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지배’가 ‘법치국가’보다 훨씬 명료한 개념
『미국에 맞서는 판사들』과 『법치국가』가 조명한 법치주의
권위주의가 확산되는 가운데, 법치국가를 비난하거나 이를 국가 주권 침해로 보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비판이 쉽게 퍼지는 이유는 법치국가의 개념이 공적 담론에서 충분히, 그리고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출간된 두 권의 책은 법치국가라는 개념이 어떻게 탄생했으며, 특히 그 역사적 발원지인 영미권의 법적·정치적 문화 속에서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를 조명한다.
그 중 하나인 미국 정치제도 전문가 안 데이신의 신간(1)은, 공권력의 조치가 사법부에 의해 제약될 때마다 이를 ‘사법 쿠데타’라고 비난하는 이들의 논거에 일견 힘을 실어주고 있는 듯 보인다. 그녀는 최근 수십 년간 미국 연방대법원이 내린 여러 판결을 분석하며, 낙태권, 총기 규제, 차별 철폐, 대기업 활동에 대한 연방기관의 규제 등과 관련한 초보수적 판례들이 대법관 다수의 개인적 신념과 일치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이들 대법관이 1950~1970년대 자유주의적 유산을 청산하려는 의도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미국 사법부와 정치권력 간의 갈등을 보여준다기보다는, 오히려 공화당과 느슨하게 연결된 이익집단들의 전략적 움직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가 페더럴리스트 소사이어티(Federalist Society, 1982년 미국에서 설립된 보수주의 성향의 법조인 단체)다. 이들은 보수주의 혁명에 동조하는 판사들을 선출하거나 임명하기 위해 치열한 캠페인을 벌이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끌어내기 위해 전략적 소송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사법권력 장악을 시도한다.
이러한 전략이 효과를 거두는 이유는 애초부터 “소수가 다수의 뜻을 거스르며 권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제도적 편향 때문이다. 특히 미국 연방대법원의 권한을 적절히 제한하지 않은 헌법적 장치의 미비가 이를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가 있다고 해서, 권력을 법과 사법으로 견제해야 한다는 원칙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영국의 저명한 판사 토머스 헨리 빙험(Thomas Henry Bingham, 1933~2010)의 저서는 이러한 원칙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운다.
영국에서 정치 분야 최고의 저술에 수여되는 오웰상을 수상한 책에서, 그는 “법의 지배”라는 표현이 프랑스식 “법치국가”보다 훨씬 더 명확하게 그 개념을 전달한다고 설명한다.
이 개념은 1215년, 영국 귀족들이 존 왕에게 강제로 서명하게 만든 마그나카르타로부터 유래하며, 이후 군주나 의회의 다수파가 휘두르는 권력의 전횡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강력한 도구로 기능해왔다.(2)
법률가가 아닌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인 그의 책은, 정부 행위의 합법성, 법 앞의 평등, 실질적인 사법 접근권 등 법의 지배가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 요건들을 명확히 제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법적 제약이 민주주의에 왜 필수적인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 모두가 법적 제약 없이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겠지만, 그런 제약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태도야말로 타인 또한 그것을 지키게 만드는 전제가 된다. 만약 누구도 법적 구속을 받지 않는 사회가 있다면, 그곳은 결코 살기 좋은 곳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아쉬운 점을 하나 꼽자면, 저자는 프랑스 사법 체계가 각 시민에게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지 못하는 현실을 충분히 강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법률 접근의 어려움, 소송 비용 문제 등). 일부 비판자들의 주장과 달리, 법의 지배는 특히 서민들에게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남아 있다.
글·뱅상 시제르 Vincent Sizaire
프랑스의 법학자이자 판사. 공공법, 형법, 사법제도에 대한 비판적 연구와 대중적 해설로 널리 알려져 있다.
(1) Anne Deysine, 『미국에 맞서는 판사들』, 파리 낭테르 대학 출판부, 2024년,
(2) Tom Bingham, 『법치국가』, 오 푀이앙틴, 파리,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