노동 이동도 매우 적다.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를 도외시하면서도 마스트리흐트 조약에 의해 유럽중앙은행이 관리하는 단일통화정책이 수립되면서 회원국의 경제 관리에 있어서 세 가지 수단 중 두 개가 사라져버렸다.
 세 번째 수단인 재정정책은 회원국의 재량으로 남겨두었지만 안정·성장협약에 의해 제약을 받고 있다. 이 협약은 회원국의 재정적자 수준을 최대 국내총생산의 3%이내로 못 박고 있다. 게다가 정부 부채는 국내총생산의 60% 이내로 원칙을 정하고 있지만 실제 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서는 정부 부채가 각각 국내총생산의 104%와 95%에 달한다. 회원국 간의 이러한 차이로 인하여 각국의 경제정책에 있어서 독자적인 능력은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다. 특히 회원국 중 하나만이 특별한 경제위기를 당했을 때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개별 국가 '운신의 여지' 없애
 만약 유럽연합이 실제로 최적통화지역이었다면 위기에 처한 국가는 다음과 같은 3가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첫째, 유로 존 여타 회원국으로의 유휴 인력의 이동, 둘째, 임금과 물가의 유연한 조정, 셋째, 위기 당사국의 재정 균형을 위한 유럽집행위원회의 재정적 지원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 가지 조건 중 하나도 충족되지 않은 채 유럽단일통화가 출범하였다. 최적통화지역의 조건이 되는 인력의 자유로운 역내 이동을 위한 어떠한 구조 개혁도 이후 시도되지 않았다. 이러한 개혁은 회원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사실, 유럽연합 집행부의 한정된 재원(연합 전체 총생산의 1.27% 이하로 정해져 있으나 실제적으로는 1.23% 부근에 머물고 있다)으로는 위기를 맞은 회원국의 경제적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재정 이전을 감행할 수 없다.
 이는 미국의 상황과 매우 대조를 이룬다. 미국의 경우, 전체 공공지출의 60%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지며 노동 인력의 이동성과 임금의 유연성은 유럽보다 높다. 심지어 1991년에 동독의 마르크화를 서독의 마르크화와 통합한 통일독일도 마르크화를 위한 최적통화지역을 만드는데 실패하였다. 1991년 이후 2천억 유로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구 동독지역의 실업률은 2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각국 독자적 통화·재정정책 봉쇄
 유로는 출범 이후 10년 동안 소위 두 개의 '비대칭적' 쇼크, 즉 가맹국들마다 상이한 강도와 방식으로 가해진 쇼크에 대처해야 했다. 첫째 쇼크는 1999년에서 2002년 사이의 '비싼',  혹은 과대평가된 달러화의 쇼크였으며 둘째는 최근의 원유 가격의 급등(2005-2008)이었다. 첫 번째 경우, 달러 가치의 상승은 역내무역보다 대외무역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나라들에게 수입품 가격 상승으로 인한 심한 인플레를 겪게 만들었다. 1999년-2002년 기간 동안 역내무역에 치중하였던 독일의 인플레는 1.2%에 불과하였으나 아일랜드의 인플레는 4.1%에 달했다.
 마찬가지로 4배로 급등한 원유 가격은 회원국의 경제 성장과 인플레에 동일하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원자력 활용도가 높은 프랑스는 에너지 수급을 위한 비용 중에 석유의 비중이 35%에 그치고 있으나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55% 이상에 달한다.
 불행하게도 중앙집권적 통화정책과 지방분권적 재정정책의 배합은 가맹국간의 인플레의 차이로 나타났으며 이것은 유로화의 구매력과 경쟁력의 불균형으로 이어졌다. '국가' 통화시스템 하에서는 이러한 영향은 자국통화의 '경쟁적' 평가절상 혹은 평가절하를 통해서 쉽게 조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단일통화는 각국이 독자적으로 통화정책을 쓸 수 없게 만들어서 환율조정 수단을 마비시켰다.
 인플레 격차를 바로잡을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일부 가맹국에서는 유로화 구매력이 역내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상황이 발생했다. 예를 들면, 1999년 1월과 2008년 9월 사이, 이탈리아에서 유로화의 가치는, 인건비를 기준으로 볼 때,  독일의 경우보다 약 40% 고평가 되었다. 스페인과 그리스의 경우도 이탈리아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격차를 줄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업이다. 왜냐하면 이들 나라에서 고평가된 유로화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실질소득의 감소가 불가피하고 이는 엄청난 정치적 위험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오직 생산성의 향상만이 이 경향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독일과 네덜란드는 이 대목에서 성공한 케이스다. 이들 국가에서는 수많은 기업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동부 유럽으로 공장을 이전하거나 이전을 압박하는 방식을 선택하였다.

 '탈 유로'의 극단적 유혹도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는 가맹국간에 존재하는 선거 시기(대통령, 국회의원, 지자체)의 불일치다. 이는 각국의 경제 사이클의 불일치를 가중시킨다. 왜냐 하면 선거 직전에는 일반적으로 팽창 위주의 재정 정책이 실행되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깊이를 알 수 없는 위기의 수렁으로 빨려 들어가는 이 때, 10%에서 12%의 문턱을 급속히 넘을 수 있는 실업률의 급속한 증가를 막는 것이 무엇보다도 최우선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 스페인의 경우 최근 6개월 동안 실업률은 이미 13%선까지 치솟았다.
 실업과의 싸움은 필연적으로 막대한 재정적자를 초래할 것이고 이는 안정·성장협약을 무력화하면서 단일통화의 안정을 해칠 것이다.  이는 또한 유럽중앙은행의 독립도 해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인플레  격차에 의해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진 일부 가맹국의 경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재정지출 확대만으로는 위기를 넘기기 힘들 것이다. 이들 국가들은 영국 파운드화의 급격한 평가절하와 같은 최근의 예를 따를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10%를  상회하는 실업률을 기록한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과 같은 가맹국들은 고평가 된 '자신들의 유로화'로 인한 '약한 경쟁력' 상태를 언제까지나 무한정 그대로 두지는 않을 것이다. 
 자국통화를 복원하는 것이 엄청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일부 가맹국은 자국의 경쟁력을 되찾기 위해 유로화를 포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는 1944년과 1971년 사이의 브레튼우드 체제, 혹은 1979년과 1999년 사이의 유럽통화시스템4)으로의 복귀와는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다.
 단기적으로 볼 때, 이런 시나리오의 가능성은 낮다. 왜냐하면 유로 존을 떠나기 위해 평가 절하하여 복원시킨 새 자국통화를 가지고는 유로화로 결재해야 할 자국의 대외부채가 너무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그리스에서 목도되는 민중시위의 폭력 양상이 보여주듯이5) 실업률의 급속한 악화에 따른 광범위한 사회적 위기의 확산으로 인해 이러한 극단적 해결책에 대한 유혹이 날로 확산되고 있다.

 


 

1)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 단일통화 출범 이전에는 투자자들이 프랑스 프랑, 이탈리아 리라 혹은 영국 파운드화에 따로 투기하였다. 1992년 9월, 조지 소로스는 영국이 경제위기에 빠지는 순간 파운드화의 평가절하를 예견하고 엄청난 수익을 챙겼다.
2)쟝-클로드 트리셰, 2007년 7월 23일 < Die Zeit> 인터뷰 기사 참조.
3)안정·성장협약은 마스트리흐트 조약이 확정한 가맹국의 경제 운영 수렴기준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협약은 특히 가맹국의 재정적자의 축소를 유럽경제통화연합(유로 존) 가입을 위한 우선적 목표로 삼았다.
4)1979년에 설립된 유럽통화시스템은 유럽 회원국 통화의 환율변동폭을 안정화하는데 목표를 두었다. 각국의 통화는 유럽화폐단위(Ecu)에 고정적으로 묶이고 유럽화폐단위의 가치는 회원 각국의 화폐가치를 통합적으로 계산하여 정해졌다.
5)빌리아 카이마티, "그들은 은행에게는 돈을 주고 청년들에게는 총을 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