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위협은 실재하는가?
“프랑스는 섬이 아닙니다.”
지난 2월 20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SNS를 통해 이렇게 경고했다.
“스트라스부르(프랑스 동부, 독일 국경 근처에 위치한 도시로, 역사적으로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분쟁 지역이었으며, 오늘날에는 유럽 통합과 평화의 상징으로 자주 인용됨—역주)에서 우크라이나까지는 대략 1,500킬로미터 거리입니다. 그리 멀지 않죠.”
그렇다면, 도네츠크 다음 차례는 알자스란 말인가? 프랑스 대통령의 과장된 위기 조성 발언은, 어쩌면 자국 국방장관 세바스티앙 르코르누 조차 실소를 짓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대부분의 이성적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런 시나리오에 대해 단호히 선을 그었다.
“핵무장을 한 강대국이 논리적으로 핵이 없는 국가와 같은 처지에 놓일 수는 없습니다.”(1)
그의 전임 국방장관이었던 에르베 모랭 역시 3월 9일자 주간지 <르 주르날 뒤 디망슈>에서 이렇게 되물었다.
“러시아가 당장 프랑스까지 쳐들어올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말하는 건, 오히려 국민들을 괜히 불안하게 만드는 일 아닐까요?”
같은 질문은 독일에서도, 혹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서도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더 동쪽, 발트해 연안 국가들에서는 어떨까? 유럽 대륙 한복판에서 대규모 전쟁이 다시 벌어질 조짐이 보이는가?
몇몇 드문 예외를 제외하면, 이제 유럽 정치권은 더 이상 가정법조차 신경 쓰지 않는다. 러시아군은 작전을 준비 중이라는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3월 1일자 <르파리지앵> 인터뷰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지속적인 휴전이 성립된다면, 모스크바는 반드시 몰도바를 공격할 것이며, 루마니아도 그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유럽의회 의원 라파엘 글뤽스만(공공장소당) 역시 2월 22일자 <르몽드>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러시아군은 곧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국경을 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2월 20일자 주간지 <렉스프레스>에도 실렸는데, 이는 ‘도미노 이론’의 재탕에 가깝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무릎 꿇게 만든 뒤, 조지아와 몰도바는 물론, 발트 3국이나 폴란드까지도 노릴 것”이라는 주장이다.
브뤼셀이나 파리의 시각에서 볼 때, 외교적 해법이 불가능해 보이는 데에는 두 가지 장애물이 있다. 하나는 “러시아는 힘만을 이해한다”는 확신, 다른 하나는 “블라디미르 푸틴은 거짓말만 한다”는 절대적인 불신이다.
이 같은 불신은 이번 전쟁의 책임이 전적으로 모스크바에 있다는 해석에 기반하고 있다. 즉, 지난 30여 년의 역사를 러시아가 일으킨 일련의 전쟁으로 보는 시각이다. 체첸(1990년대), 조지아(2008), 크림반도 및 돈바스(2014),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2022)에 이르기까지—이 모든 사건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위협 담론은 어디까지 왔는가
그 흐름은 소련 시절의 국경 회복 혹은 유럽 내 영향권 재건이라는 목표를 향해 있으며, 그 수단으로는 선거 개입 같은 간접적인 방식까지 포함된다. 특히 러시아가 2015년, 민스크 협정을 통해 동부 우크라이나의 친러 분리주의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약속한 이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사실은, 크렘린이 처음부터 침공의 명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증거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와 다른 시각을 갖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며”, 나아가 러시아에 대한 일종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서방이 과거 러시아에 대해 취한 나약한 태도는 그 자체로도 “책임져야 할 잘못”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된다.(2)
민스크 협정 보증인 자처했던 프랑스와 독일, 이행 의지 없어
실제로 서방의 잘못은 푸틴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데 있기보다는, 자신들이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을 것이라 여긴 데 있다. 2015년, 파리와 베를린은 민스크 협정의 보증인 역할을 자처했지만, 훗날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인정했듯, 실제로 그 협정을 이행할 의지는 없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국경 통제권 회복을 지방 선거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을 묵인했다.(당초 민스크 협정에는 우크라이나가 동부 분리주의 지역에서 지방 선거를 먼저 실시한 후 국경 통제권을 넘겨받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었다—역주) 그리고 크렘린이 그러한 교착 상태에 만족할 것이라고 여겼다. 이러한 판단은 많은 관측통들의 공통된 인식이기도 했다.
과거 크렘린은 조지아, 몰도바, 우크라이나 등 주변 국가들의 나토 가입을 저지하기 위해, ‘저강도의 분리주의(전면전이나 완전한 독립 선언에 이르지 않고, 국가 통합을 방해하는 저강도 갈등 상태를 의도적으로 유지하는 전략—역주)’ 상태를 유지하는 전략을 택해왔다. 나토는 분쟁지역 국가의 회원 가입을 꺼리기 때문에, 이는 지정학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러시아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여겨진다.
게다가 프랑스와 독일 모두 크림반도 합병을 사실상 용인하면서도 큰 항의 없이 넘어간 것 역시 이미 충분한 양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양국은 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을 계속 이어갔다.
그러나 서방은 한 가지 중요한 점을 간과했다. 모스크바의 시각에서 볼 때, 우크라이나는 조지아도, 몰도바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1991년 이후 러시아는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를—구 러시아 제국의 ‘슬라브 정통신앙의 민족적 핵심’으로서—자신과 밀접하게 연관된 국가로 간주해 왔으며, 그러한 인식은 한 번도 약화된 적이 없다. 이 두 나라는 러시아에 있어 단순한 영향권 이상을 의미한다.(3) 크림반도 합병은 서방에게 러시아의 ‘레드라인(Red Line.국제 정치에서 넘어서는 안 되는 한계선을 뜻하며, 경우에 따라 강력한 대응이 불가피하다는 정치적 경고를 내포—역주)’을 분명히 인식시키고, 우크라이나를 향한 유럽-대서양 진영의 확장을 공식적으로 저지하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현재의 러시아, 1930년대 독일과 달라
그러나 그런 목적이 실패로 돌아가자, 러시아는 다시 무력 공격에 나섰다. 이처럼 우크라이나가 가진 특수성은 이 사안을 다른 동유럽 국가들에 무분별하게 일반화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된다. 지리적으로 보면 발트 3국이나 폴란드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모스크바의 관점에서 이들 국가가 갖는 ‘가치’는 우크라이나와는 다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자신들의 영향권에 억지로라도 묶어두기 위해 감수한 위험은, 심지어 러시아어 사용 인구가 많은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같은 나라들을 대상으로 감행해야 할 위험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설령 모스크바가 영토에 대한 끝없는 욕망을 갖고 있다 해도, 이들 국가를 공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발트 국가들을 공격하는 것은, 사실상 30여 개 유럽 국가들과 미국이 포함된 나토(NATO) 동맹 전체와의 전면 충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1930년대의 독일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러시아의 공세를 막지 못하는 서방의 나약함을 비판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1938년 프랑스와 영국이 체코슬로바키아를 버린 사례(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 영토인 ‘수데텐란트(Sudetenland)’를 병합하려고 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이 분쟁의 확대를 막기 위해 독일의 요구를 수용—역주)를 자주 인용한다. 하지만 1939년 8월, 나치 독일은 독일계 소수민족 보호를 구실로 폴란드를 전격적으로 침공했고, 그로부터 1년도 채 되지 않아 서유럽의 다섯 나라가 독일에 항복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상황은 다르다. 러시아군은 현재 돈바스 지역에서 수백 평방 킬로미터 남짓의 땅을 ‘한 방울씩’ 겨우 점령해가는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그마저도 단 하나의 우크라이나 군대—비록 서방의 무기 지원을 받고 있긴 하지만—를 상대로 한 전투에 불과하다. 키이우 점령에도 실패한 러시아가 아무런 명분도 없이 리가(라트비아)나 탈린(에스토니아)을 공격하겠는가?
이보다 취약한 몰도바는 나토의 방위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 만약 러시아가 크림반도에서 트란스니스트리아(몰도바 동부의 친러 분리 지역)까지 육로 연결을 시도하거나, 나아가 다뉴브강 하구까지 진격하려 한다면, 그에 앞서 반드시 흑해 북쪽 연안 전체, 특히 우크라이나의 오데사(2022년 당시 마리우폴 인구의 두 배에 달하는 항구 도시)를 점령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고려만으로 유럽에서 전면전이 벌어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모든 전쟁이 참모본부가 사전에 마련한 정복 계획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역시, 국가들의 재무장과 복잡한 동맹 체제라는 구조 속에서 단 하나의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전면전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 역시, 그런 위험 요소들은 결코 적지 않다.
유럽내 군비통제 장치들, 사실상 중단 상태
진짜 위험은 러시아의 (상대적인) 군사력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를 취약하다고 인식하는 그들의 ‘불안감’에 있다. 그리고 이런 인식은 워싱턴에 크게 의존하는 러시아 접경국들 사이에서도 공유되고 있다. 2022년 2월 24일 이후, 수십만 명의 사상자와 함께, 모스크바는 전차 3,786대를 포함해 약 1만 2,000대에 이르는 장갑차량을 잃었다.(4) 러시아군은 소련 시절의 재고 무기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결과 기존에 갖고 있던 재래식 군사력 우위는 크게 약화되었다. 모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전차 보유량은 2022년 대비 10~50% 수준으로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5)
발트해 지역에서 러시아는 이제 재래식 전력 면에서 열세에 놓여 있다. 오슬로 평화연구소(PRIO)의 연구원 파벨 바예프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러시아 상층부는 최정예 전투부대들, 예컨대 공중강습사단과 해병여단까지 대규모 공세작전에 투입할 필요가 있다”라고 판단했다. 그 당시 러시아 발트해 함대는 보유 중이던 잠수함 전력을 흑해 함대로 이동시켰다.
그 결과, ‘칼리닌그라드 요새’는 대부분의 주둔군을 잃고 텅 비어버렸다. 파벨 바예프는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전쟁이 어떤 결과로 끝나든, 러시아는 발트 전선에서 군사적 우위를 회복할 수 없을 것이며, 나토와의 전력 균형조차 맞추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나토는 이미 이 방향에 맞춰 방위 태세 강화 계획을 새롭게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6)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바꾸자, 이에 대응해 나토의 ‘유럽 축’은 이미 발트해를 중심으로 강화되고 있다. 2023년 12월 말, 독일과 폴란드는 영국 주도의 ‘연합 원정군(JEF)’에 합류했다. 이 협력체는 미국 없이 유럽 북부 12개국이 참여하는 나토 내 안보 연합체로, 2023년 12월 중순 에스토니아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는 러시아의 ‘유령 선단’(제재를 회피하는 선박들)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를 발표했다.
이 협력에는 발트해 입구의 해협과 대서양 접근로를 통제하는 덴마크도 포함되어 있다.(7) 한편, 러시아 제2의 경제 중심지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현재 핀란드만(灣)에 깊숙이 갇혀 있으며, 그 주변은 모두 나토 회원국에 둘러싸인 상태다. 또한 폴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핀란드는 대인지뢰 금지 조약인 오타와 협정에서 탈퇴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 3월 5일 연설에서, 모스크바가 발표한 자국의 재무장 목표—2030년까지 병력 150만 명, 전차 7,000대, 전투기 1,500대—를 언급했을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상상을 할 수 있다. 크렘린 역시 자국 국경 인근에서 벌어지는 군사적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한 뒤, 장기적인 대결에 대비하기 위해 이러한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러시아의 위협’에 맞선 재무장을 집단적 정당성으로 삼기 전에, 우선 전략가들이 ‘안보 딜레마’라 부르는 개념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다. 국제적 조율이나 규제가 부재한 상황에서, 한쪽의 방어적 조치가 상대방에게는 공격 의지로 해석되고, 이에 따라 상대도 군사력을 증강하게 되며, 결국 상호 불신과 위협 인식이 증폭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나리오가 특히 우려되는 이유는, 현재 유럽 내에서 군비 통제 장치들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재래식 전력에 관한 조약(CFE, 1990~2007), 비엔나 문서(Vienna Document, 1990~2020, 일정 규모 이상의 군사훈련에 대해 서명국 간 정보를 교환하도록 규정),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 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 1987~2019)이 현재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 여건 악화 속에, 절실히 필요한 군비 통제 장치
군비 통제 체제의 점진적인 쇠퇴는 유럽 대륙에서 최근 벌어진 전쟁들의 또 다른 이면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재래식 전력에 관한 조약(CFE, Conventional Armed Forces in Europe Treaty)의 첫 위반은 러시아에 책임이 있다. 1990년대 러시아는 몰도바와 조지아에서의 자국 군대 철수를 약속하고도 이를 지연시키며 나토 확장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1999년 코소보 전쟁 개입과 관련해서도, 나토가 유엔 안보리 승인 없이 방어 범위를 넘어선 군사 행동을 벌인 데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이후, 러시아는 2004년 발트 3국의 나토 가입(이들은 CFE 조약 비서명국)과 서부 국경의 불안정화를 명분으로, 조약상의 의무를 점차 이행하지 않게 되었고, 자국의 재래식 전력 우위를 유지하려 했다.
2016년, ‘비엔나 문서’ 개정과 관련해 러시아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시했다. 즉, “나토는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는 정책을 중단하고, 러시아의 이익을 인정하며, 러시아 연방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라는 것이다.(8)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 위반 문제에 대해서도 러시아는 루마니아와 폴란드에 배치된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계(MD)를 그 근거로 제시하며, 이에 맞서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로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기 통제 장치를 다시 가동하는 것, 즉 정보 교환, 군사 훈련 조율, 전력 제한, 상호 방문 등을 포함한 긴장완화 틀을 복원하는 일은 무제한적인 군비 경쟁을 막을 수 있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통제 수단이 가장 절실한 순간일수록, 그것들을 되살리기 위한 정치적 여건은 가장 나쁘다.
긴장 완화를 가로막는 가장 심각한 걸림돌 중 하나는, 러시아가 무력을 통해 국제적 경계를 변경한 사실을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으려 한다는 점이다. 이는 국제 질서를 가장 중대하게 위반한 행위 중 하나로 평가된다. 우크라이나는 항복하지 않는 한 이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으며, 유럽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다. 유럽 대부분의 정부는, 모스크바가 그 계획을 포기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전쟁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 다른 길은 협상의 범위를 유럽 전체의 안보 문제로 확장하는 것이다. 이는 곧 미국이 유럽에서 철군하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 즉 러시아가 1991년 이후 줄곧 요구해온 ‘군사적 대서양주의(Transatlanticism, 미국과 유럽 간의 군사적 협력 관계, 특히 나토를 중심으로 한 안보 체제를 의미—역주)’의 종말이 모스크바에게 과연 얼마나 중요한 사안인지를 가늠해보는 시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안보 우산’에 가장 크게 의존하고 있는 국가들, 예컨대 폴란드나 발트 3국은 이러한 접근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반면,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꾸준히 강조해온 프랑스는 이 선택지를 애초부터 배제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프랑스 역시 영국과 마찬가지로 ‘대립의 선두’에 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그 결과,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한 일정 수준의 통제는 사실상 용인하되, 국경 변경 자체는 승인하지 않는 타협안을 모색하는 데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는 평화조약 체결을 향한 첫걸음이 될 수도 있는 전략적 제안이다.
글·엘렌 리샤르 Hélène Richard
언론인
(1) 세바스티앵 르코르뉴, 『전쟁을 향하여? 재무장하는 세계 앞에 선 프랑스』, 플롱, 파리, 2024.
(2) 실비 코프만, 『눈먼 자들―파리와 베를린은 어떻게 러시아에 길을 열어주었는가』, 갈리마르, 파리, 2024. 엘자 비달, 『러시아에 대한 매혹』, 로베르 라퐁, 파리, 2024.
(3) 쥘리에트 포르, 「모스크바의 매파들은 누구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2년 4월. 쥘 세르게이 페뒤닌 & 엘렌 리샤르, 「러시아는 제국주의 국가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4년 1월.
(4) 나알시오, 알로하, 댄, 케말, 알렉산더 블랙, 야쿱 야노프스키, 「유럽을 향한 공격: 러시아의 장비 손실 기록」, 2025년 3월 17일 접속, www.oryxspioenkop.com
(5) 파벨 루진, 「푸틴의 산업과 전쟁: 신화를 해체하다」, 2024년 2월 21일, https://legrandcontinent.eu
(6) 파벨 바예프, 「재편된 발트/북유럽 전장에서 러시아가 직면한 전략적 현실」,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IFRI), 2023년 11월 14일, www.ifri.org
(7) 샤를 페라쟁 & 기욤 르누아르, 「러시아 ‘유령 선단’의 흔적을 따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5년 3월.
(8)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주재 러시아 대표 발언, 올리비에 슈미트, 『재래식 무기 통제와 유럽 안보: 고조되는 위험』, 프레스 드 시앙스포, 레 샹 드 마르, 30호 및 부록, 파리, 2018.
누가 ‘선’을 넘었는가? 2024년 11월 17일과 18일, 발트해 해저에 설치된 스웨덴-리투아니아 간 및 핀란드-독일 간 통신 케이블 두 개가 끊어졌다는 사실이 통신업체들에 의해 포착되었다. 조사가 시작되고 진행 중에, <르몽드>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를 포함한 여섯 개 유럽 국가들은 이미 러시아를 지목하며, 나토와 유럽연합 회원국들을 상대로 ‘무차별적이고 광범위한 규모’의 하이브리드 공격을 감행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11월 19일자). 그러나 이러한 사건은 실제로 그리 이례적인 일도 아니다. 유럽 해저 케이블 협회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적으로 이와 유사한 유형의 사건이 150~200건 발생한다. 해당 기관은 “원인을 둘러싼 성급한 추측은 잘못된 정보를 유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1). 하지만 유럽 각국 지도자들은 이를 러시아의 공작으로 간주했다. 독일 국방장관은 11월 19일, “이 케이블들이 우연히 끊겼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며 분노를 드러냈다. 설상가상으로,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에스토니아와 핀란드를 잇는 해저 전력선까지 절단되었다. 이에 따라 2025년 1월 14일, 독일, 덴마크, 에스토니아, 핀란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스웨덴의 국가원수 및 정부 수반들, 나토 사무총장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고위 대표가 모여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모든 사보타주(sabotage) 시도를 사전에 억제하고, 면밀히 감시하며, 단호히 대응할 것임을 결의한다. 우리의 인프라를 겨냥한 모든 공격은 즉각적이고 강력한 보복을 불러올 것이다.” (…) 러시아의 ‘유령 선단(ghost fleet. 국적을 숨긴 민간 또는 반민간 선박들로, 러시아가 정보 수집이나 하이브리드 작전에 활용하고 있는 해상 세력을 지칭―역주)’은 특히 중대한 위협이다.” 하지만 그렇게 중대하다고 했던 이 심각한 사보타주 사건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에서 아무도 언급하지 않게 되었다. 2년 반 전 ‘노르트 스트림 가스관 파괴 사건’처럼.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1월 말, <워싱턴 포스트>는 폭발적인 기사를 내놓았다. “미국과 유럽 내 여섯 개 보안기관이 공동으로 조사를 벌였지만, 해당 해저 케이블을 손상시킨 것으로 의심받은 상선들이 이를 고의로 혹은 크렘린의 지시로 저질렀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수집된 증거들 ― 감청된 통신, 기밀 정보 등을 포함해 ― 에 따르면, 정비 불량한 선박에서 일하던 미숙한 선원들이 일으킨 ‘사고’로 보인다.”(2) 몇 주 후인 3월 8일, <월스트리트 저널>은 2024년 12월 26일, 핀란드 경찰이 전날 해저 전력선을 절단한 혐의로 러시아 유조선 한 척을 이례적으로 공개 나포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결과는? 해당 케이블 절단과 크렘린 혹은 어떤 정부 간의 연관성도 발견되지 않았고, 핀란드 당국은 선박을 석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국방부 장관 세바스티앵 르코르뉴는 3월 9일 <라 트리뷴 디망슈(La Tribune Dimanche)>에 실린 인터뷰에서 여전히 “러시아 민간 유령 선단이 해저 케이블을 공격하고 있다”고 또다시 주장했다. 그렇다면 그는 <워싱턴 포스트>와 <월스트리트 저널>까지도 크렘린에 넘어갔다고 믿는 걸까?
글·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1) 제인 루피노, “발트해 해저 케이블: 공포가 아닌 회복력의 이야기”, 2024년 11월 22일, Internet Society Pulse |
바이러스 “러시아가 프랑스 병원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2월 20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틱톡에서 이같이 경고했다. 2022년과 2023년, 프랑스 국가 정보보안국(Anssi)에 따르면 30곳의 의료기관이 랜섬웨어를 통한 사이버 공격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수백만 유로의 손실과 기밀 정보의 온라인 유출이 발생했다. 하지만 Anssi의 국장은 2023년 7월 10일 <프랑스 앵테르(France Inter)>에서 이러한 공격들에 대해 “무차별적 저인망식 공격”이라고 표현했다. 즉, “누구를 특정해 노린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모두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사실상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의료기관들이 표적이 된 건, 그들의 정보 시스템이 취약하고, 외부 시스템과의 연결성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결국 예산 부족은, 디지털 바이러스든 실제 바이러스든, 외부 공격에 대한 보건 시스템의 방어 능력마저 약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틱톡에서, 크렘린이 SNS를 통해 거짓 정보를 퍼뜨려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이에 대응해 외국의 디지털 개입을 감시하고 방어하는 기관인 비지넘(Viginum)을 운영 중이다. 2024년 2월, 유럽의회 선거를 몇 달 앞둔 시점에서, 비지넘 요원들은 ‘체계적이고 조직된 친러시아 성향의 선전 활동’을 포착했다. 이 정보는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으며, 해당 네트워크는 <Portal Kombat(포털 컴뱃)>이라는 이름으로, 가짜 언론 사이트들을 통해 유럽과 우크라이나 대중을 겨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난 후, 프랑스어 버전의 해당 사이트를 방문한 이용자는 고작 1만 명 남짓에 불과했다. 2024년 7월 발간된 프랑스 상원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경고를 담고 있다. “해당 여론 공작의 실제 파급력이나 영향력을 정확히 평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존재를 언론과 대중의 주목 대상으로 만들면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즉, 그리 크지 않은 공격력을 가진 상대에게 더 큰 위협처럼 보이게 만들어주는 결과가 될 수 있다.”
2025년 3월 5일, 프랑스 대통령은 다시금 “크렘린이 우리의 국경을 침범해 반대자들을 암살하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을 지칭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혹시 2018년 영국 땅에서 러시아 군사 정보기관에 의해 발생한 이중간첩 세르게이 스크리팔의 독살 미수 사건을 말하는 걸까? 프랑스 내에서 최근 대중적으로 알려진 외국인 대상 정치적 암살 사건은 2013년 파리에서 벌어진 쿠르드계 여성 활동가 3명 피살 사건이 마지막이다. 당시 배후로 지목된 국가는 튀르키예였다. 튀르키예는 나토 회원국이며, 현재 우크라이나에 안보 보장을 제공할 ‘자원국 연합(coalition des volontaires)’ 구성 논의에서 프랑스 엘리제궁이 중시하는 파트너로 꼽힌다. 최근에는 프랑스 법무부 장관과 정부 대변인도 러시아를 테러 위협으로 규정하며 비판에 가세했다. 그들은 2020년 중학교 교사 사뮈엘 파티가 살해당한 사건을 거론했는데, 가해자는 ‘러시아 체첸 출신’으로, 6세에 프랑스로 이주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해당 범인의 가족이 러시아 정부와 그 대리자인 체첸 자치공화국 수장 람잔 카디로프의 박해를 피해 프랑스에서 정치적 망명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1991년 독립 이후 2022년 2월 침공까지 우크라이나는 이미 1,000만 명 이상의 인구를 잃었다. 3년에 걸친 전쟁으로 이탈이 가속화되며, 우크라이나의 인구 감소는 과거부터 이어진 깊은 구조적 원인으로 인해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흐름처럼 보인다. 1992년과 1993년, 인구가 5,200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우크라이나는 극히 낮은 출산율, 유럽 대륙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기대수명에 따른 높은 사망률, 지속적인 이민 현상 등으로 인해 인구 감소를 겪어왔다. 2022년 초 기준으로 인구는 약 4,100만 명 수준까지 줄었으며, 이 수치에는 러시아에 의해 병합된 크림반도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 약 200만 명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 이후로도 유엔(UN)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다시 1,000만 명 이상을 잃은 것으로 보이며, 이는 우크라이나 인구 규모가 한 세기 전 수준으로 되돌아간 것을 의미한다. 전쟁 자체에 대한 정확한 인구 통계를 집계하는 일은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해외로 피신한 670만 명의 난민 중 일부가 돌아올 가능성은 존재한다. 그럼에도, 전쟁으로 인한 인명 피해와 대규모 인구 이동은 ‘태어날 아이들’의 수를 급감시키는 새로운 ‘출산 공백 세대’를 만들어낼 것이다. 25세 미만 남성들을 전선으로 보내는 것을 기피하는 이유 역시 이러한 인구학적 고려와 무관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면적 기준으로 측정되는 동부 지역의 상실은 광물 자원뿐만 아니라 인적 자원 측면에서도 훨씬 더 큰 무게를 지닌다. 2022년 2월 이전까지 헤르손, 자포리자, 도네츠크, 루한스크, 세바스토폴, 크림반도 등 행정 구역에 총 1,100만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 중 마지막 세 지역은 완전히 모스크바의 통제 아래 들어갔고, 나머지 세 지역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부분적으로만 통제하고 있다. 현재 키이우가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지역에는 많아야 3,000만 명 정도만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글·필리프 데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