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A.I.> - AI/인간의 순수성/계략의 전도와 유토피아/디스토피아의 경계

2025-05-05     서곡숙(영화평론가)

1. 고도의 문제해결 능력 AI와 영화 <A.I.>
 

AI(Artificial Intelligence)는 인공 지능, 즉 고도의 문제 해결을 가진 인공적 지능을 말한다. 인공 지능은 기계를 인간 행동의 지식에서와 같이 행동하게 만드는 것, 어떤 문제를 실제로 사고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인공적인 지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인공 지능은 기계가 인간의 학습 능력, 추론, 지각, 자연언어 이해, 문제 해결 등의 지능적인 능력을 습득하는 것이다. AI 즉 인공 지능에 대한 영화는 <원더랜드>, <업그레이드>, <Her>, <A.I.> 등이 있다. <원더랜드>는 죽은 사람을 인공 지능으로 복원하는 내용이고, <업그레이드>는 사지마비 환자가 인공 지능 칩의 도움을 받아 복수하는 내용이고, <Her>은 대필작가가 인공 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고, <A.I.>는 인간과 인공 지능의 관계를 다룬 영화이다.

영화 <A.I.>(스티븐 스필버그, 2001)는 천연자원의 고갈로 인공 지능을 가진 인조인간들의 봉사가 상용화되는 미래 사회에서 마지막 관문인 감정을 주입하는 아이 로봇의 제작을 다룬 영화이다. 감정을 가진 최초의 인조인간 데이빗(할리 조엘 오스먼트)는 인간을 사랑하게 프로그래밍된 최초이 아이 로봇이다. 데이빗은 각인된 엄마 모니카(프란시스 오코너)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버림받고, 인간이 되기 위해 지골로 조(주드 로)와 함께 푸른 요정을 찾는 여정에 나선다. 아이 로봇인 데이빗의 두 가지 소원은 인간이 되는 것, 엄마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2. 아이러니: 인간 아이의 계략과 아이 로봇 AI의 순수성
 

<A.I.>는 AI의 순수성과 인간의 계략을 통해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환경의 변화로 인한 인간/로봇 공존의 시대, 데이빗/모니카와 데이빗/헨리의 관계 변화, 인간의 계략과 AI의 순수성의 대비를 통해 상황의 아이러니를 그려낸다. <A.I.>에서 인간이 로봇을 만드는데 환경이 열악할수록 인간보다 로봇에게 적합한 환경이 된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이상기후 현상으로 인간의 생존력이 떨어지고 로봇이 필요한 세상이 온다. 배고픔과 식량 문제 때문에 출산을 법적으로 엄격하게 제한하게 되어서 자녀 수가 부족하게 되고, 자녀가 불치병에 걸린 경우에는 그 영향이 크기 때문에 아이 로봇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A.I.>에서 데이빗을 중심으로 모니카와의 관계와 헨리와의 관계가 반비례한다. 데이빗-모니카의 관계는 상승 곡선이고, 데이빗-헨리의 관계는 하강 곡선이다. 데이빗-모니카의 관계는 분노, 망설임, 놀라움, 친밀함, 사랑의 순서로 변하면서 상승의 곡선을 보여준다. 모니카는 처음에 아이 로봇인 데이빗을 보고 화를 내고 모니카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는 데이빗을 보며 힘들어하고, 다음에 식사 자리에서 모니카 입에 걸린 파스타면을 보고 웃는 데이빗을 보며 마음을 열고 데이빗의 잠옷을 입혀주고 각인시키며, 마지막에 죽지 말라고 애원하는 데이빗에게 마틴의 장난감 테디를 선물해 준다. 반면에 데이빗-헨리의 관계는 호감, 불안, 적대감의 순서로 변화하면서 하강의 곡선을 보여준다. 헨리는 처음에 냉동상태의 마틴에게 집착하는 모니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아이 로봇인 데이빗에게 호감을 느끼고, 다음에 불치병에 걸린 마틴이 완치되어 집에 돌아오면서 데이빗으로 인해 불안해하고, 로봇 데이빗으로 인해서 아들 마틴이 위험해진다는 생각에 데이빗에게 분노를 느끼게 되면서 적대시한다.

<A.I.>에서 인간의 계략과 AI의 순수성은 상황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데이빗/마틴의 관계는 데이빗/부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마틴은 자신의 대체품인 아이 로봇 데이빗이 있는 것을 불편하고 생각하고 엄마와 자신 사이에 끼어드는 데이빗을 질투하고 엄마의 사랑을 조금이라고 나누는 것이 싫어서 데이빗을 골탕먹이기 위해 계속 계략을 짠다. 예를 들면, 날기, 장난감 부수기, 제조 연월일 묻기, 『피노키오』 책 읽기, 시금치 먹기, 가위로 엄마의 머리카락 자르기 등. 그래서 아버지 헨리는 아들 마틴에게 데이빗이 위험한 존재라고 생각해서 계속 경계하고 불안해한다. 마틴은 데이빗에게 처음에 생일을 묻지만, 나중에는 제조 연월일은 묻는다. 데이빗은 제조 연원일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큰 날개를 가진 새를 기억해낸다. 나중에 하버 교수를 만났을 때 큰 날개를 가진 사람의 이미지를 보고 하버 교수의 연구실이 자신이 제조된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틴은 데이빗이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기계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엄마 모니카에게 『피노키오』 책을 읽어달라고 하지만, 데이빗은 자신도 피노키오처럼 푸른 요정을 만나 진짜 인간이 되기를 소망하게 된다는 점에서 상황의 아이러니가 나타난다. 마틴은 데이빗이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 데이빗에서 가위를 들고 모니카의 머리카락을 자르게 하여 아버지 헨리가 데이빗을 적대시하게 만들지만, 2천년 후 데이빗이 잘린 머리카락으로 재생된 모니카와 재회하게 만드는 계기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상황의 아이러니가 나타난다. 마틴의 친구들이 데이빗에게 칼로 위협하여 두려움을 느낀 데이빗이 마틴을 껴안으며 “지켜줘”라고 말하지만, 멀리서 볼 때 마치 데이빗이 마틴을 죽이기 위해서 껴안고 수영장에 뛰어드는 모습으로 비춰짐으로써 헨리가 데이빗을 폐기처분하는 결정을 내리게 만든다. 데이빗은 피해자이지만 가해자로 오인받는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A.I.>의 전반부 스타일은 이미지의 유사성(편집), 카메라의 부분 정보, 오버더숄더숏과 다가가는 카메라, 미디엄숏과 클로즈업, 슬로우 모션, 멀어지는 카메라를 통해서 미래 암시, 호기심과 긴장감, 어색함/친밀감, 감동과 기대감, 정보 강조와 미래 암시, 버림받은 슬픔을 표현한다. 하버 교수의 설명 장면에서 AI 여자 로봇이 화장하는 모습과 도로 위에서 달리는 차 안에서 모니카가 화장하는 모습이 연결되면서 이미지의 유사성을 강조하는 편집을 통해서 인간 모니카가 인간과 AI 로봇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미래를 암시한다. 모니카가 아이 로봇 데이빗과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데이빗의 하체를 먼저 보여준 후 데이빗의 상체 즉 미소 짓는 얼굴을 보여줌으로써 부분적인 정보 노출로 호기심과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모니카가 갹인 지침서를 꺼내 데이빗을 각인시키는 장면은 데이빗 시점과 모니카 시점의 오버더숄더숏을 통해 교감을 표현하고, 미디엄숏에서 클로즈업으로 다가가는 카메라는 통해 어색함에서 친밀함으로의 변화를 표현한다. 모니카가 마틴에게 『피노키오』 동화책을 읽어주는 장면에서 미디엄숏에서 클로즈업으로 다가가는 카메라는 푸른 요정을 만나면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소망으로 감동 받은 데이빗의 기대감을 표현한다. 가위로 잘린 모니카가 머리카락이 테디 앞에 떨어지는 장면은 슬로우 모션을 통해 머리카락으로 모니카가 재생되는 미래에 대해 암시한다. 데이빗이 수영장 물에 마틴을 빠뜨렸다는 오해를 받고 혼자 버려지는 장면에서 미디엄숏, 풀숏, 롱숏으로 점점 멀어지는 카메라는 보이지 않는 마틴보다 수영장 바닥에 버려진 데이빗을 보여줌으로써 인간보다 AI 로봇에게 감정이입을 한다.

 

3. 대비: 인간 남성의 폭행과 남성 섹스 로봇의 치유
 

<A.I.>는 푸른 요정 동화를 통해 인공 지능 AI에 대한 혐오와 정신/육체의 전도를 나타낸다. 이 영화에서 남성 섹스 로봇은 여성을 만족시키는 반면 남성 인간은 여성을 살해하고, 플레시 페어는 AI를 죽이려는 인간의 분노를 나타내고, 생존 지옥에서 아이 로봇은 푸른 요정을 찾는 여정을 떠난다. <A.I.>에서 남성 섹스 로봇은 인간 여성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반면, 인간 남성은 인간 여성을 폭행하고 살해한다. 남성 섹스 로봇인 지골로 조는 ‘여자박사’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여성을 능숙하게 다루며 성적으로 만족시켜 주고, 고개를 옆으로 꺾으면 분위기에 맞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여성의 취향에 맞게 머리카락 색깔과 스타일을 자유자재로 바꾼다. 특이한 점은 인간이 섹스 로봇을 구매하여 자신의 소유로 하는 데 반해, 지골로 조는 프리랜서로서 독자적으로 일을 한다는 것이다. 지골로 조는 인간 남성에게 정신적, 육체적 상처를 입은 인간 여성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치유해준다. 반면에 인간 남성은 인간 여성을 살해한 후 지골로 조를 불러 지골로 조에게 누명을 씌워 함정에 빠뜨린다.

<A.I.>에서 플레시 페어는 인간이 자신의 필요성에 의해 만든 AI를 증오하고 죽이는 잔인성을 강조한다. 데이빗은 평온한 가정에서 버림받아 무법지 숲에 내던져진다. 폐기물과 고철 AI로 가득한 버려진 숲은 플레시 페어 사냥꾼으로 인해서 생존 지옥으로 바뀐다. 사냥꾼들은 최신 섹스 로봇인 지골로 조를 잡기 위해 열심히 추격한다. 이런 과정은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사냥꾼들은 모두 죽이려고 AI를 사냥하는데 최신 섹스 로봇에 집착하면서 추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는 그냥 최신 섹스 로봇을 잡아 망가뜨리고자 하는 것인가 아니면 남성의 자리를 위협하는 섹스 로봇에 대한 분노인가? 또한 유모 로봇은 죽기 전까지 아이 로봇인 데이빗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노래를 불러준다. 머리가 없이 안면만 있는 유모 로봇이 로봇의 기능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 장난감 로봇 테디가 인간에게 끌려가면서 계속 데이빗을 찾는 이유는? 테디는 원래 인간 마틴의 장난감이었지만 로봇 데이빗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니카가 테디를 다시 작동시켜 데이빗에게 줬기 때문인가? 플레시 페어는 삶의 축제이다. 즉 플레시 페어는 신선한 살과 피로 이루어진 인간을 위한 삶의 축제이지만, 인공 지능과 기계로 이루어진 AI에게는 죽음의 학살 현장이다. 인간의 신선한 살과 피를 갖지 못하면서 인간의 자리를 위협하는 AI를 죽이는 축제이다. 데이빗은 특수 목적을 위해 제작된 귀한 로봇, 최상급 로봇으로서 특별한 존재이지만, 목적을 잃어버린 로봇이기 때문에 살해의 대상이 된다. 데이빗은 인간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 만든 앙증맞고 귀여운 인형 같은 로봇이기 때문에 사냥꾼에게는 살해의 대상이 되지만, “나를 녹이지 말아요. 난 피노키오가 아니예요. 전 데이빗예요.”라는 호소를 통해 ‘로봇은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다’는 관중의 생각으로 인해서 생존의 대상이 된다.
 

<A.I.>의 중반부 스타일은 멀어지는 카메라, 보름달 이미지의 반복을 통해 멀어지는 마음과 상처입은 마음, 기대감/두려움의 대비를 그려낸다. 숲에서 모니카가 데이빗을 유기하는 장면에서 풀숏, 롱숏, 익스트림롱숏으로 멀어지는 카메라는 아들 마틴의 계략, 아버지 헨리의 폐기 계획, 엄마 모니카의 유기 실행으로 인해 버림받은 아이 로봇 데이빗의 절망을 표현한다. 보름달의 이미지는 사냥꾼 비행선의 이미지와 진짜 달의 이미지의 반복을 통해서 기대감/두려움을 대비시킨다.

 

4. 푸른 요정: AI 로봇의 불가능한 소망과 외계인의 소망 충족
 

<A.I.>는 푸른 요정을 통해 AI 로봇의 불가능한 소망과 외계인의 소망 충족을 그려낸다. 이 영화에서 아이 로봇은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에 분노하여 타살과 자살을 저지르지만,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가 되어 외계인의 신기술로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소망을 이룬다. <A.I.>에서 푸른 요정을 찾는 여정은 육체/정신의 전도와 불가능한 소망으로 인한 슬픔을 그려낸다. 『피노키오』의 푸른 요정을 찾는 데이빗의 여정은 『오즈의 마법사』에서 오즈의 마법사를 찾는 도로시의 여정과 닮아 있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도로시, 똑똑해지고 싶은 허수아비, 심장이 필요한 양철 아무꾼, 용기가 필요한 겁쟁이 사자는 오즈의 마법사를 만나서 소원을 이루고자 하지만, 마법사가 가짜로 밝혀지고 다른 방식으로 각자가 원하는 소망을 이룬다. 지골로 조는 푸른 요정이 여자라는 말에 자신이 여자를 잘 안다며 데이빗을 환락의 도시 루주 시티로 안내하고, ‘다 알아 박사’에게 적절한 주제를 제시하여 데이빗이 원하는 해답을 끌어냄으로써, 섹스 로봇인 정체성을 뛰어넘어 육체/정신의 전도를 보여준다. 데이빗의 질문은 계속 변화한다. 우선, 진실 주제에서는 “푸른 요정은 어디에 있나요?”, “푸른 요정은 누구죠?”라는 질문을 던진다. 다음으로, 요정의 동화 주제에서는 “푸른 요정으은 뭐죠?”라는 질문을 던진다. 마지막으로, 진실&동화 주제에서는 “푸른 요정이 어떻게 로봇을 진짜 사람으로 만들죠?”라는 질문을 던진다. 데이빗의 질문이 점점 구체적으로 변하면서, 다 알아 박사는 기계가 유기체로 변하는 방법이 적혀 있는 하버 교수의 책을 소개하면서 ‘사자가 우는 세상의 끝’으로 가라고 안내한다. ‘세상의 끝’은 바다에 잠긴 맨해튼이고, ‘사자가 우는 세상의 끝’은 맨해튼에서 하버 교수의 연구실이 있는 장소이다. 재미있는 것은 하버 교수가 데이빗이 자신의 연구실을 찾아오는 능력을 가졌다고 기뻐했지만, 사실상 육체만이 강조되는 섹스 로봇 지골로 조의 도움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골로 조는 데이빗에게 계속 경고한다. ‘푸른 요정이 인공 지능을 유혹하는 기생충이라면? 인공 지능은 미움 받는 존재이다. 엄마는 피와 살이 없는 너를 사랑할 수 없다. 인간은 인공 지능을 너무 똑똑하게 너무 많이 만들었어. 인간이 죽어도 우리는 세상에 남아.’ 섹스 로봇 지골로 조는 AI 로봇의 권위자인 하버 교수를 뛰어넘어 인간과 AI의 관계에 대해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준다.

<A.I.>에서 아이 로봇은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가 되는 것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타살과 자살을 모두 행한다. 데이빗은 하버 박사의 연구실에서 자신과 똑같은 아이 로봇 데이빗을 발견하고는 분노하여, “엄마는 내 거야. 난 하나뿐이야. 내가 데이빗이야. 난 누구보다 특별해. 엄마는 내 거라고.”라고 말하면서 다른 데이빗을 부셔서 죽여버린다. 증오는 사랑의 이면이다. 데이빗은 마틴이 인간 엄마 모니카의 인간 아들이기 때문에 그 자리를 뺏으려고 하지 않는 순수성을 보여주지만, 같은 아이 로봇에게는 절대 엄마의 자리를 나눌 수 없다는 분노를 보여준다. 이것은 순수성과 분노의 차이라기보다는 로봇에게 인간은 폭행하거나 죽이지 못하게 하는 설정 장치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데이빗은 엄마의 사랑을 받는 특별하고 유일한 아이 로봇이어야 했다. 하버 박사는 “넌 진짜 인간이야. 난 인간을 만든 거야. 난 푸른 요정인 셈이야.”라며 데이빗의 소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다고 자신한다. 하버 박사는 죽은 아들 데이빗의 외양과 똑같고 감정이 있는 아이 로봇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키우지 않고 그 부부에게 데이빗을 줘서 실험한 이유가 무엇일까? 데이빗이 “제가 유일한 건가요?”라고 질문하자, 하버 박사는 “내 아들은 유일했고. 넌 내 새로운 존재야.”라고 답변한다. 하버 박사는 “진짜 엄마와 아빠를 만나 볼래? 다들 널 보고 싶어해. 여기서 기다려라.”라고 말한다. 하버 박사가 데이빗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데이빗을 찾아나선 이유는 자신에게 유일한 존재라서가 아니라 세계 최초로 만든 감정 로봇이기 때문이다. 진짜 엄마와 아빠는 데이빗을 함께 만든 과학자들일 것이다. 데이빗은 하버 박사에게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 무수한 만든 아이 로봇 데이빗들 중에서 성공한 ‘새로운 존재’인 것이다. 하버 박사는 데이빗이 꿈이 있고 논리적 결론을 내리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대단한 장점이라고 칭찬한다. 하지만 그 칭찬은 결국 하버 박사 자신의 연구 성과에 대한 칭찬인 셈이다. 데이빗은 자신이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후 타살과 자살을 모두 행한다. 데이빗은 처음에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아이 로봇 데이빗을 보고는 부셔서 죽여버리는 타살을 행하고, 나중에는 무수히 많은 아이 로봇 데이빗들을 보고는 스스로 물에 빠지는 자살을 행한다. 데이빗은 ‘유일한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엄마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아이 로봇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살한다.

<A.I.>에서 푸른 요정은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소망을 이뤄준 외계인과 테디이다. 데이빗은 하버 박사 자신이 푸른 요정이라는 말을 믿지 않고, 바다에 잠겨 있는 푸른 요정 동상에게 ‘인간이 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빈다. 하버 박사가 특별하다는 말은 특별한 로봇이라는 것이고 자신과 똑같은 데이빗들이 많기 때문에 그 특별하다는 말이 데이빗에게는 의미가 없다. 결국 데이빗은 2천년이 지나 지구의 존재가 모두 없어져 유일한 존재가 되고, 외계인의 기술로 엄마를 재생해서 엄마의 유일한 아이가 된다는 점에서 소원을 성취한다. 테디가 간직하고 있던 엄마의 머리카락으로 엄마를 재생한다. 마틴이 데이빗을 위험한 존재로 인식시키기 위해서 가위를 들고 엄마의 머리카락을 자르게 해서 헨리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키지만, 데이빗은 잘린 머리카락으로 엄마를 재생해 결국 엄마의 유일한 아이로 사랑받는다는 점에서 상황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지구에 모든 생명체가 사라진 상태에서 AI 로봇 데이빗은 지구의 기억을 저장하고 있는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가 된다.

<A.I.>에서 데이빗의 진정한 소원은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데이빗의 소원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인간이 되게 해달라는 것이고, 둘째는 엄마의 사랑을 받게 해달라는 것이다. 데이빗이 인간이 되기를 원한 것은 인간 아들 마틴처럼 엄마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 소원은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데이빗은 인간은 되지 못했지만 헨리도 마틴도 없는 집에서 엄마의 사랑을 받는 유일한 존재라는 점에서 소원을 이루게 된다. ‘유일한 존재’는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하나의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사랑을 받는 유일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유일한’은 존재가 아니라 사랑의 의미이다. “헨리도, 마틴도 없었다. 슬픔도 없었다. 오직 데이빗만 있었다.” 재생된 엄마 모니카가 살 수 있는 1일이 끝나 모니카가 깊은 잠 즉 죽는 순간 데이빗도 엄마 옆에서 처음으로 잠을 청하게 된다. “꿈이 있는 곳으로 마침내 떠난 것이다.”는 말은 하버 박사의 제조에 의해 탄생한 AI 로봇 데이빗이 엄마의 사랑을 받아 유일한 존재가 된 날에 스스로 생명을 마감한 것을 의미한다. 데이빗은 처음은 공장에서 제작되어 타의에 의해 생산되지만, 마지막은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결정을 내린다는 점에서 특별한 존재가 된다.
 

<A.I.>의 후반부 스타일은 다가가는 카메라와 방향 전환, 더블링과 멀어지는 카메라, 익스트림클로즈업·클로즈업의 강조, 오버더숄더숏과 바스트숏, 멀어지는 카메라를 통해 기대감과 놀람, 불가능한 소원, 기대감, 감동, 감정의 교감과 행복을 표현한다. 데이빗이 머리가 없고 안면만 있는 로봇에게 다가가 결합하는 장면에서 뒤에서 앞으로 돌아나오는 카메라는 머리가 없는 아이 로봇의 뒷면, 다가가는 데이빗, 데이빗의 파란 눈동자, 데이빗과 같은 얼굴의 아이 로봇의 앞면을 보여줌으로써 플숏에서 클로즈업으로 다가가는 카메라와 방향을 전환하는 카메라를 통해 데이빗과 복제품 아이 로봇의 유사성으로 인한 놀람을 표현한다. 바다 속에서 데이빗이 푸른 요정 동상에게 “저를 인간으로 만들어 주세요”라며 간절하게 소원을 비는 장면은 클로즈업, 미디엄숏, 풀숏, 익스트림롱숏으로 멀어지는 카메라는 통해 불가능한 소원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데이빗이 밝은 빛에 눈을 뜨는 장면에서 데이빗의 푸른 눈을 익스트림클로즈업을 보여줌으로써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표현한다. 데이빗이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를 발견하는 장면에서 데이빗 얼굴 클로즈업은 엄마와의 재회로 데이빗이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는 모습을 강조한다. 재생된 엄마가 깊은 잠에 빠져드는 장면에서 엄마와 데이빗의 오버더솔더숏과 바스트숏을 통해 데이빗의 행복과 안타까움을 함께 표현하고, 나란히 잠든 데이빗과 엄마를 지켜보는 카메라가 미디엄숏, 풀숏, 익스트림롱숏으로 점점 멀어지면서 그들의 삶을 조용히 지켜보는 시선을 표현한다.

 

5. AI 로봇: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영화 <A.I.>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AI 로봇을 그려낸다. 이 영화에서 아이 로봇은 인간이 되는 것과 엄마의 사랑을 받는 것을 소원하고, 인간/로봇의 유한성/무한성을 대비시키며 AI 로봇의 순수성을 강조한다. <A.I.>에서 아이 로봇은 감정이 득이 되면서 동시에 독이 된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한 존재이다. 세계 최초로 감정을 가진 아이 로봇 데이빗은 계속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고, 불치병에 걸린 인간 아들 마틴이 냉동상태일 때는 아들의 대체물로서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귀환으로 버려지고, 하버 교수의 아들을 본뜬 로봇들 중 하나이며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아이 로봇은 각인 매뉴얼대로 정한 인간 엄마를 사랑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 감정은 진짜인가 아니면 가짜인가?

<A.I.>는 AI 로봇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 영화의 초반부에 하버 교수는 사랑을 할 수 있는 아동 로봇, 끊임없이 사랑할 수 있는 아이 로봇, 아이의 대체가 되고 비유 능력, 직관적 능력, 추론 능력, 꿈꾸는 능력을 갖춘 아이 로봇의 제작 계획을 밝힌다. 이때 한 흑인 여성은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로봇이 있어도 인간이 로봇을 사랑할 수 있는지?”, “로봇이 사람을 순수하게 사랑한다면 인간은 어떤 책임을 지는가?”라는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 이러한 윤리적 문제 제기는 감정을 가진 아이 로봇 데이빗이 2천년 동안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타당한 것으로 밝혀진다. 하버 교수는 로봇이 할 수 없는 마지막 영역이 사랑을 포함한 감정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자신이 향후 만들 아이 로봇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 영화는 하버 교수의 긍정적인 의미 부여가 무색할 정도로 아이 AI 로봇인 데이빗의 인간적인 모습, 엄마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으로 인해서 로봇이 인간을 사랑하게 프로그래밍한 것에 대해서 비판하게 만든다. 초반부에 나오는 문제제기가 사실상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A.I.>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는 장면과 숨바꼭질 장면은 반복을 통해서 교감과 상승의 의미를 담아낸다. 모니카가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장면은 계속 반복된다. 처음에는 불치병에 걸려 냉동된 아들 마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나중에는 AI 로봇인 데이빗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마지막에는 데이빗 앞에서 마틴에게 동화책을 읽어준다. 이 동화책은 피노키오가 인간이 되는 내용이 나와서 데이빗에게 소망을 불러일으킨다. 동화책은 엄마와 아이 사이에 존재하는 교감의 시간이라는 점에서 데이빗이 엄마와 함께 하고 싶은 시간이다. 숨바꼭질도 계속 반복되면서 감금, 불편함, 놀이(혼자), 유기/재회, 놀이(함께)의 순서로 바뀌면서 상승의 곡선을 그려낸다. 첫째, 모니카가 자신을 계속 따라다니는 데이빗을 옷장에 가두고는 숨바꼭질로 위장한다. 둘째, 데이빗이 화장실 문을 열고 모니카를 찾았다고 말해서 모니카가 인간/로봇의 차이로 불편함을 느끼게 만든다. 셋째, 데이빗이 모니카와 실제로 숨바꼭질을 하면서 인간 아들의 대체적 존재가 되는 순간이다. 넷째, 모니카가 데이빗을 숲에 유기하고, 데이빗이 2천년 후 복원된 엄마 모니카를 보고 “찾았다”라고 말하면서 숨바꼭질 놀이로 변환시킨다. 다섯째, 데이빗과 모니카가 함께 옷장에 숨어 있다가 테디를 상대로 놀래키는 놀이를 한다.

<A.I.>는 인간보다 AI 로봇에게 감정이입을 한다. 우리 인간이 아니라 AI 로봇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 자신이 만든 생산품 AI를 비인간적으로 다룰 미래사회를 경계하는 것인가? 미래사회의 기술 발달로 AI가 활성화되는 시대에 대한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한 것인가? 인간이 낳은 미래사회의 폐해를 경호하는 것인가? 영화를 개봉할 당시에는 이러한 주제가 먼 훗날의 이야기였지만, 지금 AI가 발달하여 생활에서 상용화되는 현실이 도래했기 때문에 이러한 주제는 중요한 의미를 띤다. 이 영화에서 인간 아이 마틴은 여러 가지 계략으로 로봇 아이 데이빗을 함정에 빠뜨리고, 인간 남성은 지골로 조에게 살인 누명을 씌워 섹스 로봇 지골로 조를 함정에 빠뜨린다. 이러한 설정은 AI 로봇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 순수한 존재임을 강조한다. 2천년 후 다른 AI 로봇은 없고 아이 로봇 데이빗과 장난감 로봇 테디만 남은 이유는 무엇인가? 로봇이기 때문에 영원하다면 다른 로봇도 남아야 하는데 지구상에 데이빗과 테디만 남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 영화는 끝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관객에게 문제를 던진다.

<A.I.>는 보름달, 세로무늬창, 사진액자 유리에 비친 데이빗 얼굴을 반복함으로써 반복/변주를 통한 의미의 전복, 불편함/기대감의 대비, 타살(분노)/자살(절망)을 더블링으로 그려낸다. 보름달의 이미지는 세 번 반복되면서 죽음, 두려움, 유한성을 표현한다. 보름달은 처음에 아름다운 달이 사실상 로봇 사냥꾼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죽음의 공포가 되고, 나중에 진짜 달을 보고도 로봇 사냥꾼을 연상시키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마지막에 재생된 엄마와 함께 하는 1일이라는 유한한 시간이면서 동시에 평생이라는 무한한 행복을 나타낸다. 세로무늬 유리창의 반복은 불편함에서 기대감으로의 변화를 보여준다. 전반부는 세로무늬 유리창에 있는 아이 로봇 데이빗(왼쪽)과 데이빗을 쳐다보는 모니카(오른쪽)을 보여주면서 아이 로봇에게 느끼는 불편함, 거부감, 낯섦을 표현하고, 후반부는 세로무늬 유리창으로 집에 돌아왔고 엄마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표현한다. 사진 액자 유리에 비친 데이빗의 얼굴은 반복을 통해 인간/로봇의 차이, 인간/복제품의 유사성을 표현한다. 처음에는 모니카-헨리의 인간 아들 마틴의 얼굴과 아이 로봇 데이빗의 얼굴을 겹치는 이미지는 인간/로봇의 차이를 강조해서 인간이 될 수 없는 슬픔을 표현하고, 나중에는 하버 박사의 인간 아들 데이빗과 아이 로봇 데이빗의 얼굴을 겹치는 이미지는 인간/복제품의 유사성을 강조해서 유일한 존재가 될 수 없는 절망감을 표현한다. 아이 로봇 데이빗이 후자에 절망해서 자살한다는 점에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사실보다 유일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더 절망함을 알 수 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A.I.> 포토
 

글·서곡숙

영화평론가, 영화학박사, 청주대학교 영화영상학과 조교수.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 한국영화학회 학문후속세대양성위원회 위원장, 계간지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영화제, 대종상 등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