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를 지키는 땅, 아카디아

2025-04-15     필리프 데캉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몽튼(Moncton)에 있는 애버딘 문화센터 테라스에서 두 어린 시절 친구가 저녁 식사를 위해 다시 만났다. 서로 다른 언어가 뒤섞인다. 캐나다 동부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뉴브런즈윅 주 남부의 아카디아 사람들은 이를 ‘시아크(Chiac, 아카디안 사회에서 흔한 현상으로, 프랑스어와 영어가 자연스럽게 섞이는 독특한 구어체—역주)’라고 부른다. 이는 일상에서 쓰이는 독특한 혼합 언어로, 작가 제랄 르블랑은 이를 아카디아 정체성의 상징으로 삼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길에서 주운 말들을 언어 속으로 가져간다.”(1)

두 사람 모두 프랑스어 학교에 다녔다. 한 명은 법률가, 다른 한 명은 변호사다. 두 사람은 보험 관련 업무를 하다보니 법정에서 자주 맞붙는다.

“안타깝게도, 나도 모르게 자꾸 프랑스어와 영어를 오가며 말하게 돼요.” 변호사는 죄책감이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들이 영어로 말하면 바로 잡아주지만, 정작 나 자신은 영어가 더 편한 거예요.”

이에 반해 그녀의 친구는 프랑스어가 더 편하다. 프랑스어를 쓰는 동료들 사이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팀에서 유일한 영어 사용자가 회의에 참석할 때는 그 회의는 자연스럽게 영어로 진행된다.

 

강제 이주의 기억, 사라질까 두려운 언어

1969년, 자체적인 공식 언어법을 제정한 뉴브런즈윅은 약 4백여 년 전부터 대서양 연안 지역(노바스코샤,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포함)에 뿌리내린 아카디아 공동체의 중심지다. 퀘벡 외 지역에서 가장 활력이 넘치는 프랑스어 공동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1755년부터 1763년까지 이어진 아카디아인 강제 이주(대추방)라는 비극을 통해, 영어권의 지배로 가장 깊은 상처를 입은 공동체이기도 하다. 이 사건은 아카디아 사회의 집단적 상상력을 형성하는 중요한 경험으로, 작가 앙토닌 마이예(1979년 프랑스 공쿠르상 수상 작가—역주)가 탁월하게 이야기로 풀어낸 바 있다.(2)

2021년 마지막 인구조사에 따르면, 뉴브런즈윅 주민 32만 명(전체 인구의 41%)이 프랑스어로 대화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1991년과 같은 비율이다. 하지만 실제 집에서 프랑스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인구는 전체의 30.4%, 약 23만 2천 명에 불과하며, 그중에서 프랑스어만 사용하는 주민은 약 6만 명이다.

정치적·법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뉴브런즈윅 아카디아 협회 알리 셰송 회장은 아카디안 정체성과 문화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말한다. 이 협회는 상징적으로 몽튼 대성당 지하에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자립할 최소한의 자원은 마련해줬지만, 진정한 의미의 번영을 위한 자원은 주지 않았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지금이에요.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동화(同化, assimilation)가 진행되고 있잖아요.”

1990년, 작가 이브 보슈맹은 퀘벡 밖에서 살아가는 캐나다 프랑스어 소수 공동체를 두고 “아직 식지 않은 시신들(cadavres encore chauds)”이라는 표현을 쓴 바 있다.

“공식 언어법 덕분에 우리는 몇몇 제도들을 갖게 됐어요. 덕분에 완전히 식은 시신은 아니게 됐죠.” 뉴브런즈윅 아카디아 협회의 알리 셰송은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그리 많이 따뜻해진 것도 아닙니다.”

 

이중언어 이데올로기로 인한 ‘언어적 불안정성’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사람들에게 즉각적으로 느껴지는, 일종의 사회적 구별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몽튼 대학교 명예교수인 아네트 부드로 교수는 평생을 언어적 불안정성 연구에 바쳐왔다. 그녀에 따르면, ‘이중언어 이데올로기’(지배 언어의 권력과 소수 언어의 불안정성을 은폐하는 장치로 작동—역주)는 그 정치적 활용을 은폐하고 있으며, 이러한 이중언어 상황은 여전히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

“지배받는 언어, 즉 소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중언어 사용자들이고, 이들은 종종 ‘언어적 불안정성’(자기가 사용하는 언어, 말투, 억양, 단어 선택 등에 자신감이 없고 위축되는 심리—역주)을 느끼게 된다. 이는 결국, 소수 언어 사용자가 어떤 언어를 어떻게 쓰는 지에 대해 권위 있는 집단(정부, 언론, 학자 등)이 만들어내고 퍼뜨린 이미지(편견, 고정관념)와 관련이 있다.(3)

 

“자신의 언어로 서비스받을 권리는 존중의 문제”

“설령 상대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해도, 어떤 상황에서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건, 행정 절차, 경찰과 관련된 상황들이 그렇습니다.” 뉴브런즈윅 주 공식언어국 커미셔너인 셜리 맥린은 이렇게 설명했다. “자신의 언어로 서비스를 받을 권리는 그 사람들의 당연한 권리이며, 동시에 존중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뉴브런즈윅 주 의회에서 임명되어 캐나다 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맥린 커미셔너는 매년 언어 상황에 대한 연례 보고서를 작성하고, 누군가가 두 공식 언어 중 하나로 된 ‘적극적 서비스 제공’을 받지 못했을 때 접수되는 민원을 조사한다.

“각각의 민원은 실제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아주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그녀는 설명을 이어갔다. “우리는 계속해서 구체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민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방법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프랑스어 사용자들 스스로가 자기 언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여전히 중요한 과제라고 봅니다.”

 

아카디아의 언어적 창의성과 불안

“뉴브런즈윅에서는 다른 주들에 비해 동화의 영향을 훨씬 덜 받습니다. 그 이유는 특정 지역에 프랑코포니 인구가 매우 밀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몽튼 대학교 사회학 교수이자 캐나다 프랑스어권 소수자 연구 석좌교수 미셸 랑드리다는 이렇게 설명했다.

실제로 뉴브런즈윅 주 북부와 동부에 위치한 67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프랑스어 사용자가 인구의 최소 80%를 차지하고 있다. 아카디아 반도에 가까워질수록 그 존재감은 지역의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수천 개의 아카디아 국기가 바람에 펄럭이거나, 집과 지붕, 배, 등대에 그려져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아카디아 국기는 프랑스 국기에서 영감을 얻어 삼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파란색 부분에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별이 새겨져 있다. 현재 아카디아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이 반도의 서쪽에는, 아카디아 역사 마을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농촌 생활 방식과 문화, 그리고 투쟁의 역사를 전승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40여 채의 건물들이 원래 자리에서 옮겨져 오거나 정성스럽게 복원되어 있으며, 박물관 해설사들의 깊이 있는 설명 덕분에 생생한 역사 체험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르 모니퇴르 아카디앵 인쇄소에서는 19세기 프랑스어 신문의 역할에 관해 설명해 준다. 프랑스어 유지를 위한 이 신문의 역할은 컸지만, 갈등의 상징으로 두 차례나 방화로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현재 뉴브런즈윅 주에서 발행되는 유일한 일간지는 <아카디 누벨>로, 전면 프랑스어로 발행되고 있다!

 

프랑스어 학교들, 언어공동체 유지에 큰 역할

“이곳은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정말 잘 보여주는 곳이에요.” 미라미시의 카르푸-보솔레이유 학교에 다니는 11학년, 16세 학생인 쥐스탱 소니에가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어 사용자가 소수인 이 지역에서, 지역 커뮤니티 센터와 맞붙어 있는 이 학교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한 가지 언어만 아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이점을 갖고 있어요. 장학금 기회도 있고, 여행도 갈 수 있고, 일자리 기회도 많아요.” 쥐스탱은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교장인 멜라니 보투르 씨는 학생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기뻐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수 언어 환경에서는 학생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고, 그들이 편안하게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학부모들과 학생들을 잘 알고 있고,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프랑스어 학교들은 언어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미셸 랑드리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비관적이진 않지만, 이제는 정치적 책임자들이 이민 정책에서 보다 공정한 균형을 보장해야 할 때입니다.”

아카디아의 주민들은 이민자들 가운데 프랑스어 사용자가 아카디아 인구 비율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유지되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미 몽튼 대학교는 많은 프랑스어권 외국인 유학생들을 끌어들이고 있으며 프랑스어 사용자의 존재감은 이웃 도시 디엡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도시는 공식적으로 이중언어 사용 도시임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다.

예술가들 역시 기존의 언어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들의 작품을 들을 때마다 감동적이에요.” 아네트 부드로 교수는 이렇게 말하며, “시인과 가수들이 이제 몬트리올에서 주목받고 있어요.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어떤 개방성이 생긴 거죠. 현재 몽튼에서는 프랑스어 문화계가 영어 문화계보다 훨씬 더 활발해요.”

이런 문화적 활기는 위성극단(Satellite Théâtre)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극단의 감독인 마르크-앙드레 샤롱은 이렇게 강조했다.

“창작 활동을 지역 공동체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작품의 외부 확산을 막는 건 아닙니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언어의 ‘순수성’이 아니라, 언어의 ‘정확성’이에요. 악센트는 상관없습니다. 나는 ‘앵글로-아메리카 문화의 헤게모니’(전 세계 사람들이 미국·영국 문화와 영어를 ‘세계 표준’, ‘글로벌 모범’이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지배 구조—역주)로 인해 젊은이들이 프랑스어에 등을 돌리게 만들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문제는 언어 자체가 아니라, 예술적 창작물의 질과 창의성이에요.”

 

 

글·필리프 데캉 Philippe Descamp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1) 제랄 르블랑, 『시아크(Chiac)에 대한 찬미』, 페르스-네쥐 출판사, 몽튼, 2015.
(2) 앙토닌 마이예, 『펠라지-라-샤레트(Pélagie-la-Charrette)』, 그라세, 파리, 1979; 미셸 랑드리, 도미니크 페팽-필리옹, 쥘리앙 마시콧(편집), 『아카디의 현주소』, 델 뷔소 출판사, 몬트리올, 2021.
(3) 아네트 부드로, 『프랑코포니 속 불안』, 오타와 대학교 출판부,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