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이중언어정책의 빛과 그림자(1)

영어권 동화(同化)의 위기에 몰린 퀘벡 프랑스어

2025-04-08     필리프 데캉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최근 퇴임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1969년 아버지 피에르 트뤼도 총리가 통과시켰던 ‘공식 언어법’을, 2023년 야당의 지원을 받아 개정했다. 1969년 당시 피에르 트뤼도는 퀘벡 주민들의 독립 열망에 맞서, 이중언어를 더 널리 사용하는 국가를 만들겠다고 공약하며 대응했었다. 그러나 이후 명확한 영토적 구분 없이 개인의 언어적 권리만을 보장한 결과, 영어와 프랑스어 사이의 비대칭적 구조는 고착되었고, 프랑스어는 여전히 쇠퇴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캐나다 이중언어정책의 빛과 그림자를 2회에 걸쳐 게재한다.

 

 

“의회는 이제 ‘리셋’이 필요하고, 좀 진정해서 다시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지난 1월 6일, 캐나다 총리 쥐스탱 트뤼도는 오는 3월 사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연방 수도인 오타와의 총리 관저 앞에서, 그는 별다른 원고 없이 먼저 영어로 한 단락을 말한 뒤, 같은 내용을 프랑스어로 이어갔다. 그리고 기자들의 질문에도 먼저 프랑스어로 답한 후, 같은 내용을 영어로 반복하며, 4천만 인구의 이 나라에서 두 공식 언어 간의 형식적 균형을 철저히 지켰다.

그러나 그로부터 일주일 뒤, 보드뢰유-도리옹의 한 슈퍼마켓에서 한 영어권 고객이 보인 오만한 태도 하나만으로도 소셜미디어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언론은 또한, 사실상 순수 프랑스어권 도시인 레비를 방문한 메리 사이먼 캐나다 총독(영국 국왕 찰스 3세의 공식 대리인)이 프랑스어로 의사소통하지 못한 사건을 집중 보도하며 논란을 더욱 확산시켰다.

 

퀘벡의 언어 투쟁과 캐나다의 선택

지난 50년 동안 언어 정책 문제로 끊임없이 주목받은 캐나다는 방대한 법적 장치를 구축했다. 그러나 공식적인 이중언어 정책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역사적·정치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반드시 필요하다.

캐나다 정부의 정책은 대서양부터 태평양까지 흩어져 있는 소수 언어 집단을 지원하는 데 기여했지만, 퀘벡이 자체적으로 제정한 법을 통해서만이 몰리에르(17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시인. 몰리에르의 언어는 표준 프랑스어를 상징—역주)와 미셸 트랑블레(퀘벡을 대표하는 현대 극작가이자 소설가. 퀘벡 프랑스어 또는 퀘벡 구어체를 상징—역주)의 언어가 확고히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오늘날 북아메리카에서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 많지만, 프랑스어의 상대적 비중은 계속 줄어들고 있으며, 이는 캐나다 연방 정부와 퀘벡 주정부 모두에게 새로운 접근법을 고심하게 만들고 있다.

 

계속되는 영어권 동화의 위험 

2021년 마지막 인구조사에 따르면, 캐나다인 1,070만 명이 프랑스어로 대화할 수 있다고 답했지만, 실제로 집에서 주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700만 명에 불과했다. 이는 전체 인구의 19%로, 1971년의 25.7%에서 감소한 수치다.(1) 

20세기 후반까지는 증가세를 보였던 이중언어 구사율도 현재 정체 상태다. 2021년 기준, 캐나다인 가운데 프랑스어와 영어로 모두 대화할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18%였는데, 이는 1961년의 12.2%, 2001년의 17.7%에서 큰 변화가 없다. 이중언어 구사율은 퀘벡에서 주로 증가했으며, 특히 프랑스어를 모어(母語)로 쓰는 사람 중에서는 그 비율이 42%를 넘었다.

반면, 퀘벡 밖의 영어 모어 화자나 제3언어 모어 화자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어나 영어가 아닌 제3 언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사람 중에서는 프랑스어를 ‘첫 번째 공식 언어’로 사용하는 비율이 6.1%에 불과하다. 

결국, 프랑스어 사용자들만 주로 이중언어를 구사하게 되는 상황은 장기적으로 프랑스어 화자의 영어권 동화(同化, assimilation)로 이어질 위험을 내포한다. 이는 유럽연합 면적의 두 배가 넘는 광활한 캐나다 영토 위에서 공동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큰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캐나다는 지금,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채, 역사상 가장 큰 위기를 겪고 있다.” 이 말은 1965년, 퀘벡 주민들이 경제적·문화적 열등감을 벗어나기 시작하던 시기에, 앙드레 로랑도와 데이비슨 던턴이 공식 언어 및 이중문화 왕립조사위원회의 예비 보고서에서 남긴 문장이다.

1967년 10월에 제출된 이 최종 보고서는 두 공식 언어와 두 문화의 평등을 바탕으로 새로운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 캐나다 전역을 직접 조사한 위원회는, 인구 이동성 등을 이유로, 스위스나 벨기에처럼 이미 여러 나라에서 효과를 거둔 ‘언어의 영토화 원칙’(특정 지역에서는 그 지역의 공식 언어만을 사용하게 해, 해당 언어 공동체의 언어와 문화를 보호하려는 정책—역주)을 캐나다에서 적용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판단했다. 대신, 소수 언어 사용자가 전체 인구의 10%를 넘는 지역에서는, 행정·사법 서비스를 양 언어로 제공하는 이중언어 구역을 설치할 것을 권고했다.

 

이중문화주의에서 다문화주의로 전환한 피에르 트뤼도

1968년 총리직에 오른 자유당 소속 피에르 엘리오트 트뤼도는 이듬해인 1969년, 첫 ‘공식 언어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연방 기관 및 사법부의 이중언어 사용을 강화하고, 국민이 자신이 원하는 언어로 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보장했다. 로랑도-던턴 위원회의 권고를 반영해 연방 이중언어 구역을 지정하는 방안도 포함됐지만, 실제로 시행되지는 않았다.

퀘벡 민족주의자들에게 반감이 강했던 트뤼도는, ‘이중문화주의’ 개념을 폐기하고, 그 대신 ‘다문화주의’라는 개념을 채택했다. 이는 퀘벡만을 위한 특별 지위를 인정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으며, 당시 퀘벡에서는 1971년 기준 인구의 80%가 집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법적 기반은 1982년 제정된 캐나다 권리와 자유 헌장을 통해 더욱 강화되었으며, 특히 헌장 제23조는 소수 언어 교육권을 명시해 보장했다.

“공식 언어 지위 덕분에 5년 단위의 재정 지원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어권 및 아카디아 공동체 연맹(FCFA)의 사무총장 알랭 뒤푸이는 이렇게 말하며 자부심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우리는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느 소수자 집단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강한 시민 사회이며, 자체적으로 740개에 달하는 퀘벡 외 지역 프랑스어 학교들을 교육위원회가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어 학교의 이러한 부활은, 영어권 부모들이 ‘좋은 학급’을 찾아 몰려드는 프랑스어 몰입 교육 학교의 성공과 맞물려 있다. 2021년 기준, 약 70만 명의 영어 모어 화자 및 제3언어 모어 화자 자녀들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거나 참여한 경험이 있으며, 이로 인해 프랑스어 교사가 부족한 사태까지 벌어졌다. 

 

프랑스어, 생활 언어에서 사라지는 위기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인 이중언어 정책은 퀘벡을 제외한 지역에서 동화를 거의 막아내지 못했다. 일부 아카디아 지역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심지어 마니토바나 사스캐처원에서도 프랑스어 공동체의 전초기지들은 점차 쇠퇴하고 있습니다.” 

오타와 대학교 교수이자 ‘퀘벡, 캐나다 프랑코포니와 문화적 변화’ 연구 석좌를 맡고 있는 마르탱 뫼니에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아직 일부 기관들을 중심으로 작은 프랑스어 공동체들이 남아있긴 합니다만, 프랑스어는 점점 문화적 기반으로서의 역할을 잃어가고 있고, 그저 가끔 필요할 때 쓰는 실용적인 소통 도구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과거 영어의 헤게모니에 맞서 여러 차례 영웅적인 싸움을 벌였던 마니토바 주에서는 현재 11만 2,100명이 프랑스어로 대화할 수 있다고 응답했지만, 그중 집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가 프랑스어라고 응답한 사람은 1만 4,700명에 불과했다. 이는 1991년의 2만 3,500명에서 크게 줄어든 수치로, 프랑스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온타리오 주의 경우, 프랑스어로 대화가 가능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155만 8,000명(전체 인구의 11.1%)에 달하지만, 집에서 주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25만 4,000명(전체 인구의 1.8%)으로, 프랑스어 사용 능력과 실제 사용 사이에 엄청난 격차를 보였다.

 

이중언어 정책의 두 얼굴, 그 성과와 함정 

캐나다에서 비행기를 타보면, 공식 언어법이 제정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이중언어 정책이 여전히 원활히 운영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연방 차원이라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도 프랑스어 서비스 제공은 여전히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매년 공식언어위원회 커미셔너는 200개가 넘는 해당 기관들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캐나다 하원의 퀘벡 블록당(BQ) 소속 의원인 마리오 보류가 폭로한 사실이다. 1978년부터 2022년까지, 퀘벡 주에서 공식 언어 지원 명목으로 연방 정부가 집행한 예산 34억 캐나다달러 중, 무려 94%가 영어권 커뮤니티 발전에 쓰였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문제점을 부각시키며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교육과 각종 압력단체에 지원된 자금은, 프랑스어 보호 정책을 마치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심지어 외국인 혐오적 행위로 보이게 만드는 전략의 일부입니다. 여기에 더해 퀘벡 외 지역의 프랑스어 사용 공동체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결과, 이 전략은 퀘벡 내 영어권 주민들을 결집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고, 퀘벡 내 제3언어(이민자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역시 영어에 더 쉽게 동화되도록 유도했습니다.”

퀘벡의 많은 정치인들은 국가 차원의 이중언어 정책을 성과로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함정으로 인식했다. 1976년 집권한 퀘벡당(PQ)은 강력한 언어정책을 통해, 프랑스어를 퀘벡의 유일한 공식 언어로 확립하는 흐름을 더욱 강화했다. 이 정책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프랑스어 헌장, 이른바 101조 법(Loi 101. 1977년 퀘벡에서 제정된 언어법으로, 프랑스어를 퀘벡의 유일한 공용어로 지정—역주)이다.

 

 

글·필리프 데캉 Philippe Descamp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1)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모든 수치는 2021년 인구조사 자료이며, 캐나다 통계청(Statistique Canada)이 집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