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해치는 ‘검열자들의 인터내셔널’
이상한 축(axis)이 형성되고 있다. 서방의 ‘적’들을 하나로 묶는 ‘악의 축’(axis of evil)도 아니고, 도널드 트럼프와 블라디미르 푸틴을 잇는, 이른바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의 축도 아니다.
그보다 더 광범위하고, 흔하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 동맹—바로 자유민주주의자, 독재자, 관료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검열자들의 인터내셔널’이다.
첫 번째 임기 말, 디지털 플랫폼들로부터 ‘침묵 당한’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향해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를 회복하겠다”라고 약속했다. 그의 지지자들—그 중 다수는 거친 표현을 쓰는 이들이지만—의 의견은 진보적인 캠퍼스나 소셜미디어에서 끊임없이 검열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두 번째 취임식이 끝난 지 불과 엿새 만에, 트럼프는 미 공군 신병들에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활약한 흑인 전투기 조종사들(투스키기 항공대)에 대한 역사 교육을 금지시켰다. 그로부터 사흘 뒤, ‘다양성’, ‘배제’, ‘젠더’, ‘사회경제적’, ‘소수 대표성’ 등 일부 단어들이 미국 정부 기관 웹사이트에서 사라지는 가운데, 새로운 행정명령이 발표됐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유학생들을 ‘지하드 지지자’로 간주하고 추방하겠다는 것이다. 백악관은 이렇게 경고했다. “우리는 당신들을 반드시 찾아내어, 추방할 것이다.” 그 직후, 컬럼비아 대학교의 학생 마흐무드 칼릴(Mahmoud Khalil)이 경찰에 체포되었다.
유럽에서도 입막음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전직 대통령 한 명, 전직 총리 두 명, 그리고 우파 및 사회당 출신의 다수 시장과 국회의원들을 포함한 자유주의 부르주아 계층의 저명 인사 200명이 다음과 같은 주장을 내놓았다.
“시온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새로운 형태의 반유대주의로 간주해 법률로 금지해야 한다.”(2025년 3월 22일자 <르몽드> 보도)
요컨대, 좌파 운동가들뿐 아니라 극정통파 유대인들조차 공유하는 하나의 견해를 형사 처벌의 대상으로 삼자는 주장인 셈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문명의 충돌’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브뤼셀과 모스크바 사이의 갈등으로 재구성되었고, 이는 검열을 정당화하는 데에도 활용되고 있다. 이미 2022년, 유럽연합은 기본권과 자유를 보장한다는 명분 아래 러시아 국영 매체인 <RT>와 <스푸트니크(Sputnik)>의 방송을 금지했다. 이 조치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환영을 받았고, 그는 이후 2024년 5월, 이스라엘 의회가 카타르 국영방송 <알자지라(Al-Jazira)>를 금지했을 때에도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루마니아에서는 크렘린에 우호적인 대통령 후보가 1차 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음에도, 헌법재판소가 그의 결선 진출을 막아버렸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SNS상에서 러시아의 ‘개입’이 있었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2025년 3월 19일, 유럽연합 외교 책임자인 카야 칼라스(Kaja Kallas)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정보 공간은 단순한 공론장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그곳에서 벌어지는 지정학적 전쟁에서 밀려나고 있으며, 이 공간은 이미 전장의 한복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허위 정보의 유포를 ‘영토 보전 침해’와 동급의 위협으로 간주하겠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정치적 반대자들을 형사 처벌하는 행위는 전형적인 권위주의 정권의 특징이지만, 이제는 그 현상이 민주주의 국가들에도 점차 퍼져가고 있다. 예컨대 독일에서는, 2018년 1월 1일부터 발효된 ‘네트워크 집행법(Network Enforcement Act)’을 통해 소셜미디어에 대한 통제를 본격화했다.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이 법은 국가가 위임한 ‘언어의 경찰’을 기업들이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다른 정부들에게 위험한 선례를 제공한다.”
실제로 이 법은 시행 직후, ‘완벽한 민주주의 국가’임을 자처하는 필리핀, 싱가포르, 러시아에서 모범 사례로 채택됐다.(1) 성깔 있는 독재자와 계몽된 자유주의자, 광신적 종교인과 분노한 행동주의자 모두가 이제는 ‘아나스타지의 가위(Les ciseaux d’Anastasie, 19세기 프랑스 제3공화국 시기에 검열관을 풍자한 의인화된 여성 캐릭터—역주)’에 맞춰 같은 춤을 추고 있다.
이 표현은 검열을 상징하는 프랑스의 오래된 은유로, 무언가 표현이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그 표현을 성급히 잘라내는 행위가 오히려 장기적으로 더 큰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은 고려하지 않은 채, 즉각 잘라내고자 하는 놀라운 성향을 풍자한다.(2) 왜냐하면, 한쪽의 승리는 곧 다른 쪽의 복수를 부르고, 그렇게 전투가 반복될수록 남는 것은 단 하나, 우리 모두의 자유가 사라졌다는 사실뿐이다.
글·브누아 브레빌 Benoît Brévill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1) “독일: 결함 있는 소셜미디어 법”,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 2018년 2월 14일, www.hrw.org
(2) 벵자맹 콩스탕, 『팸플릿과 소책자, 신문에 관한 자유 - 정부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고찰함』, 파리, 18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