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필립의 시네마 크리티크] <썬더볼츠*>, 히어로의 해체와 그 틈을 채우는 인간적 연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세계가 넓어지는 한편, 그 방향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썬더볼츠*>(2025)는 기존의 히어로 영화와는 결을 달리하며, 완벽하지 않은 이들이 중심이 된 연대의 이야기를 꺼낸다. 이 영화에는 기존의 MCU 작품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정의의 상징 대신 과거에 발목 잡힌 이들이 전면에 등장한다. 그들은 실패했고 외면당했으며, 여전히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바로 이러한 인간적인 캐릭터들을 통해 '히어로'의 의미를 새롭게 묻는다.
영화의 무대는 어벤져스가 사라진 이후의 혼란스러운 세계다. 그 혼란을 틈 타 미국 정부는 비밀리에 새 영웅을 창조하는 연구를 진행하지만 그것은 곧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게 된다. 이러한 가운데 본의 아니게 특별 임무를 맡게 된 히어로 2진들이 우연히 한 자리에 모이게 되고, 그렇게 자칭 ‘썬더볼츠’라는 팀이 탄생하게 된다.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옐레나(플로렌스 퓨)는 가짜 가정 속에서 자라난 스파이였고, 버키(세바스찬 스탠)는 세뇌된 암살자로 살아온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또 존 워커(와이엇 러셀)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린 전직 캡틴이고, 레드 가디언(데이비드 하버)은 자의식 과잉의 영웅이며, 고스트(해나 존-케이먼)는 안정되지 않은 신체로 고립된 존재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각자의 상처에 대해서는 돌아볼 새도 없이 시작된 팀워크는 거듭된 갈등을 통해 서서히 변화한다. 한편, 이 불안정한 케미스트리 구도 가운데 낯선 인물 밥 레이놀즈(루이스 풀먼)가 등장한다. 사건이 진행되면서 압도적인 능력을 지닌 ‘센트리’로 변모하는 인물이다. 실험으로 얻은 힘은 마치 신과 같지만 그 정신은 갈기갈기 찢겨진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다. 그의 내면엔 ‘보이드’라는 또 다른 인격이 존재하며, 언제든지 세상을 삼킬 위협이 된다. 밥은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존재가 인류에 대한 위협임을 인지한다. 여기서 이 센트리라는 캐릭터는 MCU가 처음으로 정신질환과 자기정체성의 균열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상징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액션보다 감정의 폭발에 가깝다. 뉴욕을 무대로 벌어지는 혼란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인물들의 내면에 깃든 두려움이 외화된 장면들이다. 각 인물은 자신이 가장 숨기고 싶었던 기억이나 가장 외면했던 죄책감과 마주하고, 그 과정 속에서 팀은 단순한 군사 집단을 넘어 감정의 공동체로 성장한다. 이들은 힘이 아닌 이해를 통해 서로를 구원한다. 이 과정에서 제이크 슈라이어 감독은 현란한 CG 대신 물리적 공간과 인물 간의 긴장감으로 서사를 밀도 있게 끌고 간다. 세트와 실제 액션이 중심이 된 촬영 방식은 영화 전반에 사실감을 부여하며 인물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반영한다. 그레이스 윤의 프로덕션 디자인과 해리 윤의 편집은 매 컷과 신마다 인물의 감정을 한겹씩 쌓아 올리는 데 기여한다.
더불어, 플로렌스 퓨는 복잡한 감정을 절제된 연기로 풀어냄으로써 옐레나의 심리적 진폭을 섬세하게 보여주며, 루이스 풀먼은 무너져가는 밥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관객들은 이들의 연기를 통해 그동안 MCU의 영웅화된 인간 뒤에 가려져 있던 인간적 취약성과 심리적 실체에 다가서게 된다.
결론적으로, <썬더볼츠*>는 히어로를 다시 정의한다. 선하거나 완전해서가 아니라 상처 입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줄 아는 이들이야말로 진짜 히어로임을. 그것을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이 영화의 미덕이 드러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는 근원적 어둠과 주어진 생을 살아내기 위한 고통을 영웅적 허울 속에 가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훤히 드러내고 함께 연대하며 그것을 견디려는 인간적 의지가 바로 그것이다.
한 줄 요약: <썬더볼츠*>는 상처 입은 이들이 서로를 통해 회복해가는 감성적 안티히어로 서사로, MCU의 새로운 정서적 진화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글·윤필립
영화평론가, 응용언어학자, 영상번역가. 학부에서 국문학과 영문학을, 대학원에서 국어학과 한국어교육학을 전공하였으며, 석사 과정에서 <대중문화론> 수업을 통해 한국 공포영화와 그 이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에서 극영화 시나리오를 공부하며 영화의 내러티브 분석력을 훈련했고, 제1회 나라꽃 무궁화 스토리 텔링 공모전에서 동화 부문 입선을, 서울국제사랑영화제(SIAFF) 기독교 영화비평 대상 수상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당선을 했다. 만화평론상,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심사위원, 영평상 집행부와 한겨레신문 <한국영화사 100년, 한국영화 100작품> 집필진 등을 역임했다. 대학에서 한국어교육 담화분석, 한국 대중문화, 인문치료 분야에 집중하며 연구하고 강의하는 한편, 《르몽드 코리아》, 《영화의 전당》, 《경기일보》 등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