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절제에서 여운으로, <미키 17>이 영화 안팎에서 던지는 질문
지난 2월 28일에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은 어느새 극장 상영이 끝나가는 분위기다. 예상을 빗나가는 상황이라 하겠는데, 이 영화는 단순히 흥행 성적만으로 평가하기에는 아쉬운 작품이다. 그래서 지난 글에 이어 <미키 17>을 조금 더 살펴볼까 한다.
지난 글에서는 <미키 17>이 감정보다 이성에 더 강하게 호소하는 영화라는 점을 이야기했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가 결말로 향하는 방식과 빌런을 다루는 태도, 기존 SF와는 다른 구조와 정서를 어떻게 보여주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흥행과 한국 관객 반응에 대한 생각도 잠시 더해보고 싶다.
반란 대신 변화, 폭력 대신 연대로
<미키 17> 초반부는 복제인간이라는 소재를 통해 자아의 혼란보다는 ‘계약했으니 감수해야지’라는 태도로 부조리를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순응을 그린다. 많은 SF 영화들이 강력한 ‘악’을 설정하고, 그에 맞서는 주인공의 각성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해 온 것과는 다른 지점이다. 권력을 쥐고 체제를 유지하는 인물인 마샬 부부가 등장하지만, 이들은 ‘악역’으로서 극대화되지 않는다. 오히려 희화화된다.
주인공들은 영화 내내 마샬 부부와 맞서 싸우기 위한 계획을 세우지도 않는다. 오히려 상황 수습은 이미 존재하는 감사 시스템을 통해 진행된다. 주인공은 히어로가 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소극적이고, 앞에 나서지도 않는다. 다만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그들과의 관계가 조정된다. 그 과정에서 두 미키의 공존이 허락되고, 누구도 ‘진짜’ 미키를 주장하지 않는다. 영화는 그렇게 조용한 연대와 느린 각성이 모여 결론을 향해 간다.
이는 <미키 17>이 이야기의 결말을 통해 지향하는 세상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셈인데, 거창하지 않지만, 현실적인 질문이다. 미래라는 틀을 통해 지금 이곳의 고민을 드러내는 이 방식은 봉준호가 꾸준히 다뤄온 사회적 시선과도 맞닿는다. 극적인 감정 유발보다는 이성을 자극하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한다.
감정과 색감, 절제에서 변화로
생각해보면, 이 영화가 보여주는 상황은 꽤 잔혹하다. 미키는 17번 이상 살해당했고, 마샬 부부는 식민지 침략 당시처럼 행성의 원주민들을 전멸시키려 한다. 그런데도 미키는 이 모든 상황을 담담하게 회상한다. 매우 사적인 이야기까지 포함된 그의 내레이션은 영화의 극적인 전개를 누그러뜨리며, 감정을 절제하는 효과를 낳는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미키의 내레이션과 함께 압축된 몽타주로 처리된 상황 정리와 문제 해결 방식이 인상적이다. 재판, 의회, 나샤의 출근 장면 등은 단지 ‘보고 지나치는’ 이미지들처럼 제시된다. 그 결과, 관객이 느낄 수도 있었을 벅찬 감동은 의도적으로 절제된다.
화면의 색감 역시 이러한 절제된 시선을 강화한다. 회색과 무채색, 통제된 조명으로 구성된 화면은 인물의 감정보다 세계의 구조와 분위기를 먼저 인식하게 만든다. 그러나 결말에 이르러 해가 떠오르고, 하얀 눈과 푸른 하늘, 따뜻한 햇빛이 등장한다. 그리고 미키는 “행복해지고 싶다”는 말을 처음으로 조용히 꺼낸다.
이 갑작스러운 밝음은 전형적인 해피엔딩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영화가 끝까지 유지해 온 건조한 시선과 결을 같이한다. 관찰자의 태도를 끝까지 유지한 채, 연대를 통한 희망이라는 방향만 조심스럽게 제시한다.
그리고 아쉬움은 질문으로
<미키 17>은 공식적으로 미국과 한국의 공동 제작 영화로, 정보 페이지에도 두 나라가 함께 표기된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 영화는 미국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영어로 연기되는 할리우드 영화다. 영화의 내용, 인물 구성, 주인공 설정 등은 관객들이 영화의 국적을 직감하게 만드는 요소다. 봉준호 감독이 연출했다는 사실만 모른다면, 그저 미국영화로 여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새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영화를 보는 순간, 한국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봉준호의 영화’로 접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전 작품에서 기대했던 감정의 리듬이나 서사의 힘을 찾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결국 <미키 17>이 한국영화인지, SF영화인지, 봉준호의 영화인지라는 규정은 관객의 시선에 달려 있고, 관객은 다양한 취향과 생각을 가진 존재이니, 그 이해 역시 다양할 수 있다. 예상보다 극장에서는 일찍 내려갔지만, 다양한 플랫폼을 통한 반복 관람으로 다양한 분석이 이어지길 바란다.
<미키 17>이 영화 안팎에서 던진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가?”, “봉준호는 글로벌 프로젝트에서도 ‘봉준호 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의 시도는 어떻게 받아들여졌는가?” 등의 질문은 두고두고 응답될 것이다.
이미지 출처: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교육 관련 연구를 지속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