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화하는 유럽, 반사회적 폭탄의 길로 역주행(1)
대대적으로 재무장을 선포한 유럽의 딜레마
어제까지만 해도 유럽의 주요 정책 가운데 하나였던 기후 위기 대응이 갑자기 정치 담론에서 사라졌다. 유럽의 지도자들은 이제 다른 목표에 매달리고 있다. 러시아에 맞서고 도널드 트럼프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국방력 강화에 대규모 투자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경제가 둔화하는 상황에서, 과연 이 군사적 케인스주의의 대가는 누가 치르게 될까? 전쟁을 위한 유럽인가? 재무장의 먹구름이 드리운 유럽 안보의 현 실태를 2회에 걸쳐 조명한다.
순간 아찔했다. 유럽 각국 정상들과 EU 수뇌부에게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은 안전장치 없이 번지점프를 하는 것과도 같은 충격이었다. 지난 2월 9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 플랫폼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에 푸틴의 다음 발언을 아무런 설명 없이 공유했다. “곧 모두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주인 앞에 무릎 꿇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트럼프는 유럽이라는 낡은 대륙을 모욕하는 것을 즐길 뿐만 아니라, 그의 눈에 비친 유럽은 미국의 군사적 보호막에 대한 정당한 대가 지급을 거부하는 사치스럽고 낭비적인 존재이자 장사꾼 기질의 금욕주의자들이 뒤섞인 퇴폐적 공간에 불과하다.
트럼프의 재선, 유럽에는 안전장치 없는 번지점프
게다가, 미국의 우선주의와 고립주의적 기조로의 회귀는 러시아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방어 전쟁에서 EU의 전폭적인 지지를 신뢰할 수 있게 했던 유일한 지원 기반마저 무너뜨렸다. 미국의 재정적 군사적 지원이 없다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호전적 발언—“푸틴이 이 전쟁에서 패배해야 합니다”(2022년 9월)—은 사실상 의미 없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부채에 허덕이고, 내부적으로 분열되어 있으며, 경제적·군사적으로 휘청거리는 유럽연합이 어떻게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와 트럼프의 환심을 동시에 살 수 있을까? 답은 두 단어로 요약된다. 군사 케인스주의. 즉, 미국산 무기로 무기고를 채우기 위해 빚을 내고, 그 청구서는 긴축 정책을 통해 국민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트럼프가 외교적 체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전달한 푸틴의 예언이 아직 완전히 현실화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여러 정치 지도자들이 백악관의 새 주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지난 1월 7일, 트럼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이 국내총생산(GDP)의 2%가 아닌 5%를 국방비로 할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참회자들이 줄을 이었다. 리투아니아 외무장관은 “NATO 내 우리의 주요 전략적 동맹국이 보여준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압박”이라며 환영했고, 에스토니아 총리도 곧이어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의 목표는 5%가 되어야 한다”(1)라고 화답했다.
트럼프에 복종하는 유럽의 민낯
“나는 폴란드 외무장관이다. 유럽은 메시지를 잘 받았다.”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무장관은 2025년 2월 3일에 <뉴욕타임스>에 게재한 칼럼에서 미국 대통령의 환심을 사려 애썼다. “폴란드는 GDP의 약 5%를 국방에 쓰고 있으며, 이는 NATO 내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 우리는 2022년 이후 수백억 달러의 주문으로 미국 군수 산업의 가장 중요한 고객 중 하나가 되었다.”(2)
지난 11월, 트럼프의 재선 일주일 후, EU 집행위원장은 승자를 달래고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러시아로부터 많은 LNG를 공급받고 있는데, 왜 우리는 더 저렴하게 공급하는 미국산 LNG로 대체하지 않는가?” 군사 부문에 관해서는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을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2024년 6월에 이미 향후 10년 동안 유럽 방위에 5천억 유로를 투자하기로 한 그녀는 올해 2월 3일 “국방 투자를 위한 새로운 유연성, 더 많은 예산 여력을 만들겠다”라고 약속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지배층과 언론이 조성한 냉전 분위기는 가장 ‘알뜰한’ 국가들마저 이제는 지갑을 열어야 할 때가 왔다고 믿게 했다. 덴마크, 핀란드, 독일은 이제 국방력 강화를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다.(3)
이번 달 발표된 국방백서가 반러시아 매파인 안드리우스 쿠빌리우스 전 리투아니아 총리에게 맡겨진 것은 그들의 의욕을 한층 더 고취했다. 국방비 지출을 국가와 유럽의 최우선 과제로 삼는 이러한 방향 전환은 NATO 사무총장이자 전 네덜란드 총리인 마크 뤼터의 공포에 찬 호소에 의해서도 힘을 얻고 있다. “우리는 모두 함께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나아가야 한다. 만약 여러분이 군비 부문에 현재 GDP의 2%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는다면, 4~5년 내에는 러시아어를 배우거나 뉴질랜드로 이주해야 할 것이다.”
2017년 초, 트럼프가 파리 기후협약에서 미국을 탈퇴시켰을 때, 국제사회의 비난은 오히려 유럽이 환경 전환을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는 계기가 되었다. “지구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라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선언이 바로 그 시기에 나왔다. 그러나 8년이 지난 지금, 국방비 지출에 대한 열망이 지구 환경에 대한 걱정을 앞지르고 있다. 정치 지도자들과 국가의 위신은 이제 무기와 탄약 구매에 할당된 GDP 비율로 측정된다.
국방비 지출 확대는 유럽 사회의 군사화를 의미
이러한 전환을 동시에 반영하고 인정하는 사설에서, <르몽드>는 유럽 ‘베짱이들’의 눈을 뜨게 한 미국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했다. “도널드 트럼프에게 인정해야 할 공로가 있다. 첫 임기 동안 NATO 파트너들에 대한 그의 위협은 마침내 결실을 보았다. 오늘날 대서양동맹의 32개 회원국 중 23개국이 GDP의 최소 2%를 국방비에 쓰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제 5%라는 수치를 언급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국방비 지출을 늘려야 할 것이다… 가장 대담한 이들은 이것이 고통스러운 예산상의 희생을 수반할 것이라고 슬쩍 말한다… 이 모든 것이 너무 오래 걸린다… 이제 실천에 나서고 유권자들에게 꼭 필요한 설득 작업을 할 때이다.”
지난 40년간 주요 언론에서 ‘국민 계도’라는 단어가 등장할 때마다 항상 긴축을 예고했다. 1980년대 탈산업화의 ‘위기 만세!’(Vive la crise!, TV 다큐 프로그램으로 기존 산업의 쇠퇴가 불가피하고 이를 바람직한 변화라고 강조—역주), 1990년대 긴축 정책(‘유로화 계몽’), 2005년 신자유주의의 확산(유럽헌법조약 ‘찬성’ 계도) 등이 그 예다.
이제는 전쟁에 대한 국민 계도이다. 그 비용은 엄청날 것이다. 유럽연합이 GDP 대비 국방비를 2%에서 5%로 올린다면, GDP가 동일하다고 가정할 때 연간 5,160억 유로의 증가를 의미하며, 프랑스만 해도 850억 유로가 늘어날 것이다.
국방 예산은 1,400억 유로에 달하게 되는데(2024년 500억 유로 미만, 2017년 330억 유로 미만에 비해), 이는 교육, 고등교육, 연구 예산을 모두 합친 금액(2024년 약 1,000억 유로)보다 훨씬 많은 수준이다. 따라서 이는 단순한 규모의 변화가 아닌 질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곧 유럽 사회의 군사화다.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 수십만 명이 이미 사망하거나 부상 당한 전쟁이 어느 쪽도 의미 있는 성과 없이 끝나갈 수 있는 시점에, 유럽 대륙의 지도자들은 ‘평화의 배당금’(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거나 전쟁이 종식될 때, 군비 지출을 줄이고 이를 경제 발전이나 사회 복지 등에 재투자함으로써 얻는 경제적·사회적 혜택을 의미—역주)에 관한 담론을 포기하고 있다. 이 담론은 1991년 냉전 종식 이후 유럽의 정체성을 형성했다.
“상업의 자연스러운 효과는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주장한 계몽주의 철학자 몽테스키외의 발자취를 따라, 세계를 향해 열린 자유무역 지대로 자리 잡은 유럽은 상품과 서비스의 교역을 제국들의 호전적 공격성에 대한 최선의 방어책으로 여겼다. 많은 자유주의 이론가는 역사적 사실과 달리, 시장의 확장이 자연스럽게 국제 분쟁의 감소로 이어진다는 믿음을 대중에게 심어주려 했다.
글·프레데리크 르바롱 Frédéric Lebaron
파리 고등사범학교 사클레 캠퍼스 사회학 교수
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부편집장
(1) <파이낸셜 타임스>, 2025년 1월 27일.
(2) <뉴욕타임스>, 2025년 2월 3일.
(3) 자드 그랑댕 드 레프르비에, 「유럽인들, 국방을 위해 지출 금기 깰 준비」, <로피니옹>, 파리, 2025년 2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