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비판한다
2012년 12월 19일 대선을 앞두고 한국 사회는 다양한 정치 논쟁과 정책 논의가 활발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정책 논쟁뿐 아니라 대북 정책을 둘러싼 대결도 뜨거웠다. 검찰 개혁이나 정치 개혁의 내용과 방식도 많은 사람의 눈길을 모으고 있다. 주요 대선 후보들은 심지어 과학기술이나 보건의료, 주택 문제와 관련해서도 정책을 제안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반해 '역사 정책'은 기껏 뒷자리를 차지하거나 아예 관심 밖의 대상이다. 그런데 역사 정책은 앞의 여러 정책들과 무관하지 않으면서 나름의 독자적 차원과 영역을 갖고 있기에 더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대선을 맞이해 정치 지도자들과 정당들이 제시하는 미래 구상과 강령적 계획은 결국 우리가 공동체의 지난 삶을 어떻게 기억하고 평가하느냐의 문제와 직접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여러 분야와 영역의 정책들은 현재로 이어지는 다양한 역사적 흐름 중 어떤 것을 연속하고 상승시키며, 반면 어떤 것을 단절하고 전환하느냐의 문제와 연관된다. 그렇기에 정권 교체기를 맞이해 우리 정치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기본적인 가치와 규범의 역사적 근간을 확인하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국가 범죄에 대한 과거사 정리, 주변국과의 역사 분쟁, 역사 교과서 문제, 역사 기념과 기록물 보존 정책 등 다양한 역사 정책 주제들에 대해 전문가들과 시민단체 및 정치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며 더 많은 논의의 장을 열어야 한다.
특히 12월 21일 개관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대해서는 시민사회와 정치가들이 더 전향적으로 관심을 갖고 토론할 필요가 있다. 역사박물관은 단순히 과거 유물의 골동품 창고가 아니다. 역사박물관, 특히 현대사박물관은 공동체의 미래지향과 현재적 정체성을 포괄하는 기억과 경험의 전승 공간이다. 현재 우리가 어떤 삶의 방향을 찾아나갈지, 향후 우리가 어떤 사회와 나라를 꿈꾸며 만들어나갈지의 문제는 우리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집단적으로 어떻게 기억하고 전승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 집단적 기억의 공간인 역사박물관 건립 자체가 '역사적 행위'임에 유의해야 한다.
지난 5년간의 폐정이 대부분 그러하듯, 발단은 다시금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2008년 8월 15일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 '현대사박물관' 건립을 공표함으로써 논란이 시작되었다. 같은 해 10월 17일 이명박 정부는 현대사박물관 건립 사업을 새 정부 100대 국정 과제의 하나로 삼았다. 그러다 역사학계와 일부 언론의 비판과 냉담 속에서 이명박 정부는 2009년 2월 대통령령으로 역사박물관이 아니라 국가홍보관 성격의 '국립대한민국관'을 건립하기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런데 2009년 10월 '국립대한민국관 건립위원회 규정'을 일부 개정하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 명칭을 개정할 것을 결정하며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건립위원회는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들어가며 추진단은 문화부 소속으로 결정되었다.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먼저 이명박 정부가 현대사박물관을 발의하게 된 맥락이다. 기실 현대사박물관 건립 발의는 지난 민주정부 시절 과거 청산 작업의 성과와 비판적 역사인식의 대중적 확산에 대한 강력한 역공세라고 볼 수 있다. 보수 우파 세력은 2008년 권력 장악 후 앞 시기 민주정부 시절 어렵게 확산된 사회의 비판적 역사의식을 하찮고 주변적인 것으로 만들며 그것을 새로운 '국가적 역사 기획'의 틀 안에서 전면 무력화하고자 했다. 그렇기에 이명박 정부의 현대사박물관 건립 제안은 역사 교과서 개정을 통해 학교 교육에서 역사인식 틀을 변화시키려는 시도 못지않게 심각하고 막중한 일이었다. 국가 정체성 강화와 '국민 통합'의 서사 기획을 통해 비판적 역사인식과 성찰적 역사의식을 파편화하고 그 의미를 상대화 내지 축소하려고 한 기획이었다.
두 번째는, 역사학계나 시민사회에서 어떠한 요구나 발의나 논의가 없었음에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위로부터 현대사박물관 건립을 제안한 사실 자체가 갖는 문제점이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어떤 정치적 주체도 '공적 역사'의 영역에서 자신의 역사 정책 구상을 공적으로 발의하고 제안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역사학계나 시민사회에서 어떤 요구나 사전 구상이 없었던 역사박물관, 특히 애초부터 논란과 반대가 많을 현대사박물관을 어떤 종류의 앞선 공적 논의나 검토도 존재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제안한 것은 그 당파 정치적 의도를 충분히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졸속과 부실의 건립 과정
아울러 이명박 대통령과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건립 주체들은 발의와 제안 단계를 넘어 건립의 구체적 추진과 착수 및 실행 단계에 이르러서도 졸속성과 준비 부족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위원회'(위원장 김진현)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추진단은 2010년과 2011년 형해화된 정치 구호와 다를 바 없는 강령적 주장을 담은 작은 팸플릿('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 기본계획') 외에 내용적 체계를 갖춘 구체적인 건립 계획안을 제시한 적이 없었다. 다만 "고난과 역경을 딛고 발전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후세에 전승하고 국민의 자긍심 고양 및 사회통합으로 국가 미래 발전의 원동력을 확보"한다는 취지를 되풀이 선전했다. 그러고는 곧장 2010년 10월 "국고 451억 원(2012년 5월 현재 448억 원)을 투입해, 광화문 문화체육관광부 부지(6,446㎡)에 동 청사를 리모델링하여 건축 연면적 9,500㎡(2012년 10월 현재 별관 부지 포함 총면적 1만434㎡)의 규모"의 박물관 착공을 개시했던 것이다. 2010년 3월 12일 공표한 '건립 기본계획' 및 전시주제(대주제, 중주제, 키워드) 소개는 내용도 문제지만, 일국의 현대사박물관 건립 기본계획이라고 하기에는 그 자체가 너무 빈약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홈페이지에 공개된 그 내용은 '대한민국의 태동, 기초 확립, 성장과 발전, 세계로의 도약'의 4개 대주제를 핵심 근간으로 이루어졌지만 앙상한 뼈대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최근 국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주제 해설 기초자료 용역보고서'(역사문화사 발간)가 박물관 홈페이지에 공개된 것은 올해 여름이었다. 그 이전까지 건립위원회는 제대로 된 전시 내용을 갖지도 못한 채 빈약한 주제어에 덧붙인 소에세이 같은 것을 갖고 건립을 추진한 셈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문화부나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건립위원회 측이 건립 과정에서 보인 비민주적 일방성과 관료적 폐쇄성이다. 이미 건립 초기, 즉 2010년 초 일방적으로 1948년 8월 15일을 뉴라이트식으로 해석해 대한민국 건국일로 내세우려다 광복회의 강력한 저항을 받은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건립위원회 측은 처음부터 한국현대사 전문 연구자들이나 연구기관 및 유관 시민단체들과 공식적인 토론이나 소통을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다. 2011년 이전에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사업에 대해 비판과 반대를 표명한 역사가가 없지 않았고, 2011년 8월부터는 비판적 역사학계가 다양한 방식으로 건립 과정과 전시 내용에 대해 반복적으로 비판했음에도 그들은 어떤 대화와 소통, 조정과 합의의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공청회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고 어떤 공개 토론회도 개최되지 않았다.
게다가 건립 과정에서 드러난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전문성 부족과 전문가 배제다. 역사박물관은 일차적으로 역사인식의 객관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과잉 정치화된 진영 간 대결적 역사인식의 차이 때문에라도 전문적 역사학자들의 학문적 검토와 조정이 전시 사업의 대전제이자 기본원칙이다. 건립위원회 위원들은 모두 이명박 대통령이 위촉했는데 19명의 민간위원들과 10명의 당연직 정부기관 위원들로 구성되었다. 역사박물관을 만드는 사업인데 위촉된 19명의 민간위원 중 역사학 전공자는 4명밖에 되지 않는다. 21명의 전문위원 중에는 역사학 전공자가 더러 있지만 이 중 한국현대사에 대해 전문적 업적을 남긴 사람은 6∼7명에 불과했다.
건립 과정과 주체 구성이 이렇다보니 전시 계획의 내용이 파행적인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먼저 확인해둘 것이 있다. 최근 비판가들 중 일부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제2의 박정희기념관' 내지 '독재 미화관'이라며 경각심을 높이고 있는데, 전시 내용을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핵심 추진 세력을 극우파로 무작정 몰기도 어렵고, 전시 내용도 극우적 역사관과는 좀 차이가 있다. 이미 보수 우파의 수장 박근혜 대선 후보조차 '과거사를 사과'할 수밖에 없는 시대적 조류를 놓고 본다면, 박물관 건립 주체들이 독재를 미화하는 반민주적 역사상을 그대로 내세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 비판과 저항이 점점 강력히 조직되고 있는 상황도 그들로 하여금 애초의 일방적 기획에서 부분적으로 후퇴하게끔 만들었다.
전시 내용의 몰역사적 '역사관'
이 말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의 전시 구상이 '박정희기념관만큼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아울러 '독재를 미화하는 정도로까지 막 나가지 않았으니 다행'이라는 의미를 함축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즉 문제는 더 심각하며 상황이 더 복잡해졌다는 말이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측이 현재 준비하고 있는 전시 내용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것이 단선적인 국가 성공 사관에 기초해 개방적이고 다원적인 역사상을 부정하며 성찰적이고 비판적인 역사의식을 봉쇄한다는 점이다. 전시 계획의 근간인 단선적이고 유기체적인 국가 성장 논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를 자유롭고 독립적인 시민들이 다원적인 영역에서 다양한 삶을 영위하는 공간으로 인식하는 것을 방해하고 교란한다.
국가 '성공' 신화와 '기적의 역사'라는 자기도취적 역사관은 사회의 다원적 경험과 기억들을 부정할 뿐 아니라 사회의 위기와 파국, 특히 정치적 억압과 국가 범죄 및 그로 인한 희생과 피해의 역사를 주변으로 내몬다. 물론 박물관 측의 전시 계획을 보면 '산업화'와 함께 '민주화'도 전시의 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표피적으로 보면 마치 그 전시가 국가 범죄와 인권유린의 역사 및 반독재 저항과 민주화운동도 포함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최종적 '결과'와 지배 엘리트 중심의 역사 전시로 인해 파괴와 희생은 항상 상대화되며 주변적이고 부차적인 의미만을 지닐 뿐이다. 이를테면 전시 계획을 보면, 1970년대는 반민주적 유신 통치 시대로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 채 1987년 6월 항쟁과 노태우의 '6·29 선언'으로 귀결되는 민주화운동의 전사쯤으로 간주된다. 그렇게 되면 1970년대의 유신 체제가 인권유린과 헌정 파괴를 낳은 '범죄정권'이었음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아울러 민주화도 최종적으로는 대통령들의 업적으로 귀결될 뿐이다. 또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건국-부국-선진화'의 협애하고 단선적인 역사인식에 근간한 전시 구성 속에서 해방 후 친일파의 재등장이 지닌 의미, 각 시기별 국가 범죄의 상흔과 희생, 다양한 대안적 정치 세력과 그들의 구상, 시민사회와 민중의 조직운동과 다양한 일상적 삶의 양상, 그리고 남북관계와 통일의 전망 등은 사실상 어떤 정당한 역사적 지위를 받지도 못한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태동, 기초 확립, 성장과 발전, 선진화 등의 기괴한 '기승전결' 키워드를 내세워 분명한 시대 구분을 회피하는 것에 이미 국가 범죄와 그로 인한 희생과 파괴 및 민중 저항과 사회운동의 역사를 '탈맥락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박물관 측은 '산업화 후 민주화 달성'이라는 정치적 서사를 내세워 각 시기별 엄정하고 규범적인 평가를 피하고자 했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역사를 도대체 '성공'과 '기적'으로 볼 수 있느냐를 떠나 한 국가의 역사를 '성공'이라고 규정하는 것 자체도 황당하기 짝이 없다. 학문적으로 성립 불가능한 규정일 뿐이다. 요컨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측이 내세운 성공이니 기적이니 하는 허황되고 자기도취적인 역사상은 지금까지의 공식적인 단선적 지배사관을 강화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와 정치 지배의 정당성 강화로 귀결되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단순히 '제2의 박정희기념관'으로 보고 비판하기보다는, 그것이 기괴한 '성공신화'와 국가 서사에 갇혀 역사의 패자와 희생 및 비극과 위기 또는 대안적 역사 발전의 길들에 정당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의 다원적 기억과 경험들을 유린하고 획일화하는 문제들에 초점을 맞춰 비판할 필요가 있다. 그와 같은 방식의 기괴한 국가 홍보와 과시의 역사박물관은 독재를 적나라하게 미화하는 곳보다 덜 위험하지 않다.
건립 과정의 문제점으로 보나 전시 계획의 내용이 지닌 결함으로 보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개관은 연기되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12월 개관을 강행한 것은, 그 자체가 '부끄러운 과거'로 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야 할 한 장면이 될 것이다. 개관 후라도 박물관 명칭부터 전시의 기본 방향과 내용, 교육·문화 시설과 아카이브의 결합 등 모든 문제를 원점에서 새롭게 논의해야 한다. 지금 광화문 앞에 세워진 것은 축구장이나 다리가 아니다. 역사박물관, 그것도 '시대를 함께 산' 사람들의 기억과 경험을 다루는 현대사박물관이다. 민주적 소통과 비판적 성찰의 문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글 / 이동기 서울대 서양사학과 졸, 독일 예나대학 역사학 박사. <역사비평> 편집위원. 저서로 <Option oder Illusion? Die Idee einer nationalen Konfoderation im geteilten Deutschland 1949∼1990>(대안인가 망상인가? 1949∼1990년 분단 독일의 국가연합통일안)이 있다. 냉전사와 평화·인권사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