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국의 문화톡톡] 장미-가시 그리고 변곡점

2025-05-05     최양국(문화평론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해방의 날’ 행사를 열며 약 60여 교역국에 대한 ‘상호 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했다. ~(중략)~. 전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이 일부 국가와 품목을 넘어 모든 수입품에 대해 전면적인 관세를 부과키로 함에 따라 ‘트럼프 관세 발(發) 관세 전쟁’이 글로벌 수준으로 확대되게 됐다. 유럽연합(EU)을 비롯해 주요 국가들이 보복 조치 방침을 밝히면서 그동안 미국이 주도해 온 자유무역 기반의 국제 통상 질서도 급격하게 변화할 전망이다.

- 매일경제(2025년 4월 3일) -

계절을 해방하는 꽃의 모든 것. 푸른 달을 유혹하는 시간의 부름을 듣는다. 햇살과 바람을 만나며 색과 형태가 떨린다. 색과 형태의 언어로 다가온 사유의 기호를 그린다. 쌓여가는 복잡계를 상징하는 나선형의 생명력으로 열린다. 아름다움과 고통, 기쁨과 질투, 삶과 죽음의 이중 구조로 호흡하며 장미는 피어나고, 가시는 돋아난다. 장미가 변증법적 진화를 위한 약속이라면, 가시는 그 약속의 대가다. 이 둘 사이의 긴장과 상호작용이 약속과 대가를 향한 변곡점으로 다가온다. 오늘날의 글로벌 관세 전쟁은 단순한 제로섬 게임이 아닌, 이 세 가지 상징이 교차하며 거대한 힘을 향해 나아가는 치킨 게임이다. 장미의 계절에 찾아온 갈림길에 서서 새로운 질서를 향한 교향곡이 그림을 만난다.

 

‘장미’ 닮은 / 자유무역 / 모순의 / 아름다움

아침 해가 떠오르며 푸른 달의 붉은 몸짓이 공간을 채워간다. 윤동주(1917년~1945년)의 <별 헤는 밤>(1948년)과 김춘수(1922년~2004년)의 <꽃>(1952년)이 이름을 부른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년~1926년)와 그의 장미. 별과 꽃의 이름으로 다가와 장미로 피어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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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는 그의 여러 시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중요 소재로써, 시간의 흐름에 따른 상징성의 변화를 나타낸다. 초기(1890년대 후반~1900년대 초반)는 감성(感性, Emotion)의 장미이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존재에 대한 경외를 통한, 세상과 조화로운 연관성을 향해 피어나는 생명을 상징한다. 자연의 질서와 공존하는 반복적 운율의 절대적 대상으로 피어있다. 중기(1900년대 중반~1910년대 초반)는 이성(理性, Reason)의 장미이다. 파리에서의 고독과 로댕(Auguste Rodin, 1840년~1917년)과 교류 등을 통해 사물을 성찰하게 되는 시기. 장미는 가시와 함께 등장한다. 이는 상보 반의어(complementary antonym)인 삶과 죽음, 아름다움과 고통 등이 경계로 나누어지지만, 부분과 전체의 관계로 같이하는 이중성의 모순을 드러낸다. 자연적 감정의 절대적 대상에서 존재론적 의미를 향한 상대적 전달자로 변화한다. 이어지는 후기(1910년대 초반~1920년대 후반)는 오성(悟性, Wisdom)의 장미이다. 제1차 세계 대전(1914년~1918년)으로 인한 오랜 침묵을 깨고, 존재 자체의 순수한 수용자로 나타난 장미. 삶과 죽음, 시간과 영원의 경계와 모순은 사라지고 모든 존재의 초월적 상징으로 피어나서 시들며, 재현(再現/Representation, 존재하거나 사라지는 것의 본질을 감각적 형상 속에 드러내는 행위)의 순환 여행을 한다. 궁극적으로는 죽음도 삶의 완성을 향한 과정의 일부라는 것을 응축적으로 드러낸다.

그의 장미를 통한 존재론적 자아의 여정은 묘비에서 완성된다. 삶의 마지막을 위해, 그가 죽기 1년 전에 써놓은 것으로 알려진 장미를 향한 마침표 시.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그 많은 눈꺼풀 사이에서

누구의 잠도 아닌 기쁨이여.

(Rose, oh reiner Widerspruch,

Lust, niemandes Schlaf zu sein unter soviel Lidern.)“

- 릴케(R.M.Rilke) 묘비명(1926년) -

장미의 시인이 사랑한 ‘장미(Rose)’는 햇살과 바람의 친구로서,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속성들의 덧없음을 나타내는 상징화이다. ‘순수한 모순(reiner Widerspruch)’은 삶과 죽음이 경계로 인해 단절되는 것이 아닌, 존재의 본질로 공존하는 상태를 표현한다. 이는 대척점에 있는 생명력의 고유 특성(아름다움과 고통, 기쁨과 질투 등)이 상호 모순을 받아들이는 시공간 안에서 완성되어 감을 의미한다. ‘그 많은 눈꺼풀 사이에서 누구의 잠도 아닌(niemandes Schlaf zu sein unter soviel Lidern)’은 죽음을 '잠'에 비유하며, 그 잠이 그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있음의 없음인 무(無)의 상태를 강조한다. ‘기쁨(Lust)’은 존재하지 않지만, 해방된 존재로서의 본질에 대한 긍정과 자유를 함축하며 ‘모순’과 대비되어 서 있다. 즉 삶과 대립하는 죽음을 고통스럽게 부정하지 않고, 역설적인 기쁨과 해방의 순간으로 시적 형상화하고 있다. 삶과 죽음은 모순을 통해 완성되며,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닌 회귀로써 어두운 빛과 같은 것이다.

장미는 ‘자유’와 ‘모순’의 상징으로 피어나며 자유무역의 신화를 들려준다. 1990년대 세계는 GATT(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체제를 대체하기 위한 WTO(World Trade Organization) 출범과 함께 ‘자유·다자’를 향한 글로벌 네트워크의 꽃을 피우고자 한다. 세계 무역 장벽을 감소시키거나 없애기 위해, 국가나 지역 간 경제적 경계를 허물고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려 한 것이다. ‘자유’를 기조로 한 자본과 자원(인력, 상품, 기술 및 서비스)대상의 교환 흐름은, 다자 간 가치 창출의 제고와 호모 사피엔스를 향한 효율적 번영의 꽃내음을 퍼뜨린다. 이는 아름답지만 ‘모순’을 잉태하며, WTO를 코마(coma) 상태인 ‘식물 기구’로 변하도록 하는 씨앗도 뿌린다. 장미가 꽃은 보이지만 뿌리는 숨기듯이, 글로벌 자유무역도 뿌리의 역할을 하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시장을 조율하며 상생을 위한 성장을 한다고 믿도록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국·유럽 등 선진국 중심의 규범과 플랫폼, 통화, 물류권이 이 체제를 조율하게 된다. 실상은 비대칭적 체계와 규범 및 패권 뒤에 숨은 예외적 특권의 장미 정원으로 어우러진다.

신자유주의의 환상을 자양분 삼은 장미는 여전히 아름답지만, 모두를 위한 정원은 아닌 것이다.

 

‘가시’의 / 보호무역 / 자국 우선 / 자기 정의

 장미 정원에 변증법적 진화를 위한 약속이 새끼손가락처럼 피어난다. 그 약속의 대가인 가시가 새끼손가락을 건다. 장미와 가시의 만남은 거울 속의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년~1954년)로 향한다. 그녀는 <가시 목걸이를 한 자화상(Self-Portrait with Thorn Necklace and Hummingbird)>(1940년)을 통해, 자기 삶에 반복된 육체적·정신적 상실과 분노(소아마비와 교통사고, 남편의 무분별한 불륜과 유산 등)를 아름다움과 고통이 공존하는 이미지로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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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배경과 윗부분은 삶의 아름다움을 향해 승화하는 자아를 드러낸다. 뒤편 배경을 채우고 있는 초록 잎들은 고통마저도 덮어버리는 약동하는 생명력과 정체성을 암시한다. 머리 윗부분의 잠자리와 나비는 자유를 통한 초월과 미래의 희망을 상징한다. 고통을 극복하며 정화해 나가는 변화와 성장, 죽음을 넘어선 재생과 회복의 가능성과 함께 에로스(Eros)를 향한 날갯짓을 한다. 반면 아랫부분에서는 고통에 대한 이중주가 계면조(界面調, 전통음악의 슬프고 처절한 느낌을 주는 음조로 서양 음악의 단조와 비슷함)의 가락으로 들려온다. 가시 목걸이, 벌어진 피부와 피는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고통의 흔적에 대한 외면의 자화상으로 등장한다. 이는 죽은 벌새, 검은 고양이와 원숭이를 매개로 그녀의 정신적·심리적 분신을 드러내며, 자의식의 형상화를 위한 내면의 자화상으로 확장된다. 자화상은 아름다움과 모순이 뒤엉켜 있는 혼돈과 부조화의 시기에 갈구하는 자의식과 정체성, 그리고 존재의 불확실성과 진실을 좇는 재탄생에 대한 복합적 성찰이 집약된 사유의 상징물로 다가온다.

자유무역이 거울을 본다. 자유무역의 목을 가시가 감싸고 있다. 목을 감싼 가시는 자유무역이 힘겹게 버티고 있는 세계 무역 질서의 냉혹함을 상징한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John Trump)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로즈가든(White House Rose Garden)에서 4월 2일(현지 시각)을 ‘해방의 날(Liberation Day)’로 선언하며, 가시를 쏟아낸다. 주요 무역 상대 57개국에 최대 50% 상호 관세 부과와 그 외 국가로부터의 수입품에는 일괄 10% 관세 부과를 발표한다. 그에게 가장 아름다운 단어인 관세(Tariff)가 세계 무역의 패러다임을 흔들며 장미를 조롱한다. 관세는 물리적 숫자 위에 세워진 국가적 경계다. 세계 질서는 더 이상 경계가 없는 장미 정원이 아니다. 각국은 자국의 뿌리를 보호하며 가시를 세운다. 장미의 아름다움이 사라진 시공간에서, 각자의 경계 위에 세워진 상처 입은 모호한 정체성의 서사를 즐긴다. 가시는 방어로 시작하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은 공격이며 공멸로 향하는 디지로그(Digilog)적 신호다. 미국의 ‘아름다운’ 관세 전쟁과 반도체 등 전략 품목 수출 제한, 중국의 ‘신중상주의적’ 일대일로(一带一路)와 희토류 등 자원 통제, 유럽의 ‘파편적’ 재무장과 디지털세 등은 모두 패권적 주권을 향한 보호주의의 귀환을 확인하는 장치다. 관세에서 시작한 근린궁핍화정책(Beggar-thy-neighbour policy, 다른 나라 경제를 희생시키면서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먼저 도모하는 보호무역 정책)에 대한 대응과 보복의 악순환 속에서 장미는 색과 향기를 잃는다. ‘보호·공정(자국 우선주의)’을 향한 자기 정의(Self-definition)의 합리화 과정에서, 글로벌 네트워크 기제는 단절과 조각의 가시로 둘러싸인다.

세계를 향해 피어나야 할 장미 정원은, (백악관 로즈가든마저도) 블록화된 가시 정원으로 재편된다.

 

신(新)질서 / ‘변곡점’ 정점 / <세한도(歲寒圖)>를 / 만나네

 장미 정원의 가시 정원으로 재편은, 둥근 원의 아름다움이 날카로운 직선의 고통으로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전환의 지점인 변곡점에서 말러(Gustav Mahler, 1860년~1911년)를 만난다. 말러와 19살 연하인 알마 쉰들러(Alma Margaretha Maria Schindler, 1879년~1964년)의 결혼(1902년). 그들의 관계는 장미와 가시의 비유로 회자된다. 말러에게 알마는 삶의 원동력이자 음악적 영감의 뮤즈, 알마에게 말러는 음악적 깊이와 존재론적 근원에 대한 물음을 실험적으로 표현한 천재 음악가. 그들은 아름다운 장미로 피어난다. 그러나 말러는 재능 있는 작곡가인 알마에게, 창조 대신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침묵의 꽃으로만 남아있기를 바라며 일방성을 강요한다. 알마는 억압에 대한 탈출구로 외도를 추구한다. 이는 결국 서로에게 반복되는 억압과 상처를 주는 가시가 된다.

아름다운 장미와 가시의 고통을 대변하는 말러. 그의 작품 중 <교향곡 5번 4악장 ‘Adagietto(매우 느리고, 매우 절제되게)>(1901년~1902년)는 변곡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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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말러의 총 10개 교향곡 중에서 가장 유명하며 정적인 악장이다. 장미 모양의 하프와 가시를 닮은 현악기의 떨리는 선율은 운명과 사랑, 슬픔과 상실의 감정을 절대자나 연인에게 숨죽여 읊조리는 듯하다. 말러가 알마에게 보낸 사랑 고백의 노래라는 해석과 함께. 그런데 이 운율의 서사는 일방향의 감정 전달이 아니라, 치열한 전환을 앞두고 잠시 멈춘 내면의 성찰로 다가온다. 삶과 죽음의 변곡점에서 절망과 희망, 혼돈과 질서 사이를 느린 리듬 속의 터질듯한 긴장감으로 넘나든다.

현재는 자유무역이 진화 혹은 무너지기 직전의 정지 상태에 가깝다. 세계 무역 질서가 다음 단계로 전환되기 직전의 숨 고르기인 것이다. 관세전쟁은 위기와 함께 찾아온 감속의 순간이며 성숙을 위한 가치 찾기의 과정이다. 감속 이후의 시간에 굴곡의 방향은 어느 쪽으로 바뀌어 흐를까? 자유무역(정)~보호무역(반)~신질서(합)의 구조적 변화를 위한 변곡점의 정점에 서 있는 우리. 장미는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가시 없이는 완전하지 않다. 자유무역(장미)과 보호무역(가시)이, 정반합을 통한 신질서(장미와 가시)의 교향곡을 위한 1악장이며 2악장이듯이.

신질서 교향곡의 주제를 찾아, 푸른 달이 김정희(1786년~1856년)의 <세한도(歲寒圖)>(1844년)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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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계절을 견뎌 내며 송백((松栢) 나무는 ’인내‘과 ’공존‘의 모습으로 서 있다. 푸른 달과 추운 계절이 장미와 가시처럼 모순적인 아름다움으로 완성되는 시간의 꿈을 꾼다. 장미 정원을 걸어간다.

 

 

글·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