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금 확보 경쟁, 달러붕괴 서막?
지정학적 긴장인가, 달러의 종말 예고인가?
불과 25년 만에, 황금빛 유물인 금의 가격은 10배로 치솟았다.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감안하면 온스당 가격이 조만간 하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특히 글로벌 남반구 국가들의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금 매입이 금값을 지탱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미국 달러의 궁극적인 쇠퇴 가능성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다.
2월 중순, 세계 금 시장의 관계자들은 한 가지 의문에 휩싸였다. 현재 약 2,800달러 선에서 등락을 반복하는 온스(31.104그램)당 금 가격이 급락할 것인가, 아니면 마침내 상징적인 3,000달러의 문턱을 넘을 것인가?
투자를 통해 차익을 노리거나 자신의 자산을 지키려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이러한 요인들을 검토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미국 대통령으로 복귀한 이후, 지정학적 상황이 악화하고 있는가? 달러 가치가 상승하고 있는가?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인 제롬 파월이 금리 인상을 준비하고 있는가? 이런 의문들이 더욱 커지고 있다.
세계 경제와 함께 흔들리는 금의 운명
불과 1년 전만 해도 금은 온스당 1,947달러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44%나 상승한 상태다. 실제로 시장이 내놓는 각종 전망을 넘어, 이제는 한때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야만의 유물”(1923년, 그의 저서 『화폐개혁론(A Tract on Monetary Reform)』에서 금본위제가 국가경제정책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역주)이라 비난했던 금이 갖는 글로벌 전략적 의미 자체를 다시 바라봐야 할 시점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금은 세계 정세가 불안정하거나, 금융시장이 요동칠 때 선택하는 안전자산으로 여겨졌다. 이를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가 있다. 2000년대 초반, 금 가격은 온스당 약 280달러 수준에서 정체되어 있었다. 당시는 신경제 열풍이 한창이었고, 닷컴 기업들의 주가가 폭등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며 상황은 급변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그리고 잇따른 테러 속에서 금 가격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며 현재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금 가격은 기존의 전통적인 요인들과 점점 분리된 움직임을 보인다. 금리, 인플레이션 수준, 달러 가치와 같은 요인들, 심지어 지정학적 위기마저 더 이상 금 가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란과 이스라엘 간의 연이은 충돌은 중동에서 대규모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마저 내포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금 가격은 새로운 최고치를 기록하지는 않았다.
금값 상승이 말해주는 세계 질서의 변화
실제로, 금의 강세와 적어도 2월 중순까지 이어진 수직적인 상승세는 더 이상 ‘과거 세계’에서 사용하던 기존 분석 모델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과거 서구의 부유층들은 금이 이자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점을 감수하면서도, 채권 수익률이 바닥을 치던 상황에서는 금을 보유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덜 불리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나타나는 ‘골드 러시’는 오히려 세계 질서가 근본적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구체적인 신호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도널드 트럼프와 그의 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Make America Great Again)”가 어떻게 진행되든 상관없이, 금이라는 황금빛 금속은 달러 패권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지표가 되고 있다. 이는 역사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1971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리처드 닉슨이 달러와 금의 교환을 공식적으로 중단한 조치는, 오히려 미국의 통화 패권을 확립하는 새로운 지정학적 시대의 서막을 열었기 때문이다.(1)
탈(脫)달러 시대, 브릭스의 비밀병기 ‘금’
수년 동안,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많은 국가는 세계 경제 시장에서 달러화의 지배를 약화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판단했다. 실제로, 2000년 세계 교역에서 달러 결제 비중이 71%에 달했지만, 2024년에는 58.4%로 하락했다. 이와 같은 ‘탈(脫)달러화’ 의지는 더욱 강해지고 있는데, 이는 미국이 자국 통화를 사용하는 모든 외국 행위자에게 서슴없이 미국 법을 적용해 제재하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를 국제결제망(SWIFT)에서 퇴출하고, 3,000억 달러 상당의 러시아 외환보유액(달러 및 유로 자산)을 동결한 사건은, 수많은 국가가 미국 달러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의지를 더욱 굳히는 계기가 됐다.
이미 10년 넘게 브릭스(BRICS)는 달러를 대체할 새로운 결제 통화를 찾겠다는 뜻을 감추지 않고 있다. 그리고 2024년 10월 22일,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회의에서, 브릭스 플러스(BRICS+)는 공식적으로 공동 통화 ‘더 유닛(The Unit)’ 출범을 발표했다. 이 통화는 40%는 금에, 60%는 여러 통화 바스켓에 연동되는 방식으로 설계될 예정이다.
서류상으로만 보면, 다소 이질적인 구성에도 불구하고 브릭스 플러스는 상당한 글로벌 영향력을 자랑한다. 세계 경제의 28%, 세계 경작 가능한 토지의 30%, 세계 인구의 45%, 세계 석유 생산량의 44% 등 이미 2020년 이후, 브릭스 플러스의 전 세계 GDP 비중은 G7을 넘어섰다. 하지만, 구성국 가운데 국제 결제 통화로서 충분한 신뢰와 안정성을 갖춘 화폐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이 때문에, 브릭스 플러스는 달러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한 핵심 수단으로 ‘금’을 선택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브릭스 플러스와 글로벌 남반구 국가들의 중앙은행들은 금 시장에 뜨거운 열기를 불어넣었다. 그 결과, 2024년 2분기 기준, 브릭스 원년 회원국들과 이집트의 중앙은행이 보유한 공식 금 보유량은 전 세계 중앙은행 보유량의 20%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러시아, 인도, 중국은 중앙은행 금 보유량 세계 TOP 10에 포함되며 금 보유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공식적으로 러시아는 2,335.85톤의 금을 보유해 세계 5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중국은 2,264.32톤으로 6위, 인도는 840.76톤으로 8위에 올라섰다. 반면, 브릭스 회원국인 브라질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중앙은행 금 보유량은 상대적으로 적어, 각각 129.65톤과 125.44톤 수준에 머물러 있다.
황금의 귀환, 새로운 질서의 서막
금 시장 전문가인 얀 니우엔하위스의 추정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중앙은행은 스위스에서 160톤의 금을 비밀리에 매입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 역시 같은 기간 동안 약 1,600톤의 금을 은밀히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2)
이러한 수치들은 8,133.5톤에 달하는 미국의 공식 금 보유량이나, 3,351.5톤을 보유한 독일과 비교하면 여전히 격차가 크다. 그러나 카잔 정상회의 당시 브릭스 플러스 국가들의 공식 금 보유량 총합은 8,602톤에 이르렀으며, 이 같은 금 보유 확대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024년 6월 세계금협회(World Gold Council)(3)가 실시한 연례 조사에 따르면, 부유한 국가들의 중앙은행 중 약 60%는 향후 5년간 글로벌 외환보유액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이는 지난해의 38%에 비해 크게 상승한 수치다.
또한, 선진국 중앙은행의 약 13%는 2025년까지 금 보유량을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이 역시 지난해의 8%에서 증가한 수치다. 한편, 신흥국 중앙은행의 약 40%도 2025년 금 보유량 확대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브릭스 플러스를 비롯해 많은 글로벌 남반구 국가들이 금을 꾸준히 축적하는 이유는, 달러 가치 하락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며, 자국 통화와 경제를 달러 붕괴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글·트리스탕 콜로마 Tristan Coloma
기자
(1) 르노 랑베르, 도미니크 플리옹, 「정말로 달러의 시대가 끝나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3년 11월.
(2) 얀 니우엔하위스, 「사우디 중앙은행, 스위스에서 160톤의 금을 비밀리에 매입하다」, <머니 메탈스>, 2024년 9월 12일, www.moneymetals.com
(3) “2024 중앙은행 금 보유량 조사”, 세계금협회(World Gold Council), 2024년 6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