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경의 시네마크리티크] 영화 <논나 (Nonnas),2025> : 할머니 손맛 레스토랑 창업-상실과 아픔, 연대와 회복
이태리 할머니, 논나 : 할머니와 어머니의 레시피는 항상 옳다.
5월은 가정의 달이며, 5월 8일과 11일은 한국과 미국, 세계 여러 나라에서 ‘어머니 날’인지라 넷플릭스가 5월 9일에 영화 <논나 (Nonnas),2025>를 개봉한 것은 시기적절하다. 왜냐하면, 이태리어로 ‘할머니’를 뜻하는 ‘논나’라는 제목은 이미 따뜻한 음식과 가족애를 기리는 ‘모성성 예찬’이기 때문이다. <미나리>가 한국 이민자의 애환을 담은 할머니(모성) 영화라면, <논나>는 이태리 이민자의 삶이 녹아든 할머니(모성) 영화다. <월플라워>와 <원더>로 호평을 받은 스티븐 슈보스키 감독은 <논나>에 작심하고 감동적인 스토리텔링 감각을 불어넣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할머니와 어머니, 그녀들을 추억하는 음식 레시피, 이를 바탕으로 할머니 손맛 레스토랑을 운영한 좌절과 성공 스토리에 다소 클리세가 있다한들 누가 뭐라고 트집 잡을 수 있겠는가. 이런 내러티브에 위로와 공감을 받을 만한 관객은 항상 존재하고, 어머니와 할머니는 항상 옳다.
가족을 기리기 위한 음식이 가족을 만들다.
이 영화는 실존 인물인 조 스카라벨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실화의 진정성이 전제된다는 뜻이다. 어머니와 할머니를 잃은 슬픔을 안고 있던 조는 그들의 기억을 기리기 위해 뉴욕 스태튼아일랜드에 어머니의 실명 그대로 ‘에노테카 마리아(Enoteca Maria)’라는 레스토랑을 연다.
조의 친구들은 경험 없이 레스토랑을 운영하려는 조를 만류하지만, 조는 어머니의 유산으로 어머니를 기리고 싶다고 이를 강행한다. “난 사람들이 식당이 아니라 누구 집에 온 것 같으면 좋겠어. 할머니와 어머니의 레시피를 보다가 뭔가를 깨달았어. 음식은 사랑이라는 사실. 두 분의 음식만 있다면 두 분은 나와 함께하는 거야. 난 정말 여기가 밥만 먹는 곳 이상이면 좋겠어. 여기 오면 가족이 된 것 같으면 좋겠다고.”
조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손맛 그대로 레시피를 복원했고, “논나들, 진짜 이탈리아 할머니들”이 각자 마치 자신의 가족을 위해 요리하듯 소중한 지역 요리를 선보인다. 양머리 구이, 카푸젤레를 자신의 정체성이라며 주력으로 내세운 로베르타(로레인 브라코)는 남부의 시칠리아 출신, 로베르타와 사사건건 부딪치며 남북 이태리의 지역감정까지 드러내는 북부 볼로냐 출신 안토넬라(브렌다 바카로), 항상 이들을 중재하는 퇴직 수녀 테레사(탈리아 샤이어), 그리고 헤어디자이너이면서 페이스트리 셰프인 지아(수잔 서랜든)등 전설적인 여배우들이 저마다의 기량을 선보인다. 그리고, 이미 노련한 이 배우들의 스타성 자체가 향수와 진정성을 담보한다.
지아가 앞치마를 두루는 장면은 코믹하다. 지아는 하얀 앞치마를 과도하게 털어내며 빨간 셔츠 위에 걸치지만, 가슴골을 훤히 드러내기 위해 앞치마를 한껏 아래로 내린다. 참다못한 안토넬라는 한마디 한다. “이브닝드레스가 아니라 앞치마예요.” 지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예뻐 보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야 있나요.” 그녀의 가슴이 유방절제수술 후 재건수술로 만들어진 가슴이라는 얘기를 듣고 조금 미안해진 일행은 지아가 제안한 이벤트, 미용과 헤어 서비스, 와인과 수다를 통해 강한 시스터후드를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논나들의 편견이 깨지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찾는데 차츰 동의하게 된다. 논나들은 셰프가 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는 기쁨을 갖게 됐을 뿐만 아니라, 서로 연대하고 사랑하며 유사가족이 되어간다. 가족을 기억하는 음식이 가족이 되게 작용한 것이다.
이태리 이민자의 아메라카 드림 서사 : 스태튼 아일랜드에 할머니 손맛 레스토랑 창업하기
레스토랑 사업은 만만치 않다. 레스토랑을 오픈하기 전에 오븐 과열로 화재가 발생하고, 논나들은 불화하며, 조는 레스토랑 시공업자인 절친 브루노(조 맹가니엘로)와 심하게 다툰다.
창업을 방해하는 여러 요소 중, 소상공인 이민자의 아픔을 압축한 검사관 시퀀스는 코믹하면서도 의미심장하다. 뉴욕시 보건국 검사관은 시정해야 할 목록을 주며 재점검해서 통과할 때까지 무기한 레스토랑을 열 수 없다고 한다. “바로 시정할게요. 언제 시간 되세요? 다음 주?” 껌을 질겅거리며 실컷 비웃던 검사관은 “내년은 어때요?”라고 한다. 소상공인들의 아픔을 한 장면에 압축한 장면이다. 무력해진 조와 브루노는 절망하지만 조의 어릴 적 여자 친구, 올리비아(린다 카델리니)가 늦깎이 로스쿨 학생인 덕분에 위기를 넘긴다. 올리비아는 검사관의 뇌물수수 증거를 확보해서 목줄을 쥐고, 영업허가를 받아낸다. 아메리칸드림을 번번이 방해하는 복잡한 미국시행령과 소송, 법률가 개입문제는 미국에서는 일상이다. 영화니까 가능하다. 실제로 많은 소상인은 외상으로 리모델링을 해 줄 건설업자도 없고, 로스쿨 다니는 여자 친구도 없다. 그래도 이런 심각한 일상을 건드려주는 것만으로도 꽤 위로가 된다.
이 영화 혹은 실재하는 레스토랑의 배경이 스태튼 아일랜드라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스태튼 아일랜드는 섬 고유의 폐쇄성과 보수성으로 인해, 레스토랑이 자리 잡는 데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노골적으로 배척받기 때문이다. 미국이 문화의 솥단지라고는 하지만, 기독교 보수주의가 강하고 인종차별도 여전하다. 스태튼 아일랜드는 미국 뉴욕 자치주지만 가톨릭과 이태리 이민사회가 주류인 다소 낙후된 곳이니 이태리 할머니인 논나들의 감정적인 무대로서 적격이다. 그곳은 그들의 뿌리 깊은 공동체, 전통과 현대,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고 융합되는 공간이며, 그런 의미에서 논나들은 스태튼아일랜드의 원형이다.
그녀들은 음식문화를 통해 공동체의 코드와 정서, 기억을 품고 있다. 논나들에게 음식은 타지에서의 생존 수단이며, 가족의 기억과 연결된 상징이고, 자기들만의 질서와 규율을 담은 문화다. 이것이 스태튼아일랜드라는 공간에 장면화 된 것이다. 즉, 폐쇄적이지만 따뜻하고, 느리지만 깊이 있으며, 변화에 저항하면서도 결국 받아들이는 진화의 흐름을 담고 있다. 관객은 논나들과 조, 이들이 접대한 음식, 그들의 갈등과 치유, 천신만고 끝에 창업한 성공한 레스토랑 사이에서 어느덧 음식에 담긴 사랑과 기억을 함께 나누게 되며, 이를 통해 우리 모두는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상실과 아픔, 연대와 회복, 그 사이에 할머니의 소울 푸드가 있었다. 조가 마침내 찾게 된 ‘논나의 그레이비’ 레시피처럼.
글·김 경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