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와 특권에 맞선 세르비아 시민 봉기(1)

12년 집권 부치치 체제의 최대 위기

2025-04-07     아나 오타셰비치 | 기자, 영화감독, 베오그라드 거주

세르비아는 지난 4개월 동안 현대 역사상 최대 규모의 봉기를 겪고 있다. 부패에 반대하는 이 시위는 노비사드 역에서 발생한 역사(驛舍) 지붕 붕괴 사고로 15명이 사망한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사고의 원인을 파고들자, 가장 기본적인 안전조차 무시한 채 연줄과 특혜가 판치는 세르비아 체제의 병폐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이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네보이샤

2022년 3월 19일, 세르비아의 알렉산다르 부치치 대통령은 헝가리의 ‘절친’ 빅토르 오르반 총리를 노비사드로 초청해, 베오그라드와 부다페스트를 시속 200킬로미터로 연결할 예정인 고속철도의 첫 구간을 함께 개통했다. 이후 역사 개보수 공사가 진행됐고, 2024년 7월에는 고란 베시치 인프라부 장관이 역사(驛舍) 준공식을 열었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1일, 역사의 지붕이 갑자기 붕괴하며 15명이 목숨을 잃었다.

“추가 공사를 요청했지만, 공사 기간이 길어져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거부당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도저히 일할 수 없어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세르비아 업체 스타르팅에서 일했던 엔지니어 조란 자이치 씨가 털어놓은 이야기다. 그는 2023년 3월까지 이 회사에서 일하며, 중국 국영기업 차이나 레일웨이 인터내셔널의 주요 하청 공사를 감독했다.

1964년에 완공된 이 브루탈리즘(Brutalism, 노출 콘크리트를 핵심 요소로 하는 건축 양식—역주)양식 건축물을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구조물의 무게는 대폭 증가했다. “원래 설계에는 상부 구조를 가볍게 하는 작업이 포함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작업은 생략됐고, 오히려 스타르팅이 콘크리트와 유리를 추가해 구조물에 23톤의 무게를 더 실었습니다.”

자이치 씨는 중국 시공사에 채용된 후에도 이런 문제를 지속적으로 경고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고 당일 저녁, 세르비아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역사의 복원 공사가 문제의 지붕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베오그라드의 한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몇몇 시민들이 다가와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공사에 참여한 150여 명의 근로자 가운데, 유일하게 자이치 씨만이 공개적으로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저한테 전화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가족이 다칠까 두렵다고들 합니다. 저보고 아직 살아 있는 게 신기하다고도 하더군요.” 자이치 씨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중국이 제공한 대규모 차관, 부패로 이어져

철도 노선과 역사 재건 사업은 2016년 중국과 체결한 협정의 결과였다. 이 사업을 위해 세르비아 정부는 중국 수출입은행에서 12억 유로(약 1조 7천억 원) 이상의 대규모 차관을 들여왔다. 사업 조건에 따라 세르비아 하청 업체들은 전체 사업비의 46% 범위에서 공사와 장비 공급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타르팅은 아무런 입찰 절차도 없이 선정됐다.

문제는 이 회사가 해당 분야에서 아무런 경험도 없었다는 점이다. 사업 전반에 대한 관리·감독 업무는 약 3,300만 유로(약 480억 원)에 헝가리 컨소시엄 우티베르가 맡았으며, 이 컨소시엄에는 프랑스 기업 에지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시장 가격보다 50%에서, 많게는 200%까지 부풀려진 금액이었습니다. 그리고 중국 측은 여기에 12%의 추가 마진까지 붙여서 청구했어요. 건축 설계와 관련된 감리 책임자들은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습니다.” 자이치 씨의 증언이다.

결국, 역사 공사 감리를 맡았던 에지스 소속 엔지니어 2명과 그 외 9명이 체포됐다. 프랑스 본사의 대외협력 및 홍보 담당 이사인 이자벨 메이랑드 씨는 본지의 질의에 대해, “현재 직원 2명이 조사를 위해 구금된 상태이며, 구금 기간은 곧 4개월을 넘기게 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들에게 어떠한 혐의도 공식적으로 적용된 바는 없습니다”라고 짧게 입장을 밝혔다.

 

집권당 간부들, 침묵 시위하는 시민들을 폭행

사고 발생 5일 후, 고란 베시치 인프라부 장관은 책임을 지고 사임했고, 노비사드 거리에는 대규모 시위대가 쏟아져 나왔다. 이후 매주 금요일 오전 11시 52분, 사고 발생 시각에 맞춰 시민들은 각 도시의 교차로를 점거하는 시위를 이어갔다. 11월 22일, 베오그라드 드라마예술대학(FDU) 앞에서는 학생들과 교수들이 희생자들을 기리며 15분간 묵념을 진행했다.

그러나 이들은 곧 폭력적 공격을 당했다. “현장에 있던 경찰들은 몇 대의 차량을 그냥 통과시켰어요. 차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먼저 우리를 모욕하더니, 곧이어 폭행을 가했습니다. 현장에 있던 사복 경찰들은 그 장면을 가만히 서서 촬영만 하고 있었어요.” 드라마예술대학 교수인 밀란 스토야노비치가 전한 증언이다. 조사 결과, 가해자들 가운데는 집권당인 세르비아 진보당(SNS) 간부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15분 침묵시위 때마다 종종 사건이 터지곤 했어요. 사고 희생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강한 감정이 퍼지면서,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는 공포감이 사회 전체로 번졌죠. 그렇게 시위는 점점 더 커졌어요.” 드라마예술대학 학생 미나가 덧붙였다.

미나는 “처음부터 우리는 부치치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국가기관들이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요구는 몇 가지로 정리된다. 역 복원 공사와 관련된 모든 문서와 재정 보고서를 공개할 것, 시위대를 폭행한 가해자들을 형사 처벌할 것, 시위 과정에서 연행된 사람들에 대한 모든 혐의를 철회할 것, 그리고 등록금을 절반으로 인하할 것이다.

시위 현장에서 질서를 유지하던 여학생들 가운데 일부는 차량에 치여 머리에 중상을 입었으며, 노비사드에서는 SNS 당사에서 튀어나온 당원들이 한 여학생을 야구방망이로 집단 폭행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 사건 이후, 1월 28일 밀로시 부체비치 총리가 사임했다. 그러나 총리의 사임이라는 꼬리 자르기식 조치로는 분노한 민심을 잠재우지 못했다. 시위대는 이번 사건의 뿌리를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며 더욱 강하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부패로 쌓아 올린 인프라, 붕괴하는 미래

“인프라 공사와 투자 사업이 부패의 근원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공사 비용이 올라갈수록 우리나라 GDP도 함께 상승하는 구조입니다.” 

경제학자이자 여러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시민조사위원회 위원인 오그넨 라돈지치 교수의 말이다. 현재 진행 중인 베오그라드 지하철 사업을 비롯한 여러 프로젝트는 대부분 국가 간 협정과 특별법에 근거해 추진되고 있다. 이런 방식은 기존의 입찰 및 공공사업 관리 규정을 우회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1)

라돈지치 교수는 이러한 외자 유치 전략이 궁극적으로 국내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세르비아는 저렴한 노동력을 앞세워 기술 수준이 낮은 외국인 직접투자에 의존하는 구조로 가고 있으며, 그 결과 세르비아 경제는 비효율적이고, 심각한 불평등과 대규모 인구 유출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세르비아의 인구 잠재력을 고갈시키고, 부양률(Dependency Ratio. 경제활동이 가능한 인구(15~64세)와 경제적으로 부양을 필요로 하는 유소년 및 고령층 간의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역주) 상승과 고령화 가속화를 불러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부패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을 죽여”

세르비아와 중국 사이에는 민사 및 형사 사법 공조 협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곧 세르비아가 이곳에서 활동하는 중국 기업에 대한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도 없고, 해당 기업 관계자들을 피의자나 용의자 신분으로 조사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다는 뜻입니다.” 최근 부패수사부에서 배제된 보야나 사보비치 공화국 검사의 말이다.

보야나 검사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입찰 없이 기업을 선정하고, 그 과정에 대한 아무런 설명 의무도 없다면, 이는 최고 수준의 부패입니다. 부패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을 죽입니다. 그리스 열차 사고에서도, 보스니아 채석장 사고에서도 그 점은 똑같이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부패가 바로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2)

 

언론 탄압에서 부패 은폐까지, 극우 부치치의 12년

12년 전, 부치치 대통령은 공공자금 횡령과의 전쟁을 약속하며 권좌에 올랐다. 그러나 그가 통치하는 세르비아는 오늘날 부패 인식 지수와 조직범죄 지수에서 우크라이나와 비슷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3) 물론 이런 지표는 조심스럽게 해석할 필요가 있지만, “부패 척결 성과는 역대 최악 수준이고, 언론 자유 상황도 마찬가지”라고 최근 반부패부에서 배제된 보야나 사보비치 검사가 지적한 바가 있다.

극우 민족주의 진영 출신인 부치치 대통령은 1990년대(4) 후반 학생들과 시민들의 시위가 한창일 때 처음 정치에 발을 들였다. 1998년에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의 선택을 받아 정보부 장관으로 임명됐고, 언론 탄압을 주도하며 언론 폐쇄와 기자 기소를 쉽게 만드는 법을 제정하는 데 앞장섰다.

이번 시위가 시작되자마자, 집권 보수당인 SNS와 가까운 언론들은 학생들이 부치치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해 돈을 받고 시위하고 있다는 주장을 퍼뜨렸다. <세르비아 공영방송(RTS)>도 이 거짓 주장을 그대로 방송했으며, 이에 분노한 5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RTS> 건물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그 가운데는 공영방송 직원들도 포함돼 있었다. “제가 현장에서 보낸 보도는 방송되지 않았습니다. 기자이자 노비사드 출신 시민으로서 더는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 노비사드 지국장 밀란 스르디치의 분노에 찬 증언이다.

 

 

글·아나 오타셰비치 Ana Otašević
기자, 영화감독, 베오그라드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