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웅 없는 영웅 서사의 영웅성
영화평 <썬더볼츠>
‘마블 영화’라는 말이 있다. 사실상 하나의 장르에 가깝다. 영웅 서사와 선악 대결을 근간으로 한다는 점에서 할리우드 영화의 적자이며, 특히 서부 영화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서부극과 ‘마블 영화’ 사이의 유사성은 화면에선 두드러지지 않지만, 플롯에선 비교적 뚜렷하게 드러난다.
영웅 서사
영웅을 중심으로 선악 대결을 펼치는 마블의 세계관을 표현하는 용어가 따로 존재한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이다. MCU의 영웅은 서부 영화의 영웅에 비해 더 다채롭다. 영웅의 핵심 자질이 총질과 정의감인 서부극에 비해 MCU에서는 더 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 터이고 그리하여 더 다양한 영웅상이 출현하게 된다.
MCU의 영웅은 각자의 고유한 능력을 바탕으로 캐릭터가 처한 개별적인 배경하에서 삶의 갈등과 도덕적인 딜레마를 극복하여 종국에 막강한 빌런을 물리친다. 서부극에서 대치의 단위가 마을이나 국경 지대였던 것에 비해 MCU의 무대가 우주적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서부극의 영웅이 특출한 인간이라면, MCU의 영웅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 슈퍼히어로일 때가 많다.
하지만 이런 ‘슈퍼’라는 게 아치에너미 또한 ‘슈퍼’ 빌런이 되기에 대응구조는 서부극과 달라지지 않는다. ‘슈퍼’를 양쪽에서 지워버리면 익숙한 히어로 대 빌런의 구도이다. 한쪽에서만 ‘슈퍼’를 지우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체급의 불균형이 과도해져 애초에 승부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 유형의 영화가 없다곤 할 수 없으나 MCU에선 불가능하다. MCU에서 때로 각기 다른 특성이 있는 영웅들이 모여 공동의 목적을 위해 협력하여 싸우는 ‘어벤져스’라는 팀이 출현한다. 팀의 출현은 스토리를 강화한다기보다 볼거리를 늘려준다. 또한 MCU의 확장을 겨냥하였다기보다 ‘마블 영화’ 상업성의 극대화에 초점을 맞추었을 공산이 크다.
‘마블 영화’ <썬더볼츠>는 기존 MCU에서 어쩐지 어긋나 있는 작품이다. <썬더볼츠>의 홍보문구는 “초능력 없음, 히어로 없음, 포기도 없음(NOT SUPER. NOT HEROES. NOT GIVING UP.”이다. 그러므로 “마블 역사를 새로 쓸 별난 놈들의 예측불가 팀업이 폭발한다”는 말이 대체로 <썬더볼츠>를 잘 해명한다. ‘슈퍼’가 아니고 영웅도 아닌 자들이 영화를 끌어가니 말이다.
일단 영웅 서사를 특징으로 하는 MCU에서 히어로의 부재는 큰 사건이다. ‘초능력 없음’은 아치에너미의 능력에 따라 문제가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는데, 다행히 이 영화에서는 실제로 문제가 안 된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히어로 대 빌런의 대응구조에서 비롯한 문제해소가 아니라 빌런 자체의 성격이 달라졌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썬더볼츠>가 남긴 ‘마블 영화’의 특질은 애매한 ‘포기 없음’뿐이다. 관객은 ‘포기 없음’으로 서사를 끌어가는 방식을 두고 너무 식상한 것이어서 결국 MCU의 이탈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법하다. ‘포기 없음’은 MCU의 특성이라기보다 기본값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MCU에 들어맞는 항목은 ‘어벤져스’다. 그러나 덜 떨어진 새로운 ‘어벤져스’다.
영웅 없는 영웅 서사
어벤져스가 사라진 세상, 옐레나(플로렌스 퓨), 윈터 솔져(세바스찬 스탠), 레드 가디언(데이빗 하버), 존 워커(와이어트 러셀), 고스트(해나 존-케이먼), 태스크 마스터(올가 쿠릴렌코)와 밥이자 센트리(루이스 풀먼)가 우연찮게 한 팀이 된다. 태스크 마스터는 아주 잠깐 얼굴을 디밀고 사라져 팬들 사이에 갑론을박을 일으켰다. <썬더볼츠> 후속작에서나 태스크 마스터의 활약을 기대할 수 있지 싶다. 아무튼 태스크 마스터를 빼고 결말에서 보듯 이들이 새로운 ‘어벤져스’가 된다.
제작진은 내면에 깊은 상처를 갖고 있으면서 각각의 이유로 빌런을 자처했던 인물들을 한데 모아, 기존의 영웅 서사와 차별된 ‘썬더볼츠’ 팀을 꾸렸다. 총괄 프로듀서 브라이언 차펙은 “<썬더볼츠>의 멤버들은 단순한 빌런을 넘어 자신에게 자격이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진정한 언더독들이다. 제작진은 놀라운 방식으로 이 캐릭터들을 한자리에 모았다”고 말했다. 세바스찬 스탠은 “이 영화는 완전히 독립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금까지 MCU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를 담아냈다”고 말했다. 기존 ‘마블 영화’와 결을 달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 셈이다. 그러나 <썬더볼츠>가 MCU의 예외인지 확장인지는 앞으로 제작될 작품들에 의해 결정될 전망이다.
이 영화에 영웅다운 영웅은 없지만, 도덕적 회색 지대에 있던 <썬더볼츠>의 언더독들이 팀으로 뭉쳐 어쨌든 세상을 구한다는 점에서 영웅 서사를 쓰긴 한다. 영웅의 예외성 못지않게 빌런의 예외성 또한 <썬더볼츠>의 특징이다.
사회에서 개인의 내면으로
<선더볼츠>의 영웅들은 어느 정도 빌런이다. 그들이 어쩌다 보니 선의 편에 서서 세상을 구했는데, 빌런 또한 어쩌다 보니 빌런인 형국이다. 엄밀하게 말해 이 영화엔 빌런이 없다. 약간은 빌런이고 약간은 피해자인 등장인물 중에서 밥이 얼떨결에 아치에너미가 된다.
인생이 언제나 힘에 부쳤던 ‘밥’은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한 기회를 잡기 위해 ‘센트리 프로젝트’에 지원했다. 수많은 지원자 중 유일하게 실험에서 살아남은 그는 ‘어벤져스’의 일원이 되기에 충분한 초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 ‘센트리’로 거듭난다. 그러나 그는 자아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며 의도하지 않게 모든 도시를 어둠으로 파괴하려고 한다.
선악의 대결이 일어나지만, 대결의 장은 밥의 마음속이고 밥이 자신 안의 어둠을 몰아내는 동안 언더독으로 구성된 새 ‘어벤져스’가 도와준다. 선과 악의 대결은 실존적 분열의 극복으로 대치된다.
밥이 자신의 과거와 트라우마, 그리고 내면의 어둠인 '보이드'와 싸워서 자신과 세상을 구하는 방식은 전통적인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과 악의 선명한 대립을 넘어선다. 그렇다고 반대로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심리적 깊이를 탐구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전통적인 의미의 빌런이 부재한 이 영화가 MCU에서 새로운 시도임은 분명하지만, 인간 실존을 해명한 진지한 영화로까지 격상되는 건 아니다. 인간 실존의 깊이를 탐구했다기보다는 그것을 만화적 구성의 세트장으로 활용하여 액션 무대를 넓힌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면의 갈등과 실존적 위기 중심의 서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마블적 서사를 위한 내면의 갈등과 실존적 위기가 장식으로 설정되었을 따름이다. 이 영화가 MCU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는 그러므로 대체로 틀렸다. ‘마블 영화’는 ‘마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