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석유, 서방의 제재를 우회하는 방법은?(2)

러시아 국영선사의 생존 전략, 이름만 바꾸고 제재망 피해 

2025-04-10     샤를 페라쟁 & 기욤 르누아르 | 언론인

2025년 초,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 석유 수출에 대한 새로운 제재를 시행했으며, 이는 특히 러시아와 관련된 유조선들을 겨냥하고 있다. 2022년 서방이 모스크바에 대한 경제 봉쇄를 시행한 이후,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를 판매할 수 있도록 돕는 ‘음지의 기업가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이들은 기존 세계화의 이면에 자리한, 또 다른 불투명한 세계화의 윤곽을 그려내고 있다.

 

스테판

러시아는 구매자가 부족하지는 않았지만—대부분의 석유가 가격 상한선보다 높은 가격에 팔렸다—그 모든 석유를 수출할 수 있는 운송 능력은 갖추지 못했다. 

“2022년 당시, 러시아는 서방 해운사들에 의존했고, 대부분 유럽에서 운영되는 상호 보험 네트워크의 보장을 받는 유조선에 의존했습니다.” 하버드대에서 러시아 에너지 부문을 연구하는 전직 은행가 크레이그 케네디는 이렇게 설명한다.

러시아의 주요 석유 운송사인 소브콤플롯은 국제 기준을 충족하는 75척의 대형 유조선 선단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2022년 3월, 미국 재무부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그 결과, 달러 사용, 대출, 서방 은행 및 보험 이용은 물론, 세계 해상 무역의 핵심인 주요 항구와 운하 접근권까지 모두 차단되었다.

결국, 모스크바는 제재망을 피할 수 있는 병렬 선단, 즉 그림자 선단을 구축해야만 했다. 2년 넘는 기간 동안, 러시아 국영선사 소브콤플롯 소속 선박들은 새로운 소유자가 제재 대상이 되면 그때마다 소유주를 바꾸는 방식으로 운항을 지속했다. 

그 과정은 항상 아랍에미리트에서 이뤄졌다. 선 쉽 매니지먼트는 SCF 매니지먼트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했는데, 이 약칭 SCF는 소브콤플롯(Sovcomflot, SCF)과 거의 동일해, 사실상 숨길 의도조차 없음을 보여줬다.

이 회사는 다시 포낙스, 그리고 2024년 10월 기준 러시아 원유 운송의 19%를 단독으로 담당한 스트림 쉽 매니지먼트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이마저도 다섯 번째 대형 에미리트 선사인 에이브버리 쉽 매니지먼트로 대체된 것으로 보인다.

 

그림자 선단의 하루 원유 수송량이무려 410만 배럴

“아랍에미리트에서는 제재를 준수할 의무가 없고, 특히 자금 출처를 신고할 의무를 부과하지 않아 러시아와 연관된 기업가들이 그곳에 설립된 회사를 통해 유조선을 구매하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라고 다니엘 씨가 덧붙였다. 

신뢰할 만한 제삼자 운송업체를 이용하기가 어렵고, 해상 경로가 더 길어지자, 러시아는 단순히 자국 선박을 재활용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외국 유조선 인수에 적극 나섰다. 중국과 그리스 소유주들은 러시아에 운 좋게도 낡은 선박을 높은 가격에 매각했으며, 케네디 씨의 추정에 따르면, 이 선단은 빠르게 270척 규모에 도달했다.

하지만 더 많은 선박을 확보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원래는 폐선 처리돼야 했을 낡고 심각한 상태의 배들까지 사들였다. 노후한 선박들이 갖는 위험과, 소브콤플로트의 최신 유조선을 보유한 자국 기업들이 직접 책임을 지는 상황을 피하고자, 러시아는 수많은 불투명한 기업들을 동원했다. 

금융 분석 회사인 S&P 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 러시아와 관련된 해운 기업 864개가 새로 설립되었으며, 주요 설립지는 아랍에미리트였고, 중국, 터키, 인도에서도 다수 설립됐다. 

에코 맥스 FZE 같은 회사가 이런 낡고 제대로 보험조차 들지 않은 선박들을 운항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2023년 6월부터 2024년 6월까지 이른바 ‘그림자 선단’이 하루에 운반하는 원유량은 70% 증가해, 하루 240만 배럴에서 410만 배럴로 늘어났다.(4)

 

러시아의 속임수, ‘그레이 선단’과 ‘유령 선단’

하나의 패턴이 드러난다. 인도의 구매자들이 대량으로 사들이는 원유는 대체로 규정을 준수하는 선박들이 운송하는 반면, 상태가 나쁘고 때로는 보험도 없는 노후 선박들은 미국 재무부의 감시를 받을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운송 작업을 맡고 있다.

해상 교통 분석 기업 윈드워드에 따르면, 첫 번째 유형은 ‘그레이 선단’으로 불린다. 이 선단은 약 1,000척의 유조선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적을 자주 바꾸고 소유주도 불분명하지만, 적어도 당장은 제재를 피하고 있다. 두 번째 유형은 ‘유령 선단’으로, 약 1,300척(전 세계 유조선의 약 20%)에 이른다.

이들은 북한이 유엔 제재를 피하고자 사용했던 수법을 대거 활용해, 각종 속임수로 제재를 우회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다니엘 씨는 설명했다. 러시아 항구에서 출발한 이 유령선들은, 기술적으로 상태가 양호하고 서방의 대형 보험사들로부터 보험이 가입된 선박들을 이용하기 위해, 공해상에서 이들 선박에 귀중한 원유 화물을 옮겨 싣는다. 이를 통해 러시아는 가격 상한선을 넘긴 가격으로 원유를 판매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원유의 러시아산이라는 원산지가 사라진다.

윈드워드에 따르면, 원래는 보급 목적으로만 이루어지는 이런 해상 환적 작업이, 원유의 경우에만 2023년 4월부터 2024년 2월까지 지중해에서 54% 증가했다. 주로 그리스의 칼라마타 인근이나 이집트의 수에즈 해역에서 이루어졌다. KSE 연구진은, 노보로시스크에서 출발한 오션 썬더호라는 무보험 선박이 2023년 말 수에즈 해상에서 튀르키예 유조선 베식타스 보스포루스호로 화물을 옮긴 뒤, 인도 잠나가르 항구로 운송한 사례를 포착했다.

KSE의 연구원 보리스 도도노프 씨는 “러시아는 이런 해상 환적 기법을 이용해 유럽에 직접 원유를 공급한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선박들은 러시아에서 출항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트랜스폰더(위치신호기)를 꺼버리거나, 위치 신호를 조작해 출발 항구 정보를 위장하는 수법도 사용한다. 러시아 외무부에 이에 대한 입장을 요청했지만, 답변이 없었다.

 

러시아 원유 출처를 감추는 방법 너무 많아

에너지 분야에서 일하는 은행가 미셸 Y는 이름을 밝히지 않는 조건 아래, “원유의 출처를 감추는 방법은 수없이 많다. 러시아 세관은 동일한 원산지 증명서를 네 번이나 재사용할 수 있고, 아무도 추가로 확인하지 않는다”라고 털어놓았다. 이 작업은 “카자흐스탄과 같은 구소련 내륙국에서 온 석유의 출구 역할을 하는 흑해 항구들에서는 아주 쉬운 일”이라고 에일-마제가 씨가 보충 설명했다.

국제전략관계연구소(IRIS)의 이고르 델라노에 연구원은 “1936년 몽트뢰 협정 이후, 튀르키예는 흑해에서 나가는 흐름과 흑해로 들어오는 흐름을 통제하고 있다”라고 상기시켰다. “튀르키예는 늘 미국 해군과 거리를 두는 데 성공했고, 소련이 이 지역을 압도적으로 지배한 이후, 이곳은 점점 더 불투명한 활동에 적합한 장소가 되었다.”

하지만, 2025년 1월 한 달 동안만 해도, 그리고 그림자 선주들이 아무리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183척의 선박이 워싱턴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제 워싱턴은 단순히 소유주를 바꾸는 방식으로 선박들이 세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유조선들을 개별적으로 제재하고 있다. 도도노프 씨에 따르면, 일부 선박들은 여전히 조용히 재활용되고 있으며, 특히 러시아 극동의 코즈미노 항구와 중국 항구 같은 단거리 항로에서 사용되고 있다.

 

유령 선단이 초래하는 해상 안전 위협

더 복잡하고 길어진 항로로 인해, 사고 위험은 필연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는 2024년 12월, 소련 시절 건조된 러시아 유조선 두 척(볼고네프트 212호와 볼고네프트 239호)이 흑해와 아조프해의 길목인 케르치 해협에서 조난한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덴마크 해군 참모총장을 역임하고 퇴역한 닐스 왕은 “이런 선박들의 선장들은 더 큰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선박은 우리 해협 같은 혼잡한 구역을 통과할 때 파일럿(수로 안내인)한테 도움을 요청하지만, 유령 선단 소속 선박들은 그런 안내를 거부한다.”

2024년 3월, 러시아와 관련된 비보험 유조선 안드로메다 스타호도 이 구역에서 사고를 냈지만, 다행히 당시 선박은 비어 있었다. 일부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가 유조선을 ‘하이브리드 전쟁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2024년 말, 핀란드는 유령선 이글 S호를 나포했는데, 이 선박이 해저 케이블을 훼손한 혐의를 받고 있다.

러시아는 일부 자국 선박들이 서방 보험사의 독점에서 벗어나 항구와 주요 운하에 접근할 수 있도록, 자체 보험 체계를 마련했다. 대표적으로 잉고스트라흐라는 회사가 있다.

이 보험 체계는 1992년 국제 민사책임 협약을 준수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2024년 1월부터 제재 대상이 된 이 회사는 만약 해당 선박이 서방 국가로 원유를 운송한 사실이 드러나면, 모든 보험 청구가 무효가 되는 특약 조항을 두고 있다.

한편, 아랍에미리트에서는 가짜 보험 네트워크도 확산하고 있다. “국제법 관행에서, 보험회사를 원유 가격 수준에 따라 제재 체계에 종속시키는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건 서방을 위한, 편파적이고 과도한 정치적 도구화에 불과합니다.” 사데크 부세나, 전 석유수출국기구(OPEC) 의장이 이같이 분석하며 설명했다.

닐스 왕 예비역 제독은 “바다는 전 세계의 공동 자산”이라며, 글로벌 무역의 지속적인 불투명화를 우려했다. “해상법은 최대한 자유로운 물자 운송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 심지어 중국과 러시아까지 서명한 이 국제협약의 근본 원칙을 흔드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다.”

 

두바이의 석유 트레이더, “제재? 다 헛소리”

이 새로운 석유 흐름의 자금줄을 추적하려면, 무산담 반도의 반대편, 아라비아-페르시아만 쪽으로 넘어가 두바이로 가야 한다. 늦은 밤, 여전히 식지 않은 더위 속, 비즈니스 베이를 따라 흐르는 운하 옆 한적한 카페에서 우리는 펠리페 리알 카메조를 만났다. 그는 전 세계 여러 대형 은행에서 일했던 경험 많은 트레이더다. 지금 그는 옛 소련 국가들에서 정제된 러시아산 석유를 사들여 휴스턴이나 로테르담 시장에 되판다.

“제재? 다 헛소리다. 러시아는 지금 사상 최대 물량을 팔고 있다. 유럽은 여전히 러시아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냥 더 비싼 값에 사는 것뿐이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주가지수를 넘겨보고는, 세금이 거의 없는 데다 화폐도 안정적인 아랍에미리트를 극찬했다.

두바이가 연료 시장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제대로 이해하려면, 두바이 멀티 커모디티 센터(DMCC)로 들어가 봐야 한다. 여기는 세금이 없는 자유무역지대로, 에너지 분야 기업만 해도 이미 3,000곳 이상이 모여 있다. 이 마천루 섬을 둘러싼 마리나와 모래로 덮인 공터를 지나면, 최근에 지어진 업타운 타워에 다다른다. 주차장에서는 현지 은행 직원들이 다가와 계좌 개설을 권유한다. 이 건물에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시행된 이후, 수많은 석유 트레이더들이 몰려와 자리 잡고 있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건보르, 리타스코, 비톨, 트라피구라 같은 세계 최대 석유 트레이딩 기업들이 자리 잡고 있었던 스위스에서 많은 기업들이 떠났다. 국제 비정부기구(NGO)인 퍼블릭 아이는 “스위스 금융 중심지는 한때 러시아산 원유 수출 물량의 50~60%를 처리했다”라고 밝혔다.

이제 두바이 업타운 타워 78개 층 중 한 곳에는, 러시아 석유기업 루코일의 트레이딩 부문인 리타스코가 자리 잡았고, 스위스 제네바에서 근무하던 직원 약 100명이 이곳으로 옮겨왔다. 또한, 로스네프트와 오랜 파트너십을 맺어온 트라피구라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12층 라운지에서 만난 스위스 출신 무역상 시몬 X는 익명을 조건으로, “우리는 때때로 여기서 칵테일파티를 열고, 제네바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라고 말했다. 

홍콩과 함께 두바이는 이제 러시아산 원유의 80% 이상을 사들이고 있다. 그러나 대형 트레이딩 기업들은 이러한 거래를 직접 드러내지 않고, 불투명한 다른 기업들을 앞세워 거래를 숨긴다. 이는 서방 은행들과의 거래가 끊길 위험을 피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 모든 과정은 소수의 막강한 인맥을 가진 사업가들이 관리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이란산 원유나 베네수엘라산 원유 거래에도 관여하고 있다고 컨설팅 업체 월브룩이 밝혔다. 이들은 구체적인 이름을 끝내 밝히지 않았다. 

“이름을 계속 바꾸기 때문에, 제가 회사 이름을 알려드려도 인터넷에서 아무것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러시아산 원유의 새로운 유통망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로스네프트 출신 드미트리 페트로프의 말이다. 예를 들어, 트라피구라는 아제르바이잔 출신 사업가인 에티바르 에이윱과 타히르 가라예프를 통해 코랄 에너지와 연결되어 있다.

전쟁 이전부터 두바이에 기반을 탄탄하게 두었던 이 중개회사는 로스네프트가 구매자를 찾고, 자금을 조달하며, 화물 운송을 조직하는 일을 도왔다. 그리고 지금도 그 역할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이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소규모 회사들 뒤에 숨어 활동한다. 

이런 회사들은 하루아침에 세계 최대급 트레이더들과 맞먹는 물량을 사들이는 존재로 변신한다. 코랄 네트워크에는 벨라트릭스, 블랙포드 코퍼레이션, 데멕스, 그리고 노르드 액시스 같은 회사들이 포함된다. 

이 가운데 노르드 액시스는 노출이 잦아지자, 볼리션이나 폰투스 트레이딩 같은 새로운 소규모 회사들 뒤로 숨어들었다. “중간 업자들이 늘어날수록,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는 더욱 흐려집니다.” 익명을 요청한 관계자가 이렇게 귀띔했다.

 

 

글·샤를 페라쟁 Charles Perragin & 기욤 르누아르 Guillaume Renouard
기자


(4) Anastasia Stognei, 「서방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계속 성장하는 러시아의 그림자 선단」, <파이낸셜 타임스>, 2024년 10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