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와 특권에 맞선 세르비아 시민 봉기(2)

세르비아 광물에 눈감은 유럽의 위선

2025-04-11     아나 오타셰비치 | 기자, 영화감독, 베오그라드 거주

세르비아는 지난 4개월 동안 현대 역사상 최대 규모의 봉기를 겪고 있다. 부패에 반대하는 이 시위는 노비사드 역에서 발생한 역사(驛舍) 지붕 붕괴 사고로 15명이 사망한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사고의 원인을 파고들자, 가장 기본적인 안전조차 무시한 채 연줄과 특혜가 판치는 세르비아 체제의 병폐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이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네보이샤

 

유럽 각국 정부들은 이번 시위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세르비아의 자원 개발 반대 운동에 대해 보여온 무관심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지난여름,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와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잇따라 베오그라드를 방문해, 세르비아의 유럽 연계 강화를 강조하며 EU와의 협력 협정을 홍보했다. 이 협정은 주로 리튬을 포함한 ‘핵심 광물’ 수입과 관련된 것이었다.(5)

“이제 완전히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가치란 결국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게 증명됐어요.” 보야나 사보비치 검사의 말이다. “우리는 이미 이런 위선을 익숙하게 봐왔지만, 이제는 그 위선이 정점을 찍었어요. 이런 현실 때문에 시위대는 더 이상 유럽연합 깃발을 들지 않고, 오직 세르비아 국기만 들고나옵니다.”

 

300개 지역, 수십만 명이 거리 시위

시위 초기부터 대학교수들과 총장들은 학생들의 요구를 지지했고, 이후 초·중등학교 교사들, 변호사들, 농민들, 광부들, 판사들, 택시 기사들, 은퇴자들까지 동참했다. 시위는 약 300개 지역에서 열렸으며, 수십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이번 시위의 힘은 대학마다 구성된 학생 총회(플레넘)에서 나온다. 이 총회에서는 모든 결정을 직접 민주주의 방식으로 논의하고 결정한다. 이런 총회 중심의 조직 방식은 발칸 지역 학생운동 전통과도 맞닿아 있다.

과거에는 주로 학습 환경 개선을 목표로 한 투쟁들이었다. 특히 2009년 자그레브에서 일어난 학생운동 이후 작성된 파업 매뉴얼이 세르비아 학생들에게 훌륭한 지침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 사실만으로도, 아나 브르나비치 국회의장은 이번 시위를 크로아티아 정보기관의 공작이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시스템의 개혁”

서방이 이번 시위에 개입했다는 주장에는 설득력이 거의 없다. 부치치 대통령이 미국 대사와 함께 인프라 사업을 개통하는 모습이나, 그의 정부가 19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폭격으로 파괴된 구 유고슬라비아군 총참모부 건물의 보호를 해제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가 그 자리에서 호텔(6)을 건설할 수 있도록 승인한 사실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시위대 내부에서도 운동의 자율성은 여전히 중요한 화두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운동이 특정 정당이나 정치 세력에 의해 악용되는 것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 베오그라드 철학대학에서 열린 학생 총회에서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시스템의 개혁이지, 권력층이 서로 자리를 바꾸는 궁정 혁명(왕실이나 권력 핵심부 내에서 벌어지는 정변이나 권력 교체를 의미—역주)이 아닙니다.” 이런 정치적 독립성은 학생들의 투쟁에 대한 사회 전반의 폭넓은 지지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서방 언론을 불신하는 시위 대학생들

학생들은 1990년대 대규모 시위 때 범했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특히 경계하고 있다. 당시 시위 주도 세력이었던 오트포르의 지도부는 2000년 밀로셰비치 정권 붕괴 이후 새롭게 집권한 정당에 합류했지만, 일부는 부패 혐의로 몰락했고, 일부는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미국의 정권 교체 전략에 이용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구소련권 국가에서 벌어진 체제 전환 과정에서 미국의 외교정책에 부합하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7)

이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이번 시위에 나선 학생들은 특정한 지도자가 부상하는 상황 자체를 경계하고 있다.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도 매번 다른 학생들이 돌아가며 응하는 방식으로, 특정 개인이 시위의 상징으로 부각하는 것을 막고 있다. 동시에, 권력과 유착된 주요 언론이 이들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 것도 피하려는 의도다.

학생들은 서방 언론에 대한 불신도 숨기지 않는다. 서방 언론이 대중 봉기를 단순히 서방과 가까워지고 싶어하는 열망으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단순화된 이분법적 시각은 세르비아 학생들에게 큰 반감을 사고 있다. 최근 일부 평론가들은 조지아, 슬로바키아, 그리고 세르비아에서 일어난 시위를 하나로 묶어, 반러시아 정서에서 비롯된 동일한 흐름으로 규정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세르비아는 민주주의 뿌리로 돌아가야”

“이 나라가 세워진 민주주의의 뿌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세르비아 중부 도시 크라구예바츠까지 행진하는 시위를 논의하던 자리에서 한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베오그라드 철학대학 학생 총회는 이번 행진 경로에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그 길목에 있는 오라샤츠는 1804년,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 맞선 제1차 세르비아 봉기가 시작된 곳이다.

이 봉기는 이후 1835년 세르비아 최초의 헌법 제정으로 이어졌으며, 오늘날 세르비아는 이 역사를 국경일로 기념하고 있다. “이번 행진은 오랜 세월 외세의 지배를 받다가 마침내 민중이 봉기했던 그 상징적 장소를 지나가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오랜 세월 부패한 권력에 눌려 있다가 일어서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또 다른 학생이 이렇게 외쳤다.

 

 

글·아나 오타셰비치 Ana Otašević
기자, 영화감독, 베오그라드 거주


(5) 장 아르노 데렝스·로랑 게슬랭, 「브뤼셀이 품어주는 세르비아 독재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0년 3월.
(6) 사샤 드라고일로·이비차 믈라데노비치, 「세르비아 리튬을 둘러싼 유럽의 탐욕」,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2년 9월.
(7) 장 아르노 데렝스·로랑 게슬랭, 「알바니아와 세르비아: 트럼프 사위의 발칸 투자 신화」, <RFI>, 2024년 3월 23일, www.rfi.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