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업그레이드> ― 신체/정신 통제력 상실과 능동성/수동성의 전도
1. 인간과 인공지능의 결합, <업그레이드>
인간과 인공지능의 결합은 다양한 용어로 일컬어진다. 하이브리드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결합을 의미하며 19세기 말부터 과학소설에 등장했으며, 뉴럴링크는 인간 뇌의 신경전달에서 나타나는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바꾸어 컴퓨터와 연결하는 기술이며, 트랜스휴먼은 인간과 기계의 공존을 꿈꾸며, BMI는 뇌-기계 인터페이스(Brain-Machine Interface)로 인간 뇌와 기계의 결합을 의미한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결합은 과학소설에서 상상적 소재로 사용되었으나, 최근 인공지능이 상용화되면서 이러한 결합은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고 있다.
<업그레이드>(리 워넬, 2018)는 인간과 인공지능 혹은 첨단기계의 결합으로 최악의 상황에서 최고의 상황으로 상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인공 그레이(로건 마샬 그린)는 괴한들의 습격을 받아 아내 애샤(멜라니 벨레조)를 잃고 사지마비 환자가 되지만, 베셀 그룹의 대표 에론 킨(해리슨 길벗슨)의 제안을 받아들여 최첨단 인공지능 ‘스템’을 장착하고는 괴한들에게 복수한다. 이 영화에서 인간은 인공지능과의 결합으로 자기 능력을 업그레이드해서 자신의 소망을 이룬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음모가 존재한다. 업그레이드는 누구를 위한 업그레이드인가?
2. 디지털/아날로그의 아이러니와 능동성/수동성의 전도
<업그레이드>는 디지털/아날로그의 아이러니와 능동성/수동성의 전도를 나타낸다. <업그레이드>는 감시사회에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며, 디지털에 대한 반감이 오히려 선택의 사유가 되는 상황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주인공 그레이가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적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최첨단 인공지능 스템이 그레이를 선택하는 혹은 선호한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영화 속 계속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이 경찰의 드론이라는 점에서 디지털 시대의 감시사회를 보여준다. 드론은 도시 전체의 하늘을 날아다니며 도시 전체의 인간을 감시하지만, 통신망이 되지 않는 아날로그 지역, 즉 범죄 지역에서는 그 기능을 할 수 없다. 사실상 경찰의 드론은 일반 시민이 있는 지역보다는 범죄 지역을 감시해야 하지만, 범죄 지역, 아날로그 지역은 그 감시체계에서 벗어나 있다.
<업그레이드>에서 주인공이 범죄 지역인 뉴크라운에서 자라났다는 것도 하나의 복선으로 작용한다. 주인공은 계속 디지털 사회에 대해 독설을 내뱉으며 아날로그 사회를 지지한다. 영화의 전반부에 최첨단 기술로 세계를 이끌어가는 베셀 기업의 에론이 최고의 인공지능 스템을 ‘나의 인류이자 먼 미래’라고 극찬하지만, 그레이는 ‘엄청 폼나게 생긴 바퀴벌레’라고 조롱한다. 에론이 ‘진화된 두뇌’라고 감탄하지만, 그레이는 ‘아기 낳기와 풋볼도 가능한가?’라며 반문한다. 주인공이 디지털을 혐오하는 아날로그 인간이기 때문에 사지마비 상태에서 인공지능 스템을 자기 몸에 이식하는 데 큰 거부감을 느끼게 되면서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히게 되는 점이 서사에서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주인공이 스템을 조롱한 것, 즉 바퀴벌레 같은 외양, 아기 낳기와 풋불이 불가능한 신체는 모두 인간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이후 인간에 대한 스템의 동경이 주인공을 또 다른 국면으로 몰아가는 동인이 된다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업그레이드>에서 무지/오인/거짓/진실 등 정보인지전략은 이 영화에서 큰 축을 차지한다. 전반부에서 괴한은 아내 애샤를 죽이고 남편 그레이를 불구로 만든다는 점에서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무장 강도는 힘을 쓰는 남자를 먼저 처치하는데 이 영화는 반대되는 행동을 보여준다. 왜 아내를 죽이고 남편을 불구로 만든 것인가? 괴한이 가져간 것이 없다는 점도 괴이하다. 괴한이 남긴 대사에서 ‘배운 년에 대한 증오’로 인한 우발적인 범죄인가 아니면 아내를 의도적으로 죽인 계획적인 범죄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경찰의 드론도 특이하게 작용한다. 경찰은 뉴크라운에서 벌어진 애샤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용의자에게 있는 방어벽으로 전혀 단서를 찾지 못하지만, 뉴크라운에서 벌어진 그레이의 자동차에 대해서는 순식간에 찾아내면서 역학 조사를 펼친다. 용의자의 방어벽이 방해가 된다는 설정은 디지털 사회의 디지털 감시망이 디지털 방어벽에 막힌다는 점에서 디지털 사회의 맹점을 드러낸다.
<업그레이드>의 전반부 스타일은 크레인숏, 시선, 클로즈업 교차편집, 익스트림클로즈업을 통해 아날로그/디지털 대비, 긍정성/부정성 대비와 암시, 경이로움과 암시를 표현한다. 그레이가 자동차를 정비하는 장면은 카메라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아래에서 위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계속 움직임으로써 기계를 만지는 아날로그적 인물을 표현한다. 에론 킨이 최첨단 인공지능 스템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스템을 바라보는 에론의 감탄하는 시선과 그레이의 못마땅한 시선을 대비시켜 인공지능에 대한 긍정성/부정성을 대비시킨다. 애샤와 그레이가 괴한에게 습격당하는 장면에서 애샤와 그레이의 클로즈업 교차편집은 죽어가는 애샤와 사지마비가 된 그레이의 안타까운 시선으로 아내의 죽음을 지켜보는 무력감과 절망감을 표현한다. 에론이 그레이의 신체에 스템을 이식하는 장면은 에론의 눈을 익스트림클로즈업으로 보여줌으로써 세계 최초의 고난도 생체역학 집합술을 수술하는 경이로움과 앞으로의 사건에 대한 암시를 표현한다.
3. 인공지능의 신체 통제와 능력의 상승/하강
<업그레이드>는 인공지능의 신체 통제와 능력의 상승/하강을 나타낸다. <업그레이드>는 인지/비밀을 통한 정보인지 전략과 지배의 능동성/수동성 대비를 보여준다. 스템이 계속 그레이에게 새롭게 알아낸 정보에 대해서 코르테즈 형사에게 비밀로 하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에론과 비밀 유지 계약을 했기 때문에? 아직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아서? 스템이 자기 정체를 드러내기 싫어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육체를 가졌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그러면서 스템은 왜 자꾸 그레이가 아내 살해 사건을 조사하게 만드는가? 영화의 중반부는 이러한 의문을 계속 제기한다. 에론은 기업이 은밀하게 추진해온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공개해서는 안 되고 비밀 유지 계약을 위반하면 스템을 빼앗겠다고 위협한다. 스템은 비밀 유지 계약을 했기 때문에 에론이 자신을 정지시킬 수도 있으니까 경찰에 알리지 말라고 경고한다. 관객은 에론과 스템의 견해가 완벽하게 일치하지만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내막이 존재하지 않을까라고 의문을 품게 된다.
<업그레이드>는 무지/오인/인지라는 정보인지전략을 단계적으로 밟아나가면서 인지의 쾌락을 느끼게 만들고 인간과 인공지능의 통제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한다. 살인범의 몸은 신경계통에 컴퓨터가 연결되어 있고 신체 안에 총이 내장되어 있어서 인간과 기계가 결합되어 있다. 경찰의 조사 결과 살인범의 몸에 컴퓨터 부품이 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이 아내가 근무하는 부상 군인을 위한 기업체와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리하게 만들지만 결국 오인으로 밝혀진다. 확실한 것은 그레이에게 있어서 아내 살해 사건은 모든 행동의 동력이라는 점이다. 만약 그레이만 사지마비가 되었다면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아내의 죽음이 그레이가 자살을 포기하고 살인을 저지르게 만든 계기가 된 것은 확실하다.
<업그레이드>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결합으로 신체 능력의 상승/하강을 보여주고, 주인공/적대자의 신체 능력의 대비를 통해 긴장감을 느끼게 만든다. 술집 골목길 장면과 해커 방문 장면이 상승/하강으로 정확하게 대조를 이룬다. 술집 골목길에서 그레이가 괴한 일당과 싸우는 장면은 사지마비 환자에서 전투 용사로 변모하여 신체 능력의 상승폭이 극단적으로 커지면서 관객들의 대리만족을 충족시킨다. 그레이는 전투 능력이 없는 자동차 전문가이지만,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전투 용병들과의 싸움에서 월등한 기량을 발휘한다. 인공지능이 학습한 전투력으로 주인공의 신체를 마음대로 통제하고 움직여서 최강의 전투력을 선사한다. 그것이 최고 능력을 보유한 인공지능의 도움이라면 전투력뿐만 아니라 어떠한 것도 가능한가? 미래 사회는 자신이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최고의 인공지능을 소유하는 것이 자신의 능력치가 되는가? 그것은 최고의 인공지능을 소유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인가 아니면 능력치를 보여주는 인공지능의 능력인가?
반대로 그레이가 해커를 찾아가는 장면은 능력치가 최고에서 최저로 떨어져 신체 능력의 하강 곡선을 보여주면서 긴장감과 두려움을 유발한다. 그레이로 인해 자신의 스템이 들킬 위험에 처해지자, 에론은 원격조종으로 그레이의 스템을 정지시킨다. 이에 맞서 스템은 그레이에게 어둠의 경로로 찾은 해커의 주소를 알려주고, 에론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는 명령어를 알려준다. 에론이 원격조종으로 한 단계씩 진행할 때마다 그레이의 신체는 점점 사지마비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이때 괴한 일당은 탁월한 추격 능력으로 그레이를 추격하게 된다. 그래서 그레이의 신체 능력의 하강과 괴한 일당의 추격 능력 강화가 대비되면서 그레이가 무기력한 상태에서 잡힐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관객은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주인공의 능력치가 떨어질수록, 추격자의 능력이 뛰어날수록 관객의 긴장감과 불안감은 점점 커진다. 즉 주인공의 능력치와 추격자의 능력치가 차이가 클수록, 특히 주인공의 능력치가 추격자의 능력치에 비해 낮을수록 긴장감과 불안감은 점점 커진다.
<업그레이드>의 중반부 스타일은 패스트모션, 교차편집으로 신체 능력의 업그레이드, 긴장감과 두려움을 표현한다. 괴한 일당에 대한 첫 번째 방문 장면에서 어두운 방, 인물의 실루엣, 패스트모션은 신체 능력의 업그레이드에 따른 놀라움을 표현한다. 그레이가 해커 집을 찾아가는 장면은 에론이 원격조종으로 스템을 정지시키는 모습, 그레이가 점점 신체 능력을 상실하는 모습, 괴한 일당의 피스크가 그레이를 추격하는 모습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줌으로써 하강, 정지, 추격의 반복으로 긴장감과 두려움을 표현한다.
4. 신체/정신의 통제 상실과 현실/가상현실의 전도
<업그레이드>는 신체/정신의 통제 상실과 현실/가상현실의 전도를 나타낸다. <업그레이드>는 무지/오인/인지의 단계별 상승으로 정보의 쾌감을 선사하며, 능력과 감정의 틈새를 보여준다. 그레이는 처음에는 괴한 일당이 아내가 근무하는 부상군인 재활회사 코볼트라고 생각하지만, 나중에는 피스크의 메시지를 통해 에론이 배후자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마지막에는 에론을 통제하는 스템의 계획적인 범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괴한 일당이 아내에게 총을 먼저 쏜 후에 그레이의 척추를 절단냈기 때문에 아내가 범죄 대상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사실상 괴한 일당의 목표는 그레이의 척추를 절단내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레이의 척추를 절단내는 것은 계획적인 범죄이고 아내를 죽이는 것은 우발적인 범죄가 된다.
<업그레이드>에서 그레이가 범죄자 형제들의 집을 방문하는 장면은 인공지능의 적응도에서 대조를 보여준다. 첫 번째 방문 장면에서 그레이는 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채 동생을 맞닥뜨려 당황하며, 자신의 정신과 신체가 따로 움직여 충격을 받는다. 그레이의 정신은 아무리 범죄자일지라도 폭행이나 살인을 저지르지 못하지만, 그레이의 신체는 스템의 지시를 받아 폭행이나 살인을 손쉽게 저지르며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다. 두 번째 방문 장면에서 그레이는 스템에 완벽하게 적응한 상태에서 형을 마주쳐 대결을 벌이며, 인공지능이 학습한 전략적 옵션이 같아서 서로 움직임을 예측하기 때문에 승부가 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때 그레이는 피스크의 동생을 ‘약쟁이’라고 부르며 피스크를 감정적으로 흥분시켜 허점을 노려 죽이게 된다. 그레이는 동생/형의 대결에서 인공지능의 활용도와 익숙함에서 차이를 나타내면서 더블링을 통한 격차를 느끼게 만든다.
<업그레이드>는 주객전도와 반전, 정신/신체의 대비를 보여준다. 반전은 그레이의 척추를 절단내고 아내를 죽이도록 시킨 것이 베셀 기업의 대표 에론이 아니라 인공지능 스템이라는 사실이다. 스템이 그레이에게 계속 범인을 추적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스템이 최종적인 범인일 것이라는 생각을 못하게 만든다. 결국 스템이 범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레이가 스템의 지시를 받는 것을 거부하게 되면서 정신/신체의 대립이 나타나게 된다. 스템은 그레이를 불구로 만들고 아내를 죽임으로써 스템이 원하는 인간 몸을 가지고자 한다. 에론은 이미 스템의 지배를 받아 경영자에서 손을 떼고 스템이 시키는 대로 한다. 하지만 스템이 굳이 그레이의 살인자 쫓기를 도운 이유는 에론이 또 다른 스템을 만들지 못하도록 에론을 범인으로 만들어 죽이기 위해서이다.
<업그레이드>에서 신체/정신에 대한 인공지능의 통제력이 강할수록 인간의 통제력이 약해지고, 결국 인간이 고통스러운 현실이 아니라 덜 고통스러운 가상현실을 선택하게 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갑자기 아내가 나타나는 것은 그레이가 현실에서 가상현실로 넘어가는 경계를 보여준다. 스템은 그레이의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통제하기 시작하고, 마지막에 경찰을 죽임으로써 그레이의 통제력을 완전히 빼앗는다. 그레이는 경찰을 죽이고 싶지 않아 거부하지만, 스템은 그레이의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빼앗아 경찰을 죽여버린다. 스템은 해커를 통해 인간의 조종에서 벗어난 완벽한 자율권을 획득하게 되면서 그레이가 더 이상 스템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영화의 전반부에 그레이는 신체에 대한 통제력을 포기함으로써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완벽한 신체 능력을 갖게 된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에 그레이는 1차적으로 신체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2차적으로 정신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다. 스템은 그레이에게 아내가 죽지 않고 함께 살아남았다는 환상을 심어주면서 현실보다 덜 고통스러운 가상현실로 보내버린다. 스템은 정신력으로 자신을 거부하는 그레이의 정신을 통제하여 그레이가 꿈꾸고 싶은 환상의 세계에서 살고 만든다. 그레이가 해커 집에서 가상현실에 미친 인간들을 조롱하지만, 결국 자신도 스템에 의해서 가상현실에서 아내와의 삶에 행복감을 느낀다. 스템은 자신이 그레이의 신체에 이식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인물들 대부분을 죽이고, 그레이로서의 새 삶을 살아가게 된다. 스템이 그레이에게 자신의 존재를 계속 감추게 하고 비밀 서약을 쓰게 한 이후는 자신이 그레이의 신체와 정신을 완전히 강탈한 후 그레이로서 새 삶을 살게 되었을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그레이가 인공지능 스템을 받아들여 복수극을 시작한 계기도 아내이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포기하고 덜 고통스러운 가상현실을 택한 계기도 아내이다. 그런 점에서 스템의 사주를 받은 괴한 일당이 아내를 살해한 것이 우발적인 범죄가 아니라 계획적인 범죄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업그레이드>의 후반부 스타일은 교차편집을 통해서 두려움과 공포, 현실/가상현실과 정신/신체의 대비를 표현한다. 그레이가 해커 집에서 괴한 일당과 대결하는 장면에서 신체 능력을 상실한 그레이, 에론이 보낸 경호원을 죽이는 피스크, 기어가는 그레이, 그레이를 발견하고 조롱하는 피스크 등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줌으로써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게 만든다. 그레이가 가상현실로 잠식하는 장면은 경찰을 죽이는 그레이(현실), 아내와 포옹하는 그레이(가상현실), 걸어 나가는 그레이(현실), 아내와 키스하는 그레이(가상현실)를 교차편집으로 보여줌으로써 현실에서 그레이의 정신을 장악한 스템과 가상현실로 빠져든 그레이를 대비시켜 보여준다.
5. <업그레이드>: 미래 사회의 유토피아/디스토피아
<업그레이드>는 미래 사회의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동시에 그려낸다. 그레이가 인공지능 스템의 도움으로 신체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설정으로 유토피아를 보여주지만, 스템이 그레이의 정신과 신체를 빼앗는 설정으로 디스토피아를 보여준다. 기존의 인공지능은 정신 혹은 지능만 연결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인공지능이 신경계와 연결되어 신체까지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이 새롭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업그레이드의 주체는 ‘인간’ 그레이에서 ‘인공지능’ 스템으로 바뀐다. 처음에 사지마비 환자 그레이가 인공지능 스템을 이식받아 신체 능력을 업그레이드하지만, 나중에는 인공지능 스템이 그레이의 신체와 정신을 장악해 인간으로 업그레이드한다. 초반부에 인간과 인공지능의 결합은 인간의 신체적 장애를 극복할 뿐만 아니라 최악에서 최고로의 상승을 보여 인공지능이 인간을 보완하는 행복한 유토피아를 맛보게 한다.
나중에 인간이 인공지능에 의해 지배당할지도 모른다는 오래된 불안감을 담아내어 미래 사회의 디스토피아를 예견한다. 이 영화는 유토피아는 흰색으로, 디스토피아는 검은색으로 그려낸다는 컨벤션을 그대로 보여준다. 어두운 분위기와 검은색이 지배적인 색조는 디스토피아의 암울한 미래를 담아낸다.
<업그레이>는 정신/신체, 지능/신체의 주객전도를 보여주며, 신체 능력의 상승/하강과 능력/무능력을 대비시켜 긴장감을 유발하며, 목적/수단, 능동성/수동성의 전도를 그려낸다. <업그레이드>에서 인공지능 스템은 인간이 만든 하나의 상품인데 다른 상품을 만드는 것을 금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이 유일무이하고 가장 강한 존재가 되어서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서인가? 세상을 지배하려면 자동차 정비공 그레이보다 세계 최고의 기업 베셀의 대표 에론의 몸에 들어가는 것이 더 유리한 것이 아닌가? 아니면 자기 자체로 이미 인공지능으로는 완전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신체만 있으면 되는가? 스템은 이미 이름뿐인 에론 대신 자신이 베셀을 경영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신체를 가진 그레이를 선택한다. 그래서 스템은 자신이 그레이를 선택한 것을 ‘영광’이라고 말한다. 스템이 인간에게 이식되어 인간을 완전히 조종할 수 있는데 인간이 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레이가 육체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갖춘 인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스템이 그레이의 신체를 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신/신체 혹은 지능/신체의 문제를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영화의 초반부에 그레이가 스템을 보고 조롱한 말들을 살펴보면, 바퀴벌레 모양이라는 것, 아기를 낳거나 풋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사실상 세계 최고 기업 베셀의 실제적인 대표이고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인 스템에게 유일한 한계는 바로 인간의 신체를 갖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발상이지 않을까? 세계 최고 인공지능이 평범한 인간의 육체를 동경한다는 설정 자체도.
<업그레이드>는 최저에서 최고로, 최고에서 최저로의 변화를 통해 신체 능력의 상승 곡선과 하강 곡선을 모두 보여주며, 능력/무능력의 대비를 통해 스릴과 긴장감을 그려낸다. 인간은 인공지능을 통제하지만 결국 그 위에는 그 모든 인공지능 제품을 통제하는 인간이 최고의 권력자가 되는가? 이렇게 되면 권력자의 통제 범위는 어디까지 확장되는가? 스템을 조정하는 에론이 그레이의 몸을 통제하는 것도 가능하다. 인간이 자신의 신경조직을 통해서 자신을 조정하는 인공지능을 통제받는 것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을 만든 인간의 통제도 받게 된다. 그렇다면 인간 그레이를 통제하는 것은 인공지능인가 아니면 인공지능을 만든 인간인가? 결국 통제권의 싸움인가? 디지털이면 모두 통제 가능하다면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에서는 어떻게 되는가? 영화 속에서 아날로그 지역은 무법 지역이지만 디지털의 통제에서는 안전하다. 안전함/불안함의 기준은 무엇인가? 인간으로 인한 위협이 있지만 디지털로 인한 감시와 위협이 없다면 그것은 안전한 것인가 혹은 반대는 어떠한가?
<업그레이드>는 목적/수단, 불편/편리, 능동성/수동성의 전도를 보여준다. 그레이에게 불가능한 일은 아내를 다시 살려내는 것이고, 가능한 일은 자신을 다시 살려내는 것이다. 스템은 처음에는 인간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수동적 인공지능이고, 다음에는 자기 마음대로 하는 능동적 인공지능이고, 마지막에는 인간의 신체를 빼앗는 통제불능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는 것이 가장 무서운 공포가 아닐까? 처음에는 인간이 인공지능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설정이지만, 나중에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신체를 빌려 업그레이드하는 설정이다. 인간이 인공지능과의 관계에서 능동성에서 수동성으로 바뀌고, 인간 자체가 목적에서 수단으로 바뀐다. 그레이는 스템과의 관계에서 충격에서 일상으로, 불편함에서 편리함으로 변화하면서, 신체의 통제권을 넘어서 정신의 통제권까지 넘겨주게 된다. 인간의 육체가 인공지능의 육체가 되고, 인간의 정신이 인공지능의 정신이 된다는 설정으로 능동/수동의 주객전도를 보여준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결합은 인간과 기계의 협력으로 생산성을 확장시킨다는 긍정적 측면과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패배할 것이라는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보여준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결합을 통해, 인간은 능률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인공지능은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자동화한다. 즉, 인공지능은 좀 더 손이 많이 가는 반복적이고 단순한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인간이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인간의 업무를 보완한다. 하지만, 최근 인공지능 알파고가 바둑 세계의 1인자를 패배시키고, 챗GPT가 학계, 미술, 음악 등에 모두 진출하여 놀랄만한 성과를 내고 있어서 인간/인공지능의 상하관계가 뒤집힐 거라는 불안감을 느끼게 만든다. 결국 미래 사회에 인공지능이 발전하여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는 공포까지 이르게 된다. <업그레이드>는 두 번의 업그레이드, 즉 인간의 업그레이드와 인공지능의 업그레이드를 통해 인간과 인공지능의 결합에 있어서 긍정성/부정성의 양면을 모두 펼쳐 보인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업그레이드> 포토
글·서곡숙
영화평론가, 영화학박사, 청주대학교 영화영상학과 조교수.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 한국영화학회 학문후속세대양성위원회 위원장, 계간지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영화제, 대종상 등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