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작가 그레이의 판타스틱 리얼리즘
문학 작품 하나에 서로 다른 세계와 장르를, 그것도 때론 완전히 상반되는 것들까지 담아내는 작가는 흔치 않다. 아일랜드의 제임스 조이스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런데 스코틀랜드 작가 알래스데어 그레이(1934~2019)는 바로 그 드문 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첫 장편소설 『라나크(Lanark)』는 1981년에 처음 출간됐는데, 그가 이 작품을 쓰는 데만 10년 넘게 걸렸다고 한다. 이 소설은 20세기 ‘앵글로색슨 문학’(Anglo-Saxon Literature. 5세기부터 11세기까지 영국에서 사용된 고대 영어로 쓰인 문학—역주)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히며, 프랑스에서는 출간 25년 만에 문고판으로 다시 나와 반가운 재회가 이루어졌다.
『시계태엽 오렌지(L’Orange mécanique)』로 유명한 작가 앤서니 버지스는 알래스데어 그레이를 두고 “월터 스콧(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소설가이자 시인—역주) 이후 최고의 스코틀랜드 작가”라고 극찬한 바 있다.
그레이는 주인공 라나크를 방황하는 인물이자 기억을 잃어버린 존재로 설정해, 심리적·지리적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게 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이상하고 매력적인 미로 속으로 빠져들고, 길을 잃었다가 다시 길을 찾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미로 속에서 라나크와 함께하는 인물들이 있다. 그의 뮤즈이자 연인이며 친구인 리마, 수상쩍은 술집에서 만난, 그만큼 수상한 친구 슬러든, 그리고 이 기괴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존재들. 이 도시는 마치 실제로 세워지기 전에 그려본, 조악한 스케치 같은 느낌을 준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결핍되어 있고, 권력은 제멋대로 휘둘러지며, 겉으로는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태다. 게다가 ‘드래곤병’이라는 정체불명의 병까지 창궐하는데, 이 병은 라나크와 그의 주변 인물들까지 집어삼킨다.
그렇다면, 결국 어떤 출구라도 찾아야 한다면, 자살은 어떤가? 실패한 것인지 성공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선택은 라나크를 인스티튜트(소설 속에서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기괴한 병원이자, 현대 사회의 소외와 통제를 상징하는 공간—역주)라는 기묘한 클리닉으로 이끈다. 그곳에서는 이런 예상치 못한 방송이 들려온다.
알래스데어 그레이, “월터 스콧 이후 최고의 스코틀랜드 작가”
“11번 방에서 오늘 오후 3시 15분쯤 살라만드라 한 마리가 폭발할 예정입니다.” 라나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의 세계를 버리고, 다른 세계로 넘어간다. 다행히 거기서 그는 자신의 여러 삶 속에서 마주하게 될 여성 중 한 명을 만나고, 자신의 진짜 과거를 들려줄 인물, 오라클이라는 이름의 인물도 만난다.
라나크의 ‘현실’ 속 이름은 던컨 소. 그는 2차 세계대전 직전 글래스고 출신의 미술학교 학생이자, 끊임없이 몽상하고, 숨 가쁘게 자위에 몰두하는 천식 환자이며, 자신의 재능을 철석같이 믿는 고집스러운 젊은 남자였다.
“누구도 살고 싶어 하지 않는 도시”라고 불리는 그곳, 계급 투쟁 위에 세워진 도시, 가난과 권태가 스며드는 도시가 바로 글래스고다. 하지만 글래스고는 그저 하나의 경유지였을 뿐이다. 오라클의 이야기가 끝난 뒤, 라나크는 여전히 인스티튜트에 남아 있다.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그는 ‘인터캘린드리컬 구역’이라는, 길을 잃기 쉬운 복잡한 길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길을 잃는 것이 오히려 기쁨이 된다. 마치 목적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결국 그가 도착하게 되는 곳은 언탱크(Unthank)라는 도시. 라나크는 이곳에서 양심이라고는 없는 경제·정치 권력으로부터 도시를 지켜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책 제목에 등장하는 ‘네 권의 책’은 시간 순서대로 배치되지 않고, 순서를 뒤섞은 채 구성되어 있다.
심지어 에필로그에서는 주인공과 작가가 직접 등장해, 유명한 작품들에서 차용한 요소들을 친절히 밝혀주기까지 한다. 이 과정에서 현실적 세계, 알레고리적 판타지, 미친 듯한 유머가 뒤섞이며 유쾌하게 난장판을 벌인다.
이 소설은 일종의 유희적이고 창의적인 판타스틱 리얼리즘 계보에 놓인다. 독자는 작품을 읽는 동안 묘한 희열을 느끼게 된다. 그 희열은 소설 표면 아래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며, 바로 그곳에서 세상의 다채로운 빛깔이 반짝인다.
글·아르노 드 몽주아 Anaud de Montjoye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