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이 사이에서 이중 플레이하는 아일랜드
팔레스타인과는 ‘연대’, 이스라엘과는 ‘경제협력’
아일랜드는 오래전부터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표명해 왔다. 그 역사적 경험은 아일랜드로 하여금 식민지배, 점령, 분단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만들었다. 데리는 가자를, 런던은 텔아비브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유럽연합 내에서 미국의 경제적 거점으로 변모한 이 섬나라가, 과연 팔레스타인에 대해 어떤 실질적인 지원을 감행할 수 있을까?
전통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1950년대부터 매년 3월이 되면 백악관은 아일랜드의 색으로 장식된다. 빌 클린턴 대통령 재임 시절부터는 ‘성 패트릭의 날’(1)에 아일랜드 총리를 초청하는 관례까지 생겼다.
2024년, 조 바이든 대통령은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초록색 넥타이를 매고 샴록(클로버)을 단 채 리오 바라드카 아일랜드 총리를 맞이했다. 두 정상은 중동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해 논의했으며, 공동 기자회견에서 바라드카 총리는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끔찍한 참상을 아일랜드 국민은 매우 깊은 우려의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전했다.
“제가 해외를 방문하면, 각국 지도자들은 종종 아일랜드인들이 왜 팔레스타인 국민에게 그토록 깊은 공감을 느끼는지 묻습니다. 그 답은 간단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눈 속에서 우리 자신의 역사를 보기 때문입니다. 강제 이주, 몰수, 부정당한 민족 정체성, 강요된 이민, 차별, 그리고 이제는… 기아의 역사 말입니다.”
이는 ‘대기근’에 대한 언급이다. 19세기 중엽, 감자 수확이 역병으로 망가지면서 약 150만 명이 사망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 미국으로 대규모 이민을 떠나야 했던 아일랜드의 집단적 트라우마를 말한다.
“우리는 그들의 눈 속에서 우리를 봅니다”
중도우파 성향의 유럽 지도자의 발언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놀라운 내용일 수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시작된 이후, 유럽 대륙의 대부분 국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친이스라엘적 입장을 취해 왔다.
2023년 10월, 가자지구에 대한 군사 공세가 시작되자마자 더블린은 그 불균형적 대응을 비판한 첫 번째 수도가 되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이스라엘을 방문해 “자위권”을 강조하며 감정을 드러내자, 아일랜드 대통령 마이클 D. 히긴스는 이에 공식적으로 선을 그었고, 총리 바라드카 또한 발언 수위를 높였다. 그는 그것이 “복수에 더 가까운 어떤 것”이라며 규탄했고, 유럽연합을 향해서는 “이중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며 비판했다.(2)
팔레스타인 희생자의 수가 계속 증가하는 가운데, 아일랜드는 2024년 5월 22일, 노르웨이와 스페인과 함께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공식 인정했다.
이어 2025년 1월 6일, 아일랜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기한 이스라엘에 대한 집단학살 혐의 소송에 동참했다.(3)
또한 아일랜드는 2024년 10월 28일 이스라엘 국회가 활동을 금지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사업기구(UNRWA)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하지 않았다. 오히려 2025년 2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합의가 발효된 시점에, 더블린 정부는 UNRWA에 2,000만 유로의 추가 기여금을 제공했다.(4)
아일랜드는 식민주의에 대한 오랜 경험을 지닌 나라다. 영국의 지배는 아일랜드 공화국의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미 12세기부터 아일랜드의 일부는 앵글로-노르만족에 의해 정복되었고, 그 후 여러 차례 침략을 당한 아일랜드는 팔레스타인과 점령과 저항의 역사를 공유하게 되었다. 수세기 동안, 아일랜드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도 익숙한 영국 제국주의 전략의 대상이 되어왔다. 즉, 이주민 식민화, 군사 점령, 영토 분할, 봉기 진압과 같은 방식들이다.
‘대기근’ 당시, 런던은 아일랜드의 인구가 기근으로 몰락하도록 의도적으로 방치했다.
역사학자 베네이 블렌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광범위하게 적용하는 행정구금과, 1981년 영국에 맞선 유명한 단식투쟁 당시 아일랜드 정치범들의 상황을 평행적으로 비교한다. 이 투쟁에서는 공화주의자 로버트 ‘보비’ 샌즈(Robert ‘Bobby’ Sands)와 아일랜드공화군(IRA) 소속의 다른 아홉 명의 활동가가 목숨을 잃었다.(5)
팔레스타인과 연대해 ‘BDS 캠페인’ 지지 확산
2005년, 팔레스타인과의 연대 속에서 시작된 국제 ‘BDS(Boycott, Divestment, Sanctions) 캠페인’은 오랫동안 아일랜드 사회의 폭넓은 지지층을 결집시켜 왔다. 그런데 이 ‘약자의 무기’로 불리는 운동의 이름은 아이러니하게도, ‘보이콧’(boycott)이라는 단어의 유래가 된 인물에서 비롯되었다. 그 이름의 주인공은 찰스 커닝햄 보이콧(Charles Cunningham Boycott).
그는 영국 왕립육군 장교 출신으로, 아일랜드 서부 메이오(Mayo) 카운티에 정착한 대지주의 관리자로 일했다. 1880년, 흉작과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소작료 체납으로 쫓겨나자, 보이콧은 가차 없이 이들을 퇴거시켰다. 이에 맞서 아일랜드 민족주의 지도자 찰스 스튜어트 파넬의 주도로 농민들이 집단적으로 저항에 나섰다.
“그 누구도 보이콧을 위해 일하지 말라!”
“그 누구도 그에게 물건을 팔지 말라!”
결국 보이콧은 아일랜드를 떠나야 했고, 그의 이름은 오늘날까지 ‘불복종·배척’을 뜻하는 말로 남게 되었다. (6)
1887년, 아서 제임스 밸푸어는 영국 내각에서 아일랜드 문제를 맡게 됐다. 역사적으로 그는 1917년,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민족 국가 수립을 지지하는 최초의 공식 선언인 ‘밸푸어 선언’에 서명한 인물로 기억되지만, 그보다 앞서 ‘에린의 푸른 섬(Verte Erin)’, 즉 아일랜드에서의 체류로 인해 그는 ‘피의 밸푸어(Bloody Balfour)’라는 별명을 얻었다. 밸푸어는 아일랜드 자치에 대한 모든 형태에 철저히 반대하며, 봉기를 가차 없이 탄압한 인물이었다.
이스라엘의 네 번째 수출시장인 현실
이런 역사적 대응 구도의 연장선에서 흥미로운 평행이 발견되기도 한다. 예컨대 1920년, 예루살렘의 영국군 총독 로널드 스토스는 이스라엘을 가리켜 “작은 얼스터 유대인”이라 묘사했다.
이는 아일랜드 내 충성파(친영 지역)로 간주되던 얼스터 지방과의 대응 구도를 암시한 표현으로, 당시 대영 제국 입장에서는 이스라엘도 아일랜드 민족주의에 맞서기 위한 방어선과 같은 의미로 읽혔다.(7)
오늘날 아일랜드인 네 명 중 세 명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에 의해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를 겪고 있다고 생각하며, 세 명 중 두 명은 유럽연합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제재를 가했듯,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학살에도 마찬가지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8)
이러한 대중의 감수성은 특히 선거 시기에 정부의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더블린은 수십 년에 걸쳐 텔아비브와 정규 외교 관계를 유지해 왔다. 1973년 유럽공동체(EC) 가입 이후, 그리고 유럽연합(EU)의 일원으로서 아일랜드는 세계화된 경제시스템에 본격적으로 편입되었다. 이 점에서 아일랜드는 이스라엘 기업들의 네 번째 수출 시장이며, 동시에 이스라엘이 수입 상대국 순위에서 일곱 번째를 차지할 만큼 중요한 교역국이다.(9)
이스라엘로 가는 미국산 군수물자 영공통과 허용
냉전 시기부터 아일랜드는 공식적인 중립성 유지와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 해왔다. 예를 들어, 2002~2003년 이라크전 당시, 아일랜드는 유엔 결의 없이 서방이 개입하는 것에는 반대했지만, 동시에 미군이 자국 영공을 통과하고 섀넌(Shannon) 공항을 사용하는 것은 허용했다.(10)
아주 최근의 사례로도, 아일랜드는 미국산 군수 물자를 이스라엘로 운송하는 수십 편의 항공편에 대해 자국 영공을 개방했으며, 이스라엘 방산업체 엘빗(Elbit)과의 계약을 통해 수백만 유로를 지출한 바 있다.(11)
때때로 아일랜드 정치 엘리트의 손은 떨린다. 2018년에 발의된, 이스라엘의 불법 정착촌(서안지구, 골란고원, 동예루살렘 등)에서 생산된 제품의 수입 판매를 금지하는 “불법 정착촌 상품 금지법안”은 유럽연합의 통상법을 위반(무역정책은 개별 회원국이 아닌 EU 전체 차원에서만 규제할 수 있다는 조항과 충돌—역주)할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입법이 저지되었다.
미국의 로비 단체들과 주아일랜드 미국상공회의소는 이러한 입법 시도를 지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실제로 국제문제 전문지인 <포린 폴리시>는, “미국에 본사를 둔 10개의 다국적 기업—모두 기술 및 제약 분야—이 현재 아일랜드에서 법인세 수입의 약 60%를 부담하고 있으며, 직간접적으로 미국 다국적 기업들은 아일랜드에서 약 37만 5천 명을 고용, 이는 전체 경제활동 인구의 약 15%에 해당한다.”라고 보도했다.(12)
미홀 마틴 총리, 유엔이 제시한 ‘반유대주의’ 정의 수용해
이는 곧 아일랜드 정부의 정치적 열의에 제동을 거는 요인이 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에서의 학살과 불법 병합이 심화되자, 해당 법안은 좌파 세력과 대중 시위의 압력 속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하지만 이 법안은 다시 기술적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 빠져들었고, 이는 정치적 긴장을 늦추려는 일부 장관들의 의도적인 개입으로 다시 좌초 위기에 처하게 됐다.(13)
2024년 12월 15일, 이스라엘이 더블린 주재 자국 대사관을 폐쇄하기로 결정하자, 그 다음 날,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당시 아일랜드 총리였던 사이먼 해리스를 향해 “반유대주의자”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당시 부총리 겸 외무장관이었던 미홀 마틴은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며 같은 날(12월 15일) X(구 트위터)를 통해 텔아비브 주재 아일랜드 대사관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발표했다.(14) 사실 2023년 말에도 미홀 마틴은, 이스라엘 대사를 추방하라는 좌파 진영의 요구를 외면했고, 같은 해 자신의 소속 정당 연례 회의에 이스라엘 대사를 초청해 참석시켰으며, 공식 외교 방문을 위해 직접 텔아비브를 방문하기도 했다.
최근 그는 총리 자격으로, 홀로코스트 기억을 위한 국제연합(IHRA)이 제시한 ‘반유대주의’의 정의를 수용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이 정의는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을 반유대주의로 간주할 수 있는 여지를 내포하고 있다.(15)
아일랜드 최대 야당인 신페인(Sinn Féin)도 좌파 진영 내부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예컨대, 가자지구에서 학살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2024년 성 패트릭의 날 백악관 행사에 참여한 것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며, 또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와의 밀접한 관계 역시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주아일랜드 대표가 2024년 2월 벨파스트에서 열린 공화주의 시위에 참여한 사건은 논란을 낳았다. 아직도 영국의 행정권 아래 있는 북아일랜드에서는 반제국주의적 정서가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데리(Derry)—왕당파들은 런던데리(Londonderry)라 부르며, 북아일랜드에서 인구 기준으로 제2의 도시—는 사실상 두 지역으로 나뉜 도시다. 동쪽 포일 강(Foyle) 건너편에는 ‘개신교 유니오니스트’(영국 잔류 지지) 거주자들이 많은 워터사이드가 있고, 서쪽에는 공화주의 색채가 강한 가톨릭 지역 보그사이드가 있다.
북아일랜드 ‘피의 일요일’ 행사에 팔레스타인 연대 진행
이곳에서는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한 이후, ‘스포트4팔레스타인(Sport4Palestine)’ 같은 새로운 조직들이 만들어졌다. 이 단체는 특히 현지 축구팀 데리 FC(Derry FC)의 울트라 서포터들과 젊은 공화주의 운동가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및 아일랜드의 정치범들을 위한 연대 공연과 상징적 행동들을 1년 넘게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매년 1월 30일, 북아일랜드의 카톨릭 주민들은 1972년 영국군이 자신들의 시위를 유혈 진압한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을 추모한다. 이는 데리 지역의 정치 활동 중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이며, 올해 열린 추모 행진 역시 팔레스타인 연대의 상징 아래 진행되었다. 행진 현장에는 “저항은 테러가 아니다(Resistance is not terrorism)”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다.
행진의 마지막에는 피의 일요일 생존자인 에이먼 맥캔과 데리에 거주 중인 팔레스타인 작가 파라 쿠타이네가 더 급진적인 연대를 요구하는 연설을 진행했다. 보그사이드 거리에는 팔레스타인 벽화가 그려져 있으며, 어느 교차로 벽면에는 팔레스타인 전사가 복면을 쓴 아일랜드 남성과 팔짱을 끼고 있는 포스터가 걸려 있다. “프리 데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Welcome to Free Derry).”
게리 도넬리는 데리 시의회 의원으로, 서민 거주지인 크레건(Creggan) 지역에서 자라 지금도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지역 커뮤니티 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센터 입구에는 가자지구를 위한 모금함이 공화주의 정치범들을 위한 모금함과 나란히 놓여 있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도넬리 씨가 참여하는 대부분의 정치 활동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 외교적 제재 촉구, 그리고 즉각적인 휴전을 위한 행동에 집중되고 있다.
2024년 4월에는 지역 슈퍼마켓에서의 불매운동 시위 중 체포되기도 했다. 공화주의자인 그는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위한 대중 시위가 대단히 폭넓게 확산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가 학교에서 학생들과 나눈 대화에 따르면, 젊은 세대는 매우 단호하다. “제가 ‘이스라엘을 더 강하게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라고 물으면, 학생들 100%가 “예”라고 대답합니다. 그 안에는 가톨릭, 개신교, 그리고 다양한 사회 계층 출신이 모두 포함되어 있어요.”
“이스라엘을 더 강하게 비판해야 한다”
도넬리와 그의 동료들이 행동에 나선 것은 2023년 10월 7일 이후가 아니었다. 그는 특히 ‘레이시온의 아홉 명(The Raytheon Nine)’으로 알려진 그룹의 일원이다. 2006년 여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던 시기, 이 활동가 그룹은 데리에 위치한 미국 무기 회사 레이시온(Raytheon, 현재 RTX. 2023년 기준 연간 매출 690억 달러, 세계 3위의 군수업체)의 공장에 침입해 컴퓨터와 서버를 파괴하는 직접 행동을 벌였다.(16)
도넬리는 다음 사실을 자주 상기시키고자 했다. 1998년 벨파스트(굿프라이데이) 평화협정을 협상한 데이비드 트림블과 존 휴엄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직후, 바로 이 ‘전쟁산업의 거두’ 레이시온을 데리로 끌어들인 장본인들이었다는 점이다. 그 후, 지역 반전 연합체가 10년 넘게 조직적 행동을 이어간 끝에, 레이시온은 2010년 마침내 데리에서 철수하게 되었다.(17)
“아일랜드는 오늘날 팔레스타인에서 사용되는 제국주의식 반봉기(反蜂起) 전략들의 실험장이었습니다. 특히 정보 수집, 감시 기술, 운동 내부 분열 전략 등에서 그렇습니다.”라고 도넬리 는 강조하면서 다음의 말을 덧붙였다.
“신페인과 파타의 사례를 비교해 보면, 두 정당 모두가 민족주의 진영 내부의 분열을 유도하기 위해 도구화된 전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항운동가들 역시 서로의 경험과 투쟁 방식을 공유해 왔습니다. 단식투쟁, 보이콧, 직접행동 같은 방식들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도시 반대편은 어떨까? 로열리스트(왕당파) 지역에서는 이스라엘 국기가 영국 국기 유니언 잭과 나란히 걸려 있었다.
글·클라라 메네 Clara Menais
언론인
(1) 스티븐 콜린스, 「성 패트릭의 날에 백악관을 방문한 아일랜드 총리의 짧은 역사」, <아이리시 타임스>, 더블린, 2017년 3월 11일.
(2) 그린 N. 아오다, 「바라드카: 이스라엘의 행동은 ‘자위보다는 복수에 가깝다’」, <인디펜던트>, 런던, 2023년 11월 3일. 참고: 「바라드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EU의 ‘이중잣대’에 우려 표명」, <엔필드 인디펜던트>, 런던, 2023년 11월 19일.
(3) 안 세실 로베르,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어떻게 보편적 정의를 옹호하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4년 2월. 참고: 「아일랜드, 국제사법재판소 규정 제63조에 따라 사건에 개입한다는 선언 제출」, 국제사법재판소(CIJ) 보도자료, 헤이그, 2025년 1월 7일.
(4) 데이비드 영, 「총리, UNRWA에 대한 이스라엘의 금지 조치를 '파국적이고 수치스럽다’고 비난」, <런던 이브닝 스탠다드>, 2024년 10월 28일. 참고: 「아일랜드, 가자지구의 UNRWA 인도주의 활동 지원 위해 2,000만 유로 약속」, 2025년 2월 7일, <아이리시 에이드>, www.ireland.ie
(5) 이브라힘 와드, 「자유무역이 아일랜드를 굶주리게 했을 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96년 6월. 참고: 베네이 블렌드, 「보비 샌즈에서 팔레스타인 구금자들까지: 단식 투쟁의 가치와 의미에 대하여」, 2022년 10월 6일, www.palestinechronicle.com
(6) 올리비에 에스테베스, 「보이콧의 유령」,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8년 10월. 참고: 「BDS: 아일랜드, 이스라엘 정착촌 제품 금지 법안 통과」, 2019년 2월 1일, www.chroniquepalestine.com
(7) 로리 밀러, 「왜 아일랜드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가」, <포린 폴리시>, 워싱턴 DC, 2010년 6월 23일.
(8) “새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일랜드 국민 대다수가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하에서 살고 있다고 믿는다”,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 2024년 1월 18일, www.amnesty.ie
(9) 알란 콜필드, 「이스라엘에 대한 아일랜드의 ‘이중용도’ 물자 수출, 제재 논란 속에서도 7천만 유로로 급증」, <아이리시 인디펜던트>, 더블린, 2024년 3월 19일.
(10) 가반 왈쉬, 「아일랜드의 국방 구상은 시대에 뒤처져 있다」, <포린 폴리시>, 2024년 11월 26일. 참고: 폴 브르낭, 「아일랜드와 이라크 전쟁」, <우트르 테르>, 제5호, 파리, 2003년 11월 1일.
(11) 「아일랜드 교통부 조사를 받고 있는 항공사, 군수 물자의 아일랜드 영토 운송 재개」, 2025년 1월 20일, www.ontheditch.com ; 코너 갤러거, 「아일랜드, 이스라엘 감시 드론 및 군사 장비에 850만 유로 지출」, <아이리시 타임스>, 2024년 2월 22일.
(12) 에오인 드레아, 「아일랜드는 미국식 꿈에 갇혀 있다」, <포린 폴리시>, 2023년 4월 27일.
(13) 마레드 구윈 존스, 「아일랜드의 ‘점령지 상품 금지 법안’이란 무엇이며, 왜 재검토될 수 있는가?」, 2024년 10월 18일, www.euronews.com ; 스티븐 맥더모트, 「점령지 법안이 미국 내 아일랜드인의 이민 신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정부 경고」, www.thejournal.ie ; 아일랜드 미국상공회의소 공공정책 담당 이사의 서한, 2019년 5월 24일자, https://data.oireachtas.ie 에서 열람 가능 ; 그레인 니 아오다, 「타니스트: 아일랜드는 불법 이스라엘 정착촌에서 생산된 상품은 금지하되, 서비스는 금지하지 않을 것」, 2025년 2월 11일, www.breakingnews.ie
(14) 리사 오캐롤, 「가자 전쟁에 대한 비판을 이유로 한 이스라엘의 침묵 강요에 아일랜드는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총리가 말하다」, <가디언>, 런던, 2024년 12월 16일.
(15) 앤드루 노티, 「왜 아일랜드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에 대해 다른 나라들보다 더 강경한 태도를 취할까?」, 2023년 11월 10일, www.euronews.com ; 참고: 사라 번스, 「‘마틴의 이스라엘 방문은 선전 투어였다’고 머피 의원이 말하다, 타니스트는 ‘허위 정보’라고 반박」, 콤 키이나, 「정부 운영 계획에 반유대주의 대응 조치 포함」, <아이리시 타임스>, 각각 2023년 11월 22일 및 2025년 1월 17일.
(16) 「방산 업체 항의 시위자들 체포」, 2006년 8월 9일, http://
news.bbc.co.uk ; 참고: 「2024년 방산업체 톱 100」, https://people.defense
news.com ; 데리에 관해서는 아드리앵 올스텡, 「데리에서 민족주의자들과의 야간 순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1년 7월 참조.
(17) 조지 잭슨, 「레이시온, 데리 공장 폐쇄 발표」, <아이리시 타임스>, 2010년 1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