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어주의 계승자들

2012-12-11     키스 딕슨

2012년 여름.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영국의 총리를 지낸 토니 블레어는 정계에 복귀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같은 진영 내에서도, 외부에서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노동당에서 블레어주의를 계승하는 일부 의원들도 살아남기 위해 오히려 '져버린 별' 블레어 전 총리와 거리를 두려고 했다. 블레어는 후임 고든 브라운과 함께 1998년과 2010년 사이에 500만 표 차이로 노동당에 선거 패배를 안겨준 인물이었다. 2010년 9월 노동당 당수에 오른 에드 밀리밴드는 새로운 변화를 택했다. 블레어 시대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블레어주의 정책을 일부 수정하겠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손꼽히는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중의 한 명인 랄프 밀리밴드를 아버지로 둔 에드 밀리밴드는 신노동당파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랐고 신노동당과 늘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메디 하산과 제임스 맥킨타이어가 집필한 에드 밀리밴드의 전기(1)는 회상한다. 밀리밴드는 최근 영국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옥스퍼드와 하버드에서 공부했는데 영국의 새로운 정치 엘리트층이 가지는 영미 성향을 역시 보여준다. 당 내에서 밀리밴드가 세력을 얻게 된 것은 당시 경제 특별고문이었던 브라운의 지지 덕분이다. 샐러리맨들은 변화를 약속한 밀리밴드 형제를 모두 지지하겠다고 밝힌 반면 브라운에게 적대감을 가진 일부 블레어 지지층은 에드의 형 데이비드 밀리밴드를 지지했다. 그러나 측근들에게만 지지를 받는 후보 이미지를 주기 싫었던 에디 밀리밴드는 무책임한 시위에 더욱 강한 반대의 입장을 보였다.

블레어주의를 충실히 따르는 에드 밀리밴드는 과거에 보수 성향의 벤저민 디즈레일리 총리(1804∼81)가 주장한 '하나의 국가' 개념을 이어가고 싶어했다. 그러나 저널리스트 시우마스 밀네는 기사(2)에서 이렇게 밝힌다. '하나의 국가인가 아닌가?' '건설 분야 실업자들의 이익은 투기 자본 관리자들의 이익과 상충된다'.

밀리밴드는 유권자들을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유권자들은 멀어져갔다. 달링과 마찬가지로 밀리밴드도 블레어의 과격한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고 영국과 미국의 이라크 건 개입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라크전과 관련해 블레어의 언론 담당 비서를 지낸 앨리스터 캠벨은 저서(3)에서 냉정한 분석을 한다. 그리고 디즈레일리 식의 정책은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노동당 위원들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 키스 딕슨 Keith Dixon

번역 / 이주영 ombre2@ilemonde.com

(1) Mehdi Hassan, James MacIntyre, <에드: 밀리밴드 집안과 노동당 리더 만들기>(Ed: The Milibands and the making of a Labour Leader), Biteback Publishing, London, 2012.
(2) Seumas Milne, ‘에드는 신노동당에서 더 멀리, 그리고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 <가디언>, London, 2012년 10월 3일.
(3) Alistair Campbell, <권력의 부담>(The Burden of Power), Hutchinson, London,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