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곡숙의 문화톡톡] <고래와 나> ― 바다 주인 고래의 ‘공생’과 땅 주인 인간의 ‘탐욕’
1. <고래와 나>: 고래의 의사소통과 멸종 위기
대왕고래는 최대 100년 이상 살아갈 수 있는 신비롭고 고귀한 동물이며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거대한 동물이다. 고래는 바다에 사는 매우 큰 해양 포유류 동물이며, 특유의 울음소리와 노래를 통해 의사소통하거나 의견을 교환한다. 고래는 혼획과 포경으로 인한 인간 활동으로 서식기가 빠르게 파괴되고 포경선들의 남획으로 멸종 직전의 위기에 처해 세계적 대응이 필요하다. 고래는 90여 종이 현존하다가 다수가 멸종 위기에 처해, 국제법은 모든 종류의 고래 포획을 금지한다.
<고래와 나>(이큰별, 2024)는 SBS 4부작 다큐멘터리 <고래와 나>의 극장판 다큐멘터리영화이다. 혹등고래, 향고래, 벨루가, 보리고래를 중심으로 다룬다. 고래는 번식과 출산을 위해 지구 반 바퀴를 헤엄치고 한 번의 호흡으로 심해까지 잠수해 먹이 활동을 한다. 고래의 이상행동과 고래 생태계의 균열은 지구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예고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경종을 울린다.
2. 혹등고래: 노래하는 지적인 동물이자 강한 교감의 짝짓기
<고래와 나>에서 혹등고래는 다양한 의사소통과 노래를 하는 지적인 동물이다. 통가의 바다에 사는 혹등고래는 스파이홉, 지느러미치기, 브리칭을 통해 다양한 의사소통을 보여준다. 스파이홉은 고래가 똑바로 서서 눈을 해수면보다 위에 두는 행동이고, 지느러미 치기는 지느러미로 바다의 수면을 치는 행동이고, 브리칭은 고래가 물 밖으로 높이 솟구쳤다가 들어가는 행동이다. 고래의 다양한 동작은 고래의 의사소통을 표현하고 있어서 인간과 유사한 포유류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스파이홉은 인간의 직립보행과 유사하고, 지느러미 치기는 인간의 손바다 치기와 유사하고, 브리칭은 땅/바다를 동시에 아우른다는 점에서 인간을 능가하는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혹등고래의 노래는 의사소통이 가능한 지적인 동물이라는 증거이며, 인간이 함부로 포획하고 죽일 수 있는 동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며, 고래보호운동의 시초가 된다. 혹등고래의 노래는 의사소통의 경이로움과 울림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히트런에서 5-6마리의 수컷 고래가 1마리의 암컷 고래를 쫓아다니며 결국 승자가 짝짓기를 한다는 점에서 사자의 짝짓기와 유사하다. 수컷 고래는 길게 물살 내뿜기, 지느러미 치기, 몸싸움 등 격렬한 대결을 거쳐서 승자를 가린다는 점에서 동물 세계의 약육강식을 보여주지만, 마음에 드는 짝을 쟁취하기 위해서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짝짓기와도 유사하다. 히트런이 끝난 후 짝짓기를 한 암수 고래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은 인간의 러브씬과 유사하다. 다가가는 모습, 함께 노니는 모습, 서로 나란히 움직이는 모습, 춤을 추는 모습, 똑같이 움직이는 모습, 평행 혹은 대칭으로 움직이는 모습, 키스하는 모습 등. 함께 추는 춤의 동일성, 평행성, 대칭성은 암수의 교감을 표현하고, 암수가 서로의 눈을 쳐다보는 모습, 몸이 밀착되는 모습은 사랑을 표현한다.
3. 향고래와 벨루가: 삶/죽음의 공생과 바다의 카나리아
<고래와 나>에서 향고래와 벨루가는 삶/죽음의 공생과 바다의 카나리아를 보여준다. 모리셔스 바다의 향고래는 소설 『모비딕』(허먼 벨빌)에 나오는 고래이며, 16m 45톤으로 지구상 현존하는 이빨고래 중 가장 거대한 고래이다. 향고래는 엄청난 갈색 액체(똥)로 수많은 플랑크톤에게 먹이를 공급하고, 1마리당 33톤의 이산화탄소를 가둔 채 바닥으로 떨어져 죽으며, 뼈를 통해 50년간 주변에 영양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거대한 숲과 같은 역할을 한다. 고래 박물관은 고래 지느러미뼈가 인간의 손뼈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같은 포유류이지만 여러 가지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바다로 들어간 사실을 증명해준다.
모리셔스의 향고래가 두 개의 모계사회를 이루며, 수컷이 외부에 있고 내부에 있는 암컷이 새끼를 낳아 기르는 구조를 보여준다. 향고래는 모계사회를 이룰 정도로 가족이나 사회의 개념이 있는 동물이라는 점에서 인간 사회의 모계사회와 유사성을 보여준다. 향고래가 잘 때 꼿꼿하게 서 있는 모습은 마치 인간이 서 있는 모습과 유사하며, 똑바로 서서 새끼 향고래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도 인간과 유사하다. 새끼를 지키려는 모성애, 3-4년마다 한 마리의 새끼를 낳는 것, 새끼를 10년간 키우는 것, 손위 형제들이 새끼 고래와 놀아주는 것 등 향고래의 특성은 인간과 유사하다. 이 영화에서 향고래는 암수가 다정한 눈길을 보내는 모습, 키스하며 사랑의 교감을 나누는 모습을 통해 『모비딕』에서 잔인한 동물로 묘사된 향고래의 이미지를 뒤집는다.
허드슨만의 벨루가는 동화 속 인형처럼 하얀 고래이다. ‘벨루가’는 러시아말로 ‘희다’라는 뜻이다. 벨루가는 북극에 사는 고래로서 8-15마리로 구성된 가족을 이룬다. 벨루가는 고래 중에서 가장 사교성이 좋으며, 소리를 내며 소통해서 ‘바다의 카나리아’라고 불린다. 인간이 타는 패들 보트 주위로 몰려들어 호기심을 보이는 모습은 천진난만하여 인간을 무장해제시킨다.
4. 북극곰과 보리고래: 지구 온난화로 인한 멸종과 쓰레기로 인한 비극적 죽음
<고래와 나>에서 북극곰과 보리고래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멸종과 쓰레기로 인한 비극적 죽음을 보여준다. 북극곰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빙으로 물개가 물 위로 나오지 않아 벨루가를 사냥하기 시작하지만 계속 실패하면서 생존 위기에 처한다. 인간의 환경 오염으로 인한 지구 온난화로 지구의 많은 생물이 죽기 시작한다.
고래는 바닷물을 한꺼번에 먹는 방식으로 섭취하기 때문에 물고기와 쓰레기를 함께 삼킴으로써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1살의 어린 보리고래 개체는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를 삼켜 좁은 식도를 통과하면서 죽게 된다. 고래는 바다의 숲 역할을 하지만, 인간은 바다를 오염시켜 고래 등 해양생물을 죽게 만든다. 은하계의 별이 1억 개인데, 인간이 바다에 버린 쓰레기는 171조 개이다. 상업어선에서 버리는 쓰레기, 특히 유령그물은 63빌딩 3개에 맞먹는 규모이며 해양 생물에게 떠다니는 지옥이 된다. 어업 도중 잡은 해양생물 30만 마리는 죽어 쓰레기로 버려진다.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 수많은 해양생물을 죽게 만든다.
5. <고래와 나>: 신비로운 동물 고래와 오만한 인간
<고래와 나>는 고래의 ‘공생’과 인간의 ‘탐욕’을 대비시킨다. 인간은 쓰레기, 온난화를 통해서 고래 등 해양생물을 죽이고 지구를 파괴하는 주범이다. 이 영화는 영화 전체에 걸쳐 고래와 인간의 유사성을 말하지만, 마지막에 가서 바다의 숲 역할을 하는 고래의 ‘공생의 삶’과 쓰레기 투척과 지구 온난화로 해양생물과 지구를 파괴하는 인간의 ‘탐욕의 삶’을 대비시킨다. 바다의 주인 고래와 땅의 주인 인간은 비슷하면서 다르다.
혹등고래의 노래, 향고래의 코다, 벨루가의 소리는 고래가 의사소통하는 지적인 동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잔인한 포획과 죽이는 행위를 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 고래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생명체이며 선한 본성을 가진 신비로운 동물이지만, 반짝이는 삶 뒤에 있는 비극적 죽음을 드러낸다. 죽은 향고래는 자연이 보내는 소리 없는 경고라는 점에서 인간의 파괴로 인한 죽음의 진실,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다. 4년간 한국에서 죽은 고래는 5,252마리이다. 고래는 넓은 장소에 대한 정보를 다음 세대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고래에게 벌어지는 일은 인간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경고장이다.
인간이 자연 및 고래 등 생물을 파괴하면 인간도 언젠가는 그 자연에서 살 수 없게 된다.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 삼가기,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서 현실적인 실천을 하기. 모든 생물이 주인인 지구를 파괴하는 악당 인간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실천을 해야 할 시기이다. 땅을 지키는 인간, 바다를 지키는 고래. 인간이 무슨 권리로 고래를 죽이는가?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 지구 특히 바다는 해양생물이 주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고래와 나> 포토
글·서곡숙
문화평론가. 현재 청주대 영화영상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 한국영화학회 학문후속세대양성위원회 위원장, 계간지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영화제, 대종상 등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