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피즘은 푸티니즘인가?
겉모습뿐인 허니문, 다극화 세계를 지지하는 푸틴, ‘아메리카 퍼스트’를 우선시하는 트럼프와 큰 차이
최근 몇 주간 미국 당국과 러시아 권력 사이의 대화가 재개되면서, 다수의 유럽 수도들은 당혹과 충격에 휩싸였다. 텔레비전 토론에서는 이 상황을 두고, 보수적 이념을 공유하는 양국 지도자들 사이에 공모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거듭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심지어 서로를 동경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동맹을 맺는 것은 아니다.
2025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시작 이후, 모스크바와의 대화 재개는 유럽 각국 수도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보수적 이념과 권위주의적 성향을 공유하는 미국 대통령과 러시아 지도자 사이의 공모 의혹은 TV토론에서 끊임없이 재탕되고 있다. 그러나 서로를 견제하거나, 심지어 동경할 수는 있어도 동맹을 맺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블라디미르 푸틴과 도널드 트럼프, 두 사람은 먼저 혐오의 대상을 공유한다. 그들은 모두 ‘워크주의’(wokeism, 인종차별, 성차별 등 사회적 불평등과 부정의에 대한 인식과 저항을 중시하는 정치적 각성주의를 뜻한다)와 ‘캔슬 컬처’(cancel culture, 2010년대 이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된, 비난받을 만한 행동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고 제재하려는 문화 현상을 의미)를 맹비난한다. 이들은 트랜스젠더(푸틴의 경우 동성애 포함) 인권 투쟁을 상대주의의 결과이자 선봉으로 지목하며 개탄한다. 유럽연합이 자신들을 “민주적·자유주의적 가치를 대표한다”고 자부하는 것 역시, 푸틴과 트럼프에게는 반드시 깨뜨려야 할 터무니없는 환상으로 비친다.두 사람 모두 전통적 가치와 ‘자연스러운’ 위계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상식’이라 부른다. 각자의 방식으로 자국이 허무주의에 빠진 서구를 재생시키는 길을 열 것이라 믿고 있다. 이들은 모두 자유민주주의를 거부하고, 카리스마적 권위를 내세우며, 행정부 권력에 대한 견제를 부정한다.
다극화 세계를 지지하는 푸틴,
‘아메리카 퍼스트’를 우선시하는 트럼프와 큰 차이
하지만 근본적인 차이점들은 여전히 뚜렷하게 드러난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의 영향력이 아메리카 대륙에 국한되는 다극 체제의 도래를 옹호한다. 푸틴이 중시하는 세계관은 각국의 정체성과 주권이 그들의 지리적·역사적 뿌리에 깊이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러한 입장은 2024년 2월 8일 터커 칼슨과의 인터뷰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당시 푸틴은 <폭스뉴스> 전직 기자였던 칼슨에게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적, 슬라브적, 정교적 세계로 통합되어야 하는 ‘역사적 사명’에 대해 장시간 설명했다. 반면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다극 체제의 현실을 인정하는 듯하면서도, 미국 대륙 내로 영향력을 재조정하려는 의지와 동시에 군사적·경제적 힘을 앞세워 전 세계적 패권을 재확인하려는 태도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그가 말하는 미국의 패권은 더 이상 소프트파워(1) 같은 외교적 설득이 아니라, 군사력과 경제력이라는 힘의 논리로 유지되는 것이다.
두 지도자 모두 자국의 상처 입은 국력을 회복하고자 하지만, ‘국가적 위대함’을 바라보는 관점은 서로 다르다. 러시아에서는 국민의 물질적 이익이 외교 정책이라는 제단 위에서 부분적으로 희생된다. 반면, 미국에서는 다른 국가들에게 강요하는 힘의 논리가 궁극적으로 미국 국민의 이익을 위해 쓰여야 한다. 대표적으로 해외로 이전된 일자리를 다시 가져오는 ‘리쇼어링(reshoring)’과 자원 확보를 통해 자국민에게 혜택을 돌려주는 방식이 그것이다. 또한 트럼프는 유럽 무대에서도 국내 정치 싸움을 재현하듯, 민주당 이념에 지나치게 동조하는 유럽 국가들을 겨냥해 공격한다.
체제를 구축한 푸틴니즘, 태동기에 있는 트럼피즘
러시아에서 이미 체제를 확립한 푸틴주의(푸틴니즘)와 아직 태동기에 있는 미국의 트럼프주의(트럼피즘)는 제도적·사회적 차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다. 푸틴의 비전에서 국가는 고위 관료제와 함께 국민 정체성을 구현하는 중심축으로 자리하며, 가치와 정책, 사회 전체는 이에 복종해야 한다. 반면 트럼프는 사법부와 군대를 장악한 강력한 행정부 권력을 꿈꾸면서도, 동시에 미국 연방정부를 해체하고, 공무원 수를 대폭 줄이며, 국가 경제 규제를 철폐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푸틴주의와 트럼프주의는 복합적인 이해관계가 얽힌 이념적 생태계로 형성되어 있다. 러시아 내부에는 ‘현실주의자’ 진영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트럼프나 빅토르 오르반과 같은 인물들과의 대화를 통해 러시아의 강대국 지위를 유지하려는 세력과, 한때 서구와의 협력을 기대했지만 결국 실망한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또 다른 세력은 러시아를 단순한 국가가 아닌 독자적인 ‘문명국가’로 인식하며, 필연적으로 서구 전체와 대립할 수밖에 없다는 세계관을 견지한다. 이와 별개로, 많은 모스크바인들은 워싱턴과의 관계 개선 여부와 관계없이 ‘글로벌 사우스’와의 연대를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주의에 흡수된 구(舊) 공화당 네오콘 세력이 여전히 러시아를 역사적 적대국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백악관의 키이우 압박에도 힘을 실어준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 공화당 상원의원이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를 열렬히 지지하는 린지 그레이엄(Lindsey Graham)은, 2025년 2월 28일 백악관에서 벌어진 미·우크라이나 정상 간 충돌 당시 젤렌스키가 자제력을 잃었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2). 한편 미국 내 ‘리스트레이너’(restrainers, 해외 개입 축소론자) 성향의 공화당원들에게 있어, 잠재적인 휴전 합의나 평화 협정조차도 어디까지나 편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일 뿐, 결코 워싱턴과 모스크바 사이의 동맹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미국의 해외 개입을 줄이고, 국내 문제나 미대륙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다.
극우적 반혁명주의를 동경하는 세력들
트럼프주의 진영 내 또 다른 일부는 ‘문명주의적(civilisationniste)’ 성향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들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MAGA)’라는 구호 아래 트럼프 운동의 핵심을 이룬다. 이들에게 있어 러시아와의 관계는 보다 공생적인 성격을 띤다. 특히 종교적 문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미국 기독교 우파의 많은 인사들은 러시아가 내세우는 이른바 ‘전통적 가치’(가족주의, 반LGBTQ, 보수적 성윤리, 민족주의, 가부장적 사회질서 등 서구 자유주의·다문화주의에 반대하는 보수적 가치관을 의미함. 푸틴 정권은 이를 ‘러시아 고유의 가치’로 내세우며 서구의 ‘도덕적 타락’과 대조시킨다.—역주)를 근거로 블라디미르 푸틴을 기독교 세계의 선봉장으로 바라본다. 더욱 순수한 신앙을 추구하는 이들 중에는 러시아 정교로 개종하는 경우도 있다. (3) 한편, 터커 칼슨과 같은 인물들에게는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해체가 여전히 최우선 과제다. 이들에게는 두 가지 전선이 맞물려 있다. 하나는 미국 사회 내부에서 벌어지는 가치·이념 싸움(문화 전쟁)에서 보수주의가 승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제적으로 ‘미국 우선주의’를 확산시키는 일이다.
또 다른 흐름은 러시아 극우 세력의 ‘반혁명적 급진주의’(서구 자유주의·민주주의적 혁명에 맞서기 위해, 민족주의·전통주의·권위주의를 급진적 방식으로 밀어붙이는 극우적 반동주의—역주)를 동경한다. <브라이트바트 뉴스> 전 대표이자 트럼프 대통령 1기 초반 참모였던 스티브 배넌은 러시아 철학자 알렉산드르 두긴의 영향을 공개적으로 인정한다. 두 사람은 2018년 만난 바 있으며, 이탈리아의 신비주의적 사상가이자 네오파시즘의 주요 영감 원천인 율리우스 에볼라(1898~1974)를 비롯해, 유럽 ‘신우파’(1960~7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등장한 유럽 지식인들의 극우 이념 경향)를 대표하는 알랭 드 브누아 같은 인물들도 사상적 뿌리로 여긴다. 두긴은 트럼프를 두긴 자신이 염원하는 반혁명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는 데 유리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부동산 재벌 출신의 트럼프와 푸틴이 ‘같은 가치를 공유한다’고 평가하며 이를 반기고 있다. 이는 자신이 양측의 관계를 중재하는 핵심 인물임을 과시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4)
반민주주의적인 ‘암흑 계몽주의’ 내세우는 인물들
마지막으로 언급해야 할 것은, 오늘날 일론 머스크와 부통령 제임스 데이비드 밴스를 매혹시키고 있는 ‘암흑 계몽주의’(Dark Enlightenment) 사상이다. 이는 이성, 평등, 민주주의 같은 계몽주의적 가치를 비판하며, ‘권위주의·엘리트주의·기술통제’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신반동주의 사상이다. 이 이념적 흐름은 한동안 주변부에 머물렀지만, 신반동주의적 사고와 기술미래주의가 결합된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사조에는 페이스북 초기 투자자이자 페이팔 공동 창업자,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 대표인 피터 틸, 그리고 ‘멘시우스 몰드버그’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블로거 커티스 야르빈이 포함된다. (5) 야르빈은 트럼프주의 진영 내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사상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야르빈은 2022년, 러시아가 유럽 대륙에서 자유주의에 맞선 반동적 반격을 펼칠 수 있도록 전면적인 행동의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궁극적으로 민주주의를 종식시키려는 구상을 내놓았다. (6) 한편, 피터 틸은 러시아 철학에서 비롯된 ‘코스미즘’(cosmisme)사상에 영향을 받고 있다. 코스미즘은 19세기 말~20세기 초 러시아에서 발전한 철학 사조로, 인류가 우주를 정복함으로써 스스로를 갱신하고 진화하는 미래를 상상한 철학적 조류로, 일종의 트랜스휴머니즘(초인류주의)의 선구적 사상으로 여겨진다.
서로 다른 배경과 이해관계 속에서 부분적으로 겹쳐 보이는 사상적 경향들이 있지만, 이들은 매우 파편적이고 일관성이 없어 뚜렷한 결론을 도출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모스크바와 워싱턴의 대립적 지정학 구도는 이러한 부분적 유사성이 지니는 실질적 의미마저 희석시키고 있다. 올해 초 미국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기관이 발표한 연례 위협 평가 보고서도 이를 뒷받침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작성된 이 보고서에서는 마약 카르텔과 국제 이슬람 테러조직 등 비국가 행위자들이 다시 최우선 위협으로 지목되었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중국(1위)과 북한(3위) 사이에서 ‘적대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7)
MAGA와 크렘린: 동상이몽의 지정학
비록 푸틴과 트럼프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전략적 이익에 맞서 싸우는 민주당 정권의 대리인으로 인식하는 데에는 의견을 같이하지만, 중국 문제에서는 입장이 갈린다. 트럼프를 비롯해 부통령 제임스 밴스, 국무장관 마코 루비오 등 미국 행정부는 중국을 미국의 주요 적대국으로 규정하는 반면, 크렘린은 중국을 전략적 동반자로 인식하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역시 양측의 견해차를 드러낸다. 트럼프는 베냐민 네타냐후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반면, 푸틴은 아랍 국가들의 입장에 더 가까운 태도를 취한다. 이란 문제 또한 두 나라의 이해관계를 갈라놓는다. 이란은 러시아에게는 전쟁 수행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후방 지원 세력이지만, 미국에게는 여전히 적대적 존재다. 트럼프는 지난 4월 7일 이란 핵 합의 재협상 재개를 선언했지만, 불과 이틀 뒤인 4월 9일에는 이란 이슬람 공화국에 대한 군사적 대응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대외무역 문제에 있어서도 양측의 견해는 갈린다. 푸틴은 유라시아 경제연합(EAEU) 을 통한 지역 차원의 자유무역 확대를 옹호하며, 서방의 경제 제재를 불공정 경쟁 행위라고 비판한다. 반면 미국에서는 지난 4월 2일, 트럼프가 모든 외국산 제품에 최소 10%의 관세 부과를 선언하면서 세계화 해체 작업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는 이보다 훨씬 높은 관세가 적용될 예정이다.
서방 언론이 주장하는 ‘트럼프는 친러시아’라는 섣부른 인식은 정작 크렘린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러시아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일론 머스크는 자사의 위성 인터넷 서비스인 스타링크를 여전히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고 있으며, 신임 국방장관 피트 헥세스는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지로 반러시아 전초기지인 폴란드를 택했다. 또한 트럼프가 그린란드와 캐나다의 병합 가능성을 언급한 것 역시, 미국의 북극 지역 영향력 확대 의도를 드러낸 발언으로, 크렘린 입장에서는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다.
모스크바와 워싱턴은 국제 무대에서의 각자의 역할과, 서방과 비서방 세계가 맺어야 할 관계에 대한 인식에서 근본적으로 입장을 달리한다. 러시아는 트럼프가 주도한 반혁명적 흐름을 즐기면서도, 워싱턴과의 근본적 화해 가능성은 믿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MAGA 진영이 자신들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러시아를 흥미롭게, 때로는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이는 결코 공화당 전체를 대변하지 않는다. 공화당 내 일부 인사들은 러시아에 대한 호감 없이도 ‘미국 우선주의’라는 목표에는 동의하는 입장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우크라이나를 혐오하는 이유도 러시아의 세계관에 동의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 문제를 미국 내 좌파와 벌이고 있는 문화전쟁의 연장선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민주당을 지지했던 점 또한 반감을 키운 요인이다.
글·말렌 라루엘 Marlène Laruelle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교수. 저서에 『푸틴 체제 하의 이데올로기와 의미 생산』(스탠포드대 출판부, 2025)이 있다.
(1) Philip S. Golub, 「‘소프트파워’의 가면들」,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5년 4월
(2) Maggie Haberman· Tyler Pager, 「젤렌스키의 백악관 회담이 트럼프와의 대결로 번져」, <뉴욕타임스>, 2025년 3월 1일.
(3) Susie Coen, 「젊고 미혼인 남성들이 전통 교회를 떠나는 이유」, <텔레그래프>, 런던, 2025년 1월 4일.
(4) 「트럼프-푸틴 통화 당일 ‘푸틴의 브레인으로’ 불리는 러시아 철학자와의 인터뷰」, <CNN> 2025년 3월 18일, https://edition.cnn.com.
(5) Jason Wilson, 「반(反)민주주의자이자 친(親)트럼프 인사: 차기 미국 행정부에 영향력을 미치는 ‘어두운 계몽’ 블로거」, <가디언>, 런던, 2024년 12월 21일.
(6) 「A new foreign policy for Europe」, <Gray Mirror>, 2022년 1월 17일, https://graymirror.substack.com ; 또한 참조 : 「Se préparer à l’empire : Curtis Yarvin, prophète des Lumières noires」, <Le Grand Continent>, 2025년 1월 21일, https://legrandcontinent.eu
(7) 「미국 정보당국 연례 위협 평가 보고서」, 미국 국가정보국(ODNI), 2025년 3월, www.dni.g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