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나이의 '소프트 파워의 꿈', 이제는 누가?
국제정치에서 군사력 등 '하드 파워'와 구별되는 '소프트 파워' 개념을 정립한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가 별세했다. 향년 88세.
나이 교수는 하버드대 교수로 60년간 재직하며 소프트파워, 스마트파워,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박사 학위를 취득한 직후인 1964년에 교수진에 합류하여 현대 존 F. 케네디 행정대학원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1995년부터 2004년까지 학장을 역임했다.
특히 자기 생각을 정부에 적용해 지미 카터,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국 국가 안보의 핵심 요직을 역임했고, 애스펀 전략 그룹(Aspen Strategy Group)을 비롯한 여러 초국적 정책 기구를 이끌었다. 1989년부터 1993년까지 벨퍼 센터(당시 과학국제관계센터)를 이끌 당시 냉전 이후 붕괴한 구소련의 핵무기 통제 허술함이 초래한 위협에 대한 획기적인 연구를 수행했다. 이 연구는 '느슨한 핵무기'의 위험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하는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후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가정보위원회 위원장과 국방부 국제 안보 담당 차관보를 역임하며 핵무기 확산 정책을 감독했다.
프랑스의 르몽드는 11일자에서 조지프 나이가 꿈꾸었던 미국의 소프트파워에 대한 개념을 짚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2025년 5월 6일 별세한 조지프 S. 나이는, 힘이 아닌 매력과 설득을 통한 영향력이라는 개념, 즉 '소프트파워'를 이론화한 인물이다. 트럼피즘은 이와 정반대에 서 있지만, 다른 미국인들이 그 깃발을 다시 들고 나섰다.
때때로 역사는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미국의 뛰어난 국제관계 이론가 조지프 S. 나이는, ‘강압이나 금전이 아니라 매력과 설득을 통해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능력’으로 정의한 소프트파워의 개념을 제시한 인물이다. 그는 5월 6일 화요일에 세상을 떠났다. 바로 그 시점은 그의 조국 대통령이, 미국이 지난 80년 동안 공들여 쌓아온 소프트파워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데 집착하고 있던 때였다.
도널드 트럼프는 취임 100일 만에, 자신의 첫 임기 4년간보다 더 심각한 타격을 미국의 이미지와 영향력에 입혔다. 억만장자 일론 머스크의 제안에 따라 미국의 대외 원조기관인 USAID(국제개발처)를 해체함으로써, 그는 전 세계 보건, 교육, 시민사회에 필수적인 프로그램들을 없애버렸다. 또한 미국의 대학, 언론, 사법체계를 공격하며, 미국이 민주주의 모델을 홍보할 때 내세워온 전통적 원칙들을 짓밟았다.
트럼프는 동맹국들을 험하게 대하고, 이민자 사냥에 나서면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구축한 미국의 전설적 이미지, 곧 “언덕 위의 빛나는 도시”라는 이상마저 파괴해버렸다. 이 이상은 순례자들을 미국 해안으로 이끌었고, 냉전 시기 자유 세계의 나침반 역할을 했다. 그러나 오늘날 도널드 트럼프는 타인을 매혹하거나 설득하는 데 관심이 없다. 그의 세계에서 권력은 협박, 거래, 또는 무력에 의해서만 작동한다.
부유국의 책임
그럼에도 미국에는 소프트파워를 신봉하며 다른 세계관을 위해 싸우려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또 다른 억만장자인 빌 게이츠는, 트럼프의 방식과는 현저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론 머스크처럼 기술산업 출신인 그는 지난 25년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재산을 활용해 미국의 자선 전통을 이어왔다. ‘게이츠 재단’을 통해, 그는 아프리카의 공공 보건 분야에서 핵심적 역할을 해왔다. (르몽드 아프리크의 파트너이기도 하다.) 그는 항상 민간 자선은 공적 개발원조를 보완할 뿐 대체할 수 없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부유한 국가들의 개발원조 축소는 빌 게이츠로 하여금 전략을 재정비하게 만들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의 올리가르히 집단과는 거리가 멀며, 과학, 기후, 인류에 대한 그의 관점은 대통령의 그것과 정반대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남자”인 일론 머스크가 원조 프로그램을 중단시킴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들을 죽일 수 있다”고 분노를 표한다.
5월 8일 목요일, 그는 향후 20년간 자신의 재산 99%인 1080억 달러(960억 유로)를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고, 재단을 2045년에 해산하겠다고 발표했다. 며칠 전, 94세의 억만장자 워런 버핏은 “무역은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하며 은퇴를 발표했고, 자신의 재산 절반을 게이츠 재단에 기부했다.
빌 게이츠의 나이, 69세는 바로 5월 8일에 선출된 교황 레오 14세와 같다. 공교롭게도 이 교황 역시 미국인이고, 미국 너머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며 부유한 국가들의 책임감을 공유한다. 두 사람은 서로 알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조지프 S. 나이가 그렇게 잘 묘사했던 소프트파워의 가치를 옹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