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주의 혹은 횡포

2013-01-11     브라이언 리비슨

2012년 11월 브라이언 리비슨 판사는 '언론의 문화와 관행, 윤리'에 관해 작성한 보고서를 영국 정부에 제출했다. 그는 주간지 <뉴스 오브 더 월드>가 불법적으로 전화 통화 내용을 도청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 영국 정부의 지시를 받고 지난 9개월 동안 벌여온 조사를 마치고 이렇게 보고서 형태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리비슨 판사는 언론계 외부에 언론중재기관 설립을 제안해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이런 기관은 언론기업의 자유와 시민사회의 보편적 공익이 모순을 이룰 가능성을 안고 있다. 리비슨 판사의 권장 사항은 영국 메이저 언론매체가 저지르는 일탈과 범죄, 그리고 거기에 기울인 노력을 모조리 수포로 돌아가게 만든 은밀한 합의제도에 대한 분석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중 일부를 발췌해본다. 보고서 전문은 인터넷 사이트 www.levesoninquiry.org.uk에서 볼 수 있다.

언론이 공중(公衆)의 이익을 위해 정상적으로 제 기능을 다할 때 그것은 민주주의의 초석이 된다. 토머스 제퍼슨(1)의 표현에 따르면, '언론이 자유롭고 인간이 저마다 글을 읽을 줄 안다면 세상 일은 순조롭다'. 이같은 가설에 근거해 언론은 엄청난 특권을 부여받았고, 나는 항상 판사로서만큼이나 변호사로서도 이 특권을 옹호했다.

그렇지만 이 특권에는 공중에 대한 특별한 책임이 동반된다. 진실을 존중하고, 법을 준수하며, 각자의 권리와 자유를 중시해야 한다. 요컨대 언론산업은 바로 그것을 알고 있다고 스스로 선언했던 원칙(이 원칙의 대부분은 언론의 윤리강령이나 취재보도 준칙에 나와 있다)을 존중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는다.

조사위원회가 수집한 증거들은, 공중이 언론에 부여하는 신뢰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 동안(그래도 그 이전보다는 나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책임이 너무 자주 되풀이해서 무시돼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직업의 종사자들 중 일부는 센세이션을 일으킬 만한 정보를 찾다 보니 마치 자기들 손으로 직접 만든 언론윤리 규범이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는 듯 행동하기 일쑤였다. 그들이 이처럼 언론윤리 규범을 지키지 않는 바람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났는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의 권리와 자유를 마구 짓밟으며 그들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기까지 했다. 그들이 유명인사들에게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언론은 자기로서는 어찌해볼 수 없는 (대부분은 비극적인) 사건에 휘말린 평범한 개인들에 대해서도 비열하게 행동함으로써 사건의 후유증을 크게 키워놓았다.

언론은 국민문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렇다고 해서 언론이 비판받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언론기관으로부터 부당한 취급을 받았는데도 정정 보도나 배상을 요구할 만한 수단이 없는 사람들이 언론 자유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어떤 사람들의 나무랄 데 없는 행동이 다른 사람들의 부당한 행동에 대한 핑계로 이용되는 것에 과연 어떤 직업이나 산업, 또는 상업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언론은 결단코 가장 먼저 나서서 이런 음모를 비난하고 그것의 희생자인 시민들을 적극적으로 옹호해야 한다.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자들에게 당당히 맞서는 것, 이것이 바로 언론의 기능이다.

맥락

정보위원회가 밝혀낸 언론계 관행은, 언론계 종사자들 중 상당수가 공중의 이익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사적인 정보 거래에 연루됐다는 사실이다.(2) 이런 사실이 밝혀졌지만 어느 언론사도 자신의 관행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고, 다른 경쟁 언론사들의 그것에 대해서도 조사하지 않았다. 자기 회사에 소속된 기자들이 사생활 보호와 관련한 법을 준수했는지 확인하려는(필요할 경우 독자에게 이 문제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려는) 언론사는 한 군데도 없었다. 기껏해야 정보를 얻기 위해 사립탐정을 고용하지 못하게 했을 뿐이다. 어떤 언론사들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고, 또 다른 언론사들은 그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을 뿐이다. 법을 위반할 경우 더 많은 벌금을 부과하기 위해 정부와 의회에 지원을 요청했던 정보위원회는, 언론사의 보도 행위에 관련한 문제를 일반 기업 차원의 법 감각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데 이의를 가진 언론계(그리고 언론중재위원회(PCC))(3)의 집중적인 로비로 인해 벽에 부딪혔다.

언론과 공중

어떤 사람들은 '설사 <뉴스 오브 더 월드>가 정보를 얻기 위해 몇 가지 부정직한 방법을 사용했다 할지라도,(4) 법적 의무나 윤리적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다른 기자들을 비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 대한 반론이 연이어 제기되자 그들은 그것이 언론계 전체의 문화, 관행, 윤리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 비상식적인 반론이라고 강변했다. 나는 이 분석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대부분의 신문기사는 사생활 및 명예훼손과 무관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그런 기사를 쓴 기자들의 공명정대함에 대해서는 문제 삼을 이유가 없다. 그런 기사들은 높은(때로는 매우 높은) 정도의 직업상 책무를 발휘해 쓰였다. 그러나 직업윤리를 일절 준수하지 않는 많은 기사들을 못 본 척할 수는 없다. 내가 보기에 이 기사들은 어떤 집단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문화(혹은 '하위 문화'라고 표현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를 반영하는 게 틀림없다.

도청을 예로 들어보자. 수사가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에 상세한 부분까지는 알 수 없고, 이런 행위가 어떤 예외적인 언론사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언을 인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여러 언론사의 편집국장들이 불법 도청에 의해 기사가 작성됐다는 사실을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정보를 자기들 간에 유통시키곤 했다(수습기자들이나 주고받는 것 같은 알 듯 모를 듯한 농담을 곁들여가면서)는 사실만 지적하고자 한다. 나는 그들의 이런 행동이 어떤 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한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타인의 사생활 침해가 그들에게 아무 당혹감도 불러일으키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편집국에서 문제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관대하게 용인되기 때문에 이런 행동에 최소한 불안감조차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얻어낸 정보를 고려할 때, 많은 언론사들이 그 대상이 어떤 피해를 입을지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오직 센세이션을 일으킬 만한 기삿거리를 우선적으로 취급한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오류와 부정확함은 정신을 못 차릴 만큼 빨리 돌아가는 이 분야에서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몫이지만, 어떤 기삿거리가 판매 부수를 올려줄 만하다고 판단되고 독자들이 그것의 후속 보도를 요구할 때 팩트의 진실성을 존중하는 것은 흔히 하나의 족쇄로 인식되는 반면, 편향적인 소개와 미화는 자유로운 논평이 인정하는 한계를 훨씬 넘어선다. 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해준다고 뽐내는 산업이 정보를 왜곡한다는 것은 하나의 재앙으로 간주돼야 한다. 정보 왜곡이 어떤 사회집단에 대한 오류투성이의 묘사라든지 은폐된 이해관계의 갈등, 혹은 과학에 관한 비합리적 두려움으로 이어질 때 공동의 이익은 위협받게 된다. 그런데 언론은 자신에 대해 감히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에게는 그게 누구든지 간에 적대시하는 경향이 있다. 잘못된 정보로 인해 피해 입은 사람이 사과를 받아내거나, 정정문을 싣게 하거나, 반론게재청구권을 얻어내려면(그게 가능하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심지어 어떤 요구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을 때조차 해당 사건을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적당한지를 두고 이런저런 토를 달며 시간을 질질 끈다. 그와 동시에 어떤 언론사들은 소송을 제기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인신공격을 가하는 앙갚음 전략을 구사했다. 이런 언론사들의 독자층을 생각할 때 이런 식의 집중공격은 아주 안 좋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래서 명예훼손을 당한 사람들은 흔히 대응을 포기한다. 자신이 진실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힘들어서가 아니라, 결과가 어떻게 될지 불확실한 오랜 기간의 싸움을 시작할 만한 힘이 부족하거나 친구나 가족들이 피해 입을까 두려워서이기도 하다. 우리는 미디어와 사용자의 관계에 대해 좀더 건전한 개념을 꿈꿀 수도 있을 것이다.

언론과 정치 지도자들

조사위원회를 구성할 당시 영국의 세 주요 정당 지도자들은(5) 몇 년 전부터 '정치인들이 언론계와 지나치게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 이때부터 조사위원회는 여러 가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이같은 공모는 현재의 언론 관행에 어느 정도까지 영향을 미쳤는가? 공모관계 때문에 정치 지도자들은 과거 언론에 그 의무를 상기시킬 수 있는 기회가 많았는데도 그냥 넘어간 것이 아닌가?

조사위원회가 취합한 서류들은 지난 30∼35년간, 어쩌면 그 이전부터 집권당이나 야당에서 계속 전해 내려온 정치 정보가 공공 이익에 거의 부합하지 않는 근친상간적 관계를 언론과 조성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관계를 유지하는 데 공적인 일을 관리하는 것에 투자됐으면 더 나았을 오랜 시간과 깊은 관심, 많은 자원이 동원됐다. 이 관계는 이런저런 언론사의 호의를 얻기 위해 민주적 토론에 영향을 미치려는 단순한(편향적이지만 어쨌든 합법적인) 시도로 간주되기보다, 수단과 강도 면에서 훨씬 더 우월한 수준으로 정보 유통을 통제하려는 확고한 의지를 증명해준다.

정치 지도자들은 불투명한 이해관계가 가하는 온갖 종류의 압력에 취약해질 때까지 이 관계를 밀고 나가기도 했다. 그들이 이런 유형의 무분별한 행동에 책임을 지게끔 강제하는 메커니즘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그렇게 하라고 정치인들에게 요구할 임무는 원칙적으로 언론에 있다). 이해관계가 충돌한다는 감정(최소한 잠재적인)을 공중이 품게 될 위험은 여기서 비롯된다. 지난 몇 년 동안 이런 의혹에 대처할 기회가 있었으나 정치 지도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언론의 양심 부재에 대한 공중의 불안감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정치 지도자들은 언론의 로비 활동에 직면해 미묘한 상황에 처해 있다. 언론은 어떻게 행동해야만이 자신의 이익을 관철할 뿐만 아니라 어떤 정치 지도자의 명성을 과장하거나 훼손시킬 수 있는지 알고 있다. 영국 언론의 주주와 경영자, 편집 책임자들은 명문 학교를 다니면서 그물처럼 얽히고설킨 개인적·직업적 우의 관계에서 능수능란하고 직관적인 로비 활동을 벌이는 법을 배웠다. 그들에게 맞서 국회의원들은 현대적인 정치 마케팅의 필요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사생활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그러나 그들의 사생활은 '가면을 벗긴다'는 구실로 되풀이되는 무분별하고 원색적인 보도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을 위험이 있다) 더욱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

로비 활동이 왕성히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토양은 언론계와 정치가가 매일같이 이용하는 토양이 아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과 그들이 내리는 결정에서 이익을 얻어내는 집단을 연결시키는 토양이 로비 활동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이 매우 좁은 범주의 집단은 소수의 정부 정책 결정자들과 그들의 후임자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내부와 외부의 소수 경쟁자, 그리고 언론의 지렛대를 잡고 있는 소수의 정보 보유자와 주도자들로 구성된다. 이렇게 실몽당이처럼 얽힌 이해관계에서 공공 업무의 순조로운 진행과 제공된 서비스의 비공식적 성과가 유기적으로 결합되는지 여부를 알아내기란 쉽지 않고,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같은 시스템의 투명성과 효과에 대한 의혹이 점점 더 커지는 것에 놀라워하지 말기 바란다.

 

/ 브라이언 리비슨 Brian Leveson 영국 법원 판사

번역 / 이재형 leejaehyung5607@gmail.com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박사과정 수료. 역서로 <프로이트 평전> 등이 있다.

(1) 제3대 미국 대통령(1801∼1909).
(2) 정보 분야와 데이터의 보호를 규제하는 법안의 적용을 담당하는 영국의 독립기관.
(3) '언론중재위원회', 언론자율규제기관(1953년 설립).
(4) Jean-Claude Sergeant, ‘머독 언론제국은 왜 너무 무거워진 보석을 떼어냈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10월호.
(5) 데이비드 캐머런과 니컬러스 크레그(각각 2010년 5월에 구성된 연합정당 내에서 권력을 장악한 보수당과 자유당의 지도자다), 그리고 노동당의 에드워드 밀리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