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국경에는 무엇이 남았나?

2012-12-11     안세실 로베르

11월 16일, 세계 언론들이 모여든 부르키나파소의 수도 와가두구에서 빌랄 아그 아셰리프 반군 대변인은 “말리와 아자와드 해방운동군 사이의 문제 해결책을 찾기 위한 협상을 벌일 것”이라고 선언했다. 유엔은 군사적 개입까지 논의하고 있다. 사실상의 말리 영토 분할은 냉전 종식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온 아프리카 국경의 취약성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지난 10월 23일, 수단의 하르툼 근처에서 발생한 야르무크 군수공장 폭발사고로 수단과 인접 국가들, 그리고 국제기구들 사이에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폭발로 파괴된 건물들은 개인 무기를 생산하는 곳으로, 스위스의 무기 조사 회사인 '스몰 암스 서베이'(Small Arms Survey)에 따르면, 중국 등지에서 수입된 무기 집하장으로도 이용됐다고 한다.(1) 수단은 이스라엘 쪽에서 이 공장을 이란과 가자지구를 연결하는 요지로 간주하고 폭격했다고 유엔에 고발했지만 그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190만km²에 달하는 광대한 영토를 가진 수단은 현재 서부 다르푸르 지역의 반군과 대치 중이다.(2) 2011년 7월 이후, 수십 년간의 내전 끝에 수단 남부에 남수단공화국이라는 이름의 주권국가가 들어서면서 수단은 남쪽 영토 일부를 잃었다. 국경선 확정과 자원 분배에 관한 여러 협정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 평화 정착은 아직 갈 길이 멀다.(3)

특정 집단이 관리하는 사실상의 국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분쟁을 겪고 위협받는 국가는 수단만이 아니다. 외교상뿐만 아니라 언론의 관심이 사헬 지대(사하라사막 남쪽 가장자리에 있는 지역)의 분쟁에 집중되고 있지만 자치운동, 무장봉기, 치안 유지 무능, 국가 간 무기 및 탄약 거래, 외부 개입과 간섭, 천연자원 개발 경쟁 등 사헬지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사실 아프리카 기타 지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쇠약해진 국가는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흔히 범죄적 방식으로 자치 통치되고 있는 '회색지대'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 그 결과 니제르와 나이지리아 사이의 30∼40km에 달하는 지대는 양국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다. 국경을 넘어 이주하는 사람, 여행객, 국경을 무시하는 상인의 수가 엄청난 만큼 식민지 시대에 그어진 국경은 이제 더 이상 현실성이 없다.

끝없는 사망자와 난민의 행렬, 권력 남용의 전형을 보여주는 콩고민주공화국은 이런 국경 파괴 현상의 상징이다. 소말리아 역시 국가 해체 현상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말리아 영토의 일부인 소말릴란드는 영국에서 교육받은 지역 엘리트 덕분에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반면,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 북부의 푼트란드는 해적 행위로 살아가는 특정 집단이 운영하는 사실상 하나의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서아프리카에서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평화를 유지하고 있지만 수많은 위기 요소와 불안이 잠재해 있다. 감비아와 기니비사우 접경 지역의 세네갈 지역 카자망스에는 자치주의자들이 자행하는 납치와 테러가 정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니제르 삼각주 지역에서는 무장반군이 기업들에 돈을 요구하고 나이지리아의 석유 시설을 파괴하는데, 이것이 카메룬·토고·베냉 등지에 영향을 미친다. 마노강연합(4) 국가들(코트디부아르·라이베리아·시에라리온)에는 최근 분쟁이 발생했다. 사하라·사헬 지대는 각종 범죄행위와 이슬람근본주의 운동, 말리 분할을 만들어내고 있는 투아레그족의 반환청구운동(5)이 벌어지는 장소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지배하는 아프리카 대륙 남쪽 지역만 이런 해체와 쇠락에서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63년 제정된 아프리카통일기구(OAU) 헌장에 명시된 국경 불가침 원칙은 이제 완전히 무색해 보인다. 1993년 5월 에리트레아가 에티오피아연방에서 분리독립하면서 이 원칙은 상처를 입었다. 최소한 에리트레아는 식민지 시대에 그려진 경계, 즉 과거 국제적으로 인정된 범위 내에 들어섰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남수단공화국의 분리독립을 준비해왔고, 또한 독립을 즉시 인정한 것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다. 물론 수단 남부 지대는 1956년 수단 독립 당시 연방국가 범위 내에서 자치를 약속받았지만 수단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무장반군이 출현하면서 두 번의 기나긴 내전(6)을 치렀다.

국경에 대한 압력이 커지면 사헬 지역이나 카자망스 지역의 독립주의자들에게 무어라 대답해야 할 것인가? 2012년 2월 17일 공식 성명을 통해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Cedeao) 회원국 정상들은 북쪽 영토 통제력을 상실한 말리의 주권에 깊은 애정을 표명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나이지리아·코트디부아르(7) 등)이 잠재적 또는 공개적으로 영토 내부의, 그들의 권위를 위협하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서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 중앙아프리카의 불안정성이 초국가적으로 확산되면서 진정한 '분쟁 시스템'이 자리를 잡았다. 정치학자인 미셸 룬툼부는 "갈등의 온상이 대체로 국경지대에 위치해 있고, 내부의 역동적 힘이 흔히 위기 확산 내지 증폭 요인이 된다"(8)고 설명한다. 중부유럽과 동유럽에도 이와 비슷한 현상(체코슬로바키아 분리독립, 유고슬라비아연방 해체)이 일어나긴 했지만, 아프리카에선 이런 현상이 아프리카 국가들의 발전 능력 부족으로 국가 자체가 약화, 다시 말해 와해되는 특수한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다. 독자적인 엘리트 집단들의 진보적 국가 프로젝트는 전제정치와 부패 아래서 산산조각 나고, 국제 금융기구들의 후견은 권력 당국의 유아화(幼兒化)를 부추긴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사회 불평등의 폭력은 정체성 담론을 격화시키고 있다. 정체성은 사회적 상승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도구로 간주된다. 각각 특수한 요구를 하고 있는 종교·문화·민족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은 젊은 성인은 소속감을 되찾고, 국가 전체의 요구를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요구 사항을 주장하고,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무장이라는 수단까지 동원하게 된다. 게다가 점점 더 많은 젊은이들이 보편적 이해관계를 망각하고 권력에 집착하는 그들 선배의 무관심을 비난한다. 세대 간 사회계약의 단절은 명백하고, 룬툼부에 따르면 이것이 민주주의 메커니즘이 아직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사회에서 '불관용의 문화'를 조장한다. 니제르 삼각주의 무장반군들은 풍부한 석유라는 하늘이 준 선물에서 자기 몫을 챙기는 데 급급한 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젊은이들의 전형적인 예이다. 이웃 나라 카메룬의 바카시반도의 자치주의는 그와 같은 자원 재분배를 담당할 능력이 없는 국가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맥락에서 벌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역적 원인에서 기인한 이런 분쟁은 흔히 외부의 사건으로 조장되거나 촉발된다. 2011년 봄 서방세계의 리비아 개입은 무아마르 카다피 대령의 무기고에서 나온 전쟁무기 확산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프랑스·영국의 낙하산식 인사를 확산시키기도 했다. 말리와 니제르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과 투아그레 반군이라는 뜨거운 숯불이 부패와 중재자들의 입김으로 달궈지는 동안 이 무기들은 이미 이슬람 성전이 확대된 지역으로 흘러 들어갔다. 다국적 대기업들이 광산자원을 탈취하기 위해 지역 분쟁을 도구화·조직화한다는 사실도 우리는 알고 있다.(9)

결국 아프리카 대륙은 잘못된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을 위협하는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무능하고 부당하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외부의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옵서버들은 인도주의 기구들의 개입이 가져오는 역효과를 우려하기도 한다. 카메룬의 정치학자 아실 음벰베는 "인도주의 기구들이 보호 지역을 사실상의 치외법권 지역"(10)으로 만들면서 국가주권 기준을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국가 간 영토분쟁을 넘어서 1990년부터는 분쟁의 영향이 국가 차원(라이베리아·시에라리온·코트디부아르·말리 등)을 초월해 정치·민족적 성격을 띤 내부 갈등이 증폭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냉전시대 양대 진영의 대치가 종식되면서 예전의 요구 사항들로부터는 자유롭게 되었지만 경제 및 금융 세계화로 지정학 지도가 일부분 다시 만들어졌다. 국가의 불안정은 무기와 마약 밀매, 인신매매 같은 국경을 넘어서는 범죄행위로 조장된다. 쿠데타에 익숙해진 기니비사우는 남미의 코카인과 아프가니스탄의 헤로인이 들어와 유럽과 미국으로 다시 배송되는 지점이 되었다. 또한 이 지역은 농업과 어업에 종사할 이주자들의 여정(부르키나파소·가나·베냉·기니 코나크리 등)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서아프리카와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20만 명의 아이들이 인신매매의 희생자가 되었다.(11)

정체성의 위기

국가가 합법적으로 폭력을 독점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다양한 그룹들은 상황에 따라 동맹을 맺기도 하고 불안정해진 국경을 무시해버리기도 한다. 말리 북부 지역에서는 마그레브 알카에다(AQMI), 안사르 딘(Ancar Dine), 서아프리카 지하드 통일운동(MUJAO), 그리고 오래전부터 그들 특유의 요구를 해온 투아그레족 등이 말리 행정 당국과 싸우기 위해 제휴를 맺곤 한다. 하지만 그들은 밀매업자와도 손잡고 자금과 서비스를 교환한다. 이런 동맹은 맺어지자마자 와해되기도 한다.

영토 한계선이 불분명해지면서 국경지대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이 '국경 국가'에서는 아래로부터의 조절, 다시 말해 당사자 스스로의 게임에 의한 조절이 이루어진다. 국가는 때로 국가 와해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제도 개혁을 시도한다. 말리의 지방자치 개혁이나 나이지리아의 연방체제화가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여전히 부담이 크다. 알파 우마르 코나레 전 말리 대통령은 이런 현상들이야말로 현 시기의 관건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그런 현상들 속에서 "평화, 다시 말해 민주주의, 즉 발전을 읽어낼 수 있다"며 "확실하지 않고 이의가 제기되는 국경, 이웃의 공포만을 나눠 가질 수 있는 국경과 함께하는 평화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12)이라고 설명한다.

코트디부아르의 역사학자 피에르 키프레는 아프리카가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으며 이 위기는 기나긴 역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평가한다. 1884∼85년 베를린 회담 때 식민지 열강들이 아프리카 사람들과 사회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아프리카 국경을 인위적으로 그어버린 것이 사실이지만, 키프레는 아프리카 사회 자체의 나태함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갈등은 아프리카 정치 공동체가 권력의 내재적 구성 요인과 사회관계 네트워크, 사회 공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13) 데서 비롯된 것이다. 반식민지 투쟁은 19세기 말에 완성된 분할을 그대로 인정한 채, 유럽인들이 그어놓은 국경으로 이루어진 국가 내에서 치러졌다. 또한 신생 독립국은 그들의 신생 권위를 확립하는 데 급급해 전쟁도 불사했고, 때로 무장투쟁을 거쳐 탄생한 일당 체제는 전제적 수단을 동원하며 '국가'를 발전시키려는 국민의 다양한 갈망을 승화시킨다고 주장했다.

'선' 아닌 '기본공동체'가 핵심이다

확고한 국경선은 아프리카의 전통과 거리가 멀다. 아프리카는 무엇보다 만남·공유·교환의 가치를 우위에 두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코나레 전 대통령은 '봉합점' 또는 '접합점' 같은 유동적인 국경을 언급한다. 어쨌든 아프리카에서는 친척 관계나 '농담 관계'(서로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족 관계)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아프리카는 1960년대에 독립을 획득했지만 국민은 80년 전 베를린 회담에서 만들어진 정치적 공간을 그들 안에 통합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반(反) 베를린 회담'을 생각해봐야 할까? 1994년 나이지리아 작가 월레 소잉카는 "우리는 직각자와 컴퍼스를 들고 자리에 앉아 아프리카 국가들의 국경을 다시 그려야 한다"(14)고 부르짖었다. 더 최근에는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이 2009년 콩고민주공화국을 방문하기 몇 주 전 콩고민주공화국에 대해 이런 제안을 한 바 있다. "지금 아니면 다른 어느 때에 단지 경제 정세에 관한 대화가 아닌 구조적 문제에 관한 대화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 세계의 한 부분을 이루는 이 지역에 사람들이 어느 식으로 공간과 자원을 공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지정학이 나름의 법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가 그 주소를 바꾸는 것은 드문 일이라는 사실을 수용하고,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이웃해 살아가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눠야 할 것이다."(15) 이 발언은 '옛날 방식'의 구획이 다시 진행될 것을 우려하는 대호수 지역에 불안감을 조장했다. 물론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스타일이 돌발적이기도 하지만, 이런 생각은 아프리카 정부의 많은 지식인들을 괴롭힌다. 케냐의 정치학자 알리 마즈루이는 "다가오는 세기에는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 지형이 바뀔 것"이라며 "에리트레아와 에티오피아의 분리독립의 경우처럼 민족자결주의로 더 작은 국가들이 창설되거나, 지역이 통합되면서 더 광대한 정치·경제 연합이 이뤄지는 두 가지 경우 중 하나가 일어날 것"(16)이라고 내다봤다.

시간거리경주 같은 경기에서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두 번째 입장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국경은 지켜지겠지만 지역 체제는 평화적 틀로 전환할 것이다. 아프리카통합기구(OAU)는 2002년 발전적으로 해체해 아프리카연합(AU)이 되었고, 상임집행기구와 평화안보위원회를 갖추고 있다. 아프리카연합은 제재 조치를 예고했고, 니제르·코트디부아르·말리가 기구 참여 유보, 무역 중단, 금융자산 동결 등의 제재를 받았다. 또한 아프리카연합은 마약과의 투쟁, 범죄 예방 플랜 등 여러 행동을 취했다.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Cedeao)는 마약·무기·인신매매 등 특정 분야에 대해 15개 회원국의 협력을 강화했다.(17)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허가가 있을 경우 말리 북부에서 진행될 군사작전은 이 지역기구가 지휘하게 된다.

경제학자 마마두 라민 디알로는 '반응 전략'을 벗어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하면서(18) 공공의 안전만을 생각하는 비전을 포기하라고 당부한다. 이런 비전은 목표의 일부분만 달성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사회 현실에 부응하는 권력의 정당성을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 속에 뿌리내리지 못할 경우 국가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코나레 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아프리카인들을 따라가야 하는 상황에서 그들 대신 행동하려는 것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게 돼 있는 개인 사냥터를 벗어나는 위험, 즉 더 이상 혼자 지켜나갈 수 없는 사냥을 하는 위험을 감수하도록 한다.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비난받을 만하고 비난받게 되고, 외국의 독점을 유리하게 만든다. 몇몇 아프리카 국가는 개발하기 좋고 산업화되기 좋을 것이며,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은 원자재를 공급하는 단순한 시장 역할만 하게 될 것이다." 지역 조정을 담당하는 심급을 강화하는 것이 아프리카 대륙의 의지를 확인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러려면 풍부한 문화자원과 사회적 실천 경험을 살려, 수많은 아프리카 완충지대에서 갈등 해결 능력을 입증해 보여주는 '기본 공동체'가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안세실 로베르 Anne-Cécile Ro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 / 김계영 파리4대학 불문학 박사. 저서와 역서로 <청소년을 위한 서양문화사>(2006), <키는 권력이다>(2008) 등이 있다.

(1) 스몰 암스 서베이, 2012년 10월 25일자 공식 발표.
(2) 이곳에서 잔혹한 탄압이 자행되자 국제형사재판소는 오마르 알바시르 대통령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3) Jean-Baptiste Gailopin, ‘두 수단의 쓰라린 결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6월호.
(4) ‘마노강연합’은 경제 교류 장려 목적으로 1973년 창설되었다.
(5) Jacque Delcroze, ‘가물거리는 말리의 민주주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9월호.
(6) 1955년부터 1972년까지, 그리고 1983년부터 2005년까지.
(7) Fanny Pigeaud, ‘코트디부아르의 카카오 전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9월호.
(8) Michel Luntumbue, ‘무장반군, 서아프리카 분쟁과 통치’, 평화안보정보연구팀(GRIP) 분석의견서, 브뤼셀, 2012년 1월 27일.
(9) Colette Braeckmann, <신(新)포식자: 중앙아프리카 열강들의 정책>, 파야르, 파리, 2003 참조.
(10) Achille Mbembe, ‘새로운 아프리카 지정학’, <아프리카 르네상스>, <마니에르 드부아르> 51호, 2000년 5∼6월호.
(11) ‘서아프리카의 아동 인신매매’, 유니세프 이노첸티 연구소, 유니세프 서아프리카 및 중앙아프리카 지역사무국, 2002년 4월.
(12) Alpha Oumar Kounaré, 개막 연설, <12∼20세기 아프리카 국경>, 유네스코, 파리, 2005.
(13) Pierre Kipré, ‘아프리카 국경과 지역 통합: 20세기 말 서아프리카 국가 정체성 위기에 관해’, <12∼20세기 아프리카 국경>, 앞의 자료.
(14) 월레 소잉카, ‘피로 얼룩진 아프리카 퀼트’, <가디언>, 런던, 1994년 5월 17일.
(15) 니콜라 사르코지, 외교사절단 신년 하례, 2009년 1월 16일.
(16) Ali Mazrui, 경계의 구속, ‘미래 설문조사: 이코노미스트 150년’, <이코노미스트> 특별호, 1993년 9월 11일.
(17)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 구조조정’, www.ecowas.int.
(18) Mamadou Lamine Diallo, ‘새로운 세계 지정학에서 아프리카’, 가브리엘 페리 재단, 팡탱, 2008년 1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