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중심주의, 비인간적 폭력의 그늘(3)
권력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권력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천 년 동안 전례 없는 변화와 격변이 이어졌고, 세계는 수많은 민족과 문화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은 여전히 극소수에 의해 독점되었으며, 그 구조와 목적 또한 거의 변하지 않았다. 물론, 최근의 서구 사회를 보면 법치국가가 확립되고, 권력이 민주화되었으며, 시민의 권리와 자유가 보장되고, 대다수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 변화가 있었는지는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여전히 많은 나라에서 이러한 성취는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며, 아직도 많은 사람의 삶은 실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또한, 가장 부유하고 발전한 국가들조차 사회적 통제와 감시 기법, 미디어를 통한 대중 조작 기술이 극도로 정교하고 효과적으로 발전하면서, 시민들은 스스로 복종하는 상태에 머물게 되었다. 한편, 19세기 이후 금융·산업·상업 자본주의를 지배해온 ‘강도 귀족(barons voleurs)’들은(3) 과거의 영주들을 대체하며, 더 공세적이고 지배적이며, 이전과 마찬가지로 무자비한 새로운 봉건 체제를 구축했다.
지배층의 공통된 특징, 철저한 경멸
권력과 부를 독점하는 지배층, 혹은 이에 편승하는 이들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바로 자신들과 다른 이들에 대한 깊은 경멸이다. 그들에게 대다수는 무지하고, 거칠고, 야위었으며, 더럽고 악취가 나고, 남루한 옷을 걸친 채 비위생적인 판잣집이나 오두막에 몰려 사는 존재에 불과했다.
이들을 형제로 여기기는커녕, 인간으로 대우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마치 그들의 비참한 처지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정당한 이유라도 되는 듯했다. 이러한 피해자들은 지난 천 년 동안 인류의 약 90%를 차지했다. 이들은 모든 대륙에 걸쳐 존재했으며, 시대에 따라 비율이 다소 변하기는 했지만, 본질적으로 큰 차이는 없었다.
세계 인구의 대다수, 즉 약 3분의 2는 아시아에서 살아왔다. 서기 1000년경에는 세계 인구의 65%가 아시아에 거주했으며, 2000년경에도 여전히 60%에 달했다. 반면, 유럽은 평균적으로 15%의 비율을 유지했지만, 19세기에만 일시적으로 25%까지 증가했다가 20세기에는 12%로 감소했다. 아프리카는 유럽과 비슷한 비율을 유지했으나, 19세기에는 10% 이하로 급감했다.
가장 큰 변화를 겪은 곳은 아메리카 대륙이었다. 1000년경 세계 인구의 5%를 차지했던 아메리카는 15세기에는 10%까지 증가했지만, 18세기에는 1.5%로 급감했다. 이는 유럽인의 침략과 원주민 학살의 결과였다. 이후 2000년경에 이르러서야 세계 인구의 15%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처럼 천 년이 지나도록 인류의 대다수는 아시아에서 살았으며, 유럽과 아프리카는 상대적으로 일정한 비율을 유지했고, 아메리카 대륙만이 역사적 사건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러한 수치는 권력자들의 시선 속에서 잊힌 이들이 결코 소수의 존재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사회적 조건, 시대와 장소 불문하고 비슷한 양상
오랜 세월 동안 출생률과 사망률, 특히 유아 사망률이 매우 높았으며, 평균 기대수명은 25~30세에 불과했다. 이러한 경향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부터였으며, 특히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변화가 더욱 뚜렷해졌다.
이 변화는 먼저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시작되었다. 출생률 감소보다 유아 사망률 감소가 먼저 이루어지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났고, 그 결과 20세기 한 세기 동안 살아간 인구수가 이전 7세기 동안의 총인구수와 맞먹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19세기까지 전 세계 인구의 80~90%는 농촌 지역에 거주했다. 이후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2000년경에는 세계 인구의 약 50%가 도시에 거주하게 되었다.(4)
그러나 농촌에서 살아가던 이들은 대부분 농민이었다. 그들은 경작과 가축 사육을 통해 생계를 유지했으며, 부차적으로 어업과 사냥에 의존했다. 비록 지역마다 지리적 환경과 기후 조건은 극도로 다양했지만, 역설적으로 사회적 조건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놀라울 만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착취당한 노동, 빼앗긴 결실
대부분의 경우, 농민들은 자신이 생산한 것을 자유롭게 소유하거나 사용할 수 없었다. 그들이 생산한 것의 절반에서 최대 3분의 2까지가 강제로 징수되었으며, 대부분 현물로 거둬졌다. 이러한 수탈은 지주, 성직자(세속·종교 귀족), 군주를 위해 이루어졌으며, 다양한 형태의 부역과 조세(지대, 세금, 공납 등)로 시행되었다.
대개 이러한 과정은 관리인이나 세금 징수인을 통해 집행되었는데, 이들은 잔혹하고 탐욕스러웠으며, 농민들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섬기는 주인들마저 속이며 개인적으로 부를 축적했다. 이러한 체제는 아시아 전역뿐만 아니라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농민들은 자신의 노동력과 지식 외에는 의지할 곳이 없었으며, 농업과 생산 기술을 유지하고 개선하며 스스로 발전시켜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이루어진 발전의 혜택은 결국 그들을 착취하는 소수 지배층으로 돌아갔다.
게다가 그들은 언제든 강제 노동에 동원될 수 있었다. 며칠, 몇 달, 심지어 몇 년 동안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한 노동에 투입되었으며, 그들이 지어야 했던 것은 요새, 성채, 성당과 사원, 성벽과 해자, 항구, 운하, 도로였다.
그뿐만 아니라, 산림을 개간하고 습지를 매립하는 일까지 맡아야 했으며, 이는 종종 극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강제적으로 수행되었다. 그들의 노동은 국가와 지배층의 부를 쌓는 데 쓰였지만, 정작 그들은 자신이 일군 결실을 자유롭게 누릴 권리조차 갖지 못한 채, 착취와 억압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보이지 않는 반쪽, 여성의 역사
그들 중 상당수는 더욱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대대로 주인의 소유물로 취급되는 노예와 농노들은 주인의 뜻에 따라 마음대로 부려지고, 가혹하게 학대당할 수 있는 존재였다.(5) 특정한 민족, 종교, 정치적 신념, 질병, 혹은 사회적 주변인이라는 이유로 특정 집단이 지역과 시대를 가리지 않고 박해를 받아왔다. 이교도, 무신론자, 배교자, 유대인, 불가촉천민, 이단자, 나병환자, 동성애자 등이 그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가장 가혹한 운명에 처해 있었던 이들은 바로 여성이었다. 여성들은 자신들과 같은 처지에 놓인 남성들에게조차 가차 없이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는 존재였다.(6) 대개 여성들은 사춘기 무렵부터 출산을 시작해, 평균 열 명의 아이를 낳았으며, 약 열여덟 달 간격으로 임신과 출산을 반복했다.
그렇게 낳은 아이 중 절반은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죽었고, 살아남은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오롯이 어머니의 몫이었다. 잦은 출산과 과로로 여성들은 서른 살도 되기 전에 몸이 망가지거나, 심지어 출산 중 목숨을 잃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아이들을 먹이고 키우는 일뿐 아니라, 불을 지피고, 집안을 돌보고, 물을 길어오는 일도 여성들의 책임이었다. 여기에 더해, 농사일과 가축 돌보기, 마을 공동 노동에도 동원되었으며, 틈틈이 방적과 바느질, 자수 같은 손일을 하며 까다로운 주문을 맞추고 보잘것없는 대가를 받는 일까지 감내해야 했다.
착취의 굴레에 내몰린 아이들
아이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다섯 살이 되자마자 학교가 아닌 일터로 내몰렸으며, 사실 천 년의 역사 동안 대부분의 지역에서 학교라는 것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린 나이에 가혹한 노동 훈련을 받았고, 나이 많은 이들의 권위에 무조건 복종해야 했으며, 때로는 가족과 떨어져 남의 집에 머슴으로 보내지거나, 심지어 돈을 받고 팔려나가는 경우도 흔했다.
아이들은 성인이 되기 훨씬 전부터 어떤 일이든 시키는 대로 해야 했고, 여자아이들이라고 해서 사정이 더 나을 것도 없었다. 이 아이들은 산업화 시대에 접어들면서도 여전히 착취의 대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두 세기 동안 수많은 아이가 광산과 방직 공장, 대규모 농장에서 일했고, 20세기가 끝날 무렵에도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3억 명에 달하는 아동들이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농촌에서 쫓겨나 도시 빈민층으로 내몰렸으며, 공장과 비좁은 도시 노동 환경에 갇혀 이전 세대보다 더 나은 삶을 누리지 못했다. 오히려 더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야 했으며, 그나마 오랜 투쟁 끝에 가까스로 쟁취한 몇 가지 권리조차 언제든 되돌려질 위험 속에 있었다.
배제된 90%의 사람들, 이들이 역사의 주역
역사를 모르는 자는 결국 그것을 반복하게 된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더욱 주의 깊게 역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역사는 사건들의 단순한 나열로 다뤄졌으며, 권력자들에게 고용된 학자들은 이를 토대로 원하는 대로 이야기를 엮어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역사 서사는 지배층을 찬양하는 영웅 서사로 채워졌으며, 이후에는 국가의 영광을 미화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 속에서 진정한 주역이었던 90%의 사람들, 즉 서민과 가난한 자들, 겸손하게 살아가던 대다수의 인간은 완전히 배제되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역사는 영웅적 서사에서 벗어나 보다 과학적인 연구로 나아가려 했지만, 과거의 인류가 어떤 조건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온전히 이해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글·크리스티앙 드 브리 Christian de Brie
언론인
(3) 하워드 진, 「강도 귀족들의 시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2년 9월.
(4) 조르주 뒤비, 아르망 왈롱 (편), 『프랑스 농촌의 역사』, 스이유, 파리, (초판: 1975~1977), 1982, 포앵츠 시리즈, 1996~2018.
(5) 마르탱 모네스티에, 『노예 아동: 3억 명 어린이들의 일상 지옥』, 르 셰르슈 미디, 파리, (초판: 1978), 1998.
(6) 아를레트 파르주,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 (편), 『서양 여성의 역사』, 제3권, 16~18세기, 플롱, 파리, (초판: 1991),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