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침 도는 인도의 제약시장

2012-12-11     클레아 샤크라베르티

11월 2일, 인도위원회는 스위스 제약회사 로슈의 특허권 중 하나를 거부했다. 혁신성이 떨어진다는 게 이유였다. 이 결정이 C형 간염 치료 비용을 절감할 것이다.

인도는 의약품 특허권 보호에 관한 유럽연합(EU)의 압력에 굴복할까? 4년이 넘게 진행되고 있는 브뤼셀과 뉴델리 간 자유무역협정 협상은 여전히 똑같은 문제에 막혀 제자리걸음이다. 협상이 여러 번 연기된 끝에, 지난해 말 EU위원회 집행위원장 조제 마누엘 바호주는 "세계 최대의 제약 협정이 결론 났다"고 발표했다.(1) 하지만 결론이 나려면 아직 멀었다.

2007년 3월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인도는 WTO의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 협정, 이른바 트립스(TRIPS)(2)를 따르고 있지만, 일반 의약품 생산에서 특허권 보호 규정을 지키지 않는다는 의심을 사며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인도 대륙은 무척 탐나는 거대 시장이다. 다국적 회계감사 기업인 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쿠퍼스(Price Waterhouse Coopers, PWC)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110달러에 달하던 인도의 제약산업은 2020년엔 3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3) 인도가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에이즈, 암, 결핵 등의 치료제를 개발도상국에 수출하는 선도국으로 자리매김하자, 돈벌이를 놓친 서양 제약회사들은 감정이 격앙되어 있다.

브뤼셀은 이들(서양 제약회사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지적재산권 존중이란 미명하에 유럽을 통과하는 인도산 일반 의약품의 압수가 증가했다. 이에 세계보건기구(WHO)는 "브뤼셀이 의약품 위조에 관한 법률을 남용하고 있다"며 규탄했다.(4)

2012년 2월 인도와 EU의 지도자들 간 뉴델리 정상회담 때, 인도산 일반 의약품에 대한 브뤼셀의 적개심은 또다시 보건 전문가들의 걱정을 키웠다. 빈민 구호단체인 비정부기구(NGO) 옥스팸(Oxfam)은 "강력한 제약산업의 영향하에 있는 EU가 인도 측이 줄곧 거부했던 특허권 보호조치를 강화하려 한다"며 개탄했다.(5)

전세계의 일반 의약품 중 5분의 1이 인도 제약회사들의 제품들이라, 유럽과 미국 제약사들은 자신들의 명성을 수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전략을 구사했다. 2006년 WHO의 주도로 출범한 국제의약품위조방지위원회(Impact)는 인도산 약품 성분 속에 존재하는 위조 요소들을 지적하며 인도산 의약품 품질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Impact의 이같은 주장은 논란을 빚었다. 2011년 5월 제64차 세계보건총회 때, Impact의 행동이 보건보다는 상업을 더 고려한 측면이 있다고 판단한 WHO의 일부 회원국들이 Impact를 비난하고 나서며 총회장에 잡음이 일었다. 또, 브뤼셀과 아프리카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라크 재단(Fondation Chirac, 국제사회의 분쟁을 방지하기 세운 재단)과 같은 일부 NGO 단체들도 Impact의 주장을 문제 삼았다.

인도산 의약품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PWC의 회계감사원 수자이 세티는 감사 보고서에서 "뭄바이의 한 고급스러운 병원 회계감사 때, 일부 냉동 의약품이 냉동 관리 부실로 인해 효과를 상실한 상태였다"고 증언했다.

현지 소형 약국의 약품들은 통상적으로 신뢰할 수가 없다. 뭄바이 부두 근처 빈민구역 안에 위치한 식료품 가게 겸 소형 약국인 키라나(Kirana)의 직원 유수프 세이크는, 가게 바닥에 알약 캡슐 판, 우유갑, 현지산이나 수입산 화장품의 포장용품을 쌓아둔 채 그 사이를 오가며 일하느라 분주하다. 그의 고객은 인근 주택단지에 거주하는 중산층들과 역 근처 빈민가에 거주하는 저들의 가사도우미들이다. 그는 고객의 모양새를 보고 상품과 가격을 정해 판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털어놨다. "난 돈이 있는 고객에겐 인도산이나 미국산 약품을 팔고, 극빈층에겐 저렴한 제품을 권한다. 약품 장사는 무척 남는 장사다. 우리는 30~50%의 마진을 남긴다. 가난한 사람에겐 인도 제약회사 시플라(Cipla)가 만든 파라세타몰(Paracetamol, 진통해열제)에 상응하는 파라시프(Paracip)를 판매한다. 이 약품의 용량은 때론 약갑에 쓰인 용량과 차이가 나기도 하고, 때론 제품 라벨이 가짜이거나 약 자체가 가짜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고객은 60루피짜리 약(인도나 미국산 약) 대신 시플라 제품인 줄 뻔히 알면서도 15루피짜리 약을 구입한다. 그렇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두통을 더 겪는다고 죽는 것은 아니잖은가!"

인도 의약품 시장을 노린 로비 극성

인도에서 판매되는 약품 중 얼마나 많은 약품들이 가짜인지 파악하긴 어렵다. 인도의 일반 의약품 제조업자들의 로비단체인 인도제약사연맹(IPA)의 대표 딜립 샤는 이렇게 말하며 조소했다. "WTO는 인도에서 판매되는 약품 중 25%가 가짜일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정말이라면 우리 제약사들은 연간 20%의 손실을 입었을 것이다. IPA는 가짜 약품 밀거래에 대한 자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사실, WTO는 성분 표시를 제대로 하지 않은 약품이나 가짜 약품 혹은 일반 약품 등 모든 (인도산) 약품을 가짜 취급한다. 하지만 이들 약품이 해롭거나 효과가 없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우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가짜 약품은 주로 처방전 없이 판매되는 약품, 즉 내수 시장에서 거래되는 약품들이었다."

현지 1만여 업체의 젖줄인 번창하는 이 지하경제 시장은 모든 이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키라나나 소형 슈퍼마켓에서 처방전 없이 판매하는 약품들은 인도와 외국계 주요 제약사들이 정복하고 싶어 하는 농촌과 준도시 고객층을 사로잡고 있다.(6) 인도 제약업계가 보다 나은 약품 규제를 요구하는 것도 꿍꿍이속이 있어서다. 세티는 "인도 일반 의약품 생산자들이 폭발하고 있는 중산층 시장을 놓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그는 제약 사업이 전망이 아주 좋다며 "3년 후면, 미국에서 특허권이 만료되는 약품 규모가 700억 달러에 달하는데 이 중 3분의 1을 인도가 챙길 수 있을 것"이라 했다.

하지만 이같은 규제의 필요성은 인도 정부의 기능장애와 충돌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청(FDA) 약품 검사 책임자인 샤는 "FDA의 일부 직원들이 부패해 약품검사가 완전히 엉망이다. FDA에 통보한 뒤 출동하면, 몇 달 전부터 우리가 뒤쫓던 약품 밀매업자들은 이미 창고에 보관했던 가짜 약품들을 싹 치우고 자취를 감춰버린 황당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약품 밀매업자들과 맞서는 가장 좋은 해결책은 어쩌면 이들의 활동 무대에서 이들과 싸워 이기는 것이다. 요컨대 약이 필요한 사람들한테 '좋은' 약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뭄바이에서 손꼽히는 대형 공립병원 중 하나인 J. J.병원 내의 작은 구내 약국에서는 에이즈 환자에게 항에이즈 치료제(HAART)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이 병원의 한 의사는 "우리가 돈이 없어 약국 공간을 더 늘릴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극빈층 환자들에게 수시간씩 줄을 서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한테 와서 약을 받아가라고 강조한다"고 했다.

인도 제약회사들은 강력한 다국적 제약회사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주는 유일한 보호막인 TRIPS의 제3부(TRIPS 협정은 총 7부, 73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제3부는 WTO 가맹국들이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위하여 마련해야 할 제도적 장치와 상호 협력에 대한 규정이다)의 개정안을 막는 데 주력하고 있다. WTO 내의 탐욕스러운 장삿속이 반영된 이 개정안은 특허 신청은 철저한 과학적 검증을 거친 신약만 할 수 있으며, 기존의 물질을 재사용하거나 개선해 만든 신약은 특허 신청을 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달리 말해 TRIPS의 제3부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미국과 유럽의 공룡 제약회사들이 이를 폐지하기 위해 강력한 로비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시플라의 약품 감독관리 국장이자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전문가 자딥 고그티는 이렇게 말하며 분개했다. "TRIPS의 제3부는 우리의 유일한 안전망인데, 폐기 처분될 위험에 처했다. 거대 제약회사들이 특허권 연장을 위해 온갖 꼼수를 쓰고 있다. 우리는 이를 불로장생 전략, 이른바 에버그리닝(Evergreening, 특허의 존속기간을 영구화하려는 전략)이라 부른다. 간혹 한 약품에 수백 개의 특허권이 걸려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HIV나 암 치료제와 관련된 약품이 그러한 경우라면 우리나라는 그 비싼 약값을 감당할 수 없다. 난 이것(에버그리닝)을 범죄라 생각한다!"

서양 제약회사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몇몇 후원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2010년 12월, 인도 경제일간지 <민트>(Mint)는 미국 제약회사 질리드 사이언시스가 게리 로크 미국 무역장관을 매수해, 그가 이 회사의 이익을 인도 무역장관에게 대변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요컨대 미국 무역장관이 인도가 TRIPS의 제3부를 내세워 질리드 사이언시스 측의 특허 신청을 거부했던 에이즈 치료제 비리드(Viread)를 인도 시장에 불법으로 진출시키기 위해 개입한 것이다. 사실, 신약처럼 소개된 비리드는 오래전부터 만성 B형간염 치료제로 유통되고 있는 테노포비어(Tenofovir)의 파생품이었다.(7)

독점 인정하자 값 50배 뛰어

서양 제약사들의 독점 열풍을 잠재우기 위해, 시플라의 사장 유수프 하미드는 서양 제약사들의 요청대로 특허 취득 원칙, 특허권 의무 취득을 옹호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현지 제약사들은 로열티를 지불하고 다국적기업의 분자들(molecules)을 사용해야 한다고 못박은 것이다. 이같은 조처는 인도 제약사들과 특히 시플라에 내수 시장 접근은 보장해주지만 약품 가격을 파괴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하미드는 다국적기업들이 지금부터 2015년까지 수천 가지의 신약들을 인도 시장에 풀 준비를 하고 있어 궁지에 몰린 인도산 약품들을 구하기 위해선, 그것(특허권 의무 취득)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했다.(8)

제약사들의 압박에 새로운 현상이 등장했다. 제약 부문에 해외 직접투자를 100% 허락하는 인도 법률이 생긴 것이다. 이 법률 덕분에 전략적 제휴와 현지 기업 인수가 증가하고 있다. 인도 제약인협회가 치료제 가격 인상과 인도 기업의 소외를 우려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브뤼셀과 뉴델리 간 협상 결과가 초초하게 기다려진다. 지난 2월 양국 간 정상회담 이후, 아무것도 진척된 게 없다. 지금 시점에선 EU가 자유무역협정 프로젝트에 명기한, 약품 성분에 대한 데이터 독점 조항을 삭제하기로 합의한 것이 그나마 긍정적이다. 필수 의약품에 대한 접근을 위해 인도에서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국경 없는 의사회'(MSF) 인도 담당자 리나 멘게니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데이터 독점 조항)은 한 약품과 관련된 모든 지적재산권 독점을 의미한다. 제품 디자인, 마케팅, 조제, 처방, 임상실험, 연구 및 개발 등등. 이와 같은 전형적인 예가 미국산 콜히친(colchicine)이다. 3천 년 전부터 통풍 치료제로 쓰이던 이 약은 19세기부터 약품 취급을 받고 있다. 그래서 이 약의 특허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FDA는 최근 데이터 독점 조항 삭제를 적용해, 콜히친을 생산하는 업체 중 한 곳의 마케팅 독점권을 인정했다. 이후 이 회사는 야금야금 콜히친 마케팅에 대한 독점 지위를 부여받았다. 이 여파로 약값은 0.09달러에서 4.85달러로 치솟아, 초기 가격보다 50배나 비싸졌다."

 

/ 클레아 샤크라베르티 Clea Chakraverty 인도 뭄바이 언론인.

번역 / 조은섭 chosub@ilemonde.com

(1) <인도-EU 간 자유무역협정>, 유럽위원회 공보, 2012년 2월 13일.
(2) www.wto.org 참고.
(3) <Global Pharma Looks to India>, PriceWaterhouse Coopers, London, 2010년 4월.
(4) ‘EU가 인도산 일반 의약품을 압수하는 것을 한탄하는 WHO’, <AFP 통신>, 2010년 5월 21일.
(5) ‘EU는 개발도상국의 ‘약국’을 폐쇄시키지 말아야 한다’, 옥스팸, 2012년 2월 9일.
(6) ‘Pfizer, Ranbaxy tie up with ITC to sell over-the-counter products in rural areas’, The Hindu Business Line, Chennai (Inde), 2011년 7월.
(7) ‘A powerful push for US firm’s patent’, <Mint>, New Delhi, 2010년 12월 7일.
(8) ‘All depends on what I can handle’, YK Hamied, <Business Today>, Noida (Inde), 2011년 8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