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조장한, 동맹과 분열 사이에 놓인 유럽

‘서부 전선’ 이상 없을까?

2025-05-30     세르주 알리미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편집 고문

무역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문화적 진보주의, 검열…. 서방 블록의 두 축 사이에서 갈등 쟁점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오랫동안 워싱턴의 요구에 순응해왔고, 자신의 ‘후견국’인 미국에 복종의 증표를 서둘러 바치곤 했다. 그렇다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거친 태도가 대서양 동맹의 ‘이혼’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길을 열어버린 것일까?

 

세르히

 

1995년 11월 21일, 미국 오하이오 주 데이턴 공군 기지에서,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는 워싱턴의 주도로 ‘평화 협정’을 체결하며 3년 넘게 치열하게 싸웠던 보스니아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보스니아 전쟁은 미국 땅에서 끝난 것이다. 그 몇 달 전, <CBS 방송>의 간판 앵커였던 댄 래더는 자사의 외교 담당 특파원에게 미국의 분쟁 개입에 대해 이렇게 물었다. 

“수년 동안 우리는 ‘보스니아는 유럽의 문제이며, 유럽이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이에 대해 밥 사이먼 기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댄, 20세기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게 있다면, 유럽인들은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고, 이 세기가 시작된 방식과 마찬가지로 끝나려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미국이 유럽을 구하러 나서게 된 거죠.”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이제 옛말

유럽 지도자들이 ‘자기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주장은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반박하기 어려운 듯하다. 프랑스 외무장관이 거의 희극적인 허세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안보 보장을 수용하거나, 나아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승인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지 않는 한, 모스크바 외무장관과는 통화하지 않겠다”라고 큰소리치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 즉, 모스크바가 항복하지 않으면 전화조차 받지 않겠다는 태도인 셈이다….

워싱턴이 보기에는 유럽 대륙 국가들은 그저 상업적 경쟁자이자 휴양지에 지나지 않았고, 권력과 지정학, 독립성, 전략적 리더십을 다룰 주체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 모든 것은 대서양 너머, 서방 세계의 또 다른 절반이자 결정적인 존재인 ‘대장 국가’ 미국의 몫이었다. 적어도 이 점에 있어서만큼은,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말처럼, 새로울 것도 없다. 미국은 여전히 유럽을 자신이 만들어낸, 자유무역을 위해 설계된 ‘비(非)강대국’으로 간주한다. 즉, 주체적 프로젝트도 없이 선언만 남발하고, 벌을 받아도 순순히 복종하는 존재라는 인식 역시 변함없다. 그것이 상대적 우월감이든, 노골적인 경멸이든 본질은 다르지 않다. 그리고 고령화가 진행 중인 유럽연합이 군사적 연합에 참여할 때조차, 그 역할은 미 국방부가 ‘식사’를 준비한 뒤, 유럽이 그저 ‘설거지’를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1)

 

“유럽이 미국의 요구에 굴복한다…”

최근 몇 주간 일부 유럽인들은, 과도하게 놀라는 모습을 연출하며 위기의식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연방주의적 결속을 유도하려는 모습이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적 무시와 통상적 공격성은 기존 대서양 양안 관계의 전형적 모습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거의 40년 전, 정치학자 마리-프랑스 투아네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지면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1986년이 끝나갈 무렵, 유럽경제공동체(EEC)와 미국 사이에는 일종의 기 싸움이 벌어졌고,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프랑스 코냑, 화이트 와인, 진, 올리브, 치즈 등에 2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위협했다. 이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공동시장에 가입하면서 생긴 옥수수 및 콩 수출 문제와 관련된 것이었다. 결국 1987년 1월 말, 유럽 공동체는 미국의 요구에 굴복했으며, 이는 공동체 내 우선주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양보였다.”(2)
“유럽이 미국의 요구에 굴복한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울려 퍼지고 있는 유럽-미국 관계의 배경음악과도 같다. 그럼에도 ‘트럼프 변수’는 이 힘의 관계를 한층 더 거칠고 적대적인 방향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사업적 이해관계, 개인적 앙갚음, 그리고 민주당 정치인들에 대한 복수심에 사로잡힌 트럼프는, 유럽과 캐나다의 자유주의 지도자들에 대해서도 거의 같은 수준의 증오를 품고 있다. 그들은 트럼프의 불운을 즐겼고, 그의 패배를 간절히 바랐으며, 이제 그가 다시 돌아온 만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유럽연합(EU)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의 특사는 이미 미 국무부 문턱에서 퇴짜를 맞았으며,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그들을 만날 시간조차 내지 않았다. 사실 트럼프는 1차 임기 때부터 이미 유럽연합을 “미국의 적(enemy)”으로 규정한 바 있다. (<CBS 방송>, 2018년 7월 15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연합을 ‘적(enemy)’이라 간주하는 데는 최소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트럼프는 “관세(tariff)”를 사전에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고 할 정도로 노골적인 보호무역주의를 고수하는 반면, 브뤼셀은 여전히 자유무역에 집착하고 있다. 트럼프의  이런 태도는 유럽산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로 이어지며,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무역 질서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둘째, 유럽이 NATO를 통한 군사적 보호를 원하면서도, 정작 그 비용은 미국이 거의 전부 부담하고 있다며 트럼프는 불만을 터뜨린다. 2018년 7월 5일 유세에서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외국에 빼앗긴 부를 되찾을 것이다. 미국은 모두가 가져다 쓰는 돼지 저금통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우리의 동맹국들이 종종 적국들보다 더 나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은 NATO 예산의 70~90%를 부담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미국이 부담하는 비율은 20%에 불과하며, 이는 지난 10년간 모든 미국 대통령들—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까지 포함—의 요구에 따라 계속 줄어들어 왔다. 그럼에도 전체 비용의 20%만 내고도 NATO 결정권의 100%를 행사하는 상황이라면, 과연 그것이 나쁜 거래라고 할 수 있을까. 

 

제국적 지배 구조의 미국, 유럽에 ‘갈취 시스템’ 비난 공세

물론 문제는 단지 돈에 국한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미국 우선(America First)’을 내세운 트럼프의 일방주의는, 군사 동맹이나 국제 조약과 양립하기 어려운 노선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체결하지 않은 합의, 특히 이전 미 행정부의 ‘무능한 자들’이 맺은 합의를 신뢰하지 않으며, 이로부터 벗어나려는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곤 한다. 이러한 노선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지난 1월 15일 직접 밝히기도 했다. 

그는 “세계 질서는 이제 미국을 겨냥한 무기로 전락했다”라면서, “미국은 다시 혼돈 속에서 자유 세계를 창조해야 하며, 이를 위해선 미국의 이익을 모든 것 위에 두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논리는 유럽연합, 북대서양조약기구, 우크라이나에도 똑같이 적용된다.(3) 결국 문제의 본질은, 대서양 동맹 자체가 미국의 제국적 지배 구조—달러의 특권, 미국 법의 초국가적 적용, 전략 자원의 수탈, 산업 스파이, 유럽 지도자들에 대한 도청 등—로 인식되며, 그 정당성에 대한 회의가 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트럼프 자신에게는, 오히려 동맹국들이 모인 NATO가 미국에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갈취 시스템’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은 지난 2월 28일,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의 공개적인 마찰 직후, 트럼프의 핵심 참모인 스티븐 밀러가 쏟아낸 발언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가 젤렌스키를 몰아세우는 장면을 보며,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자부심으로 가슴이 벅찼다. 젤렌스키가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이유는 미국이 그의 전쟁을 위해 경제적 희생을 감내해왔기 때문이다. 젤렌스키는 계속해서 ‘유럽이 훨씬 더 많은 걸 하고 있다’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유럽이 그렇게 좋다면, 젤렌스키는 왜 여전히 우리에게 와서 돈과 안전 보장을 구걸하고 있는가?”(4)
같은 자리에서 부통령 제임스 데이비드 밴스 역시 젤렌스키를 쏘아붙였다.
“미국 대선을 한 달 앞둔 시점에, 당신이 펜실베이니아의 민주당 주지사와 손을 잡은 건 정치적으로 심각한 실수였단 말이오.”

트럼프가 집권하면서, 미국 내 ‘적’들과 그들의 국내외 지지자들—실존하든 가상적이든—에게 응징을 가하려는 트럼프의 열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났고, 그로 인해 대서양을 사이에 둔 관계는 점점 더 당파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최근 몇 달 사이 벌어진 관계의 단절이 유독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조 바이든 대통령 시절만 해도 유럽연합과 미국은 거의 한 몸처럼 움직였기 때문이다. 당시 양측은 중국, 러시아, 이란 등 ‘권위주의 정권’과 싸우는 것, 각국 내부의 ‘포퓰리스트’나 ‘음모론자’—즉 미국에서는 트럼프주의자들—를 경계하는 것,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를 절대적인 정치 이념으로 만들겠다는 비전에 공동의 신념을 갖고 있었다.
이 거대한 ‘민주주의 수호 프로젝트’에서, 유럽은 민주당과 보조를 완벽히 맞추고 있었다.
2021년 6월, 독일 외무장관 하이코 마스는 당시 미 국무장관 토니 블링컨과 함께 학생들을 만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기까지 했다. “토니가 국무장관이 되고 나서 처음 통화를 했을 때, 나는 미국 국무장관과 항상 같은 의견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에 익숙해져야만 했습니다.”(5)  이런 ‘이상적인 관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더욱 공고해졌다. ‘공통의 적’인 러시아가 등장하고, ‘영웅화된 지도자’가 부각되면서, 서방 진영의 목표는 오직 승리 하나로 수렴되었다.

 

과거와 달라진 ‘우선순위’, 유럽에서 미국으로

2025년 1월 14일, 그동안의 열광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밴스 미 부통령은 뮌헨 안보회의 연단에 올라 유럽연합에 대한 일종의 고발 연설을 했다. 그는 EU가 자신을 위협하는 진짜 위험이 무엇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가 보기에 유럽의 주된 위협은 러시아도 아니고 중국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반낙태 운동가들과 극우 진영에 대한 유럽 내부의 억압적 제한 조치야말로 진정한 위협이며, 이런 조치들이 자유의 상실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발언은 행사를 주최한 독일 측 인사가 눈물을 흘릴 만큼 충격적이었다. 이제 미국은 더 이상 자국의 ‘동맹국’—그러나 사실상 적으로 변한 그들—이 무역, 경쟁, ‘증오 발언’ 등 어떤 영역도 규제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그러한 규제 권한은 워싱턴이 독점해야 하며, 오직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만 작동해야 한다. 즉, ‘미국 우선’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미국’은, 민주당 엘리트들이나 <뉴욕타임스> 같은 유럽 언론이 숭배하는 미국이 아니다. 그들이 말하는 미국은 러시아와의 전쟁을 ‘대리로’ 수행하는 데 몰두하고 있는 또 다른 미국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의 미국은 더 이상 과거의 우선순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모스크바는 새로운 미국 행정부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그에 따른 국제 법질서, 그리고 문화적 진보주의를 혐오한다는 사실을 빠르게 간파했고, 이를 자국에 유리하게 활용할 방법 또한 재빨리 찾아냈다. 따라서 이제는 트럼프 시대의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일종의 ‘현실주의적’이고 동시에 ‘반동적’인 접근에 기반한 관계 복원이 충분히 상상 가능한 일이 되었다. 여기서 ‘현실주의적’ 접근이란, 국제법이나 각국의 정치 체제에 대한 고려 없이 오직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를 최우선으로 삼는 방식을 의미한다. 한편 ‘반동적’ 기반이란, 전통적인 가족 가치, 성 역할에 대한 고정된 정체성, 그리고 민족주의적 역사관의 이상화를 중심으로 한 보수적·국수주의적 세계관의 공유를 의미한다. 요컨대, 러시아와 트럼프 시대의 미국은 ‘자유주의 세계질서’에 대한 반감이라는 공통분모 위에서 기묘한 동맹의 가능성을 띠기 시작한 것이다.

 

트럼프에 밀리는 유럽, 종속적 자세 못 벗어나

지난 3월 12일, 러시아 외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는 미국 언론인 및 인플루언서 세 명을 접견하며, 의도적으로 미국 내부의 분열을 부각시켰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독교적 가치에서 멀어진 민주당 지도부가 성수자인 LGBTQ를 비롯한 모든 것을 끝없이 장려해온 결과, 이 가치들을 광적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에 피로감을 느낀 미국인들의 일부가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라브로프는 민주당식 진보주의가 패퇴한 현 상황을 “일종의 정상 복귀”로 간주하며, 이는“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이며, 정교회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정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라브로프에게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그가 그동안 열심히 구애해온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반제국주의 세력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즉, ‘글로벌 서구’에 맞서 싸우자고 외치면서, 그 서구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절반인 트럼프의 미국과 손을 잡으려는 이중적 행보를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인가? 유럽은 갈수록 고립된 모습이며, 중국을 포함한 글로벌 남반구(글로벌 사우스)와 상호 존중에 기반한 관계를 맺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적 열기를 꺾을 수 있는 금융 시장 붕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유럽은 결국 민주당의 빠른 정권 복귀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 사이 유럽은 불만을 터뜨리며 중얼거린다. 미국 대통령이 자신들을 배신했고, 미국은 더 이상 우리의 동맹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적의 동맹이다. 그러나 정작 현실에선 트럼프를 달래기 위해 더 많은 무기와 액화천연가스(LNG)를 사들이는 모습이다.
입으로는 또다시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말하지만, 달러의 지위, NATO, 미국 다국적 기업들의 헤게모니에는 손대지 않는다. 브뤼셀이 워싱턴에 전략적으로 종속된 구조 역시 전혀 흔들지 않는다. 중동에서도, 중남미에서도, 남중국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라크 전쟁 당시, 유럽연합 국가 대다수가 ‘자발적 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에 참여했고, 우크라이나도 그 안에 포함되었다. 당시 미국과 입장이 달랐던 프랑스는 결국 ‘옳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의해 벌을 받는 것’을 감수했다.(6)

그러니 이미 예측할 수 있다. 미국이 유럽을 끌고 들어간 우크라이나 전쟁이 설령 재앙으로 끝난다 해도, 유럽은 결국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한 채, 지속적으로 종속적 자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전 발행인


(1) 로버트 케이건, 『힘과 약함 - 신세계 질서 속 미국과 유럽』, 플롱, 파리, 2003.
(2) 마리-프랑스 투아네, 「무역 전쟁의 격화-레이거노믹스가 남긴 값비싼 대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87년 3월.
(3) 2025년 1월 15일,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앞에서의 발언.
(4) <폭스 뉴스>, 2025년 3월 2일 방송.
(5) 데이비드 몽고메리(David Montgomery), 「안토니 블링컨은 미쳐버린 세상 속에서 자유주의 외교를 갱신할 수 있을까?」, <워싱턴 포스트 매거진>, 2022년 8월 22일.
(6) 「이라크, 처벌받지 않은 군사 침략」,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3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