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간에 머나먼 ‘평화의 지정학’
헨리 키신저의 경고에 귀 기울여야 하는 유럽
1992년 러시아에서 예고르 가이다르가 시행했던 경제 개혁, 즉 ‘충격요법’을 설계했던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는 미국이 옛 소련 지역에 간섭하는 과정을 직접 수행했고 목격했던 인물이다. 그는 지난 2월 유럽의회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자신의 분석을 발표했다. 그의 견해는 소셜미디어에서는 많이 공유됐지만, 유럽의 주요 언론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삭스의 분석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입장과 모든 면에서 일치하지는 않지만, 서방 지도자들이 공개적으로 하는 발언과 실제로 생각하는 사이에 큰 간격이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36년 동안 중앙유럽과 동유럽,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매우 가까이서 지켜봐 왔다. 1989년 폴란드 정부, 1990년과 1991년에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경제 자문팀,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그리고 1994년 레오니드 쿠치마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자문 역할을 수행했다.
2014년 마이단 혁명 이후 들어선 우크라이나 신정부 역시 나를 키이우로 초청했다. 나는 지난 30년 이상 러시아 지도자들과 소통해 왔으며, 미국 측 인사들 또한 매우 잘 알고 있다. 즉, 충분한 근거와 경험을 바탕으로 대화하고 있다.
소련이 붕괴된 이후,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브뤼셀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한계 없이 동쪽으로 계속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는 곧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를 만들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당시 독일 외무장관 한스-디트리히 겐셔와 미국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는 1990년 2월 초 고르바초프와 만나 NATO를 동쪽으로 “단 1인치도 확장하지 않겠다”(1)는 데 이미 합의했었다.
이 약속은 단순한 비공식적 발언이 아니라 법적이고 외교적인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공식적 종결과 독일의 통일 문제를 다루는 협상의 중요한 전제 조건이었다.
흑해 전략, 미국의 30년 된 계획
그러나 1994년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장을 우크라이나까지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단순히 고립된 한 지도자의 변덕스러운 결정이 아니라, 지난 30년 동안 일관되게 실행된 미국의 정책이었다. 어쩌면 이는 최근 2월 12일 있었던 트럼프와 푸틴 간의 전화 통화에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인지도 모른다. 1997년, 미국의 전략가이자 백악관의 전 국가안보보좌관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거대한 체스판(Le Grand Échiquier)』(2)을 출간했다.
이 책은 유럽과 NATO의 동진을 포함한 미국 정부의 구체적인 계획들을 설명하고 있다. 브레진스키는 한 챕터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유럽과 NATO가 러시아의 문 앞까지 다가갔을 때 러시아연방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이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러시아가 현실적으로 국제적 역할을 수행하고, 현대적이고 개방된 사회로의 변화를 극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지정학적 선택은 바로 유럽이다. 단, 전통적인 유럽이 아니라 NATO와 유럽연합이 함께 만든 ‘대서양 중심의 유럽’(transatlantique)’에 참여해야 한다.” 브레진스키는 뛰어난 통찰력을 지닌 인물임에도, 모스크바가 베이징과 가까워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이 사람은 자기 나라를 파멸로 이끌 것이다’
나토의 확장은 1999년 헝가리, 폴란드, 체코의 가입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러시아는 항의했으나, 당연히 소용없었다. 다음 단계인 2004년에는 발트 3국과 루마니아, 불가리아,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가 나토에 합류했다. 이때 러시아는 강력하게 불만을 표명했다. 이는 독일 통일 당시 합의된 국제질서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자, 워싱턴이 모스크바와 맺었던 협력 협정을 배신한 행위였기 때문이다.
2007년 2월 뮌헨 안보회의에서 푸틴 대통령은 분명히 말했다.
“이제 그만, 더 이상은 안 된다!”
그러나 미국은 그의 말을 무시했다. 이듬해,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나토 가입 계획을 유럽에 밀어붙였다. 2008년 봄 뉴욕에서 미헤일 사카슈빌리 조지아 대통령은 한 싱크탱크 연설에서 “조지아는 구대륙의 중심부에 있으며, 그런 점에서 나토에 가입할 자격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 당시 나는 ‘이 사람은 미쳤다. 자기 나라를 파멸로 이끌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그해 8월, 모스크바와 트빌리시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다.
주러 미국대사의 유명한 경고, “니엣은 니엣이다”
그로부터 몇 달 전, 당시 주러시아 미국대사였던 윌리엄 번스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장문의 전문을 보냈는데, 이 전문의 제목은 유명한 말로 남게 되었다. 바로 “니엣은 니엣이다”(Nyet means nyet.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3)였다. 이 전문에서 번스는 푸틴뿐만 아니라 러시아 전체 정치권이 나토 확대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2010년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그의 공약은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당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영토적 요구를 하거나 어떤 야심도 표출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 해군기지 임대 기간을 25년(2042년까지) 연장하는 협상을 벌였을 뿐, 그 이상의 요구는 없었다.
당시 러시아는 크림반도나 돈바스 지역을 탐내지 않았다. 푸틴이 러시아 제국을 부활시키려 한다는 주장은 유치한 선전에 불과했다. 그러나 미국은 야누코비치가 중립성을 고수하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반대한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의 정권을 전복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바이든, 푸틴이 제시한 협상안을 무시
그에 대한 쿠데타가 자행된 이후, 민스크 협정에 이어 신 민스크 합의(민스크 협정II)가 체결되었고, 2015년 2월 1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승인되었다. 그럼에도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이 협정을 이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협정 이행의 보증국이었던 독일과 프랑스 또한 이를 외면했고, 이로써 유럽의 철저히 부차적인 역할이 드러났다.
2016년 트럼프가 미 대선에서 승리한 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도네츠크 분지(돈바스) 지역에서는 수천 명의 사망자를 낳은 폭격이 이어졌다. 이후 2021년 바이든이 미 대통령에 취임했고, 같은 해 말 푸틴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마지막으로 일종의 운영 방식에 도달하려 시도했다. 푸틴은 그해 12월 15일, 유럽과의 협정안 하나, 미국과의 협정안 하나, 이렇게 두 개의 안보 협정 초안을 제안했다.
나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한 시간 동안 전화 통화를 했다. 전쟁을 피하자고 요청하고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이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입니다. ‘우크라이나는 나토에 가입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나를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나토는 우크라이나로 확대되지 않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다시 말했다. “제이크, 그걸 공개적으로 말하세요.”
“안 됩니다, 안 돼요, 우리는 그걸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이크, 당신들은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두고 전쟁을 하겠다는 겁니까?”
“걱정마세요. 전쟁은 없을 겁니다.”
솔직히 말해, 이 사람들은 똑똑하지 않았다. 나는 40년 넘게 미 행정부와 상대해 왔다.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다. 바이든 행정부는 나토 확대 문제에 대해 협상하기를 거부했다.
러시아와 큰 의견 차이를 드러낸, 미국의 탄도미사일 배치 권리
나토의 가장 어리석은 발상은 바로 ‘개방 정책’이다. 이는 1949년 조약의 제10조에 근거한 것으로, 나토는 어느 곳이든–해당 국가가 동의하면–자리를 잡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인접 국가, 예컨대 러시아는 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푸틴이 2022년에 왜 적대 행위를 시작했는가?
명백히 나토, 즉 미국 군대의 우크라이나 진입을 막기 위해서다. 미국의 미사일, CIA 요원 배치 등 모든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는 미국을 어떻게든 자신의 국경에서 멀리 떼어놓고 싶어 한다. 이 점을 이해하려면, 중국이나 러시아가 멕시코 국경의 리오그란데 강이나 캐나다 국경에 군사기지를 설치한다고 상상해보기만 하면 된다. 전쟁은 단 10분 안에 발발할 것이다.
1962년 소련이 쿠바에서 그런 시도를 했을 때, 세계는 핵전쟁의 참극을 맞을 뻔했다.
이 모든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왜냐하면 워싱턴이 2002년에 일방적으로 탄도미사일 방어조약(ABM 조약)을 파기하면서, 그 조약이 보장해왔던 상대적인 안전판을 끝장내버렸기 때문이다. 이 일로 러시아는 크게 격분했다. 2010년부터 미국 군대는 폴란드에 이어 루마니아에도 이지스 탄도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이를 달가워하지 않았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2021년 12월과 2022년 1월에 모스크바가 우려했던 핵심 사안 중 하나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미사일 시스템을 설치할 권리를 주장하는가 여부였다. CIA의 전직 분석가 레이먼드 맥거번에 따르면, 2022년 1월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앤터니 블링컨은 러시아 외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에게 미국이 그럴 권리를 보유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현재 미국은 중거리 미사일 시스템을 독일에 설치하려 하고 있다. 2019년, 미국은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 조약)에서 탈퇴했다.
헨리 키신저, “미국의 적이 되는 것은 위험, 동맹이 되는 것은 치명적”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며칠 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가 중립을 수용할 수도 있다고 밝히자, 평화 협정 체결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양측은 푸틴 대통령이 승인한 문서를 두고 협상을 나눴고, 튀르키예 중재자들이 이 협상을 조율했다.
나는 2022년 봄, 이 논의가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직접, 그리고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튀르키예의 수도 앙카라에 있었다. 결국 우크라이나는 체결 직전이던 합의를 거부했다.
왜 그랬을까?
미국이 그렇게 요구했고, 영국은 4월 초 보리스 존슨 총리를 우크라이나에 보내 같은 입장을 전달함으로써 쐐기를 박았다.
처음부터 하나의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러시아는 결국 손을 들 것이다, 저항할 능력이 없다… 이는 브레진스키가 이미 1997년에 주장했던 바다.
나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헨리 키신저의 유명한 격언을 자주 상기시켰다.
미국의 적이 되는 것은 위험하지만, 미국의 동맹이 되는 것은 치명적이다.
유럽은 이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글·제프리 삭스 Jeffrey Sachs
컬럼비아대학교 경제학 교수. 유엔 사무총장 특별자문관.
*이 글은 2025년 2월 19일 유럽의회에서 열린 강연 내용을 저자가 직접 요약하고 정리한 것이다. 르노 랑베르가 영어 원문을 프랑스어로 번역했다.
(1) 필리프 데캉, “나토는 동쪽으로 한 치도 확장하지 않을 것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9월.
(2)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거대한 체스판: 미국과 나머지 세계』, 파야르, 파리, 2023(초판: 1997).
(3) 참조: “Nyet means nyet: 러시아의 나토 확장에 대한 레드라인”, 2008년 2월 1일, https://wikileak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