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파기제도, 해고 없이 직원 자르는 노동법
프랑스에서 고용에 관한 첫 협상이 막을 내렸지만,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고대했던 노사 간의 ‘역사적 합의’는 멀어져간다. 노동자 대표인단은 프랑스경제인연합회(Medef)가 제안한 독창적이면서 불확실한 신(新)노동계약을 거부했다. 2008년 도입된 합의파기제도는 노사 합의의 시험대이다.
고용주로부터 호출을 받은 클로틸드(1)는 주 5일 중 3일 근무 변경 '제안'과 함께 수습기간이 갱신되었다. 젊은 클로틸드는 충격에 휩싸였다. 인터넷에서 친환경 상품을 판매하는 작은 기업에 다니는 그녀는 자신의 근무시간을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가 이를 거부한다면 직장에 안녕을 고해야 할 것이다. 변호사 친구의 조언에 따라 그녀는 사실상 기한제 정규직 계약(CDI·Contrat à Durée Indéterminée)의 기본 권리를 강조하며 수습기간 갱신 공지 기한이 준수되지 않은 점을 공격했다. 클로틸드는 어떤 식으로든 근무시간 변경을 거부하고 끝내 노동계약 합의파기(Rupture Conventionnelle)를 제안했다. "그들은 날뛰었다. 광분 그 자체였다! 거의 모욕에 가깝게 괴롭혔다. 상사 두 명은 말도 건네지 않고 매일 내 근무 내용을 상세히 기술한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3개월 뒤 그녀는 해고로 끝날 수도 있던 소송에서 이겼다. 고용주 쪽은 의무를 위반하고, 피고용인은 조속히 마무리되길 원하는 것. 이 사례는 합의파기를 도입한 경제 근대화법(2)의 회색지대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2008년 합의파기제도를 도입하면서 프랑스식 고용에 관한 유연·안정성에 관한 논쟁이 뜨거웠다. 이 새로운 해약 방식 때문에 기간제 계약(CDD·Contrat à Durée Déterminée)과 노동 경직성의 요인이기도 한 CDI, 양쪽으로 나뉘는 프랑스 노동시장의 이원 구조가 손상될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그것은 '당사자 간의 동의의 자유' 이외에 해약의 동기도 예고제도 없을뿐더러 15일간의 취소 기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용인과 피고용인은 간략한 서류를 작성해 기업, 경쟁, 소비, 노동 및 고용 지역 사무국에 보낸다. 15일 내에 답변이 없으면 고용계약 해지가 승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노동재판소 심판관 앞에 이의 제기를 할 수 있는 기한은 12개월이다.
좋은 이혼, 나쁜 결혼생활
이 제도는 노동자에게 일정한 권리를 보장한다. 퇴사 보상금은 해고시 적용되는 법적 금액에 맞먹고(월급여의 5분의 1에 근속연수를 곱한 금액), 고용안정센터(Pȏle Emploi)에 등록하자마자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다. 이는 실제 아무 권리도 보장하지 않는 사직보다 낫다.(3) 그러나 경제적인 해고, 개인 또는 집단 해고의 경우 규정된 부수적 조치보다는 덜 유리한 편이다. 게다가 합의 과정에서 있었던 회사의 악덕을 판사 앞에서 증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제도가 도입되고 4년 뒤 약 100만 건의 합의파기가 발생했다. 관련 행정 당국은 매달 평균 2만5천 건의 합의파기를 승인한다. 제도가 보편화되면서 독특한 비유도 생겼다. 부부에 빗대어 '좋은 이혼이 나쁜 결혼생활보다 낫다'고 말하는 점이다. 이런 비유를 처음 사용한 이는 프랑스경제인연합회(Medef) 회장인 로랑스 파리조였다. 2006년 일간지 <라 크루아>에서 그녀는 이렇게 자문했다.(4) "1975년 이후 협의이혼처럼 피고용인에게는 이익이 되는 보상을 주고 고용주에게는 더 예측 가능하도록 합의를 통한 계약 해지 방식을 도입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성공적 이혼'이 가능하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더라도 합의파기를 악용할 가능성이 있음은 분명하다. 부부와 관련된 민법과 반대로 노동법은 노동계약에서 당사자 간의 불평등을 전제한다. 노동총동맹(CGT·Confédération Générale du Travail)의 법률 고문 안 브론은 이렇게 설명한다. "노사관계는 평등하지 않다. 따라서 합의파기는 노동자를 압박하며 퇴사시키기 위한 용도로 쉽게 변질될 수 있다."
'압박을 가한다?' 18년간 유통 대기업 중역으로 근무한 45살 세드릭의 경험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보여준다. "회사는 사무실 여는 시간부터 닫을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공휴일에도 일하라고 요구했다. 나는 이를 거부했다. 회사 상부는 계속해서 요구했다. 나는 궁지에 몰렸고 결국 합의파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한시바삐 끝내고 싶어 그는 노동재판소에 소를 제기하기보다는 불확실성이 없는 합의파기 서명을 선택했다. 소기업에서 인사과 책임자였던 베레니스의 고백이다. "어떤 노동자를 쫓아내려 할 때 합의파기를 제안한다. 기업 처지에서는 해고보다는 노동재판소에 사안을 끌고 가는 것이 위험부담이 적다. 반대로 노동자가 작성한 합의파기 제안은 늘 거부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요구를 들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당국이 합의파기를 승인할 때는 원칙적으로 법으로 규정된 조건에서 체결됐는지 확인해야 한다. 현재 접수된 파기 건수 중 94%가 승인된다.(5) 전국 인사담당자위원회 위원장이자 로디아 프랑스사(社) 인사담당자인 크리스토프 시베라는 이런 수치를 통해 제도가 원활히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 "거의 모든 경우에 승인이 나는 상황이므로 이를 없애도 될 것 같다." 이와 같은 퍼센티지가 관리 역부족을 드러내지만 않는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 경제학자 카미유 시뇨레토는 분명히 말한다. "합의파기는 행정상의 요식 절차에 불과하다. 행정으로 기한 준수나 파기 보상 금액, 법률 자문 여건(6)을 확인한다. 그러나 행정 역량 부족으로 그 내용을 실질적으로 관리할 수 없다."
제도의 악용을 떠나 합의파기는 노동계약 해지를 가속화하는 역할도 한다. 지난해 7월 프랑스민주노동총연맹(CFDT·Confédération Franéaise Démocratique du Travail)의 출자로 프랑스 고용연구소(CEE·Centre d' études de l' emploi)에서 시행한 설문조사가 이를 방증한다. 전기공, 공증사무소 서기, 약국 조제 조수, 기업 영업이사 등의(7) 경력을 가진 101명의 봉급생활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한 가지 뚜렷한 경향이 나타난다. 합의파기를 선택한 봉급생활자는 4분의 1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나머지는 해고나 노동의 고통에 따른 사직에 가까웠다. 이는 때로 고용주가 피고용인을 쫓아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성한다. 이처럼 착취를 제도화하는 관행은 개인화된 노동 환경에서 노동자들이 그 고통의 책임을 지도록 유도한다. 따라서 자신의 권리에 대한 정보를 잘 알거나 능력 있는 노조의 도움을 받지 않는 한, 노동자는 급속히 고립되고 궁지에 몰리게 된다. 결국 합의파기가 견딜 수 없는 상황을 종결시킨다. 사회학자이자 이 설문조사의 공동 저자인 도미니크 메다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런 식으로 합의파기는 만병통치약이 되었다. 약간의 의견 차이에도 합의파기를 들어 바로 대화를 차단하고, 다른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해약을 선택하도록 부추긴다. 합의파기로 기업은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모든 노력에서 면제된다."
현실에 부적합한 노동시간제, 먼 통근 거리, 업무 운영 방식의 악화, 직원들에게 거의 관심이 없는 새로운 경영진, 개선되지 않는 노동조건 등 회사를 떠나고픈 마음이 불쑥 들게 하는 원인은 무수히 많다. 노동재판관이자 이 연구의 공동 저자인 베르나르 고멜의 부연설명이다. "기업의 많은 문제가 합의파기를 통해 해결되고 있는 현실이다. 엄밀히 말하면 불법은 아니다. 오히려 법 입안자들이 예견하지 못했거나 제거하지 않은 용도로 이용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합의파기는 위험한 도구다. 더 구체적인 조처들로 용도를 세분화해야 한다."
법적 악용의 예라면? 통신 공기업 직원이었던 소냐는 그녀의 사소한 일과 행위를 감시하던 상사와 8개월간 신경전을 벌인 끝에 경영진의 호출을 받았다. 그녀는 동료들을 통해 직원 20명인 부서를 책임지던 매니저 직위에서 3명만을 거느린 부서로 강등될 것임을 알았다. 호출 면담을 앞두고 그녀는 노조와 접촉해 직위 이동을 거부하고 반대 제안을 했다. 지금 그녀는 이 사안에 대해 자족한다. "회사 쪽의 수용을 기대하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회사는 직원들이 사직할 때까지 압박한다." 소냐는 운신의 여지가 없다고 보고 협상안을 찾지 않았기 때문에 최소한의 퇴사 보상금을 받았다. 5년 근속에 대해 1500유로의 보상금과 약 1300유로의 월급이었다. 그녀의 전 고용주는 이런 관행을 전혀 바꾸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는 실업수당을 통해 기업이 야기했지만 그런 식으로 정당화하는 상황을 받아들인다. 고용보험 비용은 전혀 추산된 적이 없다.
공동체의 문제, 해결은 각자 알아서
고멜은 개별 사안 뒤로 기업의 구조적 문제를 은폐하거나 해소하는 경향을 주시한다. "해고는 공공질서를 해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합의파기는 양쪽의 의지에 따른 사적인 일로 여겨진다." 설문 연구의 대상이던 101명의 봉급생활자 중 94명은 합의파기를 자신에게 좋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대체로 그렇게 분명한 입장은 아니었다. 간혹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개인적 해결책으로 해고보다는 합의파기가 사회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더 납득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어쨌든 합의파기는 시간을 많이 요하지는 않는다. 맨파워의 인사관리 전문가이자 파리 도핀대학의 '협상 및 사회관계' 석사과정 전담교수인 제라르 타포나는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한다. "낭테르에서 현재 노동재판관이 맡은 사건들은 2014년 전까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노동자는 어찌할 것인가?" 저축액이 없는 노동자는 다시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CGT의 브론은 급속심리 재판관 앞에서 10일 내에 이뤄지는 약식 절차를 도입하는 데 찬성한다. 그렇게 되면 합의파기를 선호했던 일부 노동자들이 선택을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CFDT의 고용 및 이력안정화 서비스 책임자이자 연합 사무총장인 크리스티앙 자냉은 합의파기가 '기존에 이미 존재하던 절차를 공식화한 것'이라고 본다. 실제 경제학자 시뇨레토는 "이전까지만 해도 고급 인력들만이 누렸던 합의나 협상 해고와 같은 가능성을 모든 노동자에게 열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전에도 협상 능력을 갖지 못했던 노동자가 오늘날이라고 해서 더 많은 협상력을 갖게 된 것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최고 수준의 능력을 지닌 노동자들은 자신의 지식을 협상에서 무기로 이용할 수 있다. 재정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이들은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고 자신들의 권리에 대해 조사한다. 그러나 나머지는? 합의파기 건수의 4분의 3은 직원 50명 미만이며 노조 대표도 인사과 대리인도 없는 회사들에서 체결된다. 10명 중 1명 미만의 노동자만이 협상 기간에 법적 지원을 받는다.
좀더 속전속결로 처리하는 데 급급한 프랑스경제인연합회는 이제 집단 합의파기를 제안한다. 파리조 회장은 2012년 7월 이렇게 발표했다. "2008년 합의파기를 창안하면서 우리는 유연·안정성 면에서 진일보했다. 이제 집단 차원에서 비슷한 것을 도입해야 한다. 기업이 인력조정이나 구조조정을 할 때를 대비해서 말이다." 제약 없는 해고와 다를 바 없다.
글 / 셀린 무종 Céline Mouzon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 / 박지현 sophile@gmil.com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위원.
(1) 당사자의 요구에 의해 가명을 썼다. 2012년 5월과 6월에 진행한 인터뷰에서 나온 발언들이다.
(2) 3개 경영인 단체와 5개 중 4개의 노동단체(노동총동맹(CGT)은 2008년 1월 서명을 거부했다)가 체결한 전국 전 직종 간 동의에 따라 노동법전 해당 법의 L.1237-11조에 의해 규정돼 있다.
(3) 4개월 뒤 적극적으로 구직 활동을 했음을 입증하면 사직서를 낸 노동자는 고용안정센터에 실업 상황 재검을 요구할 수 있다.
(4) ‘노사 대화를 개혁해야 한다’, <라 크루아>(La Croix), 2006년 4월 24일.
(5) 프랑스 노동부 연구통계국(Dares)의 2012년 6월 발간 자료. 이 수치는 비보호 대상 노동자들과 관련된다.
(6) 고용주는 피고용인이 자문받지 않을 경우 마찬가지로 자문받을 수 없다.
(7) 설문조사에 응한 사람들의 임금 수준은 600유로부터 5천 유로까지 점진적으로 분포돼 있고, 근속기간은 3개월부터 41년까지 다양하다. <노동자가 바라본 합의파기>(Des ruptures conventionnelles vues par les salariés), 프랑스 고용연구소(CEE)-프랑스민주노동총연맹(CFDT) 공동 발간, 2012년 7월.