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판 위의 분필은 아직도 인종차별적이다
탈식민적 사유, 그 확장들
“대부분의 세계는 존재론적 점령 상태에 놓여 있다”(1)고 말한 콜롬비아의 인류학자 아르투로 에스코바르는, 단일화된 보편적 세계관을 강요해온 서구—“제국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인 동시에 매혹적인 개념”—에 맞서 ‘플루리베르스(plurivers)’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서로 얽혀 있으나, 비대칭적 힘의 관계 속에서 다양한 삶과 그 존재 방식들이 공존하는 세계를 뜻한다.
“우리는 종종 백인, 유럽계 미국인 혹은 유럽계 라틴아메리카인의 지식이 다른 사회 집단보다 더 뛰어나다고 여긴다.” 그러나 근대, 진보, 세계화를 맹신하던 시대가 저물면서 이성 중심적이고 자유주의적이며 세속화된 동시에, 남성 중심적이고 규범적이며 인종차별적 인종차별적 구조 위에 구축된 ‘유럽식 자본주의 근대성’의 지배 체제는 위기를 맞고 있다. “근대를 전 세계에 강제로 이식하려는 고집을 부리는 것보다, 오히려 전통을 되살리고 재창조하는 데 힘쓰는 것이 더 이성적인 일 아닌가?”
그는 ‘개발주의’와 ‘자원 채굴 중심’의 폭력적 모델에 맞서 몸으로 싸우는 민중과 민족-영토 공동체들이, 오늘날 우리가 맞이한 전환의 시대를 가장 먼저 사유하고 이끌어가는 존재들이라고 본다.
“유럽의 정치와 철학은 더 이상 중심이 아니다”
에스코바르의 접근법은 ‘민족지’(Ethnography, 한 사회나 문화 집단의 삶, 관습, 사고방식, 상호작용 등을 장기간에 걸쳐 현장에서 관찰하고 기술하는 연구 방식—역주)적인 면이 있는데, 2000년대 초 페루의 아니발 키하노, 아르헨티나의 엔리케 두셀과 발터 미뇰로가 창시한 탈식민 사유 흐름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들 모두는 ‘역사의 어두운 면’—곧 배제되고 침묵당한 이들의 입장에서 사유한다고 주장하며, “하위 주체(subaltern)”의 시각을 대변한다고 자부한다.
프랑스 철학자 장-크리스토프 고다르는 “유럽의 생태를 파괴하는 정치와 인종차별적인 철학”이 더 이상 중심이 아니며, 도리어 이제는 글로벌 남반구의 활동가, 작가, 이론가들에 의해 분석되고 비판되는 대상이 됐다고 본다.(2)
또한 그는 유럽이 대서양을 중심으로 식민 질서를 구축한 이래, 세계는 겉으로는 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으며, 오늘날까지도 “집단학살은 계속되고 있다”라고 단언한다.
수리남과 가봉, 프랑스령 기아나와 뉴기니를 리뷰하는 이 책은 학구적이지만, 그 논지는 거칠다.
“백인들이란 본래 인간성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소수의 남성과 여성에 불과하다(…).”
예상대로 복음화는 맹렬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철학 역시 마찬가지다. 플라톤에서 르네 데카르트, 임마누엘 칸트, 프리드리히 니체, 그리고 바로크 시대의 스피노자에 이르기까지 철학은 “정복자의 우월성을 상징하는 하나의 우화이자, 지배와 굴욕을 실현하는 구체적 수단으로 기능해왔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프랑스 교외, 즉 내부 식민지적 공간에서는 ‘공동체주의 회귀’라는 위협에 맞선다는 명분 아래 식민지 출신 이민자들의 자녀들을 여전히 학교에 보낸다. 콩고 작가 소니 라부 탕시는 이를 두고 ‘칠판의 분필조차 인종차별적’이라 말했다.”
탈식민주의적 담론이 확산되자, 이에 대한 반발로서 우파와 극우 진영에서는 피상적이고 왜곡된 비판들도 함께 쏟아졌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서 있는 여섯 명의 지식인들이 각자의 저서에서 제기한 비판은, 이러한 공격들과 분명히 구별된다. 그들의 비판은 풍부하고 도발적이다.(3) 인종차별, 식민주의, 제국주의에 맞선 필수적인 투쟁의 정당성을 전혀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이들은 다음과 같은 경고를 덧붙인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환원 관점을 거부
탈식민주의자들이 정체성, 문화적 특수성, 그리고 ‘우주관(cosmo-visions)’에 과도하게 집중함으로써 토착 문화와 ‘비백인’ 민족들을 본질화하고 이상화하는 함정에 빠지고 있으며, 이는 결국 유럽 중심주의를 단순히 뒤집은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든 비판적 논의를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으로 환원하려는 관점을 거부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는 사유의 보편적 가치, 지식의 다자성, 경계를 넘는 대화, 그리고 지적 전통 간의 혼종성(hybridity, 탈식민주의 이론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다양한 문화, 전통, 지식 체계, 언어 등이 충돌하거나 섞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잡종적 상태’—역주)을 믿는다.”
그들은 이어 탈식민주의 작가 프란츠 파농의 사유를 환기시킨다.
“백인은 자신의 백인성에 갇혀 있고, 흑인은 자신의 흑인성에 갇혀 있다. (…) 우리에게는, 흑인을 숭배하는 자 또한 흑인을 혐오하는 자만큼이나 ‘병든’ 존재다.”
글·모리스 르무안 Maurice Lemoine
언론인
(1) 아르투로 에스코바르, 『또 다른 가능성은 가능하다』, 줄마-짐산, 파리-다카르, 2024년, 368쪽, 22.50유로.
(2) 장-크리스토프 고다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다: 백인 세계에 대한 탈식민적 반(反)인류학들』, 와일드프로젝트, 마르세유, 2024년, 264쪽, 22유로.
(3) 집필진 공저, 『탈식민 이성 비판: 한 지적 반혁명에 대하여』, 레샤페, 파리, 2024년, 256쪽, 19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