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진정한 계몽 영화, 에바 두버네이의 <셀마>와 <미국 수정헌법 제13조>

2025-04-28     김채희(영화평론가)

 

0. 흑인 영화의 선구자들

  오스카 미쇼(Oscar Devereaux Micheaux)는 프랑스식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위그노(프랑스 개신교) 출신이 고용했던 노예의 후손이었다. 1884년생인 미쇼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교육받은 흑인이었으며 일곱 권의 소설을 집필한 작가였다. 그가 1918년 출간한, 어머니에게 바친 소설 『정착민 The Homesteader』은 최초의 흑인 영화제작사인 링컨 모션 픽처 컴퍼니(Lincoln Motion Picture Company)의 관심을 끌었지만 자신이 직접 각색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영화화는 좌절되었다. 미쇼는 이에 굴하지 않고 직접 제작사(Micheaux Film & Book Company)를 차려 1919년 이 소설을 각색해 동명의 영화로 개봉했다. 1951년 사망한 미쇼는 1948년까지 43편의 영화를 연출한 흑인 영화(Black Film)의 선구자였다.

  최초의 흑인 여성 감독은 연구자들마다 각기 다른 근거로, 여러 인물들을 내세우지만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존재는 트레시 사우더스(Tressie Souders)이며 그녀는 1922년 <여성의 실수 A Woman’s Error>라는 작품을 연출했다. 이 사실은 같은 해 1월 28일자 빌보드 매거진이 “<여성의 실수>는 흑인 여성이 제작한 최초의 영화이고, 비평가들로부터 흑인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라는 홍보 기사를 게재함으로써 증명되었다.

  1950년대 이전까지 흑인 감독들은 주거주지였던 남부에서 소규모로 개봉되었던 일명, 인종영화(Race Film)를 제작하면서 흑인 영화의 명맥을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1970년대 초반 고든 팍스(Gordon Parks)의 <샤프트 Shaft>(1971), 멜빈 밴 피블스(Melvin Van Peebles)가 연출한 <스위트 스윗백의 배드애스 송 Sweet Sweetback's Baadasssss Song>(1971) 등으로 촉발된 블랙스플로이테이션(Blaxploitation)이 득세하면서 흑인 영화가 잠시 붐업되었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여전히 게토를 벗어나지 못했다. 진정한 흑인 영화는 스파이크 리(Spike Lee)와 윌리엄 그리브스(William Greaves)를 통해서 시작되었다. 1971년 그리브스가 연출한 시네마 베리테 스타일의 메타 실험 영화 <심바이오사이코택시플라즈마: 테이크 원 Symbiopsychotaxiplasm: Take One>은 배급사를 찾지 못해 20년 넘게 잠들어 있다가 1991년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관객에게 선보였고 당시 이 작품을 관람한 후 팬이 된 배우 스티브 부세미(Steve Buscemi)의 추천으로 이듬해 선댄스에서 상영되었다. 그리브스는 영화 산업 바깥에서 약 100여 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으며, 흑인 영화감독 명예의 전당(BFHFI)에 등재되었다. 그의 작품 <심바이오…>는 2015년 문화적, 역사적, 미학적으로 중요한 영화로 간주되어 미 의회의 국립영화등록부에 영구보존하도록 조치되었다.

  1970년대 이후, 흑인 남성 감독들이 미국 영화계에서 어느 정도 지분을 확보한 것과 달리, 흑인 여성 감독들의 활약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다양한 분야의 스탭으로 활동하긴 했지만 오랜 기간 백인들의 독무대였던 영화계에서 타자 중에 타자로 취급받던 흑인 여성이 감독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입지는 거의 전무했다. 흑인 여성 감독들이 전면에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이후였다. 줄리 대시(Julie Dash)는 UCLA 영화과에서 흑인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MFA 학위를 받았으며 그녀가 연출, 각본, 제작을 맡은 <먼지의 딸들 Daughters of the Dust>(1991)은 미국 전역에서 개봉된 최초의 흑인 여성 감독의 장편 영화로 기록되었다. 20세기 초,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세인트헬레나 섬에 살던 흑인 노예의 후손들을 그린 이 작품은 뛰어난 영상미, 크레올(Creole)의 일종인 굴라(Gullah)어 사용, 비선형적인 서사 구조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선댄스에서 촬영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2004년 의회도서관에 공식 기록물로 등재되었다. 1996년 세릴 두네이(Cheryl Dunye)가 연출한 <수박 여인 The Watermelon Woman>은 흑인 레즈비언 여성이 '수박 여인(Watermelon Woman)’의 정체를 찾아가는 코미디 작품이다. 비디오 가게에서 친구 타마라와 함께 일하던 세릴은 가상의 영화 <플랜테이션 메모리즈 Plantation Memories>에서 유모 역을 맡은 흑인 여성이 본명 대신 수박 여인이라는 기이한 별칭으로 크레딧에 오른 것을 목격한 이후, 이 여인의 정체를 추적한다. 멜빈 밴 피블스의 <수박 남자 Watermelon Man>(1970)의 제목을 패러디한 이 작품은 1996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LGBT 부문의 최우수상에 해당하는 테디상을 받았으며, 위 두 작품과 더불어 미 의회 도서관에 공식 보관되었다.

  이들 외에도 <파리아 Pariah>(2011), <치욕의 대지 Mudbound (2017), <마지막 게임 The Last Thing He Wanted>(2020)을 연출했던 디 리즈(Dee Rees /Diandrea Rees), <피플즈 Peeples>(2013), <리틀 Little>(2019). <프레이즈 디스 Praise This>(2023)와 같은 코미디 장르에 특화된 티나 고든 치즘(Tina Gordon Chism) 등이 최근 영화계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흑인 여성감독들이다. 오늘날에는 TV, OTT, 케이블 채널, 독립 영화, 할리우드를 오가면서 역량을 떨치고 있는 다수의 흑인 여성 감독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버나드 로즈(Bernard Rose)의 1992년 공포 영화 <캔디맨 Candyman>의 시퀄(<Candyman>(2021)을 선보인 후 마블 유니버스의 블록버스터 <더 마블스 The Marvels>(2023)로 주목받았던 니아 다코스타(Nia DaCosta)라고 할 수 있다. 다코스타를 포함한 대부분의 흑인 여성 감독들은 주인공을 흑인으로 내세우고 인물 주변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지만, 스파이크 리, 마리오 밴 피블스(Mario Van Peebles/멜빈 밴 피블스의 아들), 존 싱글턴(John Singleton), 라이언 쿠글러(Ryan Coogler), 베리 젠키스(Barry Jenkins)와 같은 흑인 남성 감독들처럼 차별과 인권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표출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에바 두버네이( Ava DuVernay)는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서 출발해 불평등과 혐오를 조장하는 제도로 시선을 돌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넘나들면서 관객에게 소구하려 한다. 어쩌면 두버네이는 스파이크 리의 동료이자, 마틴 루터 킹과 말콤 X의 동시대적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1. 에바 두버네이의 변천사

 

 

  1972년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태어난 두버네이는 대선배 오스카 미쇼처럼 크레올 출신이다. 선대에 백인의 피가 섞인 혼혈이지만 아프로-아메리칸에 대한 듀버네이의 자부심은 투철하다. 어머니가 친부와 일찍 이혼한 이후, 의부와 함께 살았던 두버네이는 어린 시절 그의 고향으로 떠났던 여행에서 강렬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의부는 청년기 무렵인, 1965년 흑인 인권 운동의 이정표가 된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의 행진을 목격한 당사자였다. 그는 여행 내내 자신이 겪었던 흑인들의 자유와 평등을 향한 열기를 어린 듀버네이가 느낄 수 있도록 친절하게 묘사했다. ‘셀마-몽고메리 행진’으로 알려진 이 운동은 앨라배마주 셀마에서 주도 몽고메리까지 87km(54마일)에 달하는 고속도로를 따라 열린 세 차례의 퍼포먼스를 지칭한다. 이 행진은 인종 차별에 저항하고 헌법상의 권리인 투표권을 행사하고자 했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열망을 보여주기 위해 거행되었다. 이 퍼포먼스가 실효를 거둔 것은 행진을 중계했던 TV 덕분이며 흑인들 대열에 참여한 백인 성직자가 백인 폭도들에게 살해당한 사건의 여파가 크게 작용했다. 성년이 되어 대학에 들어간 두버네이는 영문학과 아프로-아메리칸을 연구하는 민속지학을 복수전공한 이후 CBS 뉴스 프로그램의 인턴으로 사회에 발을 들여놓았다. 당시 그녀가 속했던 부서는 OJ 심슨 사건을 담당했는데, 두버네이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마치 연예 기사 다루듯 한 형태에 실망을 느끼고서 영화 마케팅으로 눈을 돌렸다. 몇 년 동안의 노력 끝에 두버네이는 199년 ‘DuVernay Agency’라는 영화 홍보사를 차려, 마이클 만의 <콜래트럴 Collateral>(2004), 애니메이션 <슈렉 2 Shrek 2>(2004), 비욘세가 주연했던 <드림걸스 Dreamgirls>(2006) 등 굵직한 작품들의 홍보를 맡으면서 업계에서 인정받는 위치로 올라선다. 그녀는 에이전시를 운영하면서 미국 곳곳에 산재한 아프로-아메리칸 미용실과 이발소를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사업을 런칭하여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두버네이는 2005년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6천 달러를 들여 어머니의 실제 경험담에 근거한 12분짜리 단편, <Saturday Night Life>를 연출했으며 이 작품은 단편 영화제 서킷을 순회한 끝에 쇼타임에서 방영되었다. 연출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두버네이는 2008년 힙합 다큐멘터리 <This is the Life>를 통해 장편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 작품 역시 수많은 영화제를 순회한 끝에 몇 차례 관객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후 몇몇 힙합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그녀는 2010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커다란 고난을 겪은 흑인 자매가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Essence Presents: Faith Through the Storm>을 제작했고 이 작품은 추수감사절에 아프로-아메리칸 방송사인 TV One에서 송출되었다. 2011년, 두버네이는 5만 달러를 들여 14일 만에 첫 번째 피처 필름(극장 개봉용 장편 극영화)인 <아이 윌 팔로우 I Will Follow>를 완성했으며 이 작품으로 시카고 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었다. 이 작품 제작 이후 홍보업에서 완전히 손을 뗀 두버네이는 본격적으로 영화의 세계로 접어들게 된다.

 

2. <셀마>, 신화와 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다.

 

  두버네이가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에 관한 영화를 제작하게 된 계기는 다양했지만, <셀마 Selma>(2014) 이전까지 킹 목사에 집중한 극영화가 단 한 편도 없었다는 이유도 한몫했다. 할리우드의 두 명장, 시드니 루멧(Sidney Lumet)과 조셉 L. 맨키비츠(Joseph L. Mankiewicz)는 킹 목사 사망 이후, 그가 했던 연설과 뉴스 푸티지를 활용해 <킹: 필름에 담긴 기록…몽고메리에서 멤피스까지 King: A Filmed Record… Montgomery to Memphis>(1970)를 제작했는데, 이 작품은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아직도 킹 목사에 관해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간주한다. 케이블 플랫폼 HBO에서 제프리 라이트(Jeffrey Wright)를 기용해 제작한 <보이코트 Boycott>(2001)라는 드라마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로자 파크스(Rosa Parks)로 인해 촉발된 ‘버스 보이콧’ 사건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본격적인 킹 목사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었다. 킹 목사를 다룬 수많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는 그의 감동적인 연설과 행동을 부분적으로만 도입했다. 킹 목사가 사망한 지 50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그에 대한 피처 필름이 부재했던 이유는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킹의 영웅적 행동만을 부각한다면 수박 겉핥기라고 비판받을 것이고 일각에서 제기한 킹의 탐욕과 추문까지 재현한다면 신화를 무너뜨렸다는 이유로 큰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 명약관화해 보였다. 그렇다면 듀버네이는 과연 이를 어떻게 돌파했을까?

 

 

  영화는 킹이 당시 기준 최연소(35세)의 나이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던(1964년 10월 14일) 그날에서 출발한다. 시상식장으로 향할 준비를 하던 킹은 부인 코레타에게 말쑥하게 차려입은 자신의 모습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두버네이는 식민주의를 통해 인종 차별을 자행해 온 백인들이 제정한 상을 받으면서 킹이 느꼈을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이 한 마디의 대사로 압축한다. 영화는 노르웨이 국왕이 직접 메달을 수여하는 시상식을 짧게 보여준다. 그런 이후 교회 계단을 내려오다가 폭탄 테러를 당해 4명의 소녀가 사망한 장면을 프레임 수를 늘려 슬로우 모션으로 묘사한다. 어찌 보면 아찔할 정도로 아름답게 표현된 이 장면은 1963년 9월 15일, KKK 단원들이 앨라배마주 버밍햄의 한 교회에서 자행한 폭탄 테러를 재현한 것이다. 당시 킹은 이 사건을 접하자마자 한달음에 달려가 추도식을 맡았다. 실제 일어난 사건을 선형적으로 배치하면, '테러발생-노벨평화상 수상’의 순서였지만 두버네이는 ‘노벨평화상-테러 발생’이라는 역전적 구성으로 장면을 재배치한다. 한편 두버네이는 킹의 노벨상 수락 연설("목숨을 바쳐 우리의 길을 닦아준 분들을 대신해 이 명예를 수락합니다. 존엄성에 고무된 2천만 명이 넘는 미국 흑인을 대신해 이 명예를 수락합니다.") 중 일부를 발췌하여 내레이션으로 구성하고 이 내레이션을 노벨평화상 장면과 테러 발생 장면을 아우르는 사운드 브릿지로 연결하는데, 이는 마치 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면서 1년 전에 있었던 비극적인 사건을 플래시백으로 회상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유도한다. 두버네이의 전략은 일반적인 플래시백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서, 관객이 능동적으로 킹의 심리를 추적하게 하며 두 사건의 연관성을 떠올리도록 추동한다.

 

 

  <셀마>는 킹에 관한 영화지만, 두버네이는 역사적인 사실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 사이에 킹의 반응을 삽입하는 전략을 취하면서 킹이 이 사건들을 대하는 관점을 드러내 보인다. 법적으로 참정권을 획득했지만, 앨라배마 주정부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흑인들의 투표권을 제한한다. 극 중 오프라 윈프리가 맡은 애니 리 쿠퍼(Annie Lee Cooper)는 투표권 획득 운동의 기폭제가 된 인물이었다. 두버네이는 흑인들이 봉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폭탄 테러 장면 직후에 쿠퍼의 에피소드를 넣는다. 영화 속에서 쿠퍼는 유권자 등록을 위해 해당 부서를 찾지만 백인 관료는 “헌법 전문(前文)을 외워보라, 앨라배마 판사가 모두 몇이냐?”라는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하며 그녀의 권리를 묵살한다. 셀마-몽고메리 행진 도중 자신을 곤봉으로 폭행한 주보안관 짐 클라크의 뺨을 때린 행위로 살인 혐의 기소 협박까지 받았던 쿠퍼의 실제 에피소드에서 두버네이는 폭력적인 장면을 제거하고, 투표권 요구 시 거의 모든 흑인이 당했던 일반적인 상황만 극화해서 넣는다. 그녀가 이러한 전략을 선택한 이유는 <셀마>가 폭력적인 스펙터클로 소비되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장면이 바뀌면 킹이 존슨(Lyndon B. Johnson) 대통령을 만나 투표권을 보장해달라는 부탁하지만, 존슨은 가난과의 전쟁이 더 급선무라며 그의 청원을 거절한다. 다음 장면은 킹이 백인 전용 호텔에서 백인에게 폭행당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두버네이는 ‘킹의 노벨평화상 수상-폭탄 테러-투표권 요구 거부-킹의 청원에 대한 존슨의 거부-폭행당한 킹’으로 이어지는 장면을 연속적으로 병치하면서 흑인들의 요구가 정당하며 미국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라는 관객에게 사실을 상기시킨다. 한편, 두버네이는 일련의 사건 속에서 킹의 영향력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FBI가 집요하게 공작을 꾸미는 장면을 간헐적으로 삽입한다. FBI는 킹이 여러 여성과 통정했다는 정보를 부인 코레타에게 흘려 부부 사이를 이간질하고 이 때문에 킹 부부 사이는 갈수록 나빠진다. 킹은 코레타와의 갈등 이후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가스펠 가수 마할리아 잭슨(Mahalia Jackson)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Take My Hand, Precious Lord’를 불러달라고 요청한다. 그녀가 노래를 부르는 쇼트는 킹이 행진을 준비 중이던 동료들과 대면하는 쇼트로 이어진다.

 

“사랑하는 주님. 제 손을 잡아주세요. 저를 집으로 인도해주세요. 제가 서 있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제가 힘들고 약하고 지쳤을 때, 폭풍우와 밤을 지나서 저를 빛으로 인도해 주세요.”

 

  두버네이는 노벨 평화상 수락 장면과 폭탄 테러 장면을 연결하면서 내레이션으로 사운드 브릿지를 시도한 기법을 잭슨의 노래로 반복한다. 앞의 사운드 브릿지가 플래시백의 성격을 띠고 있다면, 뒤에 등장한 기법은 현재 벌어진 사건으로 인해 고통받는 킹의 심정을 대변한다. 두버네이는 킹의 추문에 얽힌 사실 관계에 관해 판단 유보하면서, 이를 관객의 몫으로 둔다. 그녀가 취한 중립적인 태도는 킹의 위인적인 면모를 재현하는 장면들뿐만 아니라, 존슨 대통령과의 정치적인 거래, 킹의 인간적인 면모를 재현하는 시퀀스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이와 같은 두버네이의 전략은 마틴 루터 킹이라는 흑인 지도자의 전체적인 윤곽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셀마>는 리얼리즘에 입각한 킹에 대한 정밀화가 아니라 스케치면서 풍경화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그녀의 전략은 진실을 원하는 관객과 킹을 반석 위에 올려놓으려는 사람들 모두에게 적당히 소구하지만 동시에 양측 모두를 불만족스럽게 만든다.

  트레이본 마틴(Trayvon Martin)이라는 17살 난 흑인 소년이 살해된 사건을 계기로 2013년 소셜 미디어에서 시작된 ‘Black Lives Matter’의 격랑 속에서 개봉한 이 영화를 통해 두버네이는 영화사 최초로 킹의 전기를 서사로 구성했다. 어쩌면 이는 의미 있는 시도였지만 동시에  위험한 목표였다. 킹과 다른 노선을 견지했던 <말콤 X>에 관한 극영화가 나온 것은 <셀마>가 개봉되기 20여 년 전인 1992년이었다. 과격한 이슬람교도였던 말콤 X를 극화하는 일은 킹을 서사화하는 작업보다 훨씬 덜 어려운 작업일 수 있다. 말콤 X에 관한 이야기는 킹의 그것보다 비교적 대중적 주목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스파이크 리가 그를 반석 위에 올리거나, 기존의 평판보다 더 끌어내리더라도 대중은 크게 개의치 않을 수 있다. 간직해야 할 것이 많은 신화적 인물에 비해 말콤 X와 같은 반 영웅은 서사화 자체에 의미가 있으므로, 스파이크 리는 두버네이보다 훨씬 자유로울 수 있었다. 킹의 서사화를 둘러싼 족쇄는 두버네이로 인해 풀렸다. 이제 킹을 사랑하는 누군가는 그를 더욱 아름답게 극화하려 할 것이며, 진실을 추적하는 영화계의 매버릭들은 어둠 속을 질주하려 들 것이다. 두버네이의 <셀마>는 그런 의미에서 양쪽 모두에게 자극을 준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3. <수정헌법 13조>, 인종차별의 정치·경제적 이유를 폭로하다.

  두버네이는 여러 차례 성장했다. 의부와 동행했던 여행에서 ‘행진’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그녀는 아프로-아메리칸의 삶을 연구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미디어의 중요성을 간파한 그녀는 방송국의 인턴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중요한 사건을 연예 기사처럼 가십으로 다루는 행태에 실망하여 영화 홍보일과 흑인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사업으로 눈을 돌린다. 이후 힙합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일에 몰두하던 두버네이는 우연한 계기로 어머니와 이모의 이야기를 극화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집중하게 된다. 가까운 지인들 그리고 함께했던 동료들이 처한 현실을 다시 한번 환기시킨 Black Lives Matter 운동을 계기로 그녀는 드디어 역사로 관심사를 옮긴다. 그리고 흑인 인권 운동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마틴 루터 킹에 관한 최초의 극영화를 제작함으로써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많은 사람들은 두버네이의 예술 여정이 여기에서 멈추지 않길 바랐다.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듀버네이는 짧은 시간에 다시 한번 도약한다. <수정헌법 13조 13th>(2016)를 통해 그녀는 미국에서 여전히 자행되는 인종 차별 문제를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탐구한다.

 

 

2014년 기준 미국 인구는 대략 3.2억 명. 이는 전 세계 인구의 5%에 해당한다. 그런데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는 230만 명으로, 전 세계 수감자 대비 25%에 달하는 엄청난 수치를 기록한다. 그렇다면 미국은 범죄의 왕국인가? 두버네이는 이 질문으로 <미국 수정헌법 13조>를 시작한다. 하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1970년 미국 인구는 2억 3천만 명, 재소자는 35만 명이었다. 1980년에 인구는 2억 6천만 명으로 늘었으며 재소자는 50만 명을 넘어섰다. 그리고 1985년에 76만 명, 1990년에 1백만을 넘긴다. 2000년에는 십년 전에 비해 두 배로 늘어나 200만 명을 넘겼으며 이 때 인구는 2.8억 명이었다. 45년 동안 인구가 30% 증가하는 동안 재소자 수는 600% 넘게 상승한 것이다. 이 기간에 미국인들은 그 전시대에 비해 더 포악해졌을까? 아니면 미국의 판사들과 법률이 그 전에 비해 훨씬 더 엄격해진 것일까? 해답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범산복합체(prison industrial complex)를 운영하는 미국의 정책에 있다. 그런데 이 범산복합체를 실제로 움직이는 동력은 인종차별이다. 2014년 기준 미국 흑인 남성은 인구의 6.5%만 수감자는 전체의 40.2%를 차지한다. 대략 미국 흑인 남성 15명 중 1명은 교도소에 수감 중인 셈이다. 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두버네이는 초현실적인 상황을 이해하기 위하여 비영리단체를 표방하는 알렉(ALEC/American Legislative Exchange Council/미국입법교류협회)의 정체를 파고든다. 알렉은 실제로 미 의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단체로써 여기에는 월마트를 비롯한 다수의 대기업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알렉은 로비 단체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이들은 정치인을 후원하는 기업들을 대신하면서 그들의 이익에 유리한 법을 입안하도록 정부에 압력을 넣는다. 알렉으로 인해 중범죄 3번을 저지르면 참정권을 박탈되는 3진 아웃 제도, 총기 사용을 부추기는 강화된 정당 방위법이 제정되었다. 검찰은 형량을 감해주는 조건으로 피의자에게 기소를 받아들이라고 권하는데, 이때 대부분의 가난한 흑인 범죄 용의자들은 이를 수용한다. 왜냐하면 검찰의 제안을 거부했을 때, 감당해야 할 엄청난 후폭풍이 두려울 뿐만 아니라 막대한 소송비용을 가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점점 불어나는 재소자로 인해 정부가 운영하는 교도소로는 감당이 되지 않자, 이를 보충할 사설 교도소(CCA/Corrections Corporation of America/미국 교정 공사) 사업이 번창한다. 교도소에 급식을 담당하는 업체 역시 이득을 취하며 재소자가 지인들과 10분 통화를 위해 1시간 반을 일해야 감당할 수 있는 비싼 비용은 통신 업체를 살찌운다. 이래저래 범산복합체라고 불리는 업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득을 취한다. 빅토리아 시크릿이나 JC 페니와 같은 의류 업체도 범산복합체의 일원이다. 이 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의 일부도 재소자들의 값싼 노동력을 착취해서 세상에 선보인다. 한편 정당방위법이 강화되면서 총기 사용이 늘어나자, 총알을 판매하는 월마트의 수입은 올라가고 주가는 폭등한다. 알렉이 입안했던 85퍼센트 최소 수감법(중범죄자는 어떤 경우에도 형기의 85퍼센트를 채우지 않으면 가석방을 불허하는 제도)으로 인해 재소자들의 복역 기간을 늘어나고 범산 복합체를 떠받치는 그들의 사회로의 복귀는 점점 어려워진다. 이외에도 미국의 28개 주에서 넘치는 재소자를 통해 돈을 번다. 아이다호에 생산된 감자, 각종 스포츠 용품, 유니폼, 모자, 심지어 마이크로 소프트와 보잉사의 부품까지 재소자를 착취해 생산된다. 정치인들은 일반 시민들이 가진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해 범산복합체에게 정당성과 동력을 부여한다. 닉슨이 시작한 범죄와의 전쟁, 레이건이 이를 모방해 선포한 마약과의 전쟁 중에 남부의 백인들은 대거 공화당에 입당했으며 보수주의자들은 선거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다. 보수주의 대통령들이 선포한 다양한 ‘전쟁’으로 인해 백인 남성이 일생 중 5.8%의 확률로 교도소를 경험하는 동안 흑인 남성은 사는 동안 3명 중 1명 수감된다. 흑인 재소자의 폭발적 증가의 원인이 보수주의자들의 정치·경제적인 이익 추구 때문이라고 주장하고자 했던 두버네이는 The roots의 ‘criminal’이란 곡의 가사를 사운드 브릿지로 활용하면서 다음 시퀀스로 이동한다.

 

I can see it‘s all about cash And they got the nerve to hunt down my ass And treat me like a criminal (나는 그것이 모두 돈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 그들은 뻔뻔하게도 나를 사냥하면서 범죄자처럼 대하지.)

 

  이어지는 시퀀스에는 현재 전 세계를 관세 정책으로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트럼프가 등장한다. 두버네이는 2016년 대선 캠페인 도중 트럼프가 발언했던 내용 중 일부를 몽타주한다.

 

“그 쓰레기는 치워버리지 그랬나? 놈을 당장 쫒아내. 아주 좋았던 지난날엔 그러지 않았잖아요. 저들을 아주 가혹하게 다뤄줬거든요. 한번 당하고 나면 다시는 그러지 못하도록 말이죠. 얼굴을 한 방 갈기고 싶군요.”

 

  이때 실제로 흑인 폭행을 다룬 다양한 푸티지가 병치되고 대선 후보였던 트럼프의 목소리가 사운드 브릿지 역할을 하면서 이 화면들을 이어 붙인다. 흑인 폭행 몽타주 다음 쇼트에 등장한 트럼프는 폭력과 차별을 선동하는 언어를 여과하지 않고 쏟아낸다.

 

“저는 옛날이 좋아요. 이런 장소에서 저런 행동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흑인 집회 장면) 그땐 바로 들것에 실려 나갔어요. (백인 남성이 등장하는 장면) 저 수다쟁이 흑인 녀석 좀 치워요. 다음에 또 보게 되면 내가 죽여 버릴지도 몰라요. (트럼프 장면) 그리운 지난날엔 (흑인 저항 운동 장면) 저 자리에서 바로 그놈들을 끌어냈죠.(경찰이 흑인들을 끌어내는 장면, 백인들이 흑인을 집단 린치하는 장면, 흑인에게 욕하는 백인들의 몽타주) 그리운 지난날에는 (트럼프 얼굴 클로즈 업) 법 집행이 지금보단 훨씬 빨랐어요.”

 

  이윽고 대미를 장식하는 트럼프.

 

I’m the law and order candidate (저는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후보자입니다).

 

  트럼프는 혐오와 증오 그리고 공포를 뒤섞어 표를 얻고 집권에 성공했다. 실정을 거듭해 낙선한 그는 지지자들을 선동해 의사당 난입을 독려했다. 두버네이는 이 단순한 선동 정치의 회로를 탁월한 몽타주와 사운드 브릿지를 통해 여실히 보여준다. 선동가라는 뜻을 지닌 영단어 demagogue는 '사람들 혹은 대중'을 뜻하는 dêmos 뒤에 '지도하다, 안내하다'를 의미하는 agōgós가 붙은 dēmagōgós라는 그리스어에 기원을 두고 있다. 19세기 미국 작가 제임스 쿠퍼(James Cooper)는 선동가란 ‘폭도들의 지도자’라고 정의했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치는 지도자에 의해 자행된 초강대국에서의 선동의 과정과 결과는 <미국 수정헌법 13조>에 명징하게 드러난다. 계몽(啓蒙/Enlightenment)은 바른 생각을 가지도록 깨우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계몽은 선동으로 국민을 어둠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영혼에 빛을 비추는 행위이다. 차별과 분열을 조장하고 혐오와 공포를 부추기는 자, 그는 우리를 어둠에 가두려는 자임이 분명하다. 전 세계 수많은 트럼프들은 모두 비슷한 정치 회로를 돌려 대중을 선동한다.

 

4. <셀마>와 <수정헌법 13조>의 독해법과 영화의 쓸모

 

 

  <셀마>와 <수정헌법 13조>는 러닝 타임이 각각 2시간 8분과 1시간 40분이다. 하지만 나는 최소한 10배 이상의 시간을 들여 영화를 보았다. 처음에는 감독이 편집한 순서대로 끊지 않고 관람했고 이후에는 인터넷과 관련 서적을 뒤적거리면서 작품 속에서 거론된 인물, 역사적 사건을 추적하면서 탐구하듯 보았다. 고백컨대 나는 마틴 루터 킹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가 1963년 워싱턴 D.C.에서 했다던 ‘I Have a Dream’은 수능 독해집에서 발췌된 문장으로만 접했다. 흑인 인권 운동을 하다가 암살당했다는 사실과 그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라는 것이 내가 킹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나는 <셀마>를 보면서 셀마-몽고메리의 행진에 대해서 찾아봤고, 흑인들의 투표권에 반대했던 앨라배마의 주지사, 조지 월러스(George Wallace Jr.)의 정체를 궁금하게 여기게 되었다. 흑인들의 인권을 철저하게 무시한 월러스가 네 번이나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며, 말년에는 그가 과거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면서 흑인들에게 용서를 빈 사실도 <셀마>를 관람한 이후에 알 수 있었다. 수정헌법 13조가 공식적으로 노예 제도를 폐지하고, 범죄자를 제외하고서 비자발적인 예속을 금지하기 위해 제정되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으며, 스파이크 리가 <4 Little Girls>를 제작한 이유 역시 알게 되었다. 나는 또한 킹 이외에 앤드류 영(Andere Young), 존 루이스 (John Lewis), 짐 클락(Jim Clark)이 흑인 인권 운동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하게 되었다. <미국 수정헌법 13조>에 사운드 브릿지로 쓰인 수많은 힙합의 가사를 통해 여전히 흑인이 마주한 차별에 통감했으며, 범산복합체라는 산업의 목적도 알게 되었다. 한편, 보수주의 대통령들이 선포한 다양한 종류의 전쟁의 원인과 그 결과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2시간 가까이 감독이 축조한 디제시스에 몰입해 시간 여행을 경험하며, 때로는 영화가 그리는 내용 속에 자신을 투영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감독이 설계한 아름다운 미로와 이미지의 향연 속을 헤매면서 예술의 미적 합목적성에 동화되기도 한다. <셀마>와 <미국 수정헌법 13조>는 전술한 영화와는 다른 결을 지닌 작품들이다. 나는 무지, 무관심 혹은 공감의 편파성으로 인해, 그 동안 비정하게 돌아가는 이 세계의 원리에 대해서 눈을 감았다. 두버네이는 이 세계가 돌아가는 정치·경제적인 이유 그리고 선동가들이 하는 혐오, 차별, 분노의 언어가 대중의 공포와 결합되어 빚어지는 비극을 그린다. 그러므로 그녀의 작품은 진정한 의미에서 계몽을 꿈꾸면서, 그 동안 외면했던 대한민국의 수많은 두버네이와 그들의 영화에 관심을 가지도록 이끈다.

 

 

글·김채희
영화평론가, 부산대 영화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