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평화를 헤치는 트럼프의 ‘무자격’ 측근들(1)

국경을 넘은 ‘미국 우선주의’의 민낯

2025-04-07     마르탱 바르네 | 사회학자

어떻게 하면 미국 정부 전체를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에 완벽히 맞춰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현재 트럼프의 스타일은 측근들이 경험이 미숙한데도 핵심 요직에 임명하고, 안보 문제에 중대한 비중을 두며, 각종 기관과 비공식 자문그룹들을 서로 경쟁시키는 방식이다. 독창적이고 파격적인 이 백악관 주인의 방식은 조만간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신뢰하기에는 꺼림칙한 트럼프 측근들의 면면을 2회에 걸쳐 분석한다. 

 

하이디

도널드 트럼프의 그린란드, 파나마, 캐나다에 대한 발언은 그의 ‘거래적’ 동맹관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동맹 관계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그의 전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허버트 레이먼드 맥매스터 장군은 지난 1월 8일, 미국 외교협회에서 이 점을 직설적으로 요약했다. 트럼프는 유럽연합을 “주로 경제적 경쟁자”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다.(1)

외교적 관례에 대한 고려는 이러한 구상에 방해가 되지 않았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아들인 도널드 주니어의 그린란드 방문이다. 그는 그곳에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문구가 적힌 모자를 쓴 엑스트라 배우들의 환영을 받았는데, 이들은 따뜻한 식사를 제공받기로 하고 동원된 것으로 보였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 이스라엘에 파견된 인물도 주목할 만하다. 바로 뉴욕의 부동산 재벌로, 외교 분야에서 아무런 경력도 없는 그의 오랜 측근 스티븐 위트코프였다. 그는 미국의 중동특사로 텔아비브와 하마스 간 휴전 감독을 맡았다.

초기 내각 인선 역시 같은 논리를 따랐다. 외교 경험은 전무하지만, 트럼프 자신처럼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들이 우선 기용되었으며, 국제 관계 관리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트럼프의 첫 번째 임기와 달리, 이번에는 상원의 인준 과정도 별다른 장애 없이 진행되었다. 상원의원들은 거의 만장일치로 각료 후보자들을 승인했다.

그린란드와 파나마와 관련해 평론가들이 주목한 부분은,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장벽 위협의 근거로 ‘국가안보’를 내세웠다는 점이다. 이는 국가안보라는 개념이, 국방보다는 대외 무역과 더 밀접한 상황에서 등장한 사례로,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2017년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그의 후임인 조 바이든 대통령 역시 미국 경제의 보호무역 전환을 정당화하는데 국가안보 개념을 활용했었다.

그 법적 근거는, 거의 활용된 적이 없는 과거 관세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현재 세계무역기구(WTO)의 전신—에 명시된 조항에 기반하고 있다. 해당 조항은 회원국이 “자국의 본질적 안보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모든 조처를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트럼프와 바이든 행정부 사이에서 드물게 이어지는 정책적 연속성인 이 조치는, WTO 분쟁 해결 기구를 마비시키는 조치와도 연결된다. 미국은 2019년 이후 해당 기구의 항소 기구에 신규 판사 임명을 지속적으로 막아왔다.

 

법적 위상이 모호한 국가안보회의 

미국 정치 담론의 핵심 축을 이루는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라는 표현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등장했지만, 실제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것은 베트남 전쟁 시기부터였다. 이 개념은, 부분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국내안보(homeland security)와는 구별되며, 미국이 세계 질서 속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얼마나 확장적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이 국가안보라는 개념 아래에서, 미국의 외교 정책과 국방 정책을 기획하는 주요 기구들이 체계화되었고, 그 중심에는 국가안보회의(NSC)가 자리 잡고 있다. 국가안보회의(NSC)는 냉전 초기, 미 중앙정보국(CIA)을 설립한 것과 같은 법령에 의해 창설되었으며, 대통령 직속 기구로 운영된다.

NSC는 법적 위상이 여전히 모호하다. 사실상 축소형 국무회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정권과 시기에 따라 회의 개최 빈도도 달라진다. 참석자는 대통령, 부통령, 일부 각료(내각 구성원), 합참의장, 국가정보국장 등으로 구성된다.

NSC의 실제 운영은 100명이 넘는 참모진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들은 지역 및 주제별로 나뉘어 각 부처 간 조율 업무를 담당한다. 이 조직의 수장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된 역할은 없지만, 대외정책과 관련해 대통령의 분신 같은 전략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리처드 닉슨 시절의 헨리 키신저, 지미 카터 시절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그리고 바이든 정부의 제이크 설리번이 대표적 사례다.

 

국가안보회의, 미국 외교정책의 블랙박스 

국가안보보좌관 인선은 해당 행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다. 트럼프 대통령 1기 때, 마이클 플린, H.R. 맥매스터, 존 볼턴, 로버트 오브라이언 등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줄줄이 교체된 것은, 실용주의와 강경 개입주의 사이에서, 대서양 동맹 기조와 아시아·태평양 중심 기조 사이에서 정책 방향이 흔들렸음을 보여준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을 맡았던 제이크 설리번을 트럼프 대통령이 마이클 월츠로 교체한 것은, 트럼프 특유의 고립주의적 수사와는 대조적으로 대외정책 기조가 한층 강경해질 것임을 시사한다. 플로리다 출신 하원의원인 월츠는 의회에서 인도 의원 친선 그룹을 이끌었으며, 트럼프 1기 때 NSC에서 아프리카를 담당했던 인물이다.

그는 이후 바이든 대통령의 2020년 대선 승리를 인정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안에도 찬성표를 던지는 등, MAGA 진영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독립적 공화당원’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부통령 제임스 데이비드 밴스와 국무장관 마코 루비오가 해당 안건에 반대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NSC는 미국 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기구로, 미국 외교정책의 실제 형성 과정에서 블랙박스와 같은 존재다. NSC의 위상은 역대 대통령들의 성향과 행정부와의 관계 설정 방식에 따라 시대별로 달라졌다. 1961년부터 1963년까지 재임한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 NSC는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인물들로 구성된 비공식 특별위원회들에 밀려 주변부로 밀려났다.

반면, 1969년부터 1974년까지 재임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에는, 헨리 키신저라는 전권 보좌관의 등장과 함께 NSC는 핵심 기구로 떠올랐다. 키신저는 백악관을 미국 외교정책의 중심으로 만들었고, NSC를 공식 외교라인과는 별도의 비공식 외교 기구로 변모시켰다. 특히, 미·중 관계 개선을 위한 비밀 협상 등, 가장 민감한 외교 현안을 직접 다루며 NSC의 역할을 대폭 확대했다.

 

워싱턴 권력 엘리트의 집결지, 딥스테이트의 상징

NSC의 역할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급격히 확대되며, 사실상 상시 전쟁 회의와 같은 성격을 띠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대통령 비서실과 외무부 사이의 갈등과 마찬가지로, NSC의 영향력 확장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국무부는 물론, 국방부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는데, 특히 버락 오바마 대통령(2009~2017년) 시절에는 NSC가 군사작전 관리에 지나치게 깊이 개입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NSC 참모진은 의회와 주요 연방기관(국무부, 국방부, 재무부) 출신들로 구성되며, 워싱턴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이는 자리로 알려져 있다.

조지 H.W. 부시 대통령 시절(2001~2009년) 50명 미만이던 인원이, 오바마와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400명까지 늘어났다. 이처럼 규모가 커진 NSC는 일부에서 상시 정부(permanent government) 또는 보이지 않는 정부(deep state)라고 부르는 존재의 상징이 되었다. 실제로 NSC의 구성원들은 행정부가 교체되더라도 상당수가 유임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NSC의 공식 예산은 그 영향력에 비하면 고작 1,500만 달러 수준으로, 규모가 매우 작다. 그럼에도 NSC는 로비스트들의 1순위 표적이 되고 있다. 특히 외국 정부 대표단들은 연방기관을 거치는 것보다 NSC를 통해 훨씬 더 직접적으로 의사결정 과정에 접근할 수 있어, NSC는 외교 로비의 핵심 창구로 자리 잡았다.

과거 미 대통령들은 종종 NSC에 대해 일정한 불신을 품어왔다. NSC가 정치적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실제 권력의 효율적 운영에서도 동떨어져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보 유출 문제도 끊임없이 논란이 되어왔다. 린든 존슨 대통령(1963~1969)은 NSC 회의를 철저히 기피했는데, 그는 NSC를 ‘물 새는 채망(passoire)’에 비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문제로 특히 큰 타격을 받았다.

2019년, NSC 소속의 우크라이나 출신 쌍둥이 형제가 트럼프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 통화 내용을 언론에 유출했다. 그 통화에서 트럼프는 당시 자신의 라이벌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인 헌터 바이든(조 바이든 대통령의 둘째 아들. 매우 모범적이고 성실했던 형과 달리 망나니다운 성품으로 유명—역주)에 대한 수사를 요청했는데, 이 사건은 결국 트럼프에 대한 첫 번째 탄핵 절차로 이어졌다. 탄핵 심리 과정에서는 NSC 전직 관계자들이 증인으로 나서, 트럼프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기도 했다.

 

 

글·마르탱 바르네 Martin Barnay
사회학자


(1) “H.R. 맥매스터와 함께하는 ‘저명한 목소리’ 시리즈”, 미국 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 2025년 1월 8일, www.cfr.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